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도란 무엇인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치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시니라” (눅 18:1-8)
우리가 이 동산에 처음 올라왔는데 사실은 작년에 개척을 하고 몇 달 안되서 우리 집사님들이 단촐하게 올라와서 기도하고 간 곳입니다. 기도원이 기도가 잘 되는 곳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예수님께서 몇 개의 비유를 드시는 가운데 우선 첫 번째 비유는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그 비유를 말씀하고자 하신 목적이 분명해요. 그게 뭐예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치고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하다못해 식사때라도 기도하잖아요. 취침할 때라도 기도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안 하는 사람은 거듭난게 의심가는 사람이죠. 그것도 안하면 답답한 일을 만나거나 기가 막힌 일을 만날 때면 ‘아이고, 하나님!’ 이렇게 부르면서도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기도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기도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예수님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거예요.
첫 번째 조건은 뭐냐하면 항상 기도하여야 할 것, 언제나 기도하여야 할 것. 그러니까 한번 힘을 내서 기도를 해버리고 그 다음에는 낙심하고 주저 앉아서 기도 안하는 그런 것이 아니예요. 또, 기도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늘 경험될 수 있는 위험 중의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낙망하는 것, 기도하다가 낙심해 버리는 것, 이 두 가지가 바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커다란 역사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비유를 통해서 보여 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로 드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어느 도시에 한 재판관이 있는데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고을 ‘원’이나 아니면 ‘현감’ 정도 됐겠죠.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성품이냐 하면 신앙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인간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예요.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리고 인간을 향해서는 사람에게 안하무인격인 사람이예요. 우린 이런 사람들을 주위에서 종종 만나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도 없고, 사람을 향해서는 교만한 마음이 가득 차있는, 이런 교만한 사람들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재판관으로 있으니까 그 고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거죠. 인간성이 나빠도 신앙이 좋으면 거지같은 인간성을 신앙으로 할 수 없이 누르고 인간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어요. 그렇죠? 바탕은 아주 악하고 못돼먹었는데 신앙에 꽉 붙잡혔기 때문에 마주 대놓고는 막 퍼붓고도 돌아가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땐 신앙의 마음을 움직여서 할 수 없이 자존심은 허락 안하지만 전화를 걸던지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무엇이 움직이는 사람이예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움직이는 사람이죠. 이게 있던지, 아니면 신앙이 없어도 인간이 신앙은 비록 없어도 사람이 원래 다른 사람 일에 나서기 좋아하고 도와주기 좋아하고, 퍼주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렇죠? 있어요, 없어요? 아~ 있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던지, 그런 사람들은 괜히 자기 일 아니면서도 나서서 욕도 많이 먹고 오지랖도 넓지만은 그러나 또 좋은 일도 많이해요. 사람들에게 펑펑 퍼주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 옆에있는 사람들은 은혜를 입는다 이겁니다.
(예화) 학교 다닐 때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형제 이야기.
그런데 이 사람은 전자도 아니고, 후자도 아니예요.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비열하고 야비하고, 자비심도 없고...두번째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는 이런 신앙적으로 전혀 기본이 안 되있는 이런 사람이었어요.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뭘 의미할려 (하려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뭔가 자비를 구한다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는 그 말씀을 하시고 싶어서 이 사람을 예로 든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과부야. 옛날부터... 요즘에야 민주적인 시대니까 감히 못 그러지 만 옛날같은 시대에는 원래 남편없고 혼자 사는 과부들은 그렇게 서러운 일이 많아요. 다른 사람에게 안 서러운 일들도 ‘아, 나 혼자니까 무시하는 가봐’ 하면서 이렇게 마음속으로 맺힌게 많은 사람이예요. 한이 많고 그렇게 고통이 많은 사람이예요. 그런데 성경에도 보면 과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후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어리숙하니까 재산을 후리고, 가산을 도둑질하고 그렇게 물질적인 손해를 보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과부가 뭔가 어떤 사람이 이 과부를 엄청나게 억울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마음에 큰 고통을 주고, 오늘 성경에 표현하길 ‘원수’라 그랬어요. 