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새벽예배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서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러라(행 5:17~26)
녹취자 : 한지인
구체적으로 그 사도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사도들을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와서 옥문을 열어주면서 “나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성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라”라고 했습니다.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니까 분명히 옥에 가두었는데 옥에 가보니 사람들이 없고 어떻게 나왔는지 그 옥에서 나와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간에 옥은 가끔 보면 탈옥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갇혀있던 죄수 수만 명 가운데 한두 명의 이야기이고, 사실은 탈출이 불가능하도록 견고하게 감옥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을 가둡니다. 그래서 죄수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갇혀서 도저히 나갈 수 없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감옥 같은 것들이 한두 개씩 개방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서대문형무소와 같이 독립운동을 해서 남겨진 유적지 말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나라는 달라도 감옥을 만드는 형태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누구도 그곳에서 헤어나올 생각을 못하게끔 단단히 만들어 놓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시대인데, 어떻게 열고 나왔는가.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라든지, 12장에 나오는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라든지 똑같은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곳에서 꺼내셔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길거리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이 사람들은 당장 다시 잡아 가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보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 이었더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많은 사람들이 강퍅해져서 사도들을 박해하고 가두고 때리는 극한 반응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나 골수 유대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생명을 얻어서 그들을 잡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돌로 치려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돌로 치지는 않았으나, 그런 위협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순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화) 마치 이 산야에 있는 식물과 나무들이 내리는 봄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움트게 하지만, 모든 내리는 단비가 모든 생물 그리고 모든 식물을 생명을 가지고 움트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나무일 경우는 봄비를 맞으면 잎이 피고 가지가 나오는 새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만, 죽어있는 나무는 봄에 내리는 비를 통해서 비가 없던 겨울보다 더 빨리 썩어 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그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에서 사도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이 섞여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이 사람의 태도는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지만,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께 속해있던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뜨겁게 그 말씀을 붙들고 감동을 받고 그 뜻대로 순종하고 싶어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말씀에 대해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대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의 사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그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생명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이라는 의미와 함께 그 말씀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 말씀이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생명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이 말씀은 또한 말씀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마음에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움직이는 역사는 죄의 역사와 흡사합니다. 처음에는 죄에 대해서 막연히 생각했는데, 어떤 하나의 마음이 악한 생각이 가슴에 들어오고, 심겨지게 되었을 때 적절히 처리하지 않으면, 그 속에서 생각이 자라면서 그것이 내 마음속에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평소라면 도저히 그런 죄를 짓지 않았을 그런 죄로 짓지 않았을 그런 죄로 우리를 대응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의 마음이 붙들지 않았을 때에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력 있는 말씀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뿌려져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게 되면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변화를 받고 새로워지고 주님을 만나게 되는 아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화) 씨가 바싹 마른 것이 씨앗이 방바닥을 굴러다닐때에 그것이 살아있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당한 온도와 습기를 맞으면 싹이 나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큰 나무가 됩니다. 그때에 누가 그것을 보고 생명이 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엄청난 차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 말씀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들으면 듣는 사람들이 똑같이 하나님이 생명이시라는 사실과, 그 말씀은 살아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자기가 생명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그 말씀을 통해 놀랍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은혜로 새로워지고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하면 어디에선가는 이 말씀을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