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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새벽예배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쌔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행5:33-40)
녹취자: 박은경
이 가말리엘은 당신 예루살렘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슬이 퍼런 핍박의 칼날 앞에서도 조금도 굽힘이 없이 예수 믿는 도를 전하겠다고 말하는 사도들을 종교지도자들은 모두 죽여버리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여기서 사도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더라면 아마 기독교 신앙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른 것처럼 전파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이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을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교에 큰 학자 둘이 있엇습니다. 바로 가말리엘과 힐렐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이 사람이 유대교 신앙을 가르치는 잘못된 교사이기는 했지만 백성들에게 큰 신망과 존경을 얻고 있는 유력한 어른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말리엘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사도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라.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전파하는 사상이 우리가 믿는 교와 다르기는 하지만 이 사람들이 이렇게 담대하게 자신들이 믿는 교를 전파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사람의 힘만은 아닌 것 같다.
만약에 이 전파하는 것이 사람에게로부터 난 것이면 우리가 이들을 칼날로 죽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실 것이요, 이것이 만약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면 우리가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맞서는 것이다.
이 신앙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주 담대하고 분명한 신앙을 전파하는 사도들을 보면서 이제 이 가말리엘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순간 완악하고 강퍅해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의 마음이 움직이면서 가말리엘의 말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때리기만 하고 풀어주었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키신 것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셨고 그러기 위해서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사도들이 아직 사명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사도들을 살려두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지키시고 아무 살 희망이 없는 그 속에서도 오히려 원수들을 통해 지켜주십니다. 이들은 이렇게 핍박을 당할 때 관청에 호소하거나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매달렸더니 하나님이 이 핍박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돌보시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세파에 떠밀려서 우리의 욕심과 생각대로 살아보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잘 못보는 것이지, 굽히지 않고 신앙으로 살려고 하면 도처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증거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증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야지만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