그런데, 그 원수에 대해서 이 사람이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때요? 나는 나한테 원수진 자를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 내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누굴 찾아가요? 재판장을 찾아간거예요. 그런데 재판장을 찾아가는데, 이 재판장이 자기에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아니예요. 그런데도 할 수 없이 찾아가는 거예요, 왜? 모든 권세는 재판장에 있기 때문에...여러분 인생 살면서, 우리 끼리 왔으니까 기도원에서 누구 듣는 사람도 없으니까 툭 털어놓고 얘기해봅시다.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 마음에 들어요? 이 말이 좀 이상하네 (웃음).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시는 그 일들이 항상 기쁘고 마음에 들어요? 안 들때가 많죠...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도 ‘너는 내 맘에 드냐?’ 그러신다고요. 그래요, 어떤 때는 ‘왜 내 인생을 이렇게 끌고 가시는 걸까? 아~ 정말 싫다. 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쪽으로 끌고 가시나, 아니 왜 이 일을 꼭 이런 식으로 몰고 가시는 걸까, 왜 하나님이 이 기도는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걸까? 왜 내가 분명히 이걸 달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하나님께서 다른 걸 주시는 걸까?‘ 이러면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내 인생을 움직이시는게 마음에 안드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 인생이 문제가 부딪칠 때 하나님 말고 찾아갈 데가 있으면 한번 얘기해 보세요. 있으면 거기로 가요. 가라고...그대신 뒷감당은 혼자 하시면 돼. 가봐요. 없어요, 없어. 그래도 하나님밖에 없는 거예요. 믿습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어때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관계예요. 숙명적인 관계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여러분 맘에 들게 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세요.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뭐냐하면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맘에 들건 안들건 그것 따지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매달리는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 문제 있으면 젤 먼저 어디 매달립니까? 사업하는 분들, 사업하다가 문제 딱 부딪치면 어디부터 매달려요? 이 굴리는 거죠. 내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굴려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과부가 수많은 사람 어쩌면 이 재판장보다 돈 많고, 더 잘 생기고 말 잘하는 사람, 수없이 있었을지 몰라요. 그런데 그 사람들 안 찾아갔어요. 왜? 해결은 그런 사람들한테 있지 않다는 거죠. 왜? 하나님에게 있다, 이 재판장에게 있다.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이 과부가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여러분, 인생의 문제에 부딪히고 사업의 문제에 부딪히면 누구한테 매달려요. 하나님한테 매달려요? 그건 이거고...머리에 매달리지 않아요? 경험에 매달리지 않아요? 살아가면서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을 만날 때, 돈 때문에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 먼저 생각합니까, 돈 가진 사람 먼저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먼저 바랍니까, 돈가진 사람의 긍휼을 먼저 기대합니까?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정말 하나님에게 우리의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있다, 그리고 매달리는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재밌는 것은,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어요. 그러니까 과부의 억울한 일이라봐야 십중팔구는 돈에 관한게 틀림없어요. 과부의 재산을 속여 먹거나, 빼앗거나 아마 그런 악한 사람일거야. 어쩌면 자기 남편을 죽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우리 여기서 뭘 보고 발견하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아갈 때 높은 수준의 기도의 제목을 가져야지만 고귀한 영성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예요. 기도의 제목은 우리가 변해감에 따라서 기도의 제목이 변해가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비록 하나님이 보실 수준이 낮다고 하더라고 여러분은 수준이 낮은 신앙이면 수준이 낮은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예화) 국민학교 1학년 밖에 안들어간 애가 어디서 누구한테 듣고와서 폼잡고 아버지한테 ‘아빠, 저 뭐 하나 사주세요, ‘뭘 사주랴?’ ‘세계 철학 백과사전을 사주세요’ ‘그거 어디서 들었냐?’ ‘지성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 정도는 읽는다는 소릴 어디서 들었거든요’ 사다주면, 일곱 여덟살 밖에 안 먹은 놈이 영어, 독일어로 된 원서를 읽을 수가 있어요? 그럴 수 없잖아요.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그런 허세를 부리면 안된다 이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확실히 하고 갑시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눈만 뜨면 가장 간절하게 부딪히는 기도 제목이 뭐예요? 