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사역을 기도로 적시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22:31-32)
녹취자: 박지성
우리는 가룟 유다의 비참한 말로를 생각할 때마다 베드로를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판 것을 후회하였지만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결국은 자살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갈 곳으로 가지 않습니까? 이에 비해서 예수님이 자기의 제자들도 당신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그 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돌이키게 하셔서 예루살렘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회복을 시켜주시는 사실을 보면서 ‘왜 똑같은 비슷한 사람들인데 누구는 회복이 되고 누구는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다 알 수 없는 크고 넓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들이 이 문제를 생각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가룟 유다가 후회하였다고는 했지만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한 것은 아니라고, 아마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렇게 주님을 버린 것을 깊이 회개했을 것이다. 또 두려워서 주님을 잠시 부인하고 도망간 것과 아주 정교하게 계획을 해서 예수님을 은을 받고 그것도 노예의 몸값을 받고 팔아버린 이 가룟 유다의 행적의 차이 등등 여러 가지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여기에서 우리들이 간과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 하나를 여러분들에게 설명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오늘 읽은 성경 구절에서 그 대답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시몬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만나고 변화받기 전에 베드로가 살아온 자연인 베드로의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고 시몬이라고 부르신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잠시 후 너를 뒤흔드는 시험이 올 텐데 그 시험을 기다리면서 너는 스스로 내게 칭찬을 많이 받은 네 믿음의 반석위에 교회가 서게 될 위대한 인물 베드로라고 생각하지 말고 맨 처음 날 만나서 엎드려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했던 그 자연인 시몬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예수님의 한 당부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를 에워싸고 이루어지는 영적인 세계의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단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너희를 요구했다. 청구했다.” 여러분, 키질을 해보면 잘 알지만 높이 곡식을 던지고 바람을 일으켜서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이 키위에 떨어지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곡식의 낱알을 거두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단이 바로 이렇게 한번 이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사도들을 키위에 놓고 공중에 던져서 바람을 일으켜서 그 중에 쭉정이들을 날려버리는 그 일을 하고자 뒤흔들어 놓고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와 예정 속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우리들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있는 이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사도들과 함께 커다란 시험의 위기를 당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시험의 위기 속에서 신자의 영혼은 대단히 위험해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 때에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나니” 그러니까 이 베드로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끄러지지 아니하고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고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시험에 들었을 때에 예수님이 이들을 위해서 이 시험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한해를 시작하면서 금년에 한번 우리들이 이제껏 열린교회가 17년 동안 해본 적이 없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의 가슴으로 타오르는 한해가 되자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양의 원리를 친히 보여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제일 먼저 일속으로 뛰어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광야에서 40일 동안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신 채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한 기도에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님이 이후에 이어질 모든 사역과 섬김이 이 기도 속에서 이루어질 것을 예수님께서는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외적인 사역은 가르치고 선포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는 사역이었지만 이것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사역이었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이 세 가지 만큼 중요한 사역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기도를 사역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로 많이 준비하면 사역이 잘 되고 기도로 많이 준비를 하지 않으면 사역이 잘 안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기도는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 자체가 훌륭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사역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이 기도는 모든 사역을 사역되게 하는 사역중의 최고의 헌신된 사역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혼을 섬기는 교사로 혹은 구역장으로 봉사할 때에 우리가 영혼의 침체에 빠지거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금주에 영혼의 침체에 들었다고 우리들이 어느 날 갑자기 교리를 아는 지식이 하얗게 빛을 바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도 공과책을 들고 구역식구들 만나러 금요일이면 가야합니다. 그리고 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체에 빠지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즉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돌보는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진수는 우리의 마음을 쏟아 붇는 것입니다. 내가 무릎을 꿇고 내게 맡겨진 양떼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이 사람으로 보이면 우리는 아직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의 단점도 보이고 못된 점도 보이고 또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양떼들은 더 많이 애정이 가고, 그런 것은 돈이 있고 없고 부유하고 가난하고 이런 우연적인 조건들이 보이는 이유는 아직까지 내가 기도하는 그 양떼들이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차별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 예쁜 사람과 그냥 자연스럽게 생긴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있는 사람과 그냥 별로 없는 사람도 많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실재로 실험을 했는데 물건을 사러갔을 때에 남자들도 양복을 입고 정장을 하고 단정하게 하고 가서 물건을 사면 그렇게 물건을 흥정한 사람과 점퍼나 입고 가서 흥정한 사람들 중에 누가 더 좋은 거래를 하느냐 했더니 전자의 사람이 물건 값도 많이 깎고 사람대접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나왔습니다.
