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새벽예배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그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0-32)
녹취자 : 이시내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왕으로도 기억이 되고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로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왕인 동시에 또한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록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선지자라 이렇게 이야기 할 때 이것은 사도들의 독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선지자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그 받아들이는 사실을 말해서 접촉점으로 삼고 선지자의 하는 일은 구약에 나와 있는 이미 자신들에게 있는 성경, 모세오경을 그 정신을 가지고 그 시대를 해석을 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오늘날의 설교자와 아주 흡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선지 사역 속에는 독특한 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냐 하면 미래의 될 일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미래의 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것이 사명의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라고 해서 모두 입만 열면 미래의 될 일만 이야기 하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그 시대를 깊이 깨닫고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이미 자신들이 받은 모세오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서 그들에게 전달해 줄때 그때에 그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시기 위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예언이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능을 다윗도 의심할 여지없이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나온 어제의 바로 그 구절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안 것이다. 미리 그것을 알아서 고백을 한 것인데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다윗의 위에서 한 자손이 나와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그 위를 다스리리라 는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아들 사상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위가 영원할 것이다. 여기에서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당시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석을 했느냐 하면 다윗의 집안에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그 위가 영원하리라 이게 하나님 아들 사상이고 메시야 사상과 관련이 있는데 그들은 그 메시야를 문자 그대로 보면서 다윗과 같은 왕이 나와서 나라를 강하게 하고 다스릴 것이다 라고 보고 그것을 하나님이 보장해 주실 것이다 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고백하고 있는 바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 위가 다윗시절에는 작은 한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자리였지만 이제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메시야를 통해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이다. 그래서 영적인 왕국이다. 영적인 왕국으로서 그 위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왕국자체가 다윗시절에는 지상의 왕국이었는데 그 후손이 약속을 따라 와서 위에 앉으시고 다스릴 나라는 육적왕국이 아니라 영적왕국이고 그렇게 왕위에 앉으시는 그것이 바로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맥락에서 보면 이것은 아주 쇼킹한 해석입니다. 그리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해석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 이야기만 꺼내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하지 말라고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감히 사람인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더러운 신성모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지금 사도들이 하고 있는 이 해석이 정말 올바른 해석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이냐면 구약성경의 말씀을 깨닫도록 새롭게 비추시는 성령님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깨닫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이 사도들의 마음속에 분명한 형태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보좌에 앉으셔서 그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실 텐데 그 나라는 영적왕국이고 그 영적왕국을 영원히 다스리기 위해서는 죽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는 영원한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능력으로 살리셔서 보좌우편에 앉게 하셔서 그 나라를 영원히 통치하고 다스리게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그리스도예수를 통해서 이루신 일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도가 고백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바로 자기들의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시 살리셨고 그 다시살리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이 사건이 성령이 강림하시기 전까지는 분명히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살아나신 것은 의심할 수 없이 봤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제까지 이 땅에서 가르치신 가르침과 지금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 그리고 구약에 대한 지식, 유대교에서 배운 지식 이런 것들이 전부다 따로따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아주 명쾌하게 왜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그렇게 살리셨고 구원하셨고 그리고 변화시키셨는지 아주 선명하게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역사와 은혜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한다고 할지라도 똑같이 성령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아주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천오백년의 세월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지만 원저자는 성령님 한분이십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사도의 때에는 성령님이 영감하셨고 지금 그들이 쓴 그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이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조명은 우리의 지성을 밝혀서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조명을 하셔야 하는데 지성이 없으면 성령님께서 조명을 하셔도 깨닫는 바가 너무 적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냐면 양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도 내가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내가 지성을 사용해서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지 않아도 성령님의 비췸을 얻으면 내가 놀랍게 그 무엇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 모두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되고 오히려 성령님의 비추심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부지런히 성경을 탐구해야 합니다. 탐구하고 탐구한 그것을 성령님께서 비추실 때에 그때에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상고하고 그리고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교리를 차분히 배워나갈 때 기독교적인 지성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 우리들이 어떻게 이 어두운 세상에서 신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우리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밖에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 모든 일에 대한 놀라운 균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