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끝날 때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27-31).
몇 해 전에 미국을 갔었는데 집회가 끝나고 목사님이 점심을 사주겠다고 하시면서 저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미술관이었는데 미술관이 바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차는 주차장에 세워 놓고 산 아래에 작은 기차를 만들어서 그것을 타고 전철처럼 가면 산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에 올라가서 점심을 먹고 전경을 보니까 참 좋아요. 산 아래로 쭉 보이고.. 건물을 너무 잘 지어서 건물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목사님과 산책을 하며 건물을 구경했습니다. 그 목사님 교회를 사야하는가 지어야 하는가 하는 건축 얘기를 하였습니다. 내려오다 보니까 언덕이 비스듬하게 되어있는데 돌로 잘 깎아서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계곡에서 물이 흘러오면 깎아 놓은 길을 타고 이렇게 흐르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물을 만들어서 물이 내려오게 하면 될텐데 물길을 약간 구부러지게 한 다음에 구석구석에 일부러 돌멩이를 크고 작은 것을 박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목사님, 저 물길을 한 번 보십시오. 제가 퀴즈를 낼테니 맞춰 보십시오. 저기 물길이 있는데 왜 저기에다 크고 작은 돌멩이를 박아 놓았을까요? 목사님이 예쁘라고 그렇지 않았을까요. 하시길래 보니까 예쁘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쁜 것 같지도 않다고 하세요. 왜 그랬을까요. 소리입니다. 물길을 민자로 만들어 놓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돌멩이를 크고 작은 것을 울퉁불퉁 한 것을 몇 개 박으니까 물이 내려오면서 소리가 나는데 그 돌을 통과할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납니다. 옆에 앉아 있으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그렇게 나면 참 짜증이 날텐데 물 흐르는 소리는 기분을 좋게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형통하기를 많이 기도하지만 형통하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요새는 장애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참 행복하고 그렇습니다. 어제 개혁신학대회를 했습니다. 나는 무엇인지 잘 모르고 하라고 하니까 하지 뭐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것이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영어도 잘 못하는데 영어로 논문을 하고 영어로 발표를 하랍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람이 여러 명 나오는데 내가 끼어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섯 사람이 다 미국 사람 아니면 호주, 아프리카 영어 잘 하는 사람들이고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달랑 끼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전부 박사, 닥터, 교수 이런데 나는 목사. 해서 그것을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한다고 해놓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논문을 두 달 동안 써야했는데 사경회 있었죠, 중국 갔다 왔죠, 구정 있었죠. 하여튼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면서 내가 투덜대면서 어휴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서 생고생을 하고 있나, 생전에 영어 작문도 안해봤는데 밤새워서 영어 작문도 하고. 그렇게 잘 준비해서 읽으려고 갔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발표하게 되었는데 앞에 네 사람은 자기네 말이니까 논문 써온 것을 덮어 놓고 보지도 않고 팔짱끼고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올라가서 편지 읽듯이 읽으면 영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서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어쨌든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두 달 동안 사경회, 겨울 사경회 발표회 준비 중국 신학교 문제. 정신없이 일이 많았거든요. 두 달이 지나고 나서, 지금도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고 내일부터 사경회 글 쓰는 것도 있고 심방도 해야 하고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힘든 것처럼 통과하니까 삶에서 소리가 납니다. 물소리가 흐르는데 물이 노래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돌에 부딪혀서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큰 돌에 부딪힐 때는 큰 비명을 지르고 비명소리가 아우러져서 재잘재잘 들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벅차고 힘든 것 같아도 그 때에 긴장하게 되고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제가 요새는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은데 몇 해 전만 해도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헛소리를 할 정도로 몸살이 나곤 했는데, 그때가 언제인가 하면 일을 열심히 할 때가 아니라 일이 끝났을 때, 더 이상 흘러갈 게 없고 부딪힐 게 없을 때 온 몸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확 밀려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평탄한 길을 가도록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 무엇을 주시는가 하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주님이 없고 은혜가 모자랐다면 눈물을 흘리며 가야할 그 길을 오히려 부딪치면서 그것 때문에 노래하며 지나가게 하십니다. 이번에도 논문 끝나면서 처음 해봤는데 한 번 더 하면 그 때는 진짜 잘할 수 있겠다. 두 달을 미리 준비하면 잘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 긴장, 며칠 밤잠을 못자고 그랬지만 그런 압박이 없으면 맛 볼 수 없는 성취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 의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가정, 자녀들, 사업의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싫은 눈빛으로 보기 시작하면 정말 지구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지 말고 이 문제들이 돌멩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흐르는 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은혜가 모자라서 문제가 문제가 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살아계신 놀라운 증거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 문제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보기에 도저히 행복해보이지 않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노래하는 방법을 배우고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서는 교회가 성령이 강림하고 나서 처음 교회가 태동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만사형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 데 그게 무엇이 나쁜 것입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때려서 반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당하니까 사도들은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지만 돌아와서 자기들을 협박하고 때린 제사장과 장로들의 말을 전했는데 그들이 다시 예수 이름으로 전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교회는 순간적으로 큰 시험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서슬이 시퍼런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으니까 실제로는 힘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도 봐주었습니다. 