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 기도회(2)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애 1:13)
녹취자 : 김미현
제 나이 37살 때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이 본문을 읽다가 정말 제 영혼이 흔들리는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제까지도 이 말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말씀은 거의 일생동안 우리를 주장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상황은 지금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입니다. 멸망하기 전에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였습니다. 멸망한다고 그랬더니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이제 예레미야의 예언이 듣기 싫어서 가두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신학의 대충돌입니다. 신학의 대충돌이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을 향한 신학의 대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보다 정말 놀라운 것을 발견했는데 Th.M. 때인데 히브리어 맛소라 텍스트를 놓고 70인 역과 비교를 합니다. 그런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구절은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납니다. 도저히 이것을 번역해서는 아무리 자유롭게 번역을 해도 이 번역이 나올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문장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학자들이 이론이 무엇이냐 하면 ‘맛소라만 남기고 다 없애버렸는데 이 70인 역은 맛소라에서 번역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맛소라보다 훨씬 위에 있는 정치적으로 폐기된 본문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1940년대까지는 70인 역을 더 권위 있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70인 역에서 거꾸로 히브리어를 번역을 하면 그것이 훨씬 더 신뢰할만한 구약텍스트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다가 40년대부터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전 2세기의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것이 맛소라 사본과 똑같은 것입니다. 사실 이 가설이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이제 다시 벤들러 쪽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끊어졌습니다.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예 성경 자체가 다릅니다.
그런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감지되는 것은 신학의 충돌입니다. 무슨 신학이 충돌한 것이냐 하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 그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나라가 망한 적이 없습니다. 유대나라가 망한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어차피 떨어져나갔다고 보는 것이니 망해도 신학적인 충격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의 신학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충분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 신학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언약에 가서 닿아있고 하나는 모세의 언약에 가서 닿아있어서 두 개가 충돌하는 것이라고 존 브라이트 같은 사람은 그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확신을 깨고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레미야는 그렇게 확신하던 나라가 망했으니까 이 백성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충격도 안 받고 전시 때 제일 급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식량입니다. 장롱 밑에 감추어 두었던 보물들을 다 꺼내어 가지고 와서 식량을 바꾸러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제 선지자가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얘기했느냐하면 “너희들에게는 왜 나 같은 이 고통이 없느냐?” 그래서 이 애가가 ‘에카’라고 시작합니다. 히브리말입니다. ‘원통하도다!’ 그런 뜻입니다. 왜 너희에게는 내게 있는 것 같은 이런 고통이 없느냐 그것입니다. 그것이 왜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사가 되고 큰 교회 목회자가 되고 세계의 존경 받는 부흥사가 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은 신학의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차원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 하면서 아이를 위해 울어본 사람이 전도사 할 때 교사들 위해 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교구 사역 할 때 구역장들 보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이고 그 구역장들이 그 눈물을 보면서 어떻게 ‘영혼을 섬겨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공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감사해야 합니다. 혈기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진공상태에서 그런 이야기 누가 못합니까? 상황이 없는데 누가 못하겠습니까?
(예화) 한 20년 전에 총회를 하는데 이름도 안 잊어 먹습니다. 누가 있었습니다. 그 때 총회에 갔다 온 사람 중 한 사람이 계속해서 총회장을 씹으면서 이의를 제기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아이, 썅” 마이크를 집어 던지려고 합니다. 진공상태에서 그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것은 신앙의 세계에서 생겨나온 것이지 사유의 세계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는 왜 우는 것입니까? 예루살렘이 멸망했는데 자기도 지금 얼쩡거리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망연자실해서 안 먹으면 굶어죽는데 양식을 전쟁 딱 나면 양식 안팝니다. 우리나라는 라면 재고품 있으면 한번 씩 비상 걸리면 가서 사재기 해가지고 잔뜩 사가지고 옵니다. 그러니까 이 왜 이 사람은 왜 이러고 있는 것입니까?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예루살렘이 망했는데 조만간 회복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바벨론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아십니까? 인터넷에 들어가서 하늘에 만든 정원인가 한번 쳐보십시오. 그것만 한편만 보면 바벨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나라였는가 알 수 있습니다. 왕비를 위해 사막에다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아라비아에서부터 나무를 실어다가 물길을 대어서 폭포처럼 만들어서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중국에 비교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것이 조막만한 나라를 말발굽으로 짓밟았는데 어디서 감히 덤벼듭니까? 가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혼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왜 그렇게 아파하는 것입니까? 망한 예루살렘을 보면서 그렇게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다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고통 받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다 파괴되고 금은기명들이 다 뜯겨 나가고 신뢰할 수 있는 숫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있었던 금이 금과 무엇이 수 십 조원 어치였다고 합니다. 다윗이 바친 것이 있으니까 다 뜯어가고 겁탈당한 처녀처럼 그렇게 비참한 지경이 된 것입니다. 부녀자처럼, 그 속에서 하나님의 떨어진 영광을 보며 통곡을 하고 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양식 구하러 다닙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는 것은 사역에 있어서 굉장히 바람직한 것입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당신이 유년부 사역하면 당신이 제일 존경하는 유년부 사역자가 누구입니까? 한국에서 지금 누가 유년부 사역을 제일 잘 하고 있습니까? 최근에 나온 유년부에 나온 책이 무엇입니까?” 제가 물어봅니다. 대답을 못하면 제가 항상 하는 말이 두 가지입니다. “당신은 매우 태만하던지 모든 사람이 따라올 수 없는 선두를 달리고 있던지 그래서 새 역사를 창조하던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야기합니다. 그것입니다.
