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주께 감사하라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시 52:8-9).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다윗이 겪었던 인생의 위기와 승리를 노래한 시입니다. 이 시는 사무엘상 21장과 22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핍박으로 놉과 가드 지역으로 도망을 간 시절을 회고하며 지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가 두려워 미친 사람 행세를 하였습니다. 수염에 침을 묻히며 광인의 행세를 함으로써 죽음을 모면하기도 하였습니다. 도엑이라는 사악한 자의 밀고로 다윗을 도왔던 착한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이 도륙을 당했습니다. 그때에 슬픔과 격정으로 이 시를 쓰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다윗은 한 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런 모진 고난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의 성품을 보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 속에서 영원히 주께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II. 영원히 주께 감사하라
악인들에게 에워싸여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감사가 넘쳤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행하신 일들 때문이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행하신 두 가지 일 때문에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살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A. 감람나무 같게 하심
첫째는 그를 감람나무 같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시인을 하나님의 집에 있는 감람나무와 같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본문 8절 상반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그러나’가 무슨 의미일까요? 악인들은 처처에 횡행하며 시인에게 고난과 시련을 안겨주었고, 그 악이 세상을 뒤엎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런 악인들의 궤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와 같이 그렇게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식용 기름, 혹은 등불을 위한 기름 혹은 향수로 쓰는 기름으로 그렇게 이용되었습니다. 이 감람나무는 그 자체가 아주 의미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감람나무라고 하는 표현은 “선택, 축복, 번영, 아름다움” 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푸른’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아난’(raanan)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원래 “무성함” 혹은 “생명 있음, 젊음” 등의 뜻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감람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감람나무이니 사람들이 얼마나 더 정성껏 그 나무를 돌보았겠습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집에 있으니 누가 함부로 그 감람나무를 헤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있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고, 하나님께 봉헌 곧 하나님께 바쳐졌고, 또한 하나님이 직접 돌보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자신을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같이 그렇게 해주셨다고 하는 뜻은 악인의 모든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보호하고 그리고 자기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셨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신분은 도망자의 신분이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충만한 생명도 아니었고, 번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영적인 의미로 이런 충만한 젊음과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비록 이 현실에서는 고난을 당하나 나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 푸른 감람나무와 같았도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시련과 고난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시인은 충만한 영적인 생명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시인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형통한 환경을 통해서도 우리를 깨닫게 하시지만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빛나는 사랑을 알려주십니다. 시인이 육적으로는 원수들에 에워싸이고 시련을 겪었습니다마는 영적으로는 푸른 감람나무와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본 모든 신자들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지난 한해도 그 이전의 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한해를 살아갔고, 우리는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그 시련 속에서 시련보다도 더 큰 은혜를 주시고 고난 속에서 고난보다 더 큰 용기를 주심으로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게 해주셨습니다. 믿음이 없었더라면 가득하였을 한숨이 변하여 하나님 앞에 노래가 되게 하셨고, 신앙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마음에 가득할 두려움이 변하여 주님께 올리는 기도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사랑에 붙들어 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시련으로 꺾이지 않는 영적인 생명력을 은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은혜 속에서 한해를 꿈같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경쟁에서 지고, 시련에 치이고 그리고 환란에 찌들어서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깁니까? 오늘 시인은 여러분과 비교되지 않는 고난의 골짜기를 지났고, 목숨이 위태로운 때를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사울이 풀어놓은 자객들의 위협으로 그의 목숨은 경각에 달리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여호와의 집에 푸른 감람나무 같이 여기셨다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들은 원수들이 빼앗아갈 수 있고, 우리의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주신 그 부요함을 무엇이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한해를 바로 이런 신앙의 신비 속에서 살았습니다. 교만할만하면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낮추셨지만 그러나 시련 속에서 죽을라치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흐트러진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 한 분에게 고정하게 하셨고, 전심으로 주님의 이름을 불러 우리의 생사를 걸게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우에 맞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때로는 때리시고, 때로는 어루만지셨습니다. 때로는 치셔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셨고,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흐르는 고통의 눈물을 닦아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겹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때리고 어루만지시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환경에 짓밟히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삶에 상황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요함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할 여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원수들은 시인을 죽이려고 하였고, 악한 자들은 시인을 인생의 벼랑 끝에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시인을 가슴 벅차게 하였습니다. 자신이 그 모든 시련과 환란 속에서 자신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였는지 하나님은 그렇게 이 시인의 마음속에 자기의 참 모습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인생의 날들은 순경도 있지만 끊임없는 역경의 연속입니다. 우리 원하는 대로 가슴이 터질 듯 기뻐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는 순간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찬양)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여러분을 당신의 집에 푸른 감람나무와 같이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B. 인자를 의지하게 하심
