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새벽예배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행 2: 43-44)
녹취자: 김용재
사실 이상한 일입니다. 앞에 보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모여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떡을 떼고 하면서 기도하고 그랬는데 백성들이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백성을 공격한 것도 아니고 모여서 아주 기뻐하면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서로 사랑하고 기도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보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가. 여러분은 혹시 못 느끼셨습니까?
제가 전도사 때 목회할 때 일이었는데 교회 안에 한 네다섯 명 녀석들이 있었는데 유치부 때부터 같이 붙어 다니던 녀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등부 끝내고 중등부 끝내고도 별일이 없었고 고등부에 올라왔는데 얼마나 개구지게 놀았는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산에 올라가서 라면 끓여 먹고 오는 애들이었습니다. 솥단지 가지고 올라가서 하여튼 참 개구지고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 중에서 늘 선두에 서고 개구쟁이 노릇하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학교 다니면서 사고치고 그러니까 그 집이 괜찮게 사는 집이었는데 아이를 학교에 못나가게 하고 절로 보내버렸습니다. 절로 가서 자기 큰 아들이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고 치지 말라고 보내버렸습니다. 그래서 1년 있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큰 부흥이 일어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놀랍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녀석하고 놀러 다니던 친구 중에 변화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 변화 받아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1년 후에 와서 옛날처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라면도 끓여 먹고 하려고 했는데 이 예배 끝나고 나서 항상 농구하러가지 않으면 놀러 다니고 몰려다니고 그랬는데 예배 끝나고 나니까 얘네들이 기도실에 내려가서 한 두 시간 반씩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에 다시 올라와서 성경공부도 하고 그리고 찬송도 하고 주일날 안 나온 자기 친구들 찾아서 심방도 하고 이렇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 친구가 두려워하던 것입니다.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가족들 중에서 신앙 없이 살다가 누가 옆에서 정말 주님을 만나고 진실 되게 변화되게 되면 엄청나게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분명히 신앙의 세계도 있고 하나님도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변화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받는데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내가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고 어쨌든 두려움이 확 밀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게 두려움이 확 밀려오게 되면 이게 뭐냐 하면 존재가 가지고 있는 선포의 힘입니다. 말로해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진실하게 변화되게 되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아주 강력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결단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떠나가는 창세기 35장 에서도 보면 두려움이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부흥이 일어나는데 성경에 보면 두려움이 하늘로부터 땅에 떨어졌고 예수의 이름은 땅에서부터 하늘로 높임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 대한 깊은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존재에 의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워낙 강퍅하고 사람들이 완악하니까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기사와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 인데 기사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기사는 같은 기적을 사람들에게 매우 놀라움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기사라고 말하고 표적은 사람들에게 희랍어로 세메이온이라고 하는 것인데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쓰였다는 측면에서 표적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니까 같은 것을 어느 쪽에서 받느냐에 따라서 명칭들이 나뉘는데 안 믿는 사람들도 보고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일들이 기사로 나타나고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주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보기에는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는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두려워한 중요한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나타나는 방식이야 초대 교회와 다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 자신이 온전히 변화된 은혜의 사람이 되어서 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존재로서 선포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베푸시는 강력한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살아계신 표증이 어떤 식으로든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또 믿어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영광을 회복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강력한 성령의 은혜와 진리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변화된 후에도 지속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성화되어 가고 함께 교제하고 성도 안에서 성숙해 가고 함께 사랑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다 이제 자기 편의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보면 모인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통신이 발달하고 이런 시대에 유익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새벽에 나올 필요가 있습니까? 집에서 컴퓨터 키고 새벽에 생방송 듣고 무슨 소린지 알고 기도하고 주일날도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 이제 신령적 측면에서는 그렇고 실제 삶에서 나타나는 게 무엇이냐면 서로 자신의 물건을 통용하는 것입니다. 그 물건을 서로 통용하면서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면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유 있고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주님을 깊이 신뢰하고 믿게 되자 이들이 어떠한 세상의 물질에 대한 집착도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근데 사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자원으로 우리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신앙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결국은 죽음이라는 내적인 질병에 걸려서 말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과 악들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육체의 죽음도 나타나고 늙음도 나타나고 그 때에 자신의 불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동원했던 것들이 무엇이냐면 세상 자원입니다. 물질입니다. 그리고 물질은 어느 정도 세상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해줍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사람이 계속해서 늙어가고 그것도 잘 먹고 화장품 좋은 거 바르고 요즘은 수술도 한다고 하니까 그러면 어느 정도 늙음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덜 추해 보이게끔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약에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통이 있다고 하면 물질을 사용해서 사람들의 노동력을 사면 내가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이 지상에 있는 자원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죄라는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려서 죄 때문에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려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그 모든 자원이 사라진 가운데 이 세상에 있는 자원만을 가지고 몸부림치는데서 오는 그 비참한 한계와 고통을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고쳐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랬는데도 사람들이 모르고 물질에 집착하고 물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나라끼리 문제가 생기게 되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집착도 없이 털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물론 관심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관심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집착을 털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심하고 진실한 신자가 되어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 직업 활동도 해야 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 자신의 지상자원을 모으는 그런 방법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창조의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들이 일하는 것이지 단순히 그 활동을 통해서 우리들이 돈을 모으고 그런 의미에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 무엇 때문이냐면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니까 이런 물질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깊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과 모든 이 세상에 있는 자원들을 나누어 그것들을 더 많이 모아서 다른 사람들 손에 들어가 있다면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손에 들어와서 그것들이 적절하게 분배가 되고 해서 다시 이런 것들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그런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물질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벌써 이 사람들은 실현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