데려다가 때리는 것도 현행법 위반이지만 로마에서 봐주었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핍박하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이제 사도들도 그렇게 했는데 우리 같은 평신도들이야 어떻게 하랴 하고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만약에 거기에서 주저앉았더라면 예수 믿은 것을 후회하는 것밖에 별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여서 모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은 바다와 천지의 모든 것을 지으신 능력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고난을 당하는데 성경에 보니까 열방들이 메시야를 대적해서 악을 행한다고 이미 되어있습니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그리고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연합해서 우리에게 바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 저희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만약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교회가 잘 나가던 때, 은혜 충만한 때에 이렇게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을 통해서 교회는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냐면 다 기도가 끝났더니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모인 무리가 전부 다 성령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2장에서 받았던 성령 충만이 다시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일어난 일을 다 빼면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기 위한 어려움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보면 어려운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은혜를 많이 받았던 때가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많은 은혜를 받았던 때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막상 고난을 당할 때에는 고난에 대한 찬미, 고난을 예찬하는 마음이 거의 없지만 일단 그 고난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마치 우리 인생에 고난이 없으면 인생에 참다운 하나님의 복이 없을 것처럼 그렇게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남의 얘기 들을 때 그런 얘기 많이 합니다. 자기 자신한테는 그렇지 않으면서. 고난당한 사람한테 가서 마치 큰 횡재를 한 것처럼, 나는 네가 부럽다 라고 까지 말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그런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고난을 바꿔서 복이 되게 하시고 시련을 바꿔서 우리에게 은혜의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질문이 떠오르가 하면 고난은 결국에 놀라운 축복으로 바뀌는구나 위기는 결국에 가서는 놀라운 기회가 되는구나 시련과 고통은 결국에 우리에게 행복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항상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그렇게 되면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행복하고 편안할 때에서 심성도 곱고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고난을 많이 만나고 난 뒤에 인간이 찌그러려서 아주 거칠고 조잡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고,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고 났더니 예전에 그렇게 너그럽던 사람이 모질고 포악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고,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인생의 위기를 만나고 나니까 예전에는 안 그렇던 사람이 거짓말도 하고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느 경우는 나쁜 것이 나쁜 것을 가져오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을 가져오느냐, 그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입니다.
이런 핍박을 이 사람들이 별로 안 당해봤습니다. 이런 조직적인 핍박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큰 것이었겠습니까? 이 그리스도인들의 편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면에 다 유대교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모든 권력은 로마와 종교지도자들이 쥐고 있으니까. 로마는 이 종교 지도자들을 견제하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백성들이 로마사람들의 직접적인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람들을 구슬려서 이 사람들을 데리고 통치하고 백성들이 떠들어도 로마의 관리가 말하면 안듣지만 종교지도자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말을 듣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들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관한 것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재판을 하고 다만 사람을 죽이지 못하도록 제재를 하면서 자유를 주었습니다. 자치구 비슷하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가득 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120명이 성령 받은 것 밖에 없었을 때 두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2장에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예수 믿는 자들이 점점 늘어났지만 그래도 전체의 숫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결국은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기도에 답이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매달리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빌기를 다하매. 우리가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의 분량이 있습니다. 그것이 채워지기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득 채워지면 거기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도 우리가 가진 많은 문제들을 가슴에 담고 계속 씨름해봐야 속만 상하고 마음속에 은혜만 사라집니다. 근심과 걱정은 우리의 마음을 나누어지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는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 기도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처음 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계속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녀들이 회심한 가정도 많지만 하지 않은 가정도 많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계속 흘러갑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여러분 인생에 고통이 됩니다. 지금부터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아이들의 마음을 하나님이 녹여주시도록. 남편과 아내, 부모님들의 마음도 움직여주시도록. 그렇게 해서 가족들에게 예수 죽으신 고난의 주간을 기억나게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계속 두드려요. 그러면 그 밤중에 엄마, 아빠를 따라서 그 컴컴한 골목길을 걸어 오면서 생각할 것입니다. 아, 내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그 주간에 교회에 오는구나. 세월에 많이 지나고 기억이 날 것입니다. 추억에 잠기기엔 삭막한 환경이지만, 들길로 지나고 그러면서 교회에 가면 더 멋있겠죠. 그런 곳에 교회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밤중에 이 골목을 걸어오면서 나이가 많이 들어도 생각이 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회심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추억을 많이 심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죽은 후에도, 그 때 어머님이 내가 회심을 않하니까 며칠 동안 기도하시면서 나를 타일러서 손을 잡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당부하시길, 얘야 너 오늘 성 금요일 고난주간 기도회에 가서 꼭 주님 만나야한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자기의 자녀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있는 문제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통해서 더 큰 은혜의 세계로 그리고 우리가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더 큰 응답의 세계로 우리를 초청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한마음으로. 온 교회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생겨납니다. 교회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해지고 더 굳세어지고 사랑으로 더 뜨겁게 뭉쳐지면서 능히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닥쳐도 한마음으로 기도하면 예전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더 크고 놀라운 일을 주님이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해서 늘 승리하는 주의 일꾼들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