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영혼의 기도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녹취자: 전병선
I. 본문해설
오늘 성경에 보면 영혼이 깨끗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도를 해본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고백을 합니다. 기도가 어려운 것은 단지 기도하는 행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적이 많다고 말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영혼의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어떠한 상태이냐에 따라 마음이 어떠한 마음이냐가 결정이 되고 그 마음은 수많은 행동들을 생산해내는 공장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혼의 일입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롭게 간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영혼이 깨끗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한다고해서 모든 기도가 같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부시대의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활쏘기에 비유했습니다. 활을 힘없이 쏘면 활이 조금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지겠지만 활을 힘차게 쏘면 공기를 가르고 멀리 날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힘이 있는 기도가 있고 힘이 없는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II. 기도의 힘을 유지하는 길
A. 간절함과 열렬함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의 힘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기도의 힘을 유지하는 길이 무엇일까요? 기도의 힘은 두 가지인데 간절함과 열렬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되는 것이 힘입니다.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라 할지라도 힘이 없으면 잠깐 그렇게 하다가 제풀에 꺾어지지만 힘이 많으면 그 간절함과 열렬함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됩니다. 그런 간절함은 우리의 생각의 집중에서 나옵니다. 다시 말해 기도의 간절함은 감정의 간절함이 아니라 생각이 어느 하나에 집중되어 있을 때 그 기도가 간절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금식기도가 기도의 큰 힘을 보태는 이유는 바로 집중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금식을 하고 여러 날이 흐르면 사실상 기도할 기운이 없습니다. 또 큰 목소리로 부르짖거나 열렬하게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일조차 육체의 힘에 부칩니다. 그러나 금식기도는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 관련한 많은 일들을 끊고 한 가지 사실이나 기도의 제목에 지성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간절함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열렬함은 의지를 하나님의 사랑이 감화한 것입니다. 이런 정동들 안에서 기도는 아주 뜨겁고 그리고 열렬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간절함과 열렬함이 기도의 강도에 관한 것이라면 지속성은 이러한 강도의 기도가 얼마나 오래도록 계속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오래 계속된다 할지라도 간절함과 열렬함이 없으면 그것은 힘 있는 기도라고 말할 수 없고 간절함과 열렬함이 극에 달한다 할지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도의 힘을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B. 맑고 깨끗한 영혼의 기능
이런 간절함과 열렬함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오늘 성경은 맑고 깨끗한 영혼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마음은 영혼의 기능이고 영혼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마음은 여러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마음이 세속적이면 세속적인 욕망으로 마음이 흐릅니다. 영혼이 깨끗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면 마음은 거룩함을 좇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깨끗한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더러운 영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깨끗한 영혼은 정결하게 된 신자의 영혼이고 더러운 영혼은 마귀와 귀신의 영입니다. 만약 영혼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라면 그 묵은 때들을 물이나 여러 가지 도구들을 통해 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영혼은 그자체가 영적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깨끗하다는 개념이 돌이나 물이나 물건, 옷이 깨끗하다는 개념과는 다른 것입니다. 영혼이 깨끗하다는 개념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원래 그 영혼을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작용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를 가지고 있을 때 깨끗한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왜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혼에 의하여 우리의 모든 육체의 기능이 장악되고 육체만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영혼으로 알고 그 생명 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된 영혼을 우리들은 깨끗한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은 육체의 생명이고 하나님은 영혼의 생명이 되십니다. 그래서 영혼이 육체를 장악하고 영혼의 고급기능이 영혼의 저급한 기능(먹고 배변하고 느끼고 맛을 보고하는 기능들은 저급한 기능들입니다.) 이런 기능들을 고급의 기능,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능을 가진 영혼의 기능이 하위의 기능들을 장악할 때, 이 영혼이 우리의 인생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와 함께 생활하도록 만드는 것을 가리켜 깨끗한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III. 깨끗한 영혼이 되는 길
A. 신자들에게 약속됨
