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때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 12:5)
I. 본문의 배경
사도행전 12장에서 핍박이 처음 시작 된 것은 아니었지만 12장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전에 없던 매우 커다란 박해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에 의해서 순교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당신이 가장 아끼시던 제자들 셋이 있었는데 요한과 야고보와 베드로였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도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이 세 사람은 오래 살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기둥과 같았던 사도 야고보가 허무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일을 보면서 유대인들이 매우 기뻐했기 때문에 헤롯은 베드로도 잡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정치적인 것이었는데 헤롯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협조를 받아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체포되었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어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교회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구체적인 상황은 베드로가 옥에 갇혔고 이제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이미 주님을 깊이 만났고 성령을 체험한 다음이었기 때문에 예전에 비겁하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군인들 사이에서 쇠사슬에 묶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화와 담대함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을 가져다주었던 같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베드로가 야고보처럼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시지를 않으셨습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베드로를 옥에서 건져내서 예루살렘 교회에 남은 성도들을 인도하는 목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아마 성도들이 기도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기적적으로 하나님이 베드로를 건져내시리라고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돌아왔을 때에 아이가 베드로가 왔다고 하니까 기도하던 사람들도 그것을 믿지 못할 정도로 예상지 못한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II. 교회가 기도할 때
A. 교회가 기도함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기도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물론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기도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기도제목을 공유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큰 능력을 불러내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교회에 시련도 주시고 고난도 주셔서 흐트러졌던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시고 그들을 아버지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가지고 계신 뜻과 경륜을 성취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팽배해서 신앙조차도 개인의 평안과 행복과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기도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기도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관련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영적인 생활이나 신앙을 위한 개인적인 기도를 포함해서 더 많은 기도가 개인에게 필요한 물질이나 공급, 그리고 개인적인 행복이나 평안, 시련이나 어려움들을 극복하는데 할애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에 깊이 침투한 개인주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의 기도는 교회의 한 지체로서의 공동체와 함께 드리는 기도에 자신이 참여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온전한 성도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와 은혜가 별로 없을 때, 또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고 신학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기도는 현저한 차이가 납니다. 마치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해도 철이 없는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과 철든 자식이 요구하는 것이 현저히 다르듯이,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식적으로 정리가 잘 된 성도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과 이런 것이 전혀 없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달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을 받아먹고 개인적인 행복에 사용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한마음으로 기도 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하게 강림하시던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때도 그들은 한곳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기도했고 한 마음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각각 자기의 마음을 갖고 있으니 열사람이 모이면 열 마음일 텐데 한마음을 품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향하여 공통적으로 주신 마음을 함께 품었다는 뜻입니다. 한사람의 신자가 깨어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개인에게 주시는 은혜와 개인의 삶을 인도 하시는 것만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교회의 성도로서 멀리는 보편교회, 가까이는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이라면 내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 우리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풀어 가실까?’ 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간절히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가질 때 각각 다른 마음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기도가 깊어질수록 많은 물들이 계곡아래에서 하나의 개울로 몰리는 것처럼 성도들의 마음도 모아져 하나의 기도를 공유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인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각 자신들이 처한 삶의 상황이 있고 그들은 각각 자신의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이 필요했고, 어떤 사람에게는 당장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면해야 했고,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시험에서 벗어나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인 지도자인 베드로가 옥에 갇힌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이 모두 모아졌고 개인적인 기도들은 뒤로 미뤄두었습니다. 옥에 갇힌 베드로가 야고보와 같이 순교 하지 않고 옥에서 나와서 다시 예루살렘 교회를 인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온 성도들을 한마음으로 묶었고,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보여주셔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할 때 교회를 향한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셔서 모든 성도들을 한마음으로 묶어 간절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그런 기도의 힘을 경험했습니다. 갈 때마다 기도를 부탁하고 가지만 이번에는 왠지 마음이 더 간절해져서 교역자들을 불러놓고 매일 나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습니다. 떠날 때도 왠지 교회를 두고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서 10일 동안 설교를 한 것 같습니다. 가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한국에서 너무 무리를 하고 갔는지 몸살이 나서 새벽에 열이 나고 온몸이 쑤셔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은혜를 주셨고 미국에 있는 동안 저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기도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기도를 많이 했고 언제 기도를 덜했는지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현저했습니다. 모든 집회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기도의 힘을 아주 강하게 느끼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아틀란타 교회의 마지막날 집회에는 아주 절실하게 기도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이 느껴졌고, 마지막 설교인 웨스트민트터 신학교 제 85회 개강예배에는 정말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시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55분정도 설교를 했는데 제 영어가 얼마나 어눌하겠습니까? 성령이 강하게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느껴질 정도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기도 제목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항상 함께 공유해야 하는 기도제목을 모여서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되어야할 일이고, 흩어졌을 때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항상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B. 간절히 기도함(akatapaustos)
두 번째는 간절히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간절히’라는 말이 희랍어로 “아카타파우스토스(akatapaustos)”입니다. “카타파우시스”라는 단어는 ‘안식’을 뜻합니다. 거기에 부정어가 붙어서 ‘안식이 없이’라는 단어인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쉬지 않고 쉼 없이 끊어지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종종 끊어집니다. 우리의 기도는 종종 휴식에 들어갑니다. 정말 힘이 있는 기도는 단절되지 않는 기도입니다. 멈추고 휴식하지 않는 기도야 말로 간절한 기도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한사람이 기도할 때 눈물을 흘리고 열렬하다고 할지라도 그 다음에 다시 열렬해지는 것이 언제인지 예측할 수 없는 기도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종종 짧은 기도로 큰 능력을 불러 내리는 위대한 기도의 경험들을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다가 해가 떨어지자 하나님 앞에 부르짖자 해가 멈추어 가나안 정복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읽은 어느 책에 보니까 예수를 갓 믿은 아프리카에 있는 자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집에 와 보니까 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황당한 기도를 드렸답니다. 우리 아이에게 얼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얼음을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열대지방에서 얼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갑자기 포도 알만한 우박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자매가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풀 섶이 있는데 하루만 기도하러 안가면 길을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그 길을 걸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기도해서 큰 능력을 불러 내린 사람들의 경험을 보면서 우리는 한순간에 집중적인 기도가 큰 기적을 불러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에 오랜 시간을 기도에 바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마음을 기도에 바치면서 사는 사람들이 어느 한순간 위기를 만나 간절히 부르짖을 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쉬지 않는 기도, 끊어지지 않는 기도야말로 진정으로 간절한 기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기도하고, 기도하지 않을 때는 기도를 준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드리던 기도를 이렇게 목소리로 함께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모아드리는 간절한 기도야말로 능력있는 기도의 원천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 자체가 커다란 은사인 것처럼 생각하고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별도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능력이 많은 사람들의 능력이 무서워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능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자신에게 마음을 쏟고 온 마음을 기울여서 물같이 마음을 녹이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빌고 매달리도록 만들어주십니다.
