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새벽예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 너의 보고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9-16)
녹취자 : 김용재
계속해서 사도바울이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박해 받는 환경을 사용해서 유대인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증거를 하면서 이제 이 사도는 그 빛이 찬란하게 나타난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빛이 찬란하게 나타났고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같이 있던 사람들은 빛은 보았지만 소리는 못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들린 소리가 말하자면 우리들이 이렇게 공기 속에서 들리는 음성, 말을 하면 공기가 파장을 일으켜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그런 종류의 음성이 아니라 영적인 음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라 영적인 음성이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들려주신 음성이었고 그래서 사도바울만 이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이 음성은 아주 결정적인 음성이었습니다. 세 번이 간증이 되는데 그때 마다 조금씩 약간씩 간증에 차이가 나는데 거짓을 말한다기 보다는 어느 부분을 더 강조하고 자세히 말하면서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이렇게 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먼저 들리는 것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니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러니까 사울이 주여 뉘십니까? 예수님 누구십니까? 당신 누구십니까? 나는 니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이 사건은 예수님이 몇 가지로 사울에게 말씀하셨지만 사울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면 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그거 그리고 그 분이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참 메시아이시고 하나님이시구나. 그리고 그렇게 당신이 구원해서 이루어진 교회와 예수님이 한 몸이구나 이런 사실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과 그리고 매우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엄청난 충격과 변화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사도바울은 당시의 표준적인 유대인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만 유대교 신앙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열심을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 두 가지가 있었는데 아 나사렛의 예수 같은 이가 메시아일 수가 없다. 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방인은 모두 쓰레기일 뿐이다. 유대민족만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다. 두 가지 편견이었습니다. 앞에 있는 편견은 신학적인 편견이었고 뒤에 있는 편견은 민족적인 편견이었습니다. 인종적인 편견이었습니다. 종족적인 편견이었단 말입니다. 그런 편견에 묶여 있으니까 성경을 보아도 구약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있어도 예수님이 바로 그 분이시다는 사실 같은걸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서 이제 이 사람이 엄청난 신학적인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유대교 신앙을 흐트러트린다고 멸시하고 핍박하던 그 예수가 메시아였구나. 나아가서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구나 하는 사실을 아주 뼈저리게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사도바울의 다메섹 체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체험이 사도바울의 모든 사역과 삶에 있어서 핵심이 되고 그 핵심을 중심으로 원이 확장되어 가면서 이제 그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라는 사실이 중심이 되어서 진리를 계속 깨달아 가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구원은 어떻게 받는가. 교회는 어떻게 형성이 되는가. 그 다음에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이 어떻게 경륜하셔서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런 것들을 계속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모든 것을 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한 것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아주 강력한 경험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당연히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자신이 가장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열심 때문에 자신이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가장 악한 행동이고 가장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더러운 행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모르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고 그랬는데 사실 알고 보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훼방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사람이 여기에서 아주 굉장히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단순히 은혜 받은 것이 아니라 지적인 충격을 통해서 그가 믿었던 신앙전체 인생 전체가 뒤집히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냐면 아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예전에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너무나 잘 아는 선생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기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는 겁니다. 그때에 이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합니다. 그래서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여 제자를 만나게 됩니다. 거기서 눈을 뜨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 한 번 기적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바로 자기가 그렇게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던 이방인들에게 그리고 임금들에게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이제 사도바울이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올바로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지만 된다고 우리들이 흔히 그렇게 말 하냐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계획과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되면 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 자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와 능력 성경의 계시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깊이 자신의 죄를 회개 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는 하나님 앞에 그리고 이웃 앞에 지은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성경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들이 이렇게 믿음생활하면서도 끊임없이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될 때 예수님을 새롭게 알아가고 그래서 우리도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뿌리치고 하나님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