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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새벽예배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이러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행4:19-22)
녹취자: 박은경
사도행전에 병자를 고친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한 사람의 병 나은 사건을 길게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병 고침 받은 것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이 앉은뱅이의 병 고침 사건이 모든 병 고침 가운데 탁월한 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기록하고 있느냐하면 의미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복음을 싫어하는 유대인과 어떠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사도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그 ‘병 나은 사람이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병을 거의 숙명처럼 여기면서 포기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제 오늘 병이 생겨서 나은 사람이 아니라 사십 여 년 동안이나 앉은뱅이로 살아가던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이 병 고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사람을 고쳐준 것 때문에 사도들이 붙잡혀 가게 되었고, 그렇게 유능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변증을 하는데, 눈에 보이는 기적도 일어났고, 논리도 정연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가운데 학문이 없는 사람들인데 기탄없이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제 하지 마라, 좋은 말할 때 하지 마라, 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지 마라”하는 것입니다. 자기네 입장에서는 사도들에게 뭔가 혜택을 베푸는 것처럼 “이제 너희 풀어줄 테니 하지마라”하면 “네”하면서 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해야지 자신들의 체면이 설 텐데 이제는 사도들이 대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너희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잘 생각해 보아라. 어떤 일이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과 사람의 요구가 충돌을 할 때,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으냐? 한 번 생각을 해 봐라. 너희가 만약 우리 입장이라면 그렇게 하겠냐? 우리는 보고 들을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유대인들이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뭘 보고 들은 것입니까? 이 사람의 병 나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은 도구에 불과하고 진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셨다는 것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셨다는 사실, 고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이 참된 것이었으며, 또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 자신이 저주를 받아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덕을 입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셔서 오늘도 이 병든 자를 고치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주님을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명백한데,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영혼을 보면 불쌍하게 여겨지고, 그 영혼을 위해 무엇이든지 도와주고 싶고, 수고하고 싶고, 애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 원리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며 살고 싶은 간절한 사모함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그 은혜로 인해서 자신에게 구원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있는 이 복음의 열정,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을 향한 주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감사,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연민, 이런 것들이 복음을 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 깊이 사무쳐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교회의 아주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것은 결국 은혜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계획이나 선교계획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요. 이 사도들이 어떻게 해서 서슬퍼런 상황에서 그런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이런 담대함이 결국 이들이 가지고 있던 선교계획이나 전도계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 대한 깊은 열정,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체험, 복음에 대한 그들의 현재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박해하는 이 사람들조차도 복음을 전해서 구원해야 될 대상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경험하고, 그 복음의 현재적인 경험에 붙잡혀서,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흘러 그것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을 동시에 적시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