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라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눈을 드시고 귀를 기울이소서”(대하6:40)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요. 그래서 어디든지 계셔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분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악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눈길을 피하고 싶은 때가 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디서나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 그리고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에 주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사실, 이것은 매우 커다란 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억매이지 않는 기도생활이 필요합니다. 사실 그런 일에 있어서 모본을 보여주신 분이 누구셨는고 하니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동가식 서가숙 하시면서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지만 나그네 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그분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을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 한번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이 기도하신 곳이 어디였는가를 한번 찾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깜짝 놀란 사실 하나는 주님이 기도하신 시간은 대개 간음을 할 수 있는데, 홀로 기도하신 시간은 대개 간음할 수 있잖아요. 새벽 미명이나 깊은 밤이었잖아요. 근데 기도하신 장소는 간음하기가 어려워요. 그만큼 다양하다 말이에요. 산, 강, 들, 그 다음에 사람들이 있는 동리, 뭐 굉장히 다양한 장소가 예수님이 기도하신 곳으로 나타나요. 그 사실은 우리에게 뭘 보여주냐 하면 주님이 얼마나 환경에 억매이지 않는 기도의 세계를 가지고 계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좀 이상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집회하러 가면은 이상하게 갈급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왜냐하면 모든 게 다 환경이 바꿨어요. 그런데다가 집회에 나가면 제가 꼭 부탁하는 게, 아침은 나 혼자 알아서 하게 좀 나를 내버려달라고 하거든요. 내가 먹든지 말든지 설렁탕을 먹든지 북어국을 먹든지 내가 알아서 사먹을 테니까 저녁하고 아침은 참견하지 말고 내버려두라고 그럼니다. 그런데 안 그래요. 새벽기도하려고 여기 강단에서 설교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딱 6시 반쯤 되면 뒤에서 ‘음, 음’ 기침소리가 나요. 빨리 가자는 얘기에요. 그래서 장로님들, 목사님 그런 분들이 기다려요. 빨리 강사님에게 아침을 대접하고 당신들은 출근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모든 환경이 바뀌지요.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이 건조해지는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낮에 내가 숙소에서 안 쉬고 어슬렁어슬렁 교회당에 와서 기도하면 사람들은 또 얼마나 불편해하겠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하튼 그런 적이 많아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그런 기도생활을 하셨어요. 이것은 결국 예수님이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시는 성품 중에 어디서나 계신다고 하는 편재하심, 부소부재하신 그 하나님의 존재를 믿은 믿음과 관계가 있죠. 어디서나 기도하면 주님이 들으시고 그리고 환경을 뛰어넘는 교제로 하나님 아버지와 맞닿을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정해요. 충분히. 그러면서도 우리는 또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모여서 하는 기도의 중요성이에요. 모여서 하는 기도의 중요성,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회를 가지신 기록은 잘 안 나타나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이 동리, 저 동리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던 그 상황과 오순절의 성령이 강하게 임하셔서 그래서 신약의 교회가 태동되고 난 그 후에 교회에 기도하는 모습은 많이 달라요. 성령이 오셨고 그 성령이 이제 교회를 아주 강하게 기도하도록 훈련을 시키시는 거예요.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혼자 역사하시지 않으시고 기도를 따라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성령님 오시옵소서.‘ 하면 성령이 오시는 거예요. ’이곳에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과 복음의 문을 열어주세요. 그러면서 그 교회의 기도와 성령의 역사하심과 선교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움직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우리들이 개인적인 기도생활을 많이 배운다고 할 것 같으면 사도행전 이후를 통해서는 우리들이 교회의 기도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되요. 그런데 사도들을 생각해보세요. 사도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시고 또 예수님의 교훈을 쫓아서 복음 전파로 부르심을 받으신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했어요. 거기에 올라가고 있는 다른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사도들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성전으로 올라가서 기도한 거예요. 시간을 정해놓고 유대인들의 규례를 따랐어요. 이것은 그들이 옛날의 구약의 규례를 따른다 라기 보다는 그렇게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한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에 가치를 성령이 오신 다음에 아주 강력하게 느끼셨기 때문이에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것도 결국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는 그 곳에 오신 거예요. 