뭡니까?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가장 하나님을 의뢰하여야 할 기도 제목이예요. 아직 결혼 못한 우리 자매들은 눈만 뜨면 ‘시집가야 될텐데’ 그런 생각 떠오르면 그렇게 간절하게 떠오르는 가장 커다란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뢰하게 되요. 믿습니까? 그거예요. 우리가 고귀하고 높은 기도를 하는 기도의 영성만이 높은 영성이고, 그리고 우리가 사소하고 주변적이고, 우리의 삶 속에 직결되는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이 말하자면 천박한 영성인 것같이 생각하는 것들은 어리석은 것이예요. 우리는 그 속에서 동일한 응답의 기쁨과 희열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억울한 일, 그것이 무엇이냐 이겁니다. 이 과부에게는 인생에 이 문제 하나밖에 안보일 정도로 눈만 뜨면 ‘그 원수’,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불을 끄고 누워도 잠이 안와요. ‘그 원수’, 이 원한을 풀어야 될텐대. 지워지지 않는 인생의 문제에서, 그렇게 자기의 마음을 가장 크게 차지 하는 기도의 제목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의뢰 안하고, 와서 기도하면 마음에도 없고 생각에도 없는 기도 제목들을 만들어 내가지고 거창하게 기도함으로써 자기의 영성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주려는 이런 영적인 생활들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앞에 가장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 제목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해결해 주신다고 (믿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평범한, 피부에 와닿는 기도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냐... 그 이유는 뭐냐 하면....오랜동안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 기도를 했죠? 물론 기도를 했지만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 같은 조짐들이 안보일때 우리는 그 기도를 포기하고 쉬게되는 것이예요. 쉽게 얘기하면 항상 기도하지 못하고 낙망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약점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예요. 그러면서, 기도의 제목 속에서 우리들이 늘 습관적으로 기도하지만 아득히 잊혀져가는 기도의 제목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이 불의한 재판장을 찾은 이 과부를 보십시요. 4절을 보십시요. ‘그가 얼마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그랬습니다. 과부가 와가지고 매일 아침이면 출근을 해서 달라고, 내 소원을 들어 달라고 애원을 하는데도 이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들도 우습게 여기는 교만한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과부나부랭이 하나가 와가지고 떠들고 울고불고 하는것, ’쫓아내라, 들어내라, 내쳐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밥만 먹으면 출근하면서 매달리는거야. 왜? 집에서 아무리 생각을 하고 궁리를 해봤댔자 재판관이 내 간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가장 커다른 기도의 제목이 응답이 될 수 없는거야. 그러니까 이 과부가 비록 이 재판관이 자비로운 사람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그러나 씨름을 하듯이 재판관에게 와서 매달리는 거예요. 그런데, 뭐라 그래요? ’그가 지긋이 들었더라‘ 말하잖아요.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때로는 그 기도를 금방 들어주시지 않으셔요. 그리고, 한동안 그 기도가 오래도록 기도를 계속하게끔 하나님께서는 놔두시는거예요. 왜 그런지 오늘 말씀을 드릴게요. 왜 그런가? 어떤 때는 기도를 하기만 해도 하나님이 금방 들어주시는 때가 있어요.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때가 있는거죠.
(예화) 부산 집회갔을 때의 강대상에 대한 어떤 목사님의 간증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입으로 내놓기만 해도 들어주시는 때가 있다.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안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동안 우리의 기도를 안들어주셔요. 뭘 보시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는데 그 기도의 제목이 안 이루어지는것이예요. 어떤 때는 이루어질 것 같다가 안되요. 안될 것 같다가 되는 것 같애. 그러면서 씨름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맨 처음 기도할 때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이 정말 진실한 믿음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한 번이나 두 번 기도해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은 불신앙이예요. 믿음은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면 들어주시리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이예요. 여러분, 기도는 절대로 손해나는 것이 없어요. 응답이 안되는 기도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믿습니까? 기도원 밥 많이 먹었으니까 아멘 좀 해봐요. (아멘) 응답되지 않는 기도라는 것은 없어요. 그런데, 어떤 기도는 있냐.. 하나님이 응답하시기 전에 그만 두는 기도는 많아요. 그러니까 응답받지 못한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기도가 아니라 응답할 때까지 기도하지 않은 기도예요. 응답할 때 까지 기도하지 않은 기도예요. 왜 그러면 기도하면 손해가 없느냐, 들어봅시다.
