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때문에 감사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구변과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 1 : 4 -9)
녹취자 : 김용재
하나님의 은혜는 참 좋은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래서 은혜에서 멀어지면 사람이 침울하고 마치 생기를 잃은 꽃처럼 그렇게 시들게 되지만 은혜가 충만하게 되면 기쁨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는 또 은혜를 받으면 복도 받는다는 공식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잘 안되던 일들도 잘 풀리게끔 해주신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도 알고 보면 은혜를 받으면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간섭하셔서 막혔던 어려운 일도 풀어주시고 하나님의 큰 은혜의 도우심을 하나님이 많이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런 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면은 똑같은 삶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은혜가 충만해지면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과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감당할 수 없었던 십자가들도 감당하게 되고 사람 대 사람으로 겨루며 괴로워하던 많은 일들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보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 의지하면서 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은혜의 양상들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구변과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되게 하는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내용을 이 속에 담고 있지만 간략하게 줄인다면 은혜를 많이 받으면 결국 그 사람이 아주 풍부한 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아주 풍부한 말할 것을 갖게 된다는 것이 여기 나오는 구변입니다. 어떤 원리에 의해서 이렇게 되냐면 은혜를 많이 받으면 우선 첫째로는 이 가슴 속에 금싸라기 같은 그런 하나님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들 혹은 그 파편들이 연결되는 지식들이 가슴속으로 막 쏟아져 내립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많이 쏟아져 내리고 그리고 하나님에 관해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관해서 묵상할 때 금싸라기처럼 감당할 수 없게끔 쏟아져 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음들이 쏟아져 내리게 되면 그러한 심령에 넘치는 은혜는 그로 하여금 삶의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 순종하는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될 때 그 때 많은 할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트누스는 자기의 독트리나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꼬삐아 디켄디 모두스피렌디. 직역을 하면 가르칠 많은 것, 살아야 할 많은 방식. 그런 에피그램입니다. 의역을 하면 삶의 방식이 남다르면 가르칠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풍부한 가르침은 풍부한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설교나 하나님에 말씀에 관한 우리의 언변들이 평신도들이 큐티를 하는 수준을 능가하지 못하는 이유, 말씀전할 기회를 줄라치면 가서 성령에 대한 것들은 제쳐놓고 이 세상 돌아가는 잡소리들로 그 긴 시간을 채우거나 다행히 성경을 이야기 한다고 치면 모든 사람들이 식상한 그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기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를 이야기들로 시간을 때우게 되는 그런 쇠약함들은 바로 어디에서 나오느냐면 이런 모두스피렌디. 남다른 삶의 방식이 없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풍부한 가르침을 가져다준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알다시피 청교도나 종교개혁자들의 설교가 대부분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즉석 설교였다는 것은 여러분 역사에서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느 자료에 보니까 칼빈은 제네바를 목회하면서 매 주일에 두 번 설교하고 월요일날도 예배를 드리고 수요일날도 예배를 드리고 금요일날은 목회자 모임을 가져서 콜로키움이라고 하는 성경공부모임을 인도했습니다. 한주 그렇게 하고 그 다움주에는 반드시 월요일부터 마지막 금요일까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매일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우리 시간으로 여섯시 반이나 일곱시쯤 모여서 온 교인이 예배당에서 한 시간 남짓 예배를 드리고 일터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새벽기도, 전략적으로 새벽기도 작정 새벽기도라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사경회를 격주에 한번씩 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기도만을 위해서 모이는 모임이 아마 이 위대한 개혁자에게는 매우 낯선 모임이었을 거라고 확신이 됩니다. 또 그런 사람에게는 찬양만 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도 신학적으로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모든 경배, 찬송 그리고 모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말씀이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그 삼위의 탁월하심을 알고 그 분을 경배하는데 그 예배안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물론 칼빈은 개인적인 기도의 생활과 가정의 예배들을 매우 중시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그리고 존 오웬은 특히 개인기도를 아주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루의 아침을 열면서 온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자신이 선택받은 백성들이고 그리고 하나님은 경배를 받으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며 오늘 하루의 삶이 그 예배의 정신속에 열린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커다란 부러움이 마음에 스쳐갔습니다. 물론 당시는 농경사회고 하니까 얼마든지 정해진 출근시간도 없고 하니까 그런일이 가능했겠지만 오늘 우리의 삶을 보면 너무 황폐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그 많은 설교들을 어떻게 준비해야 했겠으며 그가 일생동안에 지인들에게 보낸 목회 서신이 약 사천페이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수 없이 편지로 대륙에 있는 종교개혁자들과 교류를 하고 신학적인 논쟁에 참여를 하고 이끌어가고 의회와의 치열한 싸움, 그리고 못된 교인들에 대한 철저한 권징. 이 속에서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꼬삐아 디켄디 가르쳐야 할 풍부한 것을 넘치게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은혜의 하는 일입니다. 칼빈도 이런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엄청난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칼빈이 설교했던 방식이 이런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적어서 올라가서 장시간동안 설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그에게 많은 구제를 주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전개하게 하였으니 바로 그 사실을 오늘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이 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고 이제껏 받지 못했던 더욱 특별한 은혜가 여러분속에 부어지도록 간절히 간구함으로써 여러분의 말씀 사역에 풍부함이 넘치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지혜는 지식에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때에는 그저 엉성한 지식을 가지고 그저 살아갑니다만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되면 그렇게 엉성한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식에 대한 건전한 갈망은 삶을 온전하게 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온전한 지식에 대한 갈망은 삶을 온전하게 영위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는 그런 삶을 재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충만하게 넘치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게 만들어 주고 가슴 아픈것은 주님께 그렇게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내 삶안에 주님께 복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고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 신자에게 가장 커다란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신 사람들에게는 온전한 삶을 살고자하는 열망이 있고 그것은 많은 지식들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온전한 삶은 온전한 지식의 토대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보신 일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석고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석고상을 아그립바상 같은것을 계속 찍어낼 때에는 틀에다 그 석고를 채워서 만듭니다. 그러면 최초의 그 틀은 어떻게 만드느냐 요즘이야 플라스틱같은거 많고 그래서 그렇지만 예전에는 흙으로 아그립바상을 빚어서 그래서 거기에다가 쇠 녹인물, 동 같은것을 부어서 틀을 만든 다음에 속에 있는 석고를 다 부숴서 빼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틀에다가 다시 석고를 채워서 그래서 반으로 가른다든지 해서 여러개의 조소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틀이 잘못되어다면 이후에 그 틀에 찍혀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잘못되지 않겠습니까? 지식은 이런 틀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알아도 그렇게 못 살수 있지만 잘못알고도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은 매우 드문일입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잘못알고도 올바른 삶을 살았으면 그것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가치가 없으니 왜냐하면 의도되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지식을 풍족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견고케 되는 일에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되고 철저한 삶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온전한 지식 이것이 순환하는 가운데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복음의 증거들은 견고함으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그 자체는 견고하지만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그들 마음속에 있는 증거는 견고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고서 그들의 믿음은 더욱더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견고케 하고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더 견고케 합니다. 그래서 나 한 사람이 은혜안에서 사는 것은 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지체들과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매우 유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은혜가운데 있지않으면 자기가 넘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효과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용들이 더 많이 나오지만 이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게 견고케 해서 마지막에 여러분들을 주님이 보실 때 흠없는 사람들로 만들어 가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믿음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건축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