(예화) 언젠가 한번 용산에 노트북컴퓨터를 사러 갔는데 한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생전 처음 컴퓨터를 사니까 이것저것 보고 싶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호떡을 하나 먹으면서 봤습니다. 그래서 노트북 가게에 가서 그때 나는 노트북 살 돈을 들고 왔습니다. 나는 쉽게 얘기해서 구매력이 있는 구매자고 구매가능성이 가장 높은 보러온 것이 아니라 꼭 사가지고 갈려고 현찰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씨, 이 컴퓨터가 얼마에요?”했더니 “아저씨, 빵가루 떨어져요. 저쪽으로 가세요.”합니다. 사람으로 보이니까 차별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아, 참 내가 사람대접을 못 받는구나.”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고 단정하게 입고 먹을 것도 미리 먹고 그러고 가야겠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솔직히 얘기해서 기도할 때에도 그런 것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도하면서도 목양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도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도 그 사람이 마음속에서 밉다고까지 말하기는 심하지만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저 기도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고 고생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우리들이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가 마음을 쏟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도가 정말 기뻐지고 간절해지면 그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 예쁘냐 미우냐 돈이 있냐 돈이 없냐 내게 잘 해주냐 못 해주냐 목회에 도움이 되냐 방해꾼이나 이런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헐벗은 채 서있는 하나의 영혼으로 보입니다. 그게 우리의 기도가 정말 깊어질 때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내게 커다란 손해를 입히고 심지어는 나의 목양에 끊임없이 독침을 놓는데도 그렇게 뜨거운 독침을 놓는 그 방해꾼이 그럴 수밖에 없는 영혼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마음 아파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보이는 사랑으로 나타나고 보이지 않는 영혼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생활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우리들이 영혼을 위해서 목양을 하면서 마음을 쏟아서 영혼을 위해 간절히 눈물로 기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목양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들이 여유가 있으면 좀 더 많이 심방할 수 있고 좀 더 부지런하면 우리들이 편지도 더 많이 보낼 수 있고 그리고 더 많이 만날 수 있고 더 많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도는 우리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이런 섬김의 부족한 부분들을 능가하는 신령한 방식으로 영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증거를 우리는 목회 속에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내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 놀라운 역사하시는 현실을 보면서 내가 영혼을 돌보는 자로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부끄럽지만 나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영혼을 섬기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의 큰 기쁨을 맛보았던 때가 바로 주일학교를 처음 섬길 때였습니다. 처음 이라기보다는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될 때부터 예전에 섬기던 그 섬김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구역장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주님을 만난 신령한 은혜의 경험이 있는 사람. 그래서 주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인격, 그것이 모든 말씀사역, 영혼을 돌보는 목양사역에 있어서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것 없이는 다른 것들이 빛날 수가 없습니다.
(예화) 그저 형식적인 신자로 교회를 다니면서도 사실은 주일학교를 했는데 늘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도 간증을 했지만 토요일에 술을 실컷 먹고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는 안됐는데 주일이면 할 수 없이 교회에 나갑니다. 왜냐면 설교할 전도사님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가서 아이들에게 설교하고 이제 월요일이면 새까맣게 토요일까지 잊고 있다가 토요일부터 부담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주일이면 또 갑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됐습니다. 변화되기 전에는 그렇게 하기 싫은 주일학교 사역을 하는 내가 불쌍했는데 변화 받고 나니까 그런 인간에게 돌봄을 받는 영혼들이 그렇게 가여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눈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벌써 40대 중반입니다. 그래서 카드에다 아이들 이름을 새카맣게 써서 빨간 카드에는 제일 급한 아이들, 노란 카드의 아이들은 미끌미끌하고 끊어진다고 하는 아이들, 하얀 카드는 보통 아이들, 파란 카드는 상태가 양호한 아이들 이렇게 해서 앞주머니에 꽂고 전철을 타고 직장에 도착할 때까지 카드를 넘기면서 기도를 합니다. 빨간 카드가 항상 위로 올라옵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다가 졸아버릴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떤 때는 정말 눈물을 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나는 목회에 필요한 80%의 대부분의 것들을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거의 다 배웠다. 그렇게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의 섬김은 요만큼 밖에 안됐는데도 하나님의 그 섬김에 복을 주셔서 영혼들이 변화되고 그리고 새로워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배시간에 공과시간에 장난치고 공과시간에 공부 안하고 야단을 맞은 아이들도 위해서 일주일 동안 간절히 기도하면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아이가 노골 노골하게 변화되어가지고 은혜를 받아들일 가난한 마음이 되어서 교회당을 다시 찾아옵니다. 이것이 말할 수 없는 신비한 역사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영혼을 섬기지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에서 우리 영혼이 우리에게 달렸다 생각하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좋은 것이지만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나쁜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힘으로 영혼들을 돌보려고 하다가 ‘나는 이제 도저히 저 사람을 돌볼 수가 없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 저 영혼을 위해 내가 기도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기도할 때 오히려 내가 돌볼 때는 미끄러지던 지체들이 하나님 앞에 돌보지 못할 때는 오히려 변화되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냐면 간절한 기도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영혼을 돌보면서 거의 기도해주지 않았는데도 훌륭한 믿음으로 자라고 있다면 목자인 여러분이 기도를 해주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기도했든지 아니면 누군가가 여러분들이 해야 할 그 기도의 섬김을 대신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영혼들이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 그 영혼들을 더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관계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하십니다.