어떤 하나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했어요. 그런데 응답이 없어요. 더 열심히 기도했어요. 응답이 없어요. 더 열심히 기도했어요. 하찮은 문제예요? 하찮은 문제 가지고 누가 정신없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목을 빼서 기도하고 애원하겠어요. 뭔가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예요. 그리고, 중요한 문제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간구하고 매달리는 것이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기도하자마자 들어주셨다, 좋아요, 나빠요? 좋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응답해주셨으니까 할렐루야, 주님 감사하고 찬송해야죠.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들어주는 기도 얼마나 좋아요. 아니, 어떤 사람이 자기 문제를 놓고 간절히 몇 년을 기도해도 안들어주는데 내가 가가지고 한번 손을 얹고 ‘하나님, 이 문제를 주께서 해결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해 줄 때, 그 자리에서 응답해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면, 좋아요, 나빠요? 좋죠.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앞당길 수 있어요. 그러니까 좋고, 그 다음에 그렇게 응답을 안해주시면 어떤 일들이 있겠어요? 오래 기도해야지만 응답해 주시는 적이 있겠죠? 매달려서 기도하고.. 응답이 없어요. 또 가서 매달리며 기도하고, 또 응답이 없어요. 그럴 땐 무슨 마음을 가져야 되는지 알아요? ‘그래요, 하나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봅시다’ 이런 신앙적인 오기를 가져야지 뭘 하지. 그렇지 않아요? 한번 찔러 보고 안되면 피식 커지는 풍선같아 가지고 무슨 큰 일을 하겠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응답이 안와. 일년을 해도 응답이 안와. 2년을 해도 응답이 안돼. 그런데도 그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기도예요. 매달려서 간절히 기도할 때 기도가 간절하면 삶이 기도를 중심으로 바뀌어 버려요. 믿습니까? 그러니까 기도를 중심으로 삶이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안가지고 있으면서도 헌신되고 성결하고 경건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예요. 흐르지 않는 물은 썩어요. 흐르지 않는 물은 기필코 썩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오늘 간절한 기도 제목을 안 갖고 있다면 그 자체가 문제예요. 간절한 기도의 제목, 기도 할 것이 없어서 간절한 기도를 안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영적으로 메말라 있으니까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을 무언지 찾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도를 간절히 했는데 일주일, 이주일, 삼주일, 넉달이 지나도 안 들어 주셨다. 그러다가 한 일 년 있다 들어주셨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요? 기도를 하면서 내 삶이 바뀌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잘 보여야 될 것 아니예요. 기도는 간절히 하는데,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일만 하면서 막 사는 사람들은 연구대상이야. 연구대상이 매주 몇 번씩 나오는데, 연구대상이야.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어요. 기도 제목을 간절히 갖게되면, 옷 입는 것 관심없어요. 치장하는 것 관심없어요. 얼마나 좋은 차를 탈 것인가 관심없어요. 다 기도의 영이 죽으니까, 다 쓸데없는 일에... 물론 조금씩은 신경을 쓰죠. 그렇지만 거기에 탐닉하고 빠져가지고 정신을 다 팔아먹는 거지....기도에 간절히 매달려봐요. 무슨 문제가 있어요. 사업이 안되면은...
(예화) 사업하는 사람
금방 응답을 안해주시고 한참있다 응답해주시면은 그 응답으로 가는 시간 동안에 우리가 바뀌는 거예요. 우리가 바뀌어요, 믿습니까? 바뀌어요, 확실히 바뀌어요. 기도의 제목이 간절하니까 사람이 바뀌고, 그리고 기도의 제목이 열렬하니까 냉랭하던 사람이 뜨거워져요. 기도의 제목이 간절하니까 눈물이 메마르던 사람이 메마르던 눈에서 눈물이 나와요. 10년동안...하나님이 그걸 보시는 거예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매달리며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나중에 뭐예요? 그거 하나 응답받을려고 매달렸는데, 오랫 기간동안 응답을 받고 뒤돌아보고 거울을 쳐다보니까 내가 바뀌었어. 할렐루야! 환경을 바꾸려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씨름을 했는데 씨름을 하다보니까 내 교만이 부셔지고 내 자아가 부셔지고, 나 중심의 사고방식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런 신앙이 쌓여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렐루야죠! 오히려 어떤 때는 첫 번째 보다도 더 감사하네요. 하나 기도했는데 두 개 주셨으니까...