놀랍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그러한 사상이 구약과 상당히 접목이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이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이제 하나님 앞에 봉헌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뭐냐 하면 주의 백성이 이 곳에서 기도할 때 주님이 귀를 기울여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어요. 왜 솔로몬은 다른 곳에서도 어디서든지 기도하든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신데 왜 하필이면 이 곳에서 즉, 우리가 지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이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주께서 귀를 기울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솔로몬은 지금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누구도 그분의 낯을 피할 수가 없고 안 계신 곳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주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주님이 그 기도를 어디서나 들으신다는 평범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도할 때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그렇게 하나님께 부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어디서든지 기도하면 주님이 가도를 들으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성전에 기도할 때에는 주님이 특별히 그들을 기억하셔서 특별히 그들의 기도에 주목해 주십사 하는 기도에요. 그러면 솔로몬이 왜 성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에만 주님이 특별히 귀를 기울여 달라고 하나님께 당부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당에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솔로몬이 기도할 때에 불과 그리고 하나님의 큰 영광으로 당신이 그 기도에 응답하고 계시며 그 성전에 좌정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다른 곳에서 기도할 때보다 이 교회에서 기도할 때에 왜 기도가 더 잘 될까요? 또 여러분들이 다른 곳에서 기도할 때와 이 교회당에 와서 기도할 때에 여러분들의 마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교회당은 물론 하나님께 예배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되어있습니다. TV이도 없고 가라오케도 없습니다. 또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구는 아이들도 없습니다. 그러나 조용하다고만 해서 이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잘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기도하는 집으로 특징지어지기를 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집, 그런 집이 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와서 기도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 인터넷을 이용하면 우리 모두 재택 기도회를 할 수 있어요. 정해진 시간에 인터넷을 틀어놓으면 여기서 이렇게 새벽 시간에 설교하는 것을 그대로 생중계할 수 있어요. 돈 얼마 안 들어요. 그런 그래서 여러분들이 집에서 컴퓨터를 켜면 생생하게 김 목사의 설교를 듣고 교회당을 모두 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역시 새벽기도회의 이 가치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상당한 거리를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오거나 차를 타고 와서 이 교회당에 참석해야하는 이 새벽기도회의 가치는 영원할 거예요. 그게 신비라구요. 그 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가 이 곳에서 기도하므로 이 곳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갈망이 베어있는 기도의 집, 기도하는 것을 빼어 놓고는 이 교회당이 하나님의 교회당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이 별로 없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수 없을 그럴 정도로 그렇게 깊은 기도가 특징이 되는 그런 교회, 언제든지 이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그리고 주님을 향한 간절한 몸부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러한 교회당이 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곳에서 기도할 때에 주님이 특별히 귀를 기울여 달라고 이 솔로몬이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신앙의 공동체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거예요. 보여주는 거 라 구요. 원래 이 복음 진리라고 하는 것도 베드로나 누구 한 두 사람에게 위탁된 것이 아니에요. 이거는 공동체에 위탁된 거예요. 공동체에. 지금은 공동체라는 생각이 없어요. 공동체는 뭐냐? 이 세상에 공동체는 혈연도 공동체가 되죠? 가족이니까, 핏줄이니까.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혈연도 공동체가 되죠. 또 어떤 곳에서는 저쪽으로 넘어가면 전라북도에서 만든 커다란 학술이 있어요. 기숙사를 이 비싼 강남의 땅에다가 아주 굉장히 크게 지어준 거예요. 거기는 전라북도에서 온 학생들만 들어가는 거예요. 지연도 공동체를 만들어요. 그죠? 또 취미가 같아도 공동체를 만들죠. 이익이 일치해도 공동체가 이루어지죠. 하튼 여러 가지 공동체로 이루어져요. 그러면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등록하면서 이루어진다. 아니에요. 그러면 뭐 교회에 등록하면 전부 다 교회를 사랑하게요? 아니에요. 등록했지만 남의 교인처럼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교회 버려두고 이 교회, 저 교회에 방황하는 사람도 있어요. 공동체는 어떻게 이루어지냐? 공동체는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므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므로, 그러니까 예배를 통해서 함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며 이 교회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그 진리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래를 모아서 물을 부어서 쌓아올린 것 같아요. 마르면 훅, 불면은 모두 흩어져요. 그런 거예요. 오늘날 이 조국 교회의 공동체적인 정신이 얼마나 희박해졌는지 몰라요. 학교도 그래요. 어느 학생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러 들에요. 기말고사 시험을 보는데 시험 문제지에 교수 이름, 학생 이름 쓰는 란이 있더래요, 지금 시험 보는 이 과목의 교수 이름이 누구 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야, 저 교수 이름이 뭐냐?