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새벽예배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 21:15-20)
녹취자; 김은정
이제 결국은 이렇게 해서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고 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크신 위로입니다. 왜냐하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하는 예루살렘에 이미 하나님을 잘 믿고 복음을 받아들인 많은 형제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게 핍박받고 고난 받을 곳을 향하여 나아갔던 바울에게는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커다란 핍박과 고난을 받을 텐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위로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거기에 가서 이제 예수님을 믿는 그 유대인들과 함께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 위로를 아마 받았을 것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 앞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유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성도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유익 그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함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교제하고, 사랑하고, 위로를 받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왜 그런지 어제까지 교역자 수련회를 고단하게 마쳤는데 잠이 영 안와서 새벽 한 2시 좀 넘어서부터 뜬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뭐 일어나서 뭐 마음이 별로 안생기고 가만히 누워서 생각도 하고 묵상도 하고 그러면서 밤을 샜습니다. 그런 생각이 새벽에 들었습니다. '이세상은 얼마나 시시한가!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다 지나가는 것들이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마음이 들떠하지만 그것도 영원한 것들이 아닙니다. 모두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사실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하고 분주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이 이러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큰 위로와 기쁨은 정말 제한적입니다. 그런 위로와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커다란 안위의 수단이 바로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함께 교제하고 교통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상처가 있어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그럴때 그 비참함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고난을 많이 받고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를 찾아서 가는 사람들이 신자들 아닙니까?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허락하시고 그 교회에서 그런 위로와 능력과 쉼을 얻고 다시 또 부족하지만 하늘나라를 위해 살도록 그렇게 부름 받은 사람들이 신자들입니다. 근데 그렇지 못할 때 그렇지 못하게 살아가는 신자들을 볼 때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오늘 보면 사도바울은 그래도 큰 고난이 예고되고 그래서 인생이 곤고하기 이를 때 없는 중에 있었지만 예루살렘에 가서 사랑하는 지체들을 만났습니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넘치는 위로를 받게되었지요. 이제 그들에게 사도바울이 자신이 사도로 부름받아서 이방인들을 위해서 복음으로 섬길 때 그동안에 하나님이 행하셨던 크고 놀라운 일을 이제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사랑하는 지체들이 아주 큰 기쁨으로 이 사도바울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에만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사도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곳들을 여행하며 선교하고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만들고 그들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그 크고 놀라운 일을 이들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때에 이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은 자신들이 직접 참여한 일은 아니지만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뭘 보여주냐면 하나님의 복음에는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장벽들을 허물어 버리는 사랑의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쓸모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지옥의 땔감정도로 쓰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오만한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택한 선민의식이 민족적인 교만으로 나타난 모습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고 깊이 깨뜨려져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래서 자기의 외아들까지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것을 깊이 이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을 때에 그 때에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만에게 베푸시는 사랑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베푸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니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있는 커다란 편견과 인종적 우월의 장벽이 무너지고 나니까 이방인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안 사람들의 마음에 나타난 위대한 일들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우리의 마음에 생겨난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안에 갇히지만 자기를 깨뜨리고 발견하게 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교통적 성격을 가진 사랑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깊이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승리하고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도들의 경험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매일 매일 복음의 승리를 이루어 간 사도바울의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그들은 사도바울을 높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 것입니다. 사람이 그 일을 했으나 그는 다만 도구일 뿐이고 그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위대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비록 수종 든 사람은 바울이었으나 그 모든 기쁜 소식을 전한 후에 바울은 그 유대인들과 함께 모두 목소리를 높여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이름을 깊이 인정하고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만 높인 일꾼들의 자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많은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참다운 가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잘 섬긴 후에 그 섬긴 것을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이야기 할 때 그들이 함께 그를 사용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가 가지 못하는 곳에서 행하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높이는 그것이 바로 신자의 행복이고 기쁨일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좋으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기에서 우리들이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 우리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더 큰 은혜와 축복들을 하나님 앞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사랑해주시고 저희들에게 오늘 아침에도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생명이 있는 날 동안에 성도의 교제를 통해 위로를 얻고 기쁨을 얻게 해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셔서 저희로 하여금 온 마음으로 온 뜻으로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모든 지체들과 함께 나누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