C. 하나님께 기도함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께 기도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상한 구절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고, 또 기도를 했는데 그게 하나님께 드린 게 아니라면 어찌 기도일수 있겠습니까? 이 구절을 아래의 토레이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더라”고 하는 것은 의례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우리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에게 가까이에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우리가 간절히 빌 때 주님이 내 마음 안에 와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임재의 효과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나타나는 효과입니다. 이때 우리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주님께 장악되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간절히 모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제 안에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경험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경험이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고 온 뜻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기도의 집중을 통해서 하나님이 성령의 은혜를 주시고 당신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게 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마음은 세상의 헛된 것들에 분산되지 않은 집중된 마음입니다. 마치 태양이 렌즈에 의해서 또렷이 초점이 맺혀지고 이 초점으로 말미암아 열이 집약되어 불을 붙이는 것처럼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 한분께 모아질 때 하나님은 모아진 마음과 집중하는 정신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일주일을 살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모아지지 않고 온갖 사물들의 상에 의해 흔들리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때도 우리의 마음은 기도하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드리는 기도만큼 집중적이고 능력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먼저 은사를 사모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 온전히 모아져서 하나님께 쏟아 부어지는 진실한 간절함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초점이 모아진 가운데 간절히 기도를 올릴 때 기뻐하십니다. 더욱이 수많은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져서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큰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기도를 할 때 처음에는 마음에 불붙는 것 같은 소원이 생겨도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깊어지지 않고 유실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릴 때는 마음을 일단 모으기만 하면 마음속에 힘이 실리고 마치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기도하게 하시는 것처럼 아버지 앞에 중심을 쏟아 부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의 소원을 아버지께 올릴 때, 이 기도가 공동체적인 초점을 가지고 올려질 때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마다 온 성도들이 모여 간절히 부르짖었던 기록들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당신의 큰 권능을 나타내 보여주심으로 핍박의 위협 속에서 두려워 떨던 성도들을 담대한 사자와 같이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적으로 공동체적인 초점을 가지고 마음을 쏟아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통해서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교회를 강하게 하시고 개인을 강하게 하십니다.
III. 적용과 결론
성도의 마음속에는 항상 교회를 위한, 공동체에 의한 기도 제목들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기도의 제목을 그 사람에게 알려주어야 겨우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심으로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설교해야겠다는 것을 어떻게 결정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크게 네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제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다가 은혜를 받고 이것을 성도들에게 전하는 경우가 있고, 공부하다가 ‘이런 사실들은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어야겠다.’ 하고 전하는 경우가 있고, 세 번째는 성도들의 삶을 보면서 ‘저런 것은 정말 고쳐져야 되겠다.’ 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말고 또 한 가지 경우가 있는데 혼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성경부분도 아니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책도 아닌데 하나님이 기도 속에서 이런 것들을 설교해서 성도들에게 나의 마음을 전해 주어야 할 때라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을 때는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시고, 성도들의 마음이 식어지고 서로를 미워할 때는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기도의 은혜를 강화하는 비결입니다. 그런 사랑 속에서 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조그만 어려움이 있거나 때로는 나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해서 오히려 더 좋은 것을 교회에 주시고 더 나은 것을 주십니다.
어느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갔는데 교회당이 없습니다. 홀라당 탔습니다. 조금 탄 게 아니라 아주 완벽하게 탔습니다. 그 옆에 허름한 헛간 같은 곳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들어가서 그것을 보는 순간, ‘이 교회가 어마어마하게 시험이 들었겠구나. 예배당이 홀라당 다 탔으니 성도들이 얼마나 시험에 들었을까?’ 했는데 목사님이 그러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홀랑 탓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불탄 건물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들 드린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니까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뺀질대고 기도를 안 하더니 불이 나니까 성도들이 전부다 울면서 자기 때문에 교회가 불났다고 그러더랍니다. 자기가 기도를 안 하고 교회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러면서 성도들이 거의 6개월 7개월째 뜨겁게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수고 다시 지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를 한마음이 되게 하십니다. 여러분도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의 개인 기도의 은혜도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