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아픈 그대에게
녹취자:이경순
반갑습니다.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시리즈 12번째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완전한 가정이라고 할지라도 아마 모든 가족 구성원이 무한히 행복한 가정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렇게 완전한 세상이 아니고 또 가족들 간에 서로 생각이 다르고 심하면 상처까지 주고받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무한히 행복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처와 아픔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런 모든 것들의 문제의 근본에는 결국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는 것도 사랑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이지 기대가 없으면 상처도 없습니다. 이래서 실제로 가정 속에서 많은 아픔들을 가지고 살 때 그때 어떻게 우리들이 이것을 극복하면서 그래도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오늘 마지막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구절은 시편가운데 많이 애송되고 있는 시편 27편중 한 구절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 하시리이다 하고 말입니다. 아마 다윗이 쓴 시편들 가운데 가장 애송된 단원시중 하나가 27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내용은 시련과 많은 고난 속에서 대적들에게 에워싸인 가운데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신앙의 고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 속에서 부모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새라고 하는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사무엘상17장에 보면 이 집안에는 여덟 아들이 있었고 그중에 다윗은 막내였습니다. 막내이면 오히려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았을 텐데 오히려 정 반대였습니다. 형들을 편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이 사무엘상 17장15절에 나타납니다. 그중 한 증거가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울 자가 있다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이 이새의 집안의 아들들 가운데 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무엘이 이새에게 갑니다. 그리고 아주 훤칠한 키와 인물을 자랑하는 그런 좋은 아들에게 기름을 부르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택하신 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너희에게 이 아이들이 다냐? 할 때에 사무엘상16장11절에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양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마음에 이아들 다윗은 거의 안중에 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러한 편애 속에서 살아왔으니까 다윗은 외로움 속에서 지냈습니다. 의지할 것이 없는 가운데 그는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고 이것 때문에 사실 가족들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런 가정적인 상처와 아픔들을 주님을 의지하는 기회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 부모는 정확하게 말하면 아비와 어미는 나를 버렸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버렸다고 하는 말이 아자브라고하는 히브리어 단어인데 떠났다 이런 뜻도 됩니다. 어째든 우선 공간적으로 부모가 자녀가 어릴 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한 공간 안에 같이 있어주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그 인간성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해도 나를 끝까지 사랑해주는 우리엄마, 우리아빠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다 모르지만 그게 자신의 인생을 지탱해온 끈이 된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고백은 정 반대 이었습니다. 버렸으나 라는 것은 공간적으로 버림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명백하게 잘못된 일입니다. 부모에 의해서 자녀와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할 의무가 있고 자녀의 인간성은 그렇게 부모의 아주 깊은 사랑 속에서만 한 인간으로서 자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성분들이니 너무나 잘 아실 겁니다.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여자의 몸에서 난자가 형성됩니다. 한 달에 하나밖에 안됩니다. 수많은 정자들이 가서 그중에 하나가 골인을 해서 접촉을 합니다. 그러면 막이 생깁니다. 막이 생기면서 다른 것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이 형성이 되고 그 때쯤이면 벌써 태반에 아이를 착상시킬 수 있도록 아주 기가 막히게 여건이 갖춰집니다. 그래서 수정되기만 하면 그 즉시 붙어서 거기서 영양분을 빨아들이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만난 정자와 난자가 이루어지면서 수정체가 된 다음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착상이 되면서 양분을 빨아들이면서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이 육체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듯이 정신적으로도 그렇게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하면서 아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 그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그런 본능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거스르며 살수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또 다른 힘이 그 사람 안에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런 사랑 속에서 살지 못하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부모가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인 성숙, 인격적인 성숙, 신체적인 성숙, 사상적인 성숙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성숙할 때 비로소 자녀를 기를 수가 있는 부모가 되는 것인데 문제는 그 자녀를 그렇게 아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부모여야 됩니다. 