마지막 두 번째는 인자를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서 9절 상반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인자’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헷세드’(hesed)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특별히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당신과 언약 관계에 있는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성품의 선하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헷세드’는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음과 긍휼로 이루어집니다. 자비가 슬픔에 찬 사랑이라면 오래 참음은 당신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수많은 사람을 복수하시는 대신 끊임없이 참으셔서 결국은 그 관계를 사랑으로 만들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긍휼은 비참한 자들을 보며 원인을 생각하기보다 고통 받는 사람을 가엾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보이지 않는 세계보다는 보이는 세상에 민감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감각이 정신의 사유보다 호소하는 힘이 크기 때문입니다. 시인 앞에 펼쳐진 상황은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이는 상황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고난의 날들을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이것은 시인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로 말미암아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가엾이 보시고, 자기를 오래 참으시고, 자기를 불쌍히 보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시인은 그 모든 삶의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9장 21절에 의하면 선임자 사울은 한때 하나님 앞에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에서 멀어지자 교만해졌고 그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떠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 23절은 사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사랑 받을만한 나를 의지하거나 혹은 의롭다 인정을 받을만한 나의 선행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전적으로 무가치하고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자를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비참함을 압니다. 자신의 자신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며 앞으로도 자신이 살아갈 모든 날들이 주님의 인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몰랐습니다. 자신들의 왕국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번영할 줄 알았습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가엾게 줄타기를 하면 그 외교술 때문에 그 나라의 목숨이 연장될 줄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나님께 정하신 것이요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몰랐습니다. 자신들의 악을 고발하는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이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하는 모든 나라의 영광이 사라졌고, 적게나마 선지자의 마음속에도 있었던 왕국에 대한 희망이 모두 사라져 모두 이스라엘이 적군의 말발굽 아래 파괴되었습니다. 절망하여야 할 그 날에 오히려 선지자는 노래했습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왕국의 영광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무너진 다음에야 그는 비로소 이스라엘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백성임을 온 백성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라는 망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으니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인자가 계속되고 있는 증거라고 믿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인생이 꼬이고 하나님이 회초리를 드시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친 자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내버려 두지 않고 간섭하시고 그릇된 길을 갈 때 회초리를 드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사람은 따라서 자신의 무가치함과 비참을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모두 본성적으로 교만합니다. 그런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만 의지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속에 역사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를 의지하며 사는 것조차 9절 상반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라고 말입니다.
한해를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평안한 때에는 감사했고, 힘든 때에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여 하나님만 의지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시인에게 그것은 영원히 주께 올려드릴 감사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한 해 동안 항상 충만한 믿음으로 온전히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우리가 자신을 꺾고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닌 것들을 의지하던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끝나게 하시는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은혜의 삶을 사는 것이 금보다 더 귀한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매일매일 넘어진 자리에서 또 넘어지고, 쓰러진 자리에서 쓰러지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매번 첫 번째인 것처럼 당신의 말씀의 팔을 내미셔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셨고, 그리고 우리를 당신이 사랑 안에서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당한 시련은 다시 당하고 싶은 시련이 아니고, 우리가 미끄러졌던 우리의 영혼의 침체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평탄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배우시게 하셨는가 하면 시련과 고난으로 가득 찬 인생의 길에서는 내가 나를 의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주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게 해주셨고, 그 분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배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범하게 알고 있었던 단어들, 하나님의 사랑 그의 자녀 됨, 그의 인도하심, 보호하심, 사랑과 능력, 생명과 그리고 도우심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주고도 그분의 사랑과 바꿀 수 없는 믿음을 갖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시인은 고난의 날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악인에게 고통 받고, 교만한 자들에게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에게 불꽃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시기 위한 하나님이 만드신 어두운 밤하늘이었습니다. 상처를 받기 전까지는 치료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고, 우리가 궁핍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인간에 의한 배신과 끊임없는 미움의 경험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나게 해주는 그런 불빛에 빛나는 보석아래 깔린 검은 벨벳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답게 핀 장미꽃의 향기에도 감사하지만 그 가시를 인해서도 주님께 감사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언제나 문제는 우리가 일으켰고, 뒷감당은 하나님이 해주시면서 우리가 스스로 넘어졌는데도 당신 때문에 넘어진 것처럼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를 털어주시고 우리를 싸매어 주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우리의 어떤 공로나 의로움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도록 풍성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여러분들을 대우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주님을 만나기 전 이렇게 행복한 때가 있었을까요? 죽음이 이빨을 드러내고 파도처럼 우리에게 밀려와도 겁내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함,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노력하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일어나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이 용기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잠시 머물 이 세상을 영원한 집처럼 여기지 아니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를 의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 염려가 없다고 자신을 타이릅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업신여김을 받고 멸시를 당해도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집에 푸른 감람나무로 삼으시고, 당신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날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에 비취며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무슨 일이 우리의 일생을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당신이 인자함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십시오.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들을 대조해 보십시오. 죄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언제나 용서해 주셨고, 여러분들이 은혜에 미끄러져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주님의 자비는 계속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올리는 찬송입니다. 그의 사랑을 아는 자가 감사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때로는 미끄러졌어도 하나님이 은혜로 여러분들을 붙드셨습니다.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집에 푸른 감람나무로 삼으셨습니다. 한해를 믿음으로 살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생애를 하나님 앞에 찬송으로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