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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가 그리스도를 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녹취자: 박은경
우리교회는 잘 안하지만 교회마다 교회 앞에 다음 주일 설교제목을 써 붙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주일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 교회 앞에는 성경구절 하나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다음 주일 설교 제목이 그리스도 예수의 끝나지 않은 사역이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워낙 성경공부를 잘하고 신앙교육을 잘 받은 아주 보수적인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똑똑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물어봤습니다. “목사님, 분명히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돌아가셨는데 예수님의 사역가운데 아직 끝나지 않는 사역이 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성경적으로 그 말이 옳을 수 있습니까?” 목사님이 “다음 주일에 와서 설교를 들어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 와서 설교를 들어보았더니 그 설교가 뭐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기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 남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중보기도의 사역입니다. 오늘 성경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 보여 주셨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주신이가 그보다 작은 것이야 얼마나 우리에게 잘 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서 끊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가운데 그 사랑을 말하기 전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기시키면서 뒤에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으리요 환난이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기근이나 장래일이나 깊음이나 높음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모두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사도가 감격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순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이 큰 사랑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지 못하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충만하게 알고 그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적인 사랑인지를 우리가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도 그 사랑에 부합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참된 사랑에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 아니면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서 살아갈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던 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되 항상 겉모양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사도바울이 1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심령으로 섬겼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사자와 같이 용감한 생애를 살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그들이 남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그를 그렇게 특별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과 크신 은혜를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깨달아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랑이 느껴지고 체험되도록 만드십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일들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지만 기도는 굉장히 많은 부분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무거운 십자가를 넉넉히 집니다.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능히 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많이 것이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여러분, 한 번 짐승을 생각해 보십시오. 송아지가 잘 뛰어다닙니까? 어미소가 잘 뛰어다닙니까? 근데 멍에는 누가 맵니까? 애들이 왜 20분동안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까 그러는데 애들은 그게 정상입니다. 애들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이슬이를 볼 때 활발하게 움직일 때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움직이니까 그렇게 많이 먹어도 해결이 되는구나, 또 한 가지는 내가 저렇게 하루종일 움직이면 아마 일어나지도 못할 것입니다. 서너걸음도 그냥 걷는 법이 없고 그냥 뛰어 다니고 데굴데굴 구르고 침대위에서 널을 뛰고, 그거 3시간만 좇아하면 몸살나고 파스붙여야 합니다. 애들이 그렇게 난리를 쳐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열심히 일해서 밥 벌어다 먹이는 사람은 팔짝거리는 애들이 아니라 엄마, 아빠입니다. 마찬가지로 많이 활동하고 많이 움직이는 그 사람들이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이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는 생애였겠습니까? 하늘의 권능을 한 손에 가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기도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아까 우리들이 부른 찬송 부르면 가슴에 감동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주님의 땀방울은 피로 변했네. 그렇게 주님은 기도하시며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많이 활동할지라도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 많이 한다는 것과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활동을 많이 하고 송아지가 이리 뛰어다니고 저리 뛰어다니며 못 말리게 날쳐도 결국은 그로써는 무거운 멍에를 멜 수 없습니다. 무거운 멍에는 날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황소가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등을 보면 얼마나 많이 멍에를 맸는지 털이 다 빠지고 굳은 살이 배겨 있습니다. 그 일들을 감당해 나가는 것은 바로 그 황소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대신 몸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작은 일을 하지만 기도로 사는 사람들은 남이 질 수 없는 십자가를 집니다. 십자가를 지기 때문에 남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참사랑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십자가를 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십자가를 많이 지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느낍니다. 내 몫의 태인 십자가를 지고 내가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될 일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들을 위해서 내가 고난받으며 수고할 때 우리의 사랑은 온전해집니다. 