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열렬한 기도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7-148)
녹취자: 김란희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자신의 기도가 열렬해지는 것일 것입니다. 아마 누구도 ‘나의 기도는 그렇게 열렬해지지 않고, 그저 뜨뜻하고 미지근한 기도로 이어지고 싶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만약에 그 마음이 진실하다면 그는 아마 거의 기도하지 않습니다. 종종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열렬함을 더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보기도 하고, 아니면 쉽게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산에 있는 기도원으로 발길을 옮기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열렬함을 육체에 반영해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기도에 불을 붙여 보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화) 언젠가 교회에서, 지하실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그 커다란 장의자가 막 흔들리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대체 이것이 무엇 때문인가 그랬더니 뒤에 있는 사람이 기도를 하면서 손으로 그 의자를 힘차게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자신의 기도가 간절한 기도가 되고 싶었지만 쉽게 마음에 불붙지 않는 안타까움이 그런 육체의 열렬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종종 손을 높이 들고 막 떨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몸을 막 움직이면서 기도하는 습관들, 때로는 결코 방언이 아닌데 방언처럼 흉내를 내면서 기도하는 것들도 모두 자신의 기도가 신령해지고 열렬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라고 생각됩니다.
존 오웬(John Owen) 목사님은 자신의 책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라는 책에서 기도의 모든 열렬함의 근원이 성령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그 작품은 가톨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도서에 대한 반박, 즉 기도문을 작성해서 그 기도문을 읽음으로써 기도를 대체하는 것에 대한 개혁주의적인 반박으로 쓰인 논변서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열렬하게 하는 유일한 궁극적 원인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에는 열렬히 소리를 내서 기도하든 조용히 기도하든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의 기도가 뜨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도할 때에 입으로는 잠잠하지만 그 기도의 정이 마음속에서 소리침으로써 열렬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궁금한 점은, ‘그러면 도대체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뜨겁고 열렬하게 해 주시는 유일한 원인이시라고 한다면, 그러면 언제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불붙게 하셔서 열렬한 기도가 쏟아지게 하느냐’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이 기도도 우리의 성화를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도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결코 뜨겁게 하시지 않으시고 성령이 우리를 아무리 기도하게 하시려고 해도 우리가 안 하려고 마음먹으면 기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열렬한 기도는 우리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지와 그리고 지성과 동요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관계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아주 명백하면서도 아주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인의 고백이 뭐냐 하면, 물론 여기 문맥으로 보면 고난을 많이 당하고 있는 문맥입니다. 그 고난 속에서 이 시인이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그랬더니 눈을 뜨자마자 마음에 복받치는 기도의 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니까 ‘부르짖으며’ 그랬습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부르짖은 것입니다. 히브리말로 ‘카라(καρα)’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저 정신적인 부르짖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소리를 내어 토하는 부르짖음 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새벽에 일어나서 그 자신 속에 사무치는 기도의 정으로 하나님 앞에 토하기를 간절히 소리를 내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히브리어에서 ‘카라(καρα)’라고 하는 단어가 특별히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여 쓰여졌을 때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원한이나 소원, 그리고 희망이나 기대 같은 것들이 응어리 진 가운데 분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아무 마음에 없이 그저 겉으로만 괜히 불러보는 이런 것을 지시하는 단어는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때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간절하게 부르짖기를 새벽에 소리를 내어서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은 이 시인이 자신이 처한 고난의 환경에서 얼마나 원통하고, 그리고 고통을 받았으며, 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하게 당신을 찾는 자에게 당신을 향한 갈망을 부어주시고 또 그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마음속에 있는 이 기도의 정을 억제하지 못해서 소리를 내어 부르짖었다고 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치열하게 타들어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열렬한 기도의 영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보여주는데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주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사무치는 기도의 영이 있었지만 그 기도를 멈춘 후에는 그는 조용한 사람이 되었고 주의 말씀을 읊조리기 위하여 새벽녘에 눈을 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냐 하면 하나님 앞에 새벽에 간절히 부르짖기 전 제일 먼저 한 일이 눈을 떠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슬픔과 고통으로 꽉 차서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데 기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눈물과 마음의 슬픔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나는 이것을 가리켜서 ‘정서의 다름’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쏟는 눈물과 서러운 정동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사용되는 정동과 다른 정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 원한에 맺히거나 괴로움 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에는 마음이 녹는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그 녹는 마음을 그대로 가져가려고 하면 눈물이 걷히고 울음이 멈추며 급속하게 마음이 굳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녹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녹는 마음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해 굳센 마음이 세상을 향해 굳센 마음이 아닙니다. 리차드 십스(Richard Sibbes)는 자기의 책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녹는 마음은 세상을 향해 단단하고, 세상을 향해 녹는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굳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정서의 차이를 미묘하게 분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의 사람이 모두 기도의 사람이 아니고 마음 상한 모든 사람이 간구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게 만들어 준 것이 이 시인에게 있어서는 묵상이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떠서, 제가 이 상황을 재정리하면 이렇게 시간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새벽에 먼저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잠잘 때는 잊었지만 눈을 뜨고 아침을 맞으니 새벽과 함께 자신의 모든 삶의 현실이 무게감 있게끔 자신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때 그는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이런 것들에 의해 들내거나 휘둘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생각을 하나님 앞에 토하듯이 쏟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가지고 계신 마음이 자기가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며 묵상하였던 것입니다.
묵상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생각하다’라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생각을 하되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마음 깊이 집중하여 그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의미 속으로 자신의 정신을 침잠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사물을 만나든지 심리적인 생각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묵상은 그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이 들어가며 특별히 어떤 사물과 사건을 본질을 깊이 파악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인생의 의미와 연결시키는 것을 묵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묵상을 깊이 하게 되자 그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시련과 환난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음성 중 어떤 것은 그에게 교훈을 주었고 어떤 것들은 책망을, 바르게 함을, 의로 교육하게 함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어떤 말씀을 그를 위로했고, 어떤 말씀은 그의 가슴을 헤집으며 고난 속에서 그의 불결한 마음을 찾아내어 율법 앞에 고발하였습니다. 이런 속에서 그는 어느 순간 심장이 터지는 것 같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정동이 쏟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같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원수들에게 에워싸일 때 ‘주님은 내 영광 내 방패에, 내 영과 내 머리를 드시는 분입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하나님 앞에 은혜의 눈물을 쏟게 만들었고, 자기를 괴롭히는 악인들이 모두 잘못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면서 하나님이 이 큰 시련과 고통, 심지어는 악인들의 모함과 잘못된 의도까지도 사용하셔서 불결한 자기를 정결케 하시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기 같이 미천한 죄인에게 베푸시는 은총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과 적용을 통해 불붙었고, 이러한 울부짖는 간절한 기도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붙들며 살도록 용기와 힘을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부패한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 깊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분의 경륜, 그 빛 앞에서 비춰지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이 일이 자연적인 본성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가슴에 새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각별한 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말씀이 없이 묵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특별히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악하고 하나님 앞에 핑계대고 회피하려는 우리의 자연적인 본성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때때로 은혜를 주셔도 묵상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구멍이 뚫어진 그릇으로 비오는 날 물을 받는 것 같습니다. 워낙 비가 세차게 쏟아지면 구멍으로 새는 것보다 위에 떨어지는 것이 많아서 넘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줄줄 새버려서 얼마 후에는 언제 이 그릇에 물이 담겼었나 하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설교를 듣고 좋은 경건서적을 읽고 성경을 열심히 탐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은혜를, 묵상은 보존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고 그것을 풍성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신자로서의 아주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여야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묵상하며 그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