깨끗한 영혼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우선은 이 깨끗한 영혼이 될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 불결한 영혼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영혼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영혼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혼은 상위의 기능들이 거의 죽고 부패하여 먹고 마시고 배변하고 쾌락을 즐기고 자기만족을 즐기는 하위의 기능이 인간의 영혼의 기능 전체를 장악해서 마음을 움직이고 육체를 그러한 것들을 따라 살게 하였는데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고 불순종하며 진노의 자식으로 살던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었던 옛 삶입니다. 이때는 우리의 영혼이 말할 수 없이 불결했고 자신의 영혼이 불결했는지조차도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불결해진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순간에 이 영혼을 깨끗하도록 정화시키십니다. 지었던 죄들은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고 죄책을 사라지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영혼이 영혼답게 기능할 수 있도록 놀랍게 새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다투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우리 마음속에 주셔서 영혼의 깨끗함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힘쓸 수 있는 자발적인 의지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진리의 말씀으로 비춤을 받고 죄의 속임과 욕망의 표상에서 벗어나고 진리의 빛으로 올바르게 분별하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진리에 비추어서 평가하고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케 되고 자기 깨어짐으로 깨끗하게 되어가면서 불결로부터 벗어나게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신자도 때로는 그 영혼이 더럽혀지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 불순종하며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게 될 때 신자의 영혼도 불결해집니다. 그 후 마음을 통해서만 영혼에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직접 변화시키셨지만 이후로는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영혼의 양식인 진리의 말씀의 깨달음과 감동을 많이 주셔서 우리의 심령을 움직일수록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찾고 불결을 버리며 영혼이 깨끗함을 회복하게 되어서 더러운 자들을 정결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B. 진리를 순종함
1. 진리(ἀληθείας)
이러한 깨끗한 상태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성경은 “진리를 순종함으로써”라고 말합니다. 여기의 진리가 “알레베이하”라는 단어인데 놀랍게도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나옵니다. 진리에 부합하는 행동은 수없이 많지만 진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나타납니다. 진리는 지적인 유희가 아닌 삶을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꽃이 교회당 앞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교회당에 있다고 생각하고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 꽃이 시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그것은 삶의 방식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맞고 틀렸다 해도 예배당에 들어와서 하는 예배행위나 모든 것에 이 꽃이 있고 없고는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다릅니다. 진리가 없다고 하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어쩔 수 없지만 만약에 진리가 있다고 인정을 하게 되면 인정을 하자마자 그는 자기가 왜 이렇게 사는지 그 진리 앞에서 해명해야합니다. 이것이 진리를 인정하는 것과 사물들을 인정하는 것과의 차이점입니다. 진리를 인정하면 당장 그 진리는 나를 판단합니다.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 내 마음은 올바른 마음인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진리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맑은 영혼이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이 진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함(ὑπακοῇ)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순종입니다. "휘파코에"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원어적으로 “밑에서 듣다.” 혹은 “철저히 귀를 기울이다.” 이런 뜻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듣는데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없이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수많은 소리들이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울여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요구하시는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그렇게 파악이 되면 기꺼이 그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하는 의지의 기꺼움까지 그 안에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울여지고 기꺼이 행하고자하는 마음의 의지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종한다는 것 자체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개별적인 행동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와 작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겉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명령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일 뿐 아니라 기꺼이 그것을 행동하도록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꺼이 순종하려는 마음은 순종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완전히 다른 마음이고 그 두마음을 각각 조종하는 영혼의 상태는 하나는 깨끗함이고 하나는 더러움입니다. 이렇게 순종하려는 마음의 힘을 하나님의 은혜가 주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싶습니다. 얼마큼 순종하고 싶으냐 하면 무제한으로 순종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진리의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케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진리를 찾지 않고 심령으로 그 진리에 순종하고자하는 자원하는 복종이 없을 때, 그 진리를 듣거나 혹은 진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유희하거나 의무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거나 하는 것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영혼이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깨끗해지는 것은 정확하게 진리를 깨닫고 자신이 은혜를 받아서 마음으로 진리를 기꺼이 귀 기울여 들을 뿐 아니라 진리가 자기를 움직여서 기꺼이 진리대로 행하고자 하는 소원, 마음의 움직임이 속에서 일어나고 그것이 성향이 되어서 실제로 그 마음의 움직임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 그것이 진정한 순종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행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전체의 문제이고 행동과 마음은 마치 본질, 본성과 같아서 그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와 행동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한다는 그 자체는 이미 변화된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런 영혼으로 기도할 때 기도의 문이 열리고 무릎 꿇어 하나님을 부르며 찾기 시작할 때 지금은 이 세상의 번잡한 일상을 꿰뚫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기도의 집중. 