(예화) 나도 어떤 때는 얼굴도 본적이 별로 없고 신문이나 이런데서 봐서 알지만 만난 적이 없고 또 거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한동안 기도하게 하십니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이 계신데 한때는 그분이 굉장히 어려운 일들을 만나셨습니다. 한 이십년 전입니다.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고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한 6개월 이상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나는 성령님이 시키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내 옆에 내가 알고 내가 더 간절히 기도해주면 금방 그 결과를 확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기도를 제쳐두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언젠가 목회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오래 도록 못 만났습니다. 진국인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럽니다. “김목사님, 하나님이 당신 정말 사랑하시나봐.” “왜?” 내가 한 10년 동안 기도만하면 당신 생각이 났다고 못 만났는데 그래서 새벽기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이 나를 위해서 기도했답니다. 나는 사실 안했습니다. 그래서 미안했습니다. 미안한데 나보고 해주는 것인가? 주님이 시키셔서 한 것이지. 그렇게 기도는 우리의 인간의 상식과 계산을 뛰어넘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영적인 생명들을 지체들에게 분여받게 해주시는 아주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면 구역을 더 효율화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재미있고 모이고 싶어 하는 구역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이런 고민들을 멈춘다고 할지라도 만약에 우리들이 복음의 원리로 돌아가서 우리들이 참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목숨을 버리는 그 목자로서 영혼들을 위해 우리의 마음을 쏟아 붇고 그들의 이름에 우리의 눈물을 바르고 우리의 진액을 바르고 급기야 우리의 피를 바른다면 우리들이 지금 생각하지도 못했던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교리를 배우고 신학을 공부하고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그래도 교역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잘 정리가 되어서 영혼들을 돌볼 착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여러분들이 교역자들이 한 사람을 구역장으로 세우기위해서 얼마나 많이 고심하는지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왜냐면 만약에 잘 돌보지 못하면 그 영혼들이 금세 병드니까 그러니까 구역장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오래도록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구역장들을 세웁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렇게 교리적으로 많은 지식이 있고 신학적으로 잘 훈련이 되었고 열린교회정신을 잘 이해하고 그리고 반듯하게 상담해 줄 수 있고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 기도의 필요성을 좀 덜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목양사역을 황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엊그제 교역자회의를 하면서 제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목양의 사역에는 고뇌가 배어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우리는 나름대로 목양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교회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와 우리의 경험을 의존하면서 목양을 한다면 하나님이 목양사역은 하게 하시되 목양의 사역 속에 흘러야 할 마땅한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이 거두십니다. 흐르지 않게 하십니다. 왜냐면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고 이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로 부어지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영의 부으시는 은혜의 역사를 제도나 사람의 방법 위에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은혜에 목말라하는 그런 목마른 영혼들 위에 부어주십니다. 그런 충만한 기름 부으심의 은혜, 놀라운 역사가 한 사람 속에 흐르게 될 때 하나님이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놀랍게 하나님 앞에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께 마음을 쏟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예화) 제가 여러해 전에도 한번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제가 전도사 생활을 할 때 그 교회는 오늘 여러분들이 교리에 대해서 잘 배우고 신학적으로 정리되고 그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은사주의도 들어오고 신비주의도 들어오고 하여튼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교회였는데 구역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역장은 그 당시에 고등학교는 졸업한 사람들이 구역장을 했는데 그분은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습니다. 한글을 아시니까 성경을 보시겠지요. 그런데 어쨌든 그랬고 우울증이 있었습니다. 여름만 되면 이분이 견디지 못해했습니다. 그렇게 봄가을에 친절하다가 여름이 되면 신경질을 확 확 부리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이했는데 그런 우울증이 잇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우울증의 원인이 19살인가 20살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할 때 비인격적이고 폭압적으로 결혼을 못하게 뜯어 말렸습니다. 결국은 그 사람에게 갔는데 그것이 그렇게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런 결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 구역은 항상 잘 됐습니다. 연말이 되면 그 구역이 두 개로 쪼개졌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그 구역을 맡겼습니다. 그 구역을 제가 구역교사가 돼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 그랬더니 그분이 정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맡겨진 구역식구를 위해서 삼일을 금식기도해본 적 있습니까? 