그게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에게 좀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그 사랑이 그 사람을 살게 합니다. 더군다나 그 위에 신앙까지 받아들인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적절한 시기에 사랑을 받지 않으면 신앙이 들어가도 매우 힘든 시기를 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몸으로 부딪혀서 그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겠습니까? 다윗은 그나마 그런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시인을 버렸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영접해 주십니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극복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존재 자체를 너무 사랑스럽게 여기시고 또 자기를 어떤 처지에서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고 이렇게 하면서 시인이 이것들을 극복하면서 살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치유책이 되지만 그렇지만 두고두고 다윗은 이런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볼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 대해서 그런 강력한 연정을 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관계에까지 가게 된 그런 것들도 결국은 부모로부터 받은 어떤 정서적인 결함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것으로 우리가 추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담에 나쁜 일이 생기고 악한 상황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으면 이것들이 하나님 섭리 속에서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 이유는 현실의 상황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면서 그 하나님이 나를 좋게 해 주시고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하는 신앙을 갖는 것은 이것은 자신의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안 되고 시련이 일어나고 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어려움이 일어나는데 최악의 상황이 우리 앞에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그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려면 그 나쁘고 이런 악한 상황들이 영원히 계속되어서 나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없다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나쁘고 어려운 일이 일어났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반드시 이것들을 좋은 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상처와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그것들을 극복하고 주님의 사람으로 설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과 나, 부모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이렇게 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 혹은 아내라고 하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 인간은 하나님조차도 우리가 완전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상황을 주셨을까 난 진짜 하나님이 신실하고 선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고 하나님 앞에 반항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시인의 경우를 보면서 부모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끊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배우자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자녀와의 관계도 끊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고난 다음에야 남이 되었으니까 사람으로 각자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살아야 될 그런 대상에 속하는 것이지 다시 특별한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가족관계가 이미 해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내가 지금 가족들로부터 혹은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상처를 받고 끊어져 있습니다. 그럴 때 미워하는 마음과 원망 그런 것들로 그대로 간직한 채는 살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살기위해서라도 이런 관계 속에서 맺혀있는 것들을 풀어버릴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부모가 와서 용서를 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아들아, 내가 진짜 너 어렸을 때 진짜 못되었다 아버지로서 바람도 피고 폭력도 행사하고 폭언도 퍼붓고 했는데 너무 후회가 된다. 그리고 막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면서 자식인 우리에게 용서를 빌면 감격적으로 용서 해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아버지는 그것 기억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무슨 죽을 때까지 자식이 자기 땜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 안하고 오히려 자기가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고생한 생각만 나고 또 역으로 자녀들의 마음에는 아빠엄마가 자기한테 못해준 것은 또렷이 기억에 남지만 희생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절절히 느끼지 못합니다. 그거는 인생의 훨씬 더 많은 날이 지나고 철이 들어야 느낍니다. 자기가 시집가기 전에 친정엄마한테 얼마나 못되게 했는지는 시집가서 아들딸이 커서 속을 썩이면 아 우리엄마 심정이 이렇겠구나.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모릅니다. 이런 관계를 풀고 해결하고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준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부모사랑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결됩니다.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으셨는지 11강 때 강의한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시리즈가 엄청나게 많이 쓰임을 받은 시리즈입니다. 제가 외국으로 집회를 가게 되었는데 생전 모르는 사람인데 아는 사람을 통해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꼭 식사를 대접하게 해달라는데 나는 사실 남모르는 사람한테 밥 얻어먹는 것 제일 싫어합니다. 