‘ 공동체적인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죠.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 교인은 한 550명밖에 안 모이던 교회였는데 일년 반을 그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거든요 화장실에서 같이 볼일을 보는데 옆에 있는 형제가, 수요일이에요. ’형제님‘ 그래요. 그래서 뭐 형제는 형제잖아요. ’예‘ ’앞자리에 앉으셔서 어쩜 그렇게 찬양을 잘 하세요?‘ 그래요. ’아, 예. 잘 못합니다.‘ 형제님, 저 우리 성가대에 안 들어오실래요?‘ 하도 기가 막혀서 ’제가 섬기는 일이 또 있어가지고 제가 그건 힘들 것 같아요.‘ ’그래요. 되게 안 됐네요. 무슨 일로 섬기세요?‘ ’나중에 아시게 될 거예요‘ 몰라서,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죠. 함께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면은 그러니까 이상적인 교회 생활은 함께 하나님을 갈망하고 함께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고 함께 감격하고 함께 예배하고 그래서 함께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소명감을 느끼면서 함께 거룩하게 살아가요. 함께 서로 격려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는 거거든요. 속히 그런 신앙생활이 돼야 되요. 찬양은 여기 가서 배우고, 그 다음에 뭐 성경공부는 저기 가서하고 그런 식의 신앙생활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기도가 바로 그런 교회의 공동체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서 기도할 때에는 아무 아무개 개인이 여기 와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에요. 열린 교회에 소속된 한 식구로서 여기 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기도할 때에 그런 공동체에 속한 내가 하나님의 이 공동체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 중 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기도의 장소가 어디냐면 여기에요. 여기, 옆에 교회도 아니고 뒤에 교회도 아니고 여기, 바로 여기, 집도 아니고 산도 아니고 여기에요. 사람들은 흔히 보통 기도는 교회에서 하고 특별한 기도는 산으로 올라 가더라구요. 왜 그러냐고 그러니까 산이 하늘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더 잘 들릴거래. 그렇지 않아요. 구약에 보면 사람들이 흩어져 있다가도 오히려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에는 교회로 모였어요. 그리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예요. 이상한 기도원으로 유리방황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더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장소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이미 어느 곳에서 기도하든지 주님이 들으시지만 이 교회당에 모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특별히 그 장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시겠다는 약속이 깃들여져있는 거예요. 이게 경험이에요. 그래서 시편을 읽어보세요. 특별히 시편 3권 같은데 보면 성전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하나님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기도의 장소는 성전이었어요. 한나가 어디로 올라가요? 성전으로 올라가잖아요. 성소로 올라가잖아요.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다 토해놓고 기도하잖아요. 그는 지금 민족을 위해 기도하러 올라가고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하러 간 게 아니에요. 무슨 문제를 가지고 갔어요? 가정사에요. 가정사. 가정사면 가정에서 기도하면 응답이 더 잘 될 텐데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그러면 군대문제면 군대에서 기도해야지 잘 되겠네요? 그렇지 않아요. 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문제였지만 하나님의 교회에 올라와서 그 성소 앞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 중 그 공동체의 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 우리 먼저 죽었지만 그러나 우리 앞서 가 있어서 하늘나라에 있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과 한 공동체로서 그렇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던 그 하나님께 기도한 거예요. 그거에요. 바로 그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소망은 기도로 표현되었고 그 기도의 가장 선택된 장소는 교회였어요.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게 그거에요. 요즘같이 복잡한 상황에서 모든 교인이 교회 옆으로 다 모일 수는 없어요. 아마 여기 있는 근처에 있는 교회 교인들이 전부 다 교회 옆으로 이사 오면 여기 집이 모자랄 거예요. 집값이 엄청나게 폭등할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건 불가능할지 몰라요. 그렇다면 차선이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거리가 여러분의 교회 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도록 신앙 생활하는 거예요. 아무 거리 멀어도 전혀 멀지 않은 것처럼 투덜대지 말고 새벽기도도 나오고, 수시로 봉사하러 나오고 하루에 한번씩 교회에 나오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신앙생활하면 세 시간, 네 시간 있는 거리에서 신앙생활을 해도 그 사람은 전혀 거리를 초월한 사람이에요. 그럴 정도로 능력이 없으면 가까운 곳으로 와야 된다 이거죠. 왜? 항상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서 여기 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교회에서 그렇게 기도할 때에 자신의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 이 교회가 하나님의 기도가 배어있는 기도의 집으로 만들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향한 사랑을 온 몸에 느끼면서 한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게 되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된다 이거죠. 강단에 서보면 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베어있는 교회와 주일날이면 돛대기 시장처럼 한번 모였다 흩어져 가고 수요일 날도 코빼기도 안 보이는 교회와는 달라요. 많은 기도가 배어있는 교회는 느껴져요. 