이분은 그런 것들을 일 년에 몇 번씩 합니다. 왜 금식기도를 하시냐고 하면 아무아무개의 가정이 깨지려고 합니다. 내가 아니면 기도해 줄 사람이 없다. 그러고 기도를 하는데 정작 기도 받는 사람은 그렇게 기도 안합니다. 남이 그렇게 기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기도를 안 해도 이분이 워낙 그렇게 강력하게 기도를 해주고 그 기도위에 또 뭐가 있냐면 자기를 향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구역식구라면 벌벌 떱니다. 그렇게 해 놓고 그 다음에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할 테니까 기도해라. 그러니 세상에 누가 자기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누가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친부모도 안 해주는데 그렇게 삼일씩 추운 겨울에 교회에 나와서 꼬부리고 밤을 새면서 삼일씩 금식기도를 해주니까. 이분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도 권위가 있습니다. “너 이래가지고 안 돼” 그러면 말을 듣습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면 토를 달아도 구역장이 말하면 꼼짝을 못합니다. 사랑과 기도가 권위가 되어서 흐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심으로 사랑해서 충고하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무릎을 쳤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정말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사용하시는 구나. 저 봐라.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오고 여름이면 우울증이 도져서 저렇게 히스테리가 심하고 그런데도 그 가을부터 봄까지 받은 사랑을 가지고 구역식구들이 버텨주는 구나.’ 처음에는 구역식구들이 황당해 했는데 나중에는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도 감히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해서 병도 고쳐주고 응답도 받고 하면서 왜 당신은 못합니까? 그렇게 안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사랑하고 기도하면 연약한 것까지 그 사람에게 오히려 지도자로서 돋보이게 해주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만약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 내가 그렇게 약하다는 것을. 그런데 그 약한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다.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나의 약한 것을 변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게 해주는 도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원래 약할 뿐인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 나 약하다. 어쩔래?” 그게 약한 사람입니까? 강한 사람이지. 약한 사람이면 내가 약하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하나님 앞에 ‘내가 이렇게 약하니까 은혜를 주십시오.’하고 빌어야지 “그래, 약하다. 어쩔래?” 이것이 약한 것입니까? 강한 것이지.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한 이틀 잠깐 숨을 돌렸습니다. 쉬었다기보다 숨을 돌렸습니다. 하도 힘들어서 숨을 돌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정말 우리 내년도 한해에는 나부터 여러분부터 나부터 모두 우리가 한번 다른 비본질적인 것들을 우리들이 더 잘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기도수첩을 눈물로 적셔보자. 그리고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자. 정말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 한계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는지를 보자.’ 이것이 내년에 나 개인적으로도 목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만큼 움직일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을 이 때에도 그저 오뉴월에 잠깐 장마철에 잠깐 드는 햇빛이고 오뉴월에 노인들의 건강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삼일씩 밤을 새워도 까닥도 안 했습니다. 기도하러 11시에 나가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면 새벽 5시 30분에 무릎을 펴던 때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육체가 감당을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이 제일 좋은 상황이지 10년 더 지나면 아예 꿈도 꾸지 못 할지 모릅니다. 나만 그렇겠습니까? 가는 세월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메뚜기도 한철이니까 메뚜기일 때 그때 잘해야지 기도 안하고 그렇게 우리의 경험으로나 구역장 하려고 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런 비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영혼을 붙들고 내게 목양을 받아 달라고 애원하는 목양은 정말 권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그 영혼들을 이끌어서 우리의 품에 돌아오게 해주실 때 그래서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품으로 들어가게 만드실 때 그때 우리의 목양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년 한해 평생 목회의 목표를 세운 적이 없는데 내 마음 속에 내년 안에 우리 양떼들의 이름이 적힌 기도수첩을 눈물로 적시는 그러한 기도 목회를 하자. 그래서 우리 목회자들 그리고 사랑하는 구역장 여러분들에게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기억해봅시다. 우리도 누군가의 눈물의 기도를 받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많은 양떼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작년 한해만 해도 정말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 영혼들이 숫자로 보이고 기도하면 사람으로 보이고 더 많이 기도하면 영혼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저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그 자리에서 그 제목으로 온 마음을 다해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겠지만 우리의 건강과 육체가 허락하는 데로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기도수첩을 눈물로 적시며 우리들이 정말 복음의 목회를 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