그 다음에는 어때요? 때로는 하나님이 기도했는데, A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B를 주실 때 있어요. 바꿔주시는 적이 있죠. 바꿔주실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하고 기도했더니 내 원하는 대로는 안해주셨는데 알고보니 하나님께서 나한테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신 거예요. 처음에는 그게 마음에 안들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봐요. 우리 머리가 좋겠어요, 하나님의 지혜가 훌륭하겠어요? 그거 비교할 필요도 없는거예요.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받으면 우리가 훨씬 더 불행해 질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간절히 기도하면 바꿔서 주세요. 바꿔서 주시면 지금 당장에는 마음에 안들어도, 생각해 보면 생각해볼 수록 마음에 들고, 귀하고, 그리고 이것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꾸어주실 때에 처음에는 마음에는 안들어도 바꾸어주시기만 하면 세월이 흘러가면 아~ 그게 최고였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하나예요. 하나님께서 끝까지 안된다고 그러실 때가 있죠, 그렇죠?. ‘안된다’ 그러실 때가 있어요. ‘안된다’고 그러실 때, 안된다고 하는 이야기까지를 듣지 못하니까 그렇지, 안된다는 응답을 확실히 받고 나면 그것처럼 좋은게 없는거예요.
(예화) 예은이와 칼
하나님이 안된다고 그럴때는 없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 주시는 것예요. 믿습니까? 우리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안 주실때, 그건 하나님이 우리의 재앙을 막아주시는거예요. 믿습니까? 바로 그것이예요. 바울이 눈에 가시, 뭔지 모르지만 깊은 병이 있었어요. 이게 얼마나 속상한 거예요. 자기는 손을 펴서 기도할 때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일으키고, 귀신들린 자를 내어쫓는데 그런데 자기의 육신의 질병은 못 고치는거예요. 사람들이 얼마나 놀렸겠어요. ‘야~ 자기 병도 못 고치는 병신이 누구룰 고친다고 그러냐, 웃긴다’ 그랬을 거라고,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거예요. 그런데 어때요? 그래서 이것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 뭐라고 그랬어요. ‘그게 은혜다’ 그래, 나중에 뭐라 그래요? ‘내가 자랑할 것이 있으면 부득불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내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여 진다‘ 일평생 자기의 연약한 눈, 글씨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연약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더 겸비하고 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축북이예요, 저주예요? 하나님의 축복. 그러니까 그는 잠시 불편했지만, 그 위대한 역사를 이루면서도 조금도 자신을 높이지 않고 불멸의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손해가 나겠어요?
보세요. 하나님 앞에 간절히 지속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한다고.그러니까 하나님앞에 오래도록 쉬지말고 하나의 기도의 제목을 놓고 기도를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이예요. 왜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중간에 포기해요? 그 말은 간단해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인지가 올 때 믿는 자를 몇 명이나 보겠느냐?‘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하다 도중에 포기하는 것이예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두들 낙심할 때 굳게 믿고 이렇게 기도하면 이 기도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이렇게 매달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 기도가 결코 헛일로 끝나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 기도가 이루어지리라고 하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부딪히는 또 다른 문제는 낙망하는 것이예요. 여러분, 그래본적 있어요? 너무너무 아쉬워서 돈이 없으면 안되서, 너무 급해서 돈을 꾸러 갔는데
(예화) 돈이 정말 없어서 돈을 꾸는 사람의 심정
그런데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고 간구할 때에 우리들이 기도하다가 그렇게 또하나 빠지기 쉬운 어려움이 뭐냐하면은 간절히 기도하는데 기도하다가 낙망하는 거예요. 믿는게 있는 사람은 그래요. 그렇게 어렵게 얘기를 꺼냈는데 ‘어~ 그래, 더 필요하면 더 말해’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거나 아니면 은행에서 돈을 찾아주면 어때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어휴~ 내가 돈이 어딨어? 없어’ 마치 있어도 널 꿔주겠냐 하는 식으로 훓어볼 때, 그때 그 느낌 경험해 보셨죠?
그런데, 그 여자가 며칠을 당했어요? 한 번, 두 번 , 세 번? 한참동안 당한 거예요. 가서 간절히 눈물 흘리고 매달리면서 대문앞에 매달려서 ‘재판장님, 재판장님’ 매달리니까 소리가 들려오는데 ‘저 년을 내쳐라’ 갖다가 던져버리는 거예요. ‘한번만 더 오면 치도곤이 혼날 줄 알아라’ 또 가서 매달리면서 매달리는데 쳐다도 안 보다가 해가 저물어요. 그 다음날 병졸들이 와가지고 내치는거예요. 그럴 때, 하루하루가 절망의 연속이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낙망하지 않기가 그리 쉬워요?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나와서 ‘주님, 이 문제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고 하나님 앞에 어려운 입을 열어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것도 잘 보여보려고 수요예배까지 평소에 안하던 수요예배까지 억지로 나와가지고 예배끝나고 사람 다 가도 뒤에 앉아 가지고 쭈그리고 10분이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응답을 안하셔, 한 번이 아니라 서너번씩이나 응답을 안하셔. 그때 사람들은 낙망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낙망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기도 많이하는 사람들에게도 낙망하는 일은 언제나 있어요. 낙망해버리면 그 다음에 어떡 하느냐, 체념하고 포기하고 사는 거예요.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이 기도제목은 응답받지 못할 팔자다’ 그렇게 적어놓고 사는 거예요. 어때요? 하나님의 능력이 말랐어요? 우리의 능력이 식었어요. 우리의 믿음이 식었어. 하나님의 능력이 마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 식었어요.