기도 속에서 내가 기도가 잘 안될 때는 언어를 조합해 만들어서 간신히 언어를 구사하지만 기도가 깊어지면 마치 물병을 기울이면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이면 기름이나 물이 쏟아지듯이 자신의 마음이 언어를 타고 하나님 속으로 스며들고 주님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으로 스며드는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런 상태에 가야지만 기도가 달콤하다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어색한 자리에서 연설해 본적 있으십니까? 할 말도 별로 없고 떨리는데 연설을 해야 될 때는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그런데 너무 반가운 친구가 있으면 말이 저절로 쏟아집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그런 것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기도가 달콤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큰 고통을 주는 단계를 지나고 나서 마음이 기울이면 기도가 쏟아지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기름처럼 부어지게 됩니다. 그런 기도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됩니다. 잠깐 기도했는데 눈 뜨고 보면 다섯 시간, 잠깐 기도했는데 시간을 보면 세 시간, 그렇게 흘러갑니다. 이는 기도생활을 오래 했느냐의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한 사람도 영혼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렇게 기도할 수 없고 방금 믿음 사람도 영혼이 깨끗하면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IV. 깨끗해진 영혼: caritas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깨끗해진 영혼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깨끗해진 영혼은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충만한 영혼입니다.
어떤 사람이 퀴즈를 냈습니다. 빈주전자를 하나 가져오면서 학생들에게 "물리적으로 이 주전자에 공기가 가득 들었겠지요? 이 안에 있는 공기를 주전자를 건드리지 말고 모두 바깥으로 뺄 수 있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그랬더니 한 학생이 물통을 들고 나와서 주전자 입구에다가 물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주전자를 꽉 차서 뚜껑을 넘치기 시작하니 멈췄습니다. 물을 넣으니까 공기는 다 나가고 주전자는 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영혼의 불결은 불결 그 자체를 꺼내려고 할 때는 아무것도 집어넣지 않고 주전자에서 공기를 빼내려고 하는 것처럼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면 모든 불결함이 다 함께 마음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는 비결입니다.
지금은 기술이 굉장히 좋아져서 수영장을 하나 만드는데도 오억, 십억, 십오억 씩 들여서 만든다고 합니다. 밑에 정수기가 달려서 물을 옛날처럼 수시로 갈지 않고 그물을 깨끗이 정화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수한 물이 되게 하는데 그런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수영장을 가보면 항상 수영장에는 턱이 없었습니다. 물을 항상 찰랑찰랑하게 부어놓고 수영장 바로 옆에는 하수구가 있고 하수구에는 구멍 뚫린 뚜껑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머리카락도 빠트리고 어떤 사람은 수영장에서 침도 뱉고 어떤 때는 때도 올라오기도 합니다. 물을 항상 넘치게 무어주고 사람들이 들어가서 첨벙거리면 물위에 떠있던 때들이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하수구로 빠져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물을 자연적으로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물이 반차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항상 물을 부어줘서 물이 찰랑하고 넘치게 만듦으로 수면위에 있는 지저분한 물질들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부어주실 때 우리안의 미움과 더러움, 찌꺼기들이 다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A. 거짓없는 사랑
그렇게 영혼을 그렇게 깨끗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거짓 없는 사랑입니다. 거짓이 무엇입니까? 진리로 부터 멀어진 모든 것이 허위요 거짓이고 진리에 부합된 인간의 마음의 상태가 진실입니다. 사랑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진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자신이 진리에 속한 사랑만이 아니라 자기에 속한 모든 사람,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진리에 속하여 한 사랑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성도가 가져야할 사랑이고 이러한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가 주시는데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사랑을 주셔서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그 마음에 가득 채우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이 없는 사랑함과 기도가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기도와 사랑함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이러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을 때 가장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자기의 개인적인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물질적인 가난과 고통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물질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기도하며 우리가 실제로 그를 구제할 때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을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몸 된 한 부분의 고통을 덜어주어서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자를 구제하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그 돈을 떼어먹지만 하나님은 결코 당신이 꾸셨을 때에 갚으시지 않으시는 분일 수 없습니다.
