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우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행 20:24)
녹취자: 전인현
사명을 따라서 사는 것은 복된 삶입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은 복된 삶에 틀림없는데 그렇게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복된 삶이면 그 복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을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사실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항상 평탄한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자기의 사명을 참 사랑했고, 자기의 사명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서 가려고 하는데 고난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는데 거기 올라 가면 환란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그 증거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런 환란과 핍박이 기다린다고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고 성령이 증거하시니까 착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는데 그런 결박과 환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울이 그 길을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왜 하나님께서 그 사명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도 고난을 주셨을까? 그 사명의 길을 가려는 착한 사람에게도 왜 이런 고난과 환란을 예비하셨을까? 이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오늘의 문맥과 관련지어서 아주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냐면 사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더 많이 주님을 의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명의 길을 걸어갈려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대충 하나님의 받아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냥 내가 알아서 이루어가면은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면서 결단을 내릴 때까지 또 아시아에 들어오는 첫 날부터 이렇게 3년이 넘게 봉사하는 기간까지 그 긴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셨습니다. 그래서 간섭하시고 돌보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고난과 환란 속에서 주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긴 세월동안 사명을 따라 사는 길에도 하나님이 항상 돌보고 지켜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따라 사는 우리들에게 매 순간 간섭하셔서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당신의 도움을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끝나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텐데 그렇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역시 하나님께서 그 에게 주셔야 할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지를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고난이 있을 때, 기도 많이 했습니다. 고난이 올 때 마음이 겸비해지고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고난도 주십니다. 늘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그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시기 위해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십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고난을 주시는 이유 말입니다. 첫 번째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들이 어떤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느냐 ,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바는 자신이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항상 자신이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기뻐하고 자기 주위에 자기를 에워싸고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무지 때문에 때로는 마음의 악함 때문에 둘 다 사실은 비슷한 것입니다. 무지한거하고 악한거하고 거의 비슷한 것입니다. 무지하고 악하고 이렇기 때문에 그런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서 어쨌든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계속해서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배가 바다 위를 항해할 때 파도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필요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그 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이냐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지사의 헌신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주 크고 놀라운 역사, 그런 것들이 나타납니다. 아주 크고 놀라운 역사 이런 것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나에게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그 길을 가기를 기뻐하시는 분이 또 주님이십니다. 어떻게 보면 모순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사도바울에 대한 믿음의 시험입니다. 그래서 장밋빛 청사진을 가지고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사도바울이 보기에는 자기가 받은 사명의 길입니다. 그 때 “나는 죽으면 죽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우리의 인생이 끝나게 되어 있는데 결국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받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아니하노라.” 그래서 죽음을 능가하는 자신 안에 있는 사명을 피력했습니다. 사명이 무엇이냐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하는 것 그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 은혜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죄인 중의 괴수였던 자기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셔서 그래서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자기를 고쳐서 주의 충성된 종을 삼은 그렇게 복음이 전해지면 자기처럼 환란을 대적하고 자기에게 결박과 환란을 가져다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사람들이 그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그 사명 안에 자기를 버리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하는 순간에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생각해보십시다. 사명은 생명을 건 사명입니다. 고난은 주를 따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뜻대로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매일매일 살아가도록 그렇게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들의 사명에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생명을 걸 목숨을 걸 사명이 있습니까? 이것이 없는 사람들은 살아있지만은 정말 재미없는 사람들입니다. 살아있지만 진짜로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거기에 하나님이 나를 세워주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쳐서 그대로 살려고 하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깊이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