94. 5. 15 주일오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라
마26:36-4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르도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To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 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대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오늘은 마태복음 26장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기록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피 흘리신 고난에 대해서 우리들은 많이 들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피 흘리고 돌아가신 그 고난을 기억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언덕에서의 그 고난이 그 전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그의 영혼과 그의 마음 전체 속에 스며들어왔던 것을 우리들은 먼저 기억하여야지만 이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잡히시던 날 밤에 기도하고 내려오시다가 잡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자기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아셨다고 누차에 걸쳐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사랑하는 제자들의 곁을 떠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가 오자 그분이 마지막으로 택한 장소는 늘 그곳에 올라 기도하시던 그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애의 사역을 처음 시작하기에 앞서 요단 강변에서 기도를 하실 때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사역을 마지막 마치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자기의 사역을 마치시는 것입니다. 요단강변에서는 기도하실 때 성령의 세례가 임하셨지만 이제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함으로 그에게는 죽음의 세례가 임하고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궁극적인 대속을 이루시게 될 그러한 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라가실 때에 많은 제자들을 그 산 밑에다가 두고 그 다음에 세 사람을 특별히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리고 요한입니다. 이 세 사람을 데리고 주님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던 것 같습니다. 왜 이 세 사람인지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복음서 전체를 보면 확실히 예수님은 그렇게 자기를 중심으로 첫 번째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과 그 다음에 더 큰 원과 더 큰 원 이렇게 그리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가장 가까이에 들어와 있었던 사람들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랑에 있어서 차이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이 열 둘 가운데서도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시고 그리고 이들과 가깝게 지내시면서 이들에게 당신의 사역과 그리고 신앙과 진리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을 데리고 올라가셔서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시면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 달라 이렇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그의 살아온 모든 생애는 고난과 그리고 역경으로 얼룩진 생애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그 인생에 있어서 어떤 위기를 만났을 때에도 이처럼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 ‘내가 심히 고통하고 번민하여 죽게 되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강하고 그리고 인내하시는 그 분이셨습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그 전날 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게 되었을까요? 그 분을 향하여 위협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직 그 분을 향하여 어떤 위해가, 어떤 악한 일들이 행해지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통스럽게 하는 핍박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다음날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할 그 십자가의 고난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서 기도하고자 하는 당신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던 것입디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의 그 깊이와 넓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을 것들이 가슴에 밀려오고 그리하여 그 마음이 심히 죽게 되었을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이미 그 십자가의 고난은 정해졌고 그것을 마시고 죽어야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그 잔을 피할 수는 없고 그대로 죽어야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는 최후의 마음은 이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할 때 이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너는 여기에 머물러 나와 함께 있자’, 두 번째는 ‘깨어있자’ 이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 꼭대기에 올라가셔서 그리고 나와 함께 있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이적과 능력을 행해서 수많은 사람이 환성을 지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그 분께 경배를 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할지어다’ 사람들은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받으셨고 제자들도 그 영광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나와 함께 있자’ 라고 말씀 하실 때 그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영광을 받던 그 모든 때는 다 지나가고 이제는 쓰라린 죽음과 고난 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는 그 죽음 직전에 사랑하는 제자들, 그 중에 특별히 당신과 함께 있고, 특별히 당신과 교제를 많이 나누고 특별히 사랑하셨던 그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축복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은혜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가장 사랑하시고 가까이 계시고 그리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가르쳐주시고 그 품에서 먹고 마시게 하셨던 사랑하는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고난에 십자가를 앞두고 피 흘리기까지 기도하시는 그 현장에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주는 축복이요 특권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 죽고 복음을 위해서 순교하기를 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의 생각이지 하나님께서는 아무의 헌신이나 받지를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함께 있어오고 그리고 자기와 함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교제를 나누고 그 분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의 때와 고난의 때에 나와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을 받았던 이 제자들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 마지막 고난의 밤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깨어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실 텐데 너희는 자지 말고 여기서 내가 기도하나 보라, 이것은 자지 말라는 뜻도 되지만 영적으로 자지 말라, 그래서 예수께서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잠시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깨어 있어 기도하라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다급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깨어 있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어느 때에 이렇게 간절히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그리고 나와 함께 여기에 있어서 이렇게 내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미리 참여하는 영적인 고난에 동참해 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장 함께 있고 가장 당신을 위해 기도해주기를 원하셨던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이렇게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값진 것을 얻고 그리고 예수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 원하는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나아가게 하고 나와 함께 고난을 받고 나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눈물을 뿌리며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할 