밥 얻어먹는 것 뿐 아니라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신세지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냥 불편하게 아니라 너무 싫어합니다. 그래서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날 일이 있으면 집회하는 곳에 와서 인사하라고 해라 내가 왜 밥을 얻어먹느냐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난 그 약속이 취소된 줄 알았는데 나를 안내하는 사람이 목사님 일식이 어떠시겠어요? 나는 일식보다 양식이 먹고 싶은데 아 그냥 일식 드시죠! 하며 그리고 갔는데 떡 하니 그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기분이 좀 별로 안 좋았습니다. 내가 분명히 싫다고 했는데 이 친구가 나를 그렇게 인도할까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겠죠. 하고 어쨌든 마주앉아 서로 인사를 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너무너무 뵙고 싶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하고 있는데 자기들을 소개하는데 자기네는 오래전에 이민을 왔고 남편은 예수를 안 믿고 아내는 신학교까지 나왔나 어째든 아주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큰 사업은 아니지만 조그맣게 뭘 하면서 그냥 먹고사는 집이었는데 남편이 그렇게 여기저기 교회를 끌고 가도 예수를 안 믿더니 열린 교회에서 설교한 설교테이프를 듣고 이 사람이 회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3년 동안을 설교를 들었답니다. 거의 꼭 필요한 생활을 제외하고는 3년 동안 몰입을 해서 들었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구원을 얻어서 그 집안이 신앙을 갖게 되었답니다. 자매는 뭐하는 자매냐면 얼굴 미용 마사지 샵 하는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늘 누구를 눕혀놓고 마사지를 하면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돈 좀 있는 사람이 하지 먹을거리가 없는 사람이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일단 한번하면 기본적으로 두 시간은 있어야 한답니다. 두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단골이랍니다. 그러면서 못살겠고 괴롭고 이혼을 해야 되겠다고 그런답니다. 그러면 시디에 담아서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를 이게 정말 한국에 있는 어느 목사님 설교인데 당신 이혼해도 좋은데 꼭 한번 들어보라고 준답니다. 열 명에게 들려주면 결심했던 사람 중 아홉 명은 이혼을 접는답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힘은 사람들을 많이 바꿔 놉니다. 일단 사람이 뭐가 하고 싶어서 한쪽으로 쏠리면 모든 정보가 왜곡되면서 그것을 해야 된다는 쪽으로 다 해석이 됩니다. 반대편의 이야기를 못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솔직히 남편이 좀 맘에 완벽하게 안 드는데 자기는 남편마음에 완벽하게 들었나요? 부모님이 힘들게 한다. 그럼 부모님께 물어보세요! 부모님은 여러분 때문에 힘들다고 하십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결국은 살면서 인간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상처를 너무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대할 때도 모자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 좀 되게끔 도와주라고 나를 부르셨다. 남편들도 아내를 볼 때 저렇게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이 나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하셔서 그렇게 해서 고치게 하셨다는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어쨌든 깨어지고 망가진 관계는 풀어야 됩니다. 최소한 저 인간이 이 땅에 있는 게 너무 싫다 또는 진짜 너무 괴롭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고는 하나님 앞에 살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맺힌 것을 먼저 풀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그런 것들을 품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가지고는 안됩니다. 여러분 퀴즈한번 냅니다. 어떤 사람을 완벽하게 용서했는데 그 사람이 다시 미워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할 때에만 그것을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한 사람을 계속 용서한 상태에 둘 수 있는 것이지 우리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면 순식간에 반란이 일어나면서 다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은혜 안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쓰기 좋아하는 말로 살아있는 한 살아가야 합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살아 있는 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철학자들은 존재와 현실이라고 어려운 말로 표현합니다. 존재하는 것이고 그담에 현실은 나에게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한 피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왕에 살아가야할 현실이라면 그럼 이것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살면 자기인생도 아니고 남의 인생도 아니고 내가 산 것도 아니고 남이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 애매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들을 극복하면서 나아가야 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이 불행한 일을 만나서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을 극복하면서 살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결국은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을 우리들이 신앙을 통해서 공급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들을 극복하면서 살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우리가 살면서 부모로부터 혹은 가족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상처를 붙들고 실패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런 상처를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여러분들을 끊임없이 사람들을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게 믿음으로 산다면 많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가정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동안 강의 귀기울여주고 참여해 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