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며 부르짖으라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 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키리이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시119:146-147)
우리들이 늘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간절히 기도해서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기도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어떻게 기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것이냐? 거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능력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비밀을 안다. 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능력을 비밀은 안다. 라고 하는 것은 곧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능력이 많으신 그 하나님을 움직여서 우리를 위해서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비밀을 터득한다는 말과 꼭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고 또 부르짖으면서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늘 열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모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정말 우리들이 살아있는 열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고만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당해도 주님이 알고 계실 것이며 또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렇게 열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상하는 일도 있겠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는 더 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뭔가 어려운 일을 만나고 그래서 마음이 많이 상하고 성격에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그런 고난을 받을 때에 적절한 해독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성이 계속 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열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이기면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한사람이 열렬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그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것이고, 보화를 주고도 바꿜 수 없는 것이면 그의 지위를 주고도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의 영을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시편 119편은 하나님 말씀의 영광의 장이라고 불리 우는 그런 장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그 말씀의 효능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살리고 고난 중에 어떻게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지를 아주 상세하게 그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데 사실 119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만큼이나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기도입니다. 부르짖다. 라고 하는. 부르짖는다. 기도한다. 간구한다. 하는 이야기가 말씀 이라고 하는 단어만큼이나 자주 등장을 합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들이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열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화) 겨울이 다 되어 오니 생각이 납니다만 어려서 제가 좋아하던 놀이가 설매 타는 것이었습니다. 썰매 날을 어디서 가져오는 줄은 모르지만 하여튼 학용품 파는 가계에 가면 겨울철이 오면 그 썰매 날을 쭉 갖다 놓고 두 개씩 꿔서 팝니다. 그럼 그것을 사다가 사과 궤짝을 두들겨서 그 위에다 판자 떼기를 데고 못을 박고 하면 왠만한 아이들은 자기가 탈 썰매들을 거의 다 만듭니다. 그런데 이제 부모가 잘 만들어 주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저희들이 그렇게 판자에다가 그 날 두 개를 박아서 꼬챙이에다 쇠못을 꽂아서 얼음을 지쳤습니다. 그래서 참 타는 것도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쪼글라 앉아서 타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무릎을 꿇고 타는 방법이 있는데 쪼그리고 탈려면 상당히 괄록이 좀 붙어야 됩니다. 맨 처음에 초보자는 무릎을 꿇고 타는데 그게 평상시에 그렇게 어린아이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라고 그러면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여튼 하루종일 썰매를 타서 나중에는 오금이 아플 정도로 타도 그렇게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중학교 오게 되니 스케이트를 하나, 중학교 입학한 기념으로 저희 아버님이 사 주셨습니다. 중고예요. 중고. 그거를 타고 얼음을 지치는 형들을 보니 참 대단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외날로 다리하나는 들고 얼음을 쭉 미끄러져서 가는데 그것도 그냥가는 것이 아니고 한손에는 뭐 꼬챙이에서 떡볶이 같은 것 하나 끼어서 물고 그리고 한손으로는 친구들한테 흔들면서 다니는데 정말 어린 마음에 환상적입니다. 나도 저것만 사면 저렇게 되려니. 그랬는데 결국은 못 배웠습니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서지지가 않았습니다. 서는 방법을 결국은 못 배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한참 타고 나니 스케이트구두 왼쪽이 하얗게 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옆으로 쓰려뜨려서 가죽을 얼음바닥에 데고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 때 깨달은 게 뭔가 하면 “누가 이 스케이트를 쌍날로 만들었으면 안미끄려지고 얼마나 잘 탓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은 못 배웠고 발목만 서너번 삐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열렬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외날타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도 하나만 가지고 해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절대로 오래 못갑니다. 여러분! 새벽기도회가 부흥하는 비결이 뭔지 압니까? 새벽기도에 와서, 정말 새벽기도가 부흥하는 비결은? 저는 새벽에 와서 통성기도하면 새벽기도가 부흥되는지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진심에서 울어 나와서 소리를 지러며 기도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사람은 쉽게 이야기하면 그냥 영혼이 부르짖는다 보다는 악을 쓰는 것입니다. 그냥. 똑같습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울어 나오는 부르짖음이 있고, 제가 다나던 교회에 전도사 한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목사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는 늘 웁니다. 그런데 그 우는게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도 뭐 맨날 고상한 기도합니다. 이 땅에 노동자들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그런데 그야말로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부르짖는것과 악을 쓰는 것이 다르듯이 그냥 우는 것과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 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늘 언제나 공허합니다. 저 혼자만 그런 것을 느끼는 줄 알았더니 그 같은 교회 있던 교역자 한사람이 똑같은 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분 기도 하는 거 좀 들어 봤야고” 그래서 들어 봤다고 그러니 자기는 이런 것을 느꼈다고 그러는데 아주 똑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새벽기도가 부흥하는 비결은 새벽기도 나올 때에 기도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각오도 가지고 나와야 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깊은 은혜가 새벽시간에 만나와 같이 내려야 합니다. 그럼 의무감으로 나왔던 사람들의 마음이 녹으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시인이 부르짖는다. 라는 말을 한 다음에 즉시 주의 율례를 지키는 문제를 가지고 돌아갑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이렇게 부르짖는데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주님의 율례를 지키겠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를 받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삶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열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는 그 뜨거운 기도와 말씀의 감화가 양날이 되어서 그 위에 판자를 얻고 삶을 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앞으로 전진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가 우리 속에서 살아져 가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됩니다. 그리고 말씀의 감화가 있는데도 무엇인가 그것이 즉시즉시 진통제처럼 사라져 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뜨거운 기도의 영을 유지하는데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던 사람들은 기도의 제목이 간절해서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을 수 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말씀에 감화 받은 후에 그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여부가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느냐? 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직접 관련 되어 있었고 그들은 자기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대한 아주 심각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열렬히 기도하고 기도할 때에 이런 변화들을 경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들이 기도할 때에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