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명 전도학교 개강예배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 5:39)
녹취자: 김순미
마음속에서 그렇게 하나님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을 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도들의 마음은 녹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당연히 그러한 행동은 유대인들에게 크게 거슬렀고 유대 지도자들의 기득권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데려다가 엄하게 문초를 하면서 예수를 전한 죄를 따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아주 학식이 높고 존경을 받는 인격자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사도들을 잠깐 나가라고 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역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 우리가 한번 역사를 보자 드다라는 사람이 발란을 일으켜서 많은 무리가 그를 쫓았다 그런데 결국은 없어졌다. 갈릴리의 유다라는 놈이 있어나서 똑같은 짖을 했는데 많은 추종자가 있었지만 결국 사라졌다.” 가말리엘을 역사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사람들이 하는 일에 너무 관여하지 마라 만약에 저 사람들이 전하는 사상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 났다면 그것을 막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공연히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일을 해서 죄를 쌓지 말라.’ 역사가 적인 혜안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유대 지도자들은 그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왠지 마음 속 에서 분이 삭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놓아주기 전에 한번 실컷 때리고 놓아주자 하고 두들겨 팬 것입니다.
그때 사도들의 반응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세 가지 반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두들겨 맞고 욕을 먹으면서 기뻐 할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들은 기뻐했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아.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구나.’ 무엇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신 것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뜻입니까? 결국은 예수 복음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그렇게 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정말 예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기가 잘 못하고 덕을 쌓지 못하고 악을 행하여 고통을 받는 것은 예수를 위한 고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자기 자신이 잘 못 했기 때문에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제외하고 정말 예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말 소수입니다. 저는 전 세계를 다녀 보지만 한국만큼 종교의 대해서 완벽한 자유가 주어진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도 어림없습니다. 교회를 하나 지으려고 해도 얼마나 절차가 복잡한지 온 주민이 모여서 공청회를 해서 가결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 필요 없고 2층 건물 하나 얻어가지고 오늘이라도 십자가 시트지를 붙이면 교회가 됩니다. 이런 나라는 전 세계에 아무데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아는 교회에서는 주민들 공청회를 했는데 땅을 사 놨는데 군데군데 나무가 있는 것입니다. 주민 공청회에서 교회를 안 된다고 막 그러더니 몇 가지 조건을 걸어서 통과 시켜 주었는데 첫째 절대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말라 두 번째 어떤 나무도 뽑지 말고 교회를 지어라. 나무가 군데군데 있는데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완벽한 자유가 주어진 나라에게 그 얘기는 무슨 얘기냐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정말 우리가 박해를 받아 본 적이 있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예수 믿기 때문에 박해를 맞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있는데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욕을 먹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먹고 살만 하고 모든 형편이 있는데 누구한테 우리가 무시를 당하고 누구한테 구걸을 합니까? 그러나 아파트 전도 나가면 구걸을 해야 합니다. 경비원 아저씨한테 한 번만 봐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고 ‘똑똑똑’ 문을 두드리고 ‘교회에서 전도 하러 왔습니다.’ 하면 문을 확 열고 욕을 퍼 붙고 꽝 닫습니다. 말하자면 그럴 때에 이 사도들은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왜? ‘아.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예수 위해 고난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었구나. 아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전도자에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오늘 우리의 교회 속에서 아주 장렬하게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불꽃은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성도들을 보십시오. 꽃길을 걷는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고난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경비원에게 멸시를 당하고 아파트 주민에게 욕을 먹을 때 여러분 거기에 예수 대신 서 있는 사람 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전도 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겠다고 하는 사람을 찾아 가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서 그에게 예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를 구원하셨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가르치기를 하는 그것이 전도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선배들이 한 말이 장로가 전도를 하면 그 사람이 장로가 될 때 까지 목사가 전도를 하면 그 사람이 소명을 받아서 받은 사람이 목사가 될 때 까지 집사가 전도한 사람은 집사가 될 때 까지 돌보고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전도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 사도들이 고난을 받으면서 즐겨 했던 일은 무엇이냐면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전도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목사와 같은 사역자들이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희랍어로 ‘켈리소’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수군수군 예수의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이게 ‘요한겔리져마에’라는 동사인데 여기서 ‘에반겔리즘(evangelism)’ 즉, ‘전도’라는 영어 단어가 옵니다. 그래서 평신도의 역할은 설교는 아니지만 예수의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수군수군 하면서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내 인생을 바꿔 놓고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변화 시킬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를 하면서 우리는 아마 그럴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을 전도한 사람보다는 교회를 지을 때 10억을 헌금 한 사람을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오래 기억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도 똑같을까?’는 우리는 조금 회의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친히 말씀 하시기를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배운 다음에 어떤 성도들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고 혹은 질병에 사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성도 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훈련을 받고 이런 사명자들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전도때문에 예수 믿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