B. 기도와 사랑함
사람의 마음은 기도하게 합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이면 사랑의 깊이만큼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주는 순서가 사랑하는 순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할 때 제일먼저 누구를 위해 비는지, 혹은 순서와는 상관없이 누구를 위해 빌 때 마음이 찢어지고 간절해지고 내 생명을 주어서라도 저 사람을 위한 나의 기도가 응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실해질 때 사랑이 깊은 것입니다. 결국은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 때문에 교회를 마음에 품게 되면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은 수많은 언어를 생산해내는 거대한 공장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모든 사람이 자기가 마치 문필자가 된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써놓은 것을 읽어보면 말은 안 되는데, 언어가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울 때에도 사랑할 때와 같은 어마어마한 언어가 생산되는 것입니다. 저주, 멸시, 폭언, 미움, 강압, 더러움, 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언어들이 솟구쳐 더러운 물이 쏟아지듯이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교회가 왜 예전처럼 기도하지 않는가? 할 때 현대정신에도 원인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렇게 사람들이 거의 기도하지 않는 중에도 주님을 만나고 그 은혜에 사로잡힌 사람, 자기를 위해 아들을 주시기까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은 그가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빌어야할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기도는 파문과 같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큰 돌을 던지면 풍덩 하면서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가듯이, 사랑의 파문이 내 마음속에서 출렁거리며 퍼져나갈 때 기도도 함께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크면 이 세상에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찰스 피니가 맨하탄 거리에서 아침에 주저앉아서 울었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하나님 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고 지옥으로 가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비록 우리와는 신학이 매우 다른 사람이었으나 그의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본받을 만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에 있어서도 자기사랑이 작용을 해서 우선 시작할 때 내 기도로 시작해서 충분히 나를 위한 기도를 하고 남으면 몇몇 끄트머리에 한꺼번에 여러 사람 이름을 붙이고 기도제목도 함께 뭉뚱그려서 “하나님 잘 아시죠? 잘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린교회 모든 식구들이 복 많이 받게 해주십시오.” 이런 기도는 하나마나인 기도입니다.
종종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데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에 아주 자연스럽게 남을 위한 기도를 간절히 올림으로써 하늘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으로 기도하고자 하는 제목이 있지만 때로는 다른 기도제목이 끼어들어오면 머리를 흔들어 지워버리지 않고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면서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남을 위한 기도로 하늘의 문을 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 일년, 이년, 삼년, 오년, 십년, 매일 새벽기도를 계속해왔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렇게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깨끗해진 영혼은 풍부한 기도가 솟아나오게 만들어줍니다.
V. 적용과 결론
기도의 풍성함이 맑은 영혼에서 나오고 맑은 영혼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불결한 영혼으로 올리는 일만 마디의 기도보다 맑은 영혼으로 올리는 한마디의 기도, 더러운 마음으로 올리는 부르짖는 기도보다는 깨끗한 마음으로 올리는 한마디의 말없는 묵상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인격적인 성격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이 기도를 시작할 때 그 기도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은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하기까지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고 살았느냐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자꾸 피하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내가 진리를 따라 순종하고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기도에 대면하는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느끼는 소외감, 하나님께 외면당하고 있다는 좌절감, 이런 것들을 맛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맑은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혼을 깨끗케 하고 싶으시다는 기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런 지적도 없이 그렇게 자기 좋은 대로 살기보다는 하나님이 기도 속에서 우리 영혼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은 제일먼저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십시오. 거짓이 없는 사랑에서 주께 기도를 올리도록 정결하게 해주십시오.”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영혼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