사역은 그래도 이런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것 안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열렬하게 눈물 흘리면서 가슴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언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인지를 예레미야에게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보고 년 수를 깨달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니엘입니다. 하나님이 늘 얘기하지만 조금 사랑하는 자에게는 돈을 주시고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리를 주십니다. 이 이야기를 하였더니 어떤 청년이 그럽니다. “구역장님, 하나님이 요새는 저를 조금도 사랑을 안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은혜를 받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골수는 뼈들입니다. 뼈들 속으로 불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의 독특한 표현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말로 표현하면 ‘심령 깊은 곳에’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하면 딱 맞습니다. ‘심령 깊은 곳에 불을 보내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심령은 뼈도 마찬가지인데 골수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체를 움직이는 말하자면 핵심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심령 깊이 불을 보내셨으니까 이것은 영적인 불입니다. 성령의 불 이런 것이 아니라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능력이나 권능이 아니라 심지어 말씀도 아닙니다. 설교를 언변 좋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아파할 때 그도 아파하고 하나님이 기뻐할 때 그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자기도 슬퍼하고 하나님이 분노할 때 자신도 분노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평상시에는 잠잠합니다. 그런데 말해야 할 때에는 담대하게 말하고 분노하여야 할 때는 대담하게 열정으로 책망하고 그런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런 불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불 때문에 그 불이 있어서 남들은 양식 구하러 다닐 때 통곡하면서 우는 것이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라고 합니까?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열정이 함량 미달입니다. 그러니까 열정이 있는데 하다가 조금 어려움에 부딪히면 접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다 좀 힘들면 접을 생각부터 하는 것입니다. 나한테도 가끔 힘들어서 사역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찾아온 적이 있는데 그래서 제가 얘기했습니다. “네가 목회자의 길을 안 가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한다면 지금 있는 십자가가 가장 작은 십자가이다.” 얼마나 많은 십자가를 져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작은 불이라도 없는 사람이 누가 어디 있겠습니까? 없으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불이 그 사람을 못 이겼습니다. 불이 갇혀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에서 죄가 싹트면 그 속에서 그냥 꺼져버리는 것입니다. 불이 따뜻하게 있는데 활활 타올라서 나에게서 넘쳐나서 무언가를 태우고 이럴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정말 열정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열정이 없는 것은 죄입니다. 그것은 인격이나 특성의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은 그런 불이 있는 사람이 성격이 신중해서 그 불을 혼자 간직하면서 울며 기도하고 덜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이 있으면 사람이 나타날 때는 다르게 나타나도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가슴이 막 찢어지도록 아픈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너무 중요합니다. 견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 속에 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목회를 하면서 그리고 있는 상태와 현실의 상태 사이에 격차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목회하는 교회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그렇게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뚜렷해야지만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도 ‘야, 이정도 되어서 내가 정말 변화되어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예화) 김수미 간사 딸이 초등학교 3학년 이었을 때 밥 먹다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 엄마는 몇 학년 때 회심했어요?” 그래서 한참 생각하다가 “엄마 대학교 1학년 때 회심했지.”했더니 갑자기 숟갈을 놓고 입을 딱 벌리더니 “아니, 엄마 그 나이 먹도록 회심도 안하고 계속 있었던 거야? 난 7살에 회심했는데. 회심도 안하고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았어. 엄마?”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그 의문을 교역자가 품을 때 현실과 마땅히 되어야 할 나의 사역 사이에서 가장 비극이 이것이 없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인턴십 할 때 일이었는데 회심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한번 한 달, 두 주 동안 조사를 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아주 열심히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 중 한 학생은 45명을 담당하고 있는 초등부 전도사였습니다. 그런데 45명을 다 면담을 하였다고 합니다. 신학적인 양심을 걸고 신학생으로서 양심을 걸고 1명은 회심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44명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 하러 여기에 있는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사실을 자기는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한 것입니다. 강의를 듣기 전까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 눈물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을 받는 과정입니다. 거기서 이제 사그라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서 도전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몸부림을 치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제가 얘기하지만 저는 다 겪었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하고 있는 것 중에서 제가 안한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 겪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해 줄 수는 있고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그런데 그것이 여러분 속에 들어가게는 못해줍니다. 그것은 아무도 못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면 하는 것이고 안하면 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위를 돌아보면서 신학교 입학 할 때 여러분 친구들 지금 길게 지난 사람은 10년 지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5년이나 3년 지났을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 새 사람이 된 사람이 있는지 한번 만나보십시오. 거의 없습니다. 우리 친구 목사님들 만나면 목사 되고 나서 변화된 사람 박순영 목사 너밖에 못 봤다고 하며 맨날 만나면 웃는데 없습니다. 정말 희귀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정말 마음에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물질을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정말 기도하시는 정말 눈물이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면 지혜가 조금 부족해도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역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