우리의 사랑이 온전해질수록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가슴에 더 깊이 와 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종종 보면 감사해야 될 사람이 감사하지 않고 아무리 돌아봐도 감사해야 할 일이 없는 사람이 감사해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십자가를 지닌 사람들, 멍에를 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낍니다. 그러니까 깊은 기도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인내하며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승용차가 얼마나 빨리 달립니까? 정신없이 달립니다. 화물차가 가면 추월하느라 정신없습니다. 그러나 승용차는 실어봐야 80kg 사람 다섯 싣습니다. 그러나 큰 트럭은 32톤 심지어는 40톤짜리 무거운 철강재를 싣고 밤이면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 모든 일들이 결국은 용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용량은 어떤 용량입니까? 신앙이라는 차가 굴러갈 때 ‘아무것도 싣지 마시오. 이 차는 자기만 타고 다니는 차입니다.’ 이렇게 씌여 있습니까? 십자가를 얼마나 질 수 있는 용량이 있습니까? 큰 철강재를 싣고 다니는 32톤, 40톤이 넘는 큰 트럭의 기름통을 보셨습니까? 거짓말 조금 보태서 뚜껑 열고 들어가면 수영할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기름통이 달려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기름통이 큰 사람들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도 가파른 언덕을 찬송하며 올라갑니다. 그러면 기도의 기름통이 없는 사람들은 무거운 몇 사람만 타고 바퀴가 주저앉는 것 같고, 올라가다 시동이 자꾸 꺼집니다. 뒤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을 우리는 침륜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예수님도 기도하시니 예수님의 마음을 잘 알게 됩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기도사역이 끝나지 않은 사역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도로 자신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가끔 주님의 십자가를 질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데 그것은 비성경적인 질문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것이니라’ 좇아가는 것은 주님을 좇아가는 건데, 지는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고 자기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제자들이 그렇게 대신 질 수 있을 것처럼 큰 소리를 쳤어도 결국은 주님의 십자가를 주님이 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우리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길은 자기에게 맡겨진 고난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에 우리는 이제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참할 수 있는 길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기도하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며 사셨는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날마다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주님의 기도하시는 마음을 잘 이해하도록, 깨닫고 전수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받을 때에 우리들이 주님을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그렇게 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은혜를 체험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이렇게 신앙의 비밀이라는 것은 사랑의 비밀, 기도의 비밀, 고난의 비밀입니다. 그렇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를 많이 하고 기도의 사람으로 든든히 건축되어져 기도의 기름통이 점점 더 커집니다. 저는 포항에 한번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목이 말라 밤에 잠을 자다 깼습니다. 하늘이 시뻘개서 전쟁이 났나보다 했는데 포항제철 굴뚝에서 나오는 불길이 뿜어내는 빛이 포항시내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공해는 좀 많이 나오겠습니까? 그래도 포항시내는 포철의 공해 때문에 데모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 사람들이 갖다 뿌리는 돈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공해가 있어도 그 공장이 옮기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그 어마어마한 철강을 트럭에 싣고 올라오는데 32톤차에다 46톤씩 싣고 올라온다고 합니다. 말이 46톤이지 상대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100kg나가는 사람이 460명이 타야 46톤이 됩니다. 근데 그 큰 차가 올라옵니다. 그것을 티코에 나누어서 싣고 올라오면 몇 대가 동원되겠습니까? 가능하겠습니까? 철강 큰 거 하나 자체가 5톤, 6톤 되는 것은 나누어서 실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조금 하는 사람은 크게 많이 기도하는 사람의 10분의 1 일하는 게 아니라 조금 기도하는 사람은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용량이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수십미터나 되는 것을 티코에 싣고 온다는 것은 용기는 좋습니다. 내 능력 안에서 내가 최대한 지고 가겠습니다라는 의미인데 실리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비밀이요, 기도의 비밀이요, 고난의 비밀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을 알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주 앞에 늘 기도하면 이 탱크의 용량이 점차 점차 커집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한평생 살다 가는 것, 주님에게 우리에게 무얼 맡기시려고 싣어 보셨다가 도로 물리시는 인생이 되면 우리가 얼마나 불행한 인생이겠습니까? ‘애야, 이 일은 내가 10년 동안 기다려고 꼭 해야되는 일인데 사람이 없어서 내가 10년을 기다렸는데 네 차의 기름통을 보니 싣을 수 있겠구나. 내가 이것을 싣어줄테니까 이것을 싣고 나에게 영광을 돌려봐라.’ 그러실 때, 그 무거운 십자가의 짐을 딱 싣고도 한 번 뿡하고 발동을 걸어서 누구도 넘지 못했던 고바위를 넘으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신나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이 성취됩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 기도하시는 주님은 많은 사람을 깨우쳐 주고 그 기도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수시켜 주는 그러한 놀라운 일을 하는 우리들이 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기쁘게 보시겠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정직한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참 사랑을, 그리스도 예수의 참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불평해야 할 자리에서 감사하게 하시고 고난을 받으며 피눈물을 흘려야 될 자리에서 기쁨의 찬송을 부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감사할 수 없는 사람 속에서 감사가 나오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끝나지 않은 사역, 기도에 자신을 바치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지상생활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실 때 기도하시며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