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이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4)
녹취자 : 장주은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에 고린도교회의 상황은 그리 썩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린도후서를 쓸 때에 상황이 훨씬 나았습니다. 사도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의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래서 사도바울이 마음에 누그러진 가운데 그들의 지나친 염려가 회개를 넘어서서 좌절에 이르지 않을까 염려한 흔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쓸 때 고린도교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린도교회가 완전히 문제투성이 교회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해 아래 있는 어떤 교회도 완전히 문제로만 뭉쳐진 교회도 없고 또 그렇다고 해서 좋은 점으로만 뭉쳐진 교회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마치 병든 교회 고린도교회의 일부분을 고치는 것 같은 심정으로 고린도전서를 써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성경본문에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은 사도바울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이유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만이 아니라 고린도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고린도교회에 주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편지가 지속되고 나면 사도바울의 어조가 변해서 강력하게 탄핵하고 야단을 칠 터인데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밀려들어온 것은 고린도교회에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책망도 하나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책망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은혜 때문에도 잘 감사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보면 우리에게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 그리고 이모저모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혜택들, 은혜들, 이 많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감사는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들 때문에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사의 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습니다. 어쩌면 더 큽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슴 아픈 일이 자신에게도 가슴이 아프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기쁜 일이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랑으로 연합된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하나님 앞에 고린도교회에 베풀어 주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감사하는 이유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지식의 은사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는 아데네와 아주 비슷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는 로마 시대 때에 비로소 세워진 도시가 아니라 아주 역사가 깊고 유물을 파보면 로마시대, 그리스시대, 계속 층차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는 아주 번성한 무역도시였고 내로라하는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많이 모여서 아크로폴리스 같은 광장에서 자기의 철학적이 언변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고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시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사상이요 철학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오늘 성경에 보니까 뭐라 그랬냐 하면 언변과 모든 지식의 풍족함으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지식의 은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 때문에 사도바울이 전해준 그리스도 예수의 간단한 복음이 아주 굳건한 터가 되어서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회를 해보면 설교를 할 때 가슴으로 덤벼드는 사람이 있고 팔다리로 덤벼드는 사람이 있고 머리로 덤벼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팔다리로 덤벼드는 사람들은 행위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설교에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으니 저 뜻대로 순종하면 내게 복이 올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들이미는 사람들은 어쨌든 감동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머리를 들이미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시켜다오, 그러면 내가 듣겠다, 이런 사람입니다. 셋 다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머리로 듣고 감동을 받아서 삶으로 흘러나오는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신앙이 아주 견고합니다. 이해하고 감동을 받고 행동으로 옮겨지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진 가운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다시 지식으로 성찰하고 성찰한 다음에 다시 감동을 받고 감동이 다시 삶으로 나오고 이런 사람입니다. 확실히 지식은 신앙을 견고하게 합니다. 그래서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말씀이 지식에 의해서 심겨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견고함이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주신 이 지식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수많은 은사를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은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은사였습니다. 이 교회가 사랑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생명을 누리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이 은사가 충만하게 부어져서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감사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리스도와의 교제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사람 저사람이 생각은 좀 다르고 의견은 나뉘어도 그들이 각각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누리며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을 누렸습니다. 거기서 오는 생명과 사랑으로서 이 모든 이생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믿음의 삶을 싸워갈 수가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서 감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고린도교회에 주신 은혜 때문이기만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지식의 은사를 주셔서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견고하게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나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지체들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집대로 영 죽을 이 세상에서 짐승처럼 살았을 우리들을 이렇게 존귀한 성도로 분별 있는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은사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인내와 용기 그리고 분별력과 사랑, 이런 모든 것들을 내게 주셨을 뿐 아니라 지체들에게 주셔서 내가 부족할 때에는 지체들에게 도움을 받게 하시고 또 지체들이 부족할 때는 나의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은사는 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것이지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뭐 그렇게 무리를 하느냐. 중국에 갔다 온 것도 전부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열 시간을 잤습니다. 확실히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도 오늘 와 보니까 93페이지짜리 책이 출판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병상에 누워서 책을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쉬자, 몸이 말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밀려들어왔고 또 한편으로는 쓰자, 생각이 날 때 그 때 써야지 잊어버리고 나면 내 것이 아니다, 두 생각이 싸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글을 쓰는 은사를 주셨고 설교하는 은사를 주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특히 글을 쓸 때는 늘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보편교회의 것입니다. 나는 다만 그분의 손에 붙들려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 고요한 밤중에 막 불꽃 튀듯이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었습니다. 아니야. 지금은 쉬어야 해, 그리고 덮고 자고나면 아침에 하얗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아 그렇구나. 떠오르는 그 때에 그것이 결국은 나의 것이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긴 것이 아니구나. 영적인 은사를 하나님이 나에게, 지체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더 많은 은사를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주님을 소유하고 믿음으로 이기는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