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영성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33:11).
이 성경의 기록은 이스라엘이 큰 위기가 닥쳤을 때에 있었던 사건을 적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을 출발해서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이 타락하게 되었고, 특별히 이 3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에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자발적이고도 놀라운 회개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이방신상을 다 버리고 그 다음에 장신구들을 내려놓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뉘우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이때에 하나님의 명을 따라서 모세는 백성들의 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회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적이고 교회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사람들이 나와 거기서 하나님께 은밀하게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회막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 회막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 모세가 들어갈 때가 되면 하나님의 종이 들어가니까 백성들이 경의를 표하고 모세가 그곳에 들어가서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후에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었을 때, 광야의 방황이 모두 끝날 때 모세는 요단강을 바라보고 죽고 그리고 강을 건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갈 지도자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여호수와 1장에 보면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서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도되어서 가나안을 정복하게 되는데 모세와 여호수아는 사실 비교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정말 전설적인 인물이고 여호수아는 그런 카리스마에 있어서는 모세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실 때까지 인도하신 방식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사용해서 인도하시는 인도 방식이 많이 다릅니다. 그 전까지는 기적을 일으키면 백성들이 보고 순종하는 것인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부터는 믿음이 먼저 따르고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훨씬 이 신앙이 아주 신약적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같은 목사님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세는 율법의 상징이었고 여호수아는 말하자면 이름 그 자체를 희랍어로 읽으면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모형이었기 때문에 모세가 그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제가 오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많은 백성들 가운데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은 모두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만 살아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경우에는 그 사람들과 함께 죽어야 될 인물인데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셨으니 이것이 어떻게 보면 모세보다 더 뛰어난 지도력이 필요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지팡이만 들면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 믿음이 동반되어야 하니까... 보여 주고 믿으라고 하는 지도자가 쉬운 지도자 입니까? 보여 주지도 못하면서 일단 믿으면 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지도자가 힘든 지도자이겠습니까? 후자가 훨씬 지도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지도자가 되었으니까 사실은 더 탁월한 지도력이 요구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무나 찍어서 지도자를 세우셨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후에 아주 탁월한 신약적 영성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 말씀의 사람이며 믿음의 사람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수아가 용기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말 용기 있는 탁월한 믿음을 가지고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아주 놀라운 능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탁월한 지도자로 세워지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루아침에 이 사람에게 능력을 부으셔서 그런 지도자를 만들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도 급조 하시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어떤 이유에 의해서 지도자들을 급조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성숙하지도 않은데 어떤 이유로 지도자로 만들어 버리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돈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장로로 세우거나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세우시지 않으십니다.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 준비로 나오는 것이 기도의 준비입니다.
그러니까 이때 모세의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아닙니까? 그 신령하고 놀라운 사람이었지만 육체가 늙는다는 사실은 별다른 대책이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니까 회막을 만들어 놓고 위기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노심초사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체력이 이 모든 것을 못 받쳐 주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수아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뭐라고 했냐면 '모세는 진으로 돌아갔으나"... 진으로 왜 갔을까요? 진에 자기 집이 있으니까 거기서 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남아서 밤을 밝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어떤 한사람의 깊은 영성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어린아이 같은 의존의 마음 그리고 의심이 없고 사욕이 없는 깨끗한 믿음, 순전한 믿음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의 특징이 되는 믿음이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깊이 매달리며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깊이 매달리면서 그 속으로 아주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로 자기 자신을 바치는 헌신이 계속 쌓이면서 우리가 아는 여호수아 1장의 그 여호수아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에 관하여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면 이것을 무슨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면 기도 그 자체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요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기도할 요구를 못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기도의 용도가 그런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용도는 우리 밖에 있는 것을 움직이기 위한 용도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을 움직이기 위한 용도입니다. 이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이 말씀 하셔도 우리의 영혼이 정결해 질 수 없습니다. 이 마음 자체는 육체와 영혼 사이에 있고 동시에 이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나의 성품이 만나는 것입니다. 영혼 안에서는 나의 성품이 하나님과 만날 수 없고 육체 안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나와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 안에서 인간은 나도 느끼고 하나님도 느끼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면 그 마음이 형편없이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해 보겠습니다. 기름진 밭을 내버려 두었을 때와 악토를 내버려 두었을 때 어디에 잡초가 더 무성하게 될까요? 당연 합니다. 악토에서는 원래 식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악토를 내버려둬 봐야 검불이 많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전옥답은 기름진 밭입니다. 그것을 가꾸지 않고 내버려 두면 말하자면 잡초가 자라도 기린 같이 자라는 것입니다. 양분을 빨아 먹으면서 쭉쭉 크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성도의 마음의 밭은 악토가 아니라 기름진 밭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도 잘 자라지만 그 은혜가 공급되지 않으면 악한 뿌리들도 아주 잘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악한 세력들이 성도의 마음을 노략질하기 위해서 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렇게 더렵혀지기 쉬운 마음을 확 털어내는 강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인데 그 마음 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성품이 인간의 성품들을 털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합하지 않는 인간의 성품들을 털어 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합하는 인간의 마음을 붙들고 그것을 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더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주신 아주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쏟아 부으면서 많이 기도하면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기도하지 않으면 악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악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기도 속에서 참회하는 사람은 악인이 되어갈 수가 없습니다. 고뇌하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악인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용이 없으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하나님의 영적인 일에 대해서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끝내고 들어가면 피곤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 피곤이 뭐냐면 그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속에서 사는 그 피곤함입니다. 그래서 굉장한 피곤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같은 방향으로 흐를 때에는 그렇게 기쁘고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 활기가 돋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좋은 신자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기도해야지 좋은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신자는 잘 사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아무렇게나 상관없고 잘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없이 그렇게 잘 사는 것은 잠시 흉내낼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죽은 나무 가지에다가 과일을 실로 매달아 놓은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좋은 신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기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은 마음이 쉽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쉽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쉽게 움직이는 사람은 세상에 의해서 좀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쉽게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의해 요동치듯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무슨 올곧음을 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말씀을 많이 먹고 은혜를 받았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 생명이 유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좋은 나무를 심어 놓고 물을 주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그렇게 어려운 때에 나이든 모세는 육신을 이길 수 가 없어서 진으로 돌아갔는데 자신은 거기에 남아서 밤을 밝히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교회가 가장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정말 구약에서 샛별처럼 빛나는 흠이 없는 사람 가운데 한사람 바로 이 여호수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그렇게 고결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헌신이 강물에 돌을 던지는 것 같지만 그것들이 서서히 쌓이면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 고결한 성품들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기도가 가져다주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하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보면서 정말 육체에 힘이 많아야겠다는 것을 요즘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강하게 먹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강하게 먹고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주님을 섬기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매순간마다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난주에도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셔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느닷없이 전화 와서 "교회에 헌금하고 싶습니다. 집을 팔았는데 십일조를 내야겠습니다." 그러더니 오천 만원씩, 삼천 만원씩, 이천만원씩 헌금을 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만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교회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을 느낄 수 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이 교회를 사랑해도 마음속에 항상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평화이고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일평생 우리들이 가야할 싸움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죄 짐을 담당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은 내 몫의 십자가를 대신 질 사람이 없습니다. 그 십자가는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지고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그 십자가를 질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희생한 적이 있습니까? 희생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신앙속에 있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이익에 밝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본받으면서 더 많이 변화되고 교회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싸움에 지치지 않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