때에 그 자리에 불러 주실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분의 사랑에 붙잡히고 그 분을 위해서 살기를 원했던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을 받는 일은 특권이요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이며 그가 우리를 위해 흘리신 대속의 보혈과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아는 모든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와 더불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여 신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는 기도 옆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영광으로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모두 깨어 있어 달라는 부탁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 있기를 원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앞에 두고 있는 이 십자가의 이 고난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알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간구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번 기도하러 나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다시 돌아오셨을 때 자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다시 돌아오셨을 때 자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들이 이 결정적인 순간에 기도하여야 함에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을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유월절이었습니다. 유대인들과 특별한 논쟁이 많이 벌어지고 핍박이 극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날도 잡히시기 그 전날 밤도, 전날 밤이 있던 그 낮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백성들을 고치고 치료하고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그는 고단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저녁 때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드셨습니다. 제자들은 먹고 마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고 포도주를 따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락방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잠시 후에 경험하게 될 제자들과의 이별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 그리고 체포될 이후에 심문을 받으시고 못박혀 죽으실 모든 것들을 다 바라보시며 최후의 만찬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 모든 앞으로 이루어질 광경을 가슴에 새긴 채 그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다락방의 설교입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며 말씀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치유하시고 진리를 가르치시는 그 모든 일을 수종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그는 사람들에게 가서 동리에 들어가서 열심히 그 만찬을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먹고 마셨지만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 이유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점철되어진 ‘이것이 내 몸이니, 이것이 내 피니 이것을 먹으라 그리고 다시는 포도주에서 난 것을 내가 먹지 않으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 대로 간다, 너희 중에 나를 판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설교를 그들은 계속 들었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루 종일의 노고가 그 밤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려고 하실 그 때에 그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로를 이기지 못해 잠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저희의 눈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기도를 해 보려고 애를 써도 눈이 계속 추를 단 것처럼 무거워서 내려왔어요. 그리고 그들은 잠들었습니다. 비난받을 일이 뭐 그렇게 있습니까? 너무나 지치고 피곤해서 잠들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측은합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기도하고자 원하는 간절한 사모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너무나 지치고 피곤하여 그들은 잠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잠들게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계서 찾아오셔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어떤 신앙의 실패가 나올 때는 그것이 뿌리가 있음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서 제자들이 모여서 열심이 기도했다는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은 재미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수시로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제자들이 결정적으로 주님과 함께 있어 깨어 달라고 부탁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순종하며 거기서 그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수 없었던 것은 깊은 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한없는 은혜와 권능을 받았지만은 그 제자들이 평소에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잡히시던 날 밤에 기도로 온 밤을 밝히시고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고 체포하러 나오는 무리들에게 담대히 걸어가셨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바로 지금 자기가 이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렇게 기도하는 삶을 계속 살았더라면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언제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정적으로 함께 깨어 있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이 순간에 기도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은 이 제자들에게 깊은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잡히시던 날 밤에 주님은 기도하시고 자기는 기도에 실패함으로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고 그 다음날 성공하시고 자기들은 그 십자가를 따라 가는 일에 패배했던 사건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 예화) 어느 대학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이렇게 생긴 접시에다가 개구리를 집어넣고 찬물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불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불이 펄펄 붙는 불이 아니라 1초에 0. 02도씩만 올라가는 천천히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는 그러한 알코올 램프 위에다가 요렇게 올려놓았습니다. 개구리가 이 위에 있으니까 맘에 먹으면 언제든지 폴짝하고 뛰면은 이 쟁반을 벗어 날 수가 있어요. 이렇게.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하면 1초에 0.02도씩 올라가는데 정확하게 한 시간 반 만에 개구리가 이렇게 앉아 있는 자세로 폭 삶아졌어요. 푹 삶은 채 죽어있었어요.
뜨거우면 거기서 폴짝 뛰면 되는데 갔다 올려놓고 갑자기 뜨거운 불을 훅 지폈으면 두 말 나위없이 개구리는 도망갔을 거에요. 서서히 한 시간 반이되니까 100도의 끓는 물이 되었고 거기 고대로 앉은 채로 삶아진 형태로 발견되었어요. 여러분 우리의 기도 생활도 바로 이런 것이에요. 서서히 서서히 우리가 기도에 게을러지고 나약해 질 때에 그 때에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 우리가 이렇게 삶아진 채로 발견 되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다리가 있고 그 다음에 뜨거운 물이 되고 나면은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항상 살아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여러분 움직이는 기계를 가르켜서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고 언제든지 반응하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0.02도에 상승하는 온도에 반응할 수 없었던 이 개구리는 100도에도 반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고난을 받으실 때에 나와함께 깨어 있어 달라고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렇게 그런 자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부름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들은 매 순간 순간 큰일을 만나서 엄청난 결단을 할 것을 생각하지 말고 매 순간 순간 성령에 예민한 사람이 되어서 그렇게 깨어있는 사람들이 될 때에 우리가 비로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깨어 있어서 하나님 앞에 고난을 위해 부르심을 받을 때에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름에 동참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