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새벽예배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행 2:28-29)
녹취자: 윤은정
여기에서 ‘내가 주를 뵈었음이여!’, ‘나를 다시 살리시리로다!’, ‘음부에 나를 머물게 하지 아니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이런 모든 표현들이 사실 다윗 자신이 구약시대 때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신앙의 감격입니다. 그런 신앙의 감격인데, 이것을 다윗의 입을 빌어서 성자가 성부에 대해서 한 고백이라고 이제 사도는 이렇게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제도 잠깐 말씀 드렸습니다만은 여기에 나오는 구약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은 어떻게 보면은 어떤 때는 정말 원래 구약에 이런 뜻이 있었을까 할 정도로 구약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합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은 그 구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이었고, 그것이 신약저자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되었다는 사실과, 두 번째는 그 해석이 더 과격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신약에 사도들에게는 그렇게 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특별히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신약성경을 기록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성경 기록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영감 된 사도들이 구약을 그렇게 해석했으면 그런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구약을 사도들이 해석한 것과 같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들이 같이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런 뜻입니다. 무슨 뜻이냐 면은 신약의 사도들은 구약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성경의 기록들을 ‘이것이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렇게 보고 해석을 함에 있어서 좀 과격하게 예수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신약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쓰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이겁니다. 우리는 어떻하냐면은 일반적인 성경해석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책이지만은 어느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명료하게 담고 있고, 어느 부분은 덜 담고 있고, 혹은 어느 부분은 거의 예수 그리스도의 관한 계시가 안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들이 성경해석의 일반적인 원칙을 가지고 우리들이 해석을 해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 그러니까 사도가 뭐라고 그러냐면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이게 ‘성자가 성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고백이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나로 음부에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생명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리니 내가 기쁨이 충만하리로다.’ 부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맛보게 되는 놀랍고 찬란한 기쁨에 대해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그 다음에 이제 나오는 게 다윗의 이야기가 갑자기 나온다 이겁니다. 이 글 자체가 다윗의 글이니까 그래서 뭐라고 그러냐면은 ‘내가 조상 다윗의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느니라 다윗이 장사되어 아직까지도 우리가운데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다윗을 아브라함과 함께 굉장히 존중하는 구약의 두 인물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시조이었다고 한다면, 다윗은 그 시조를 통해서 이어진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마음속에는 다윗이 자기 나라의 역사 속에서 위대한 왕이라는 사실과 함께 똑같은 정도로 가슴에 다윗하면 깊이 새겨지는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윗이 선지자였다’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이제 다윗에게 있어서 다윗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다윗에 관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묘가 아직 있지않냐’ 라고 하는 얘기는 무슨 이야기냐면, 이렇게 말했던 그 다윗이 선지자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선지자의 말은 직설적일수도 있지만은 그러나 비유적이고 혹은 은유적이고 암시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표면적으로만 본다면은, 이 고백이 자기가 어려움에 있을 때에 당한 고백이고, 여기서 음부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는 하나님의 도움이 끊어진 것과 같은 괴로운 상황을 가리키고 거기로서 부터의 구원은 자기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주실 것과 뭐 이런 것 등등을 의미할 수 있고, 다시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기쁨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이렇게 평면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선지자였기 때문에 이것은 얼마든지 그 속에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암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가공인물이 아니라 역사가운데 살았었고 그리고 그 묘가 지금 우리들 가운데 있고 너희들도 이 시가 다윗에 의하여 지어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 않느냐?’ 그 부인할 수 없는 시에서 다윗은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 부인할 수 없는 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음부에 매어계시지 아니하고 다시 하나님의 의해서 살리심을 받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되리라고 하는 그런 놀라운 증거를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말아라. 그 구약의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것이다.’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메시야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이, 사상이 없었지만 성경에는 메시야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메시야에 대한 유대교적인 생각에서 구약적인 생각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가르치셨던 모든 교훈들이 참된 교훈이었다’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사도가 강력하게 촉구하고, 부활로 말미암아서 이 놀라운 힘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