부흥회 같은데 가도 많은 기도가 배어있는 교회는 느껴져요. 탁 올라오면 설교자가 교회당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 어떤 영적인 그 기운이 설교자에게 깊은 감화를 줄 때가 있어요. 그러면 물 흐르듯이 하나님께서 은혜가 흘러들어가게 하시죠. 여러분은 이 교회가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는데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주일날 달랑 나와서 예배드리고 밥도 안 먹고 살짝 빠져 나가는 그런 종류의 신앙생활을 해가지고는 여러분도 희망이 없고 여러분 다니는 교회도 희망이 없어요. 기억해야 되요. 그리고 반드시 그날에 여러분들이 그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그 교회에서 기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해명을 해야 될 때가 올 거예요. 여러분들은 얼마나 기도할 때에 내가 이 교회에 한 공동체의 일원이며 내가 이 기도 속에서 이 교회의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고 이 공동체를 공동체와 함께 공동체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말 교회에 자주 와서 기도하는 것과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비례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정말 그래요. 여러분 애타고 답답한 일 있을 때에만 교회에 오면 안돼요. 기쁘고 좋은 소식이 있어도 교회에 먼저 와야 되요. 아빠 승진했다 그러면 그냥 막 어디 전화 걸어가지고 자랑하기 전에 이곳으로 와야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합격을 했다. 와 여기 저기 전화 걸어서 자랑 하느라고 말을 많이 하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워요. 조용히 여기 와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하나님을 향한 경배의 기도가 되게 그래서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고통 할 때나, 커다란 꿈이 있을 때나,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릴 때나, 언제나 이곳에 주님과 대면하고 싶어 하고 이곳에서 자기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한 공동체의 일원이며 약속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한 지체임을 기억하면서 그 지체들을 위해서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 공로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그런 기도가 여기에 깊이 배어지게 해야 되요. 여기서 눈물을 흘리고 여기서 통회하고 여기에서 결단하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이 어두운 세상에 찬란한 불꽃으로 나타나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담대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요. 그러면서 교회를 향한 사랑도 깊어지고 주님을 향한 사랑도 깊어져 가요. 그런 의무가 하나님 백성들에게 있는 거예요. 오늘 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그거를 탄원하고 있는 거예요. 내 백성이 이곳에서 기도할 때에 주님은 특별히 귀를 기울이시고 이들의 기도에 응답해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탄원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은 훈련시켜 가시는 거예요. 내가 나 홀로가 아니라 부모 밑에 자식이 많이 있잖아요. 자식이 많이 있어서 그 놈이 뭐 철 때 되면 고기도 사들고 오고 돈 봉투도 들고 오고 그래도 지 형제들 안중에 없고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 형제들을 향해서 조금도 이 자비로운 마음이 없는 그런 그 둬먹지 못한 자식은 부모에게 아무리 잘 해도 그건 후레자식이에요. 자기만 그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자기의 동기간들도 그 아버지의 아들이거든요. 부모가 형제끼리 서로 우애하는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은 부모 자신에게 해주는 것보다 더 기쁜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형제간이 서로 관심이 없고 개인주의에 빠지고 이기적이 되어 버리고 유산 가지고 싸움질이나 하고 그러면 부모의 가슴에 칼을 꽂은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언제나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도할 때는 우리라고 우리 아버지, 우리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고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시고 하는 모든 공동체의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 공동체가 가장 잘 느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교회에요. 그래서 이 교회에서 연약한 지체들과 병든 지체들, 몸과 마음이 상한 지체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섬기고 있는 지체들을 위해서 한 식구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러면 자신 속에 하나님을 향한 경험도 깊어져 가요. 그래서 한 공동체에서 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함께 한 교회로 세워져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두 번째 불행한 사람은 주님을 알면서도 사랑할 교회가 없는 사람 너무 너무 불행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 불행한 사람들은 존경할 만한 목자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 교회에서 다른 곳에서도 기도하지만 이 교회에 와서 내가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이 공동체와 이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기도해야할 깊은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기도가 이 집을 기도하는 집, 기도의 집이 되게 하는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되게 하는데 나의 이 기도가 보탬이 되는 그러한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요. 그래서 교회당에 들어서면서 ’내 집은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이렇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약속을 대면하면서 ‘맞아, 내가 바로 그렇게 기도를 이곳에서 하면서 내 기도를 보태며 이제껏 까지 이 교회를 섬겨왔지’ 하는 그러한 마음. 여러분들 속에 깃들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