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새벽예배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 42)
녹취자: 김용재
그렇게 복음을 전하니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고 그렇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리고 아주 깊고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때에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모두 유대인들 이었을 것일 것입니다. 대부분이 다 유대인들 이었고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역시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써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개종한다고 하는 것은 곧 같은 동족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큰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회에서 현대인들은 모두 이 복잡한 속에서 살고 있지만 소외된 존재들입니다. 사람들이 많고 복잡한 사회가 될수록 인간들은 굉장히 고독해 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들 속에 사회적인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적절하게 해소해 주면 그러면 사람들이 교회든지 모임이든지 어디든지 열심히 모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이게 되는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강력한 은혜를 받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나니까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를 많이 받게 되면 그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은혜를 받기 전에는 은혜 받은 사람들 있는 그 모임 속에 가기도 별로 싫고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할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관심사가 다르고 경험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단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경험하고 되고 나면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그런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되면 기쁨이 충만해지는 동시에 은혜를 받은 사람들끼리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사랑하고 그러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네 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첫째는 사도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본주의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그 이루는 성도의 모임과 이렇게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를 경험한 결과로 모이는 성도의 모임의 차이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신령한 갈망을 가지고 모이는 성도들의 특징은 거기에 가르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신자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치된 신앙생활을 하고 싶고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 갈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 갈망이 어떻게 표출이 되냐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으로 표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깨닫고 올바르게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서 살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붙어 있고 그분의 뜻에 부합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모인 곳에 사도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대한 신약적인 해석은 결국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무얼 가르쳤을까요? 그렇게 삼천 명이나 세례를 받고 나서 구원을 받아서 모인 그 사람들이 뭘 제일 궁금해 했을 까요? 세상에 돌아가는 잡다한 이야기를 궁금해 했을 까요? 아닙니다. 방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도대체 뭐냐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나사렛의 한 젊은이라고 생각했던 그 예수를 내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 때 이 흐르는 회개의 눈물과 이 놀라운 은혜의 경험은 도대체 뭘 뜻하나? 그렇게 해서 성령을 받았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런 성령을 받고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쁜데 그러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것들이 궁금했을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사람들에게 안들어 갑니다. 물론 잘 안들어가도 정신은 바짝 차리고 집중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진짜로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맛을 알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XX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아주 사무친 갈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성도가 모여서 나누는 교제가 참으로 신령한 교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서 있으니까 우리가 교제가 끝나고 흩어지게 되면 그 때 주님을 더 많이 알고 싶다고 하는 아주 간절한 갈망이 그 속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요소로는 교제가 있었습니다. 이 교제라고 하는 것은 사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단순한 교제가 아닙니다. 만약에 단순한 교제라고 하면 이것이 사교입니다. 그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영적으로 하나 되는데서 오는 교통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님을 만난 것은 개인적인 사건이지만 각각 다른 상황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이러한 일을 계기로 해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저 사람은 또 나와는 다른 상황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주님을 만날 때의 그 은혜의 체험도 약간씩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폭풍과 같이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기도 하고 이슬과 같이 내리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주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만나도 결국 그들이 한 예수그리스도께 접붙임 받은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함께 예수의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서로 깊이 이해하게 되고 함께 있고 함께 교제하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한 형제이며 한 지체라는 공통된 의식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된 사람들에게는 항상 성도들을 향한 진실하고 간절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에 대한 신비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교회가 바로 그런 성도들의 지체의 영적인 연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은혜입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영적인 교통가운데 그 영적인 교통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함께 나눕니다. 이 사람이 이런 재능이 있는데 그 재능이 나를 유익하게 하고 나는 이런 재능이 있는데 이런 재능으로 또 함께 연결된 다른 지체들을 섬깁니다. 그런 연결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한 것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요소는 무엇이냐면 떡을 떼며 이었습니다. 이것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음식을 나누는 것이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문맥에서 보면 형제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가족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보더라도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일 가운데 중요한일 하나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리세인들의 눈에는 절제 없는 분이요 또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 분별없는 분으로 비춰졌지만 예수님 눈에는 그것이 그들을 불러서 회개케 하고 구원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말입니다. 밥을 먹는 그 속에 참회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셔서 비록 우리와 다르게 순결한 분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떡을 먹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마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자기와 가까이 하는 형제라는 마음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그래서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떡을 함께 떼면서 우리가 한 피를 나눈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요소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을 만나고 이제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모였는데 뭘 기도했을 까요? 가장 절박한 기도는 무엇이었을 까요? 자신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것처럼 완악한 많은 동포들에게도 이런 구원을 달라고 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 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과 나라와 사회와 교회와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기도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결국 뭘 보여 주냐면 그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주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되었지만 그들은 동일하게 절실하게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그들에게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수준, 마음의 깨끗함.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자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간절히 찾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 은혜 받고 변화받기를 원하는 갈망들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는 어두운 세상에서 오는 큰 핍박을 이기는 아주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사도의 가르침이 있고 함께 모여서 교제하고 그 속에서 떡을 떼고 그 속에서 함께 기도하는 그 일을 통해서 자신들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예수는 살아 계시다는 것과 이 세상에서 받는 박해는 장차 나타날 우리가 받을 영광에 비교하면 사소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리차드 범브란트라는 루마니아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공산화 시절에 24년간을 지하 감옥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풀려났습니다. 그 때 풀려난 느낌이 어떠냐고 그랬더니 천국에서 땅으로 떨어진 느낌이 라고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지하 감옥에서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했는지 석방되었을 때 그렇게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혹독한 고문과 외로움을 이겼습니까. 했더니 너무나 고통스럽고 외로울 때마다 지하 교회에서 지체들과 나누던 교제를 생각하면서 이겼다고 합니다. 그 때 나누던 그 성찬 그 때 함께 드리던 예배 그리고 그 때 함께 기도하던 기도생활. 그것을 기억하면서 그 모진 고난과 박해를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런 의미입니다. 말 할 수 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병들고 이 신령한 교제가 사라지면 거기에 딸려 있는 많은 교인들의 영적인 생활과 심지어는 육신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아주 커다란 시험이 찾아옵니다. 여기는 우리의 영혼의 수원지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깊은 것을 못 깨닫습니다. 그리고 교회 와서 까붑니다. 철이 없으니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마치 헬스클럽하나 선택하고 모이는 사교모임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몰라서 어려서 그런 것이고 은혜를 깊이 받고 나면은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신비한 것이구나. 그러면서 거기서 목자의 가르침을 받고 그리고 함께 성도와 교통하며 거기에서 함께 떡을 떼고 거기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이 험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올바로 세우고 교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나님 앞에 드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