윌리엄 케리라는 영국의 근대 선교의 아버지가 있었어요. 그때 16세기 때 사람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선교에 대해서 눈뜨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 앞에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종족들에게 가서 선교해야 된다고 간절히 외쳤더니,그 유명한 목사님들이 앉아서 하는 말이 ‘이보게, 젊은이. 만약에 이방인들의 구원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자네가 설치지 않아도 직접 하실걸세’ 완전히 초칼빈주의자들이었어요. 모든 사람이 그럴 때에 이 윌리엄 케리는 구두를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어요. 가죽 쪼가리를 모아서 지구본을 만들었어요. 거기다 지구를 그려놓고 밤마다 품에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이 영혼들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해’달라고....쉽게 응답됐겠어요? 안고 자고 자서 반질반질하게 닳을 때까지 응답이 안됐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인디아’로 보내셔요. 그리고 위대한 근대 선교의 한 장을 여시는 거예요. 죽고나서 3년뒤에 응답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은 모두 우리가 하는 그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예요. 간절히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언제나 쌓이고 쌓이는 것이예요. 그 기도가 고상하고 훌륭하고 고차원적인 기도일 필요 없어요.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열린교회가 있는 동안에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아서 이 세상의 먹고 사는 일같은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세계의 선교와 그리고 이 나라가 공의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공법이 흐르는 물같이 흐르고, 정의가 하수와 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땅의 참된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 말고는 별로 기도 제목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수준높은 신앙생활하기를 바래요. 그러나 그건 내일이나 모레의 일일수 있어요. 오늘 여러분에게 다가온 눈뜨면 마주 만나는 이 심각한 문제 ‘하나님, 직장에서 내 상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직장 생활이 고달프옵나이다.’ 기도 제목입니다. 그렇죠? 기도제목이예요. 여러분, 얼마든지 우리에게는 정말 간절하고 눈뜨면 매일 마주치는 기도의 제목이 있어요. 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우리의 최대의 적은 기도하다 그만두는 것이고, 기도하더라도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기도의 한계를 뿌리치고 물리쳐야 되요. 믿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할 때, 이 불의한 재판장,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과부를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달려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이 과부의 기도를 들어주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더욱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그런 인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의 약속을 주시고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듣기 위해서 마음을 열고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가 낙심치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매달리고 기도할 때 응답받는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은 깊은 우물과 같아요. 우리를 신령하게 하는 은혜 그리고 운명적인 우리의 삶을 바꿔놓는 변화의 역사, 이건 깊은 우물과 같아요. 기도라고 하는 두레박을 깊이 드리워요. 우물이 얕을 때는 두레박을 던지면 툭 털어지면서 금방 물이 올라와요. 그 물은 좋은 물이 아니예요. 늘 불순물이 들어가요. 시골에 어떤 때 가보면 ‘아~’하고 소리를 지르면, 한참 소리가 메아리지는 깊은 우물이 있어요.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 다섯 발, 여섯발을 내려도 두레이 물에 닿지를 않아요. 일곱발 여덟발을 내려도 두레박이 안 닿아요. 한없을 내려서 두레박이 어디 걸렸나 봐도 아직도 수면이 멀어요. 열발 열한발 열두발 내렸는데 덜컥 하면서 두레박이 물에 닿는 소리가 나죠. 그리고 그 물을 올려요. 쉽게 올라와요? 한발 두발 세발, 해가지고 잔뜩 길어서 ‘딱’, 그 물은 이거예요. 아주 뜨겁게 찌는 여름, 펌프의 물도 미지근한데 이 두레박으로 길어올린 물, 얼음을 띄워 놓은 것 처럼 시원해요. 좋은 것은 깊은데 있습니다. 믿습니까? 기도의 줄을 깊은 기도의 우물에, 응답의 우물에 내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신실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