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인턴쉽 종강예배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녹취자: 김순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입니다. 마지막에 주시는 말씀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리라” 만약에 우리가 매순간 주님이 오늘 오신다고 생각하면 아마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에서 모든 것들이 잘못되는 그 뿌리를 쭉 더듬어 놓고 가보면 결국은 ‘ 회자와 목회자의 아내가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냐?’ 그게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론 여러분 모두 배우셨지만 ‘하나님 앞에 사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신앙 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문제가 없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이미 목사의 아내이고 목회자의 사모이지만 기도도 많이 하고 사람도 진실하고 성경을 가르치려고 하고 의미 없습니다. 사람들이 안 모입니다. 신앙도 있고 열심히도 하는데 문제는 재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회가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재밌기만 하면 목회가 되느냐? 그럴 리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한분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어려움도 겪고 하면서 교회를 해보니까 한 3년 동안은 꿈을 꾸는 것처럼 교인들과 행복했는데 가족 같았는데 4년 지나면서 부터는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한테 “그렇죠? 목사님?” 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는 교인들하고 가족 같이 지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빠지는 것이 뭔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말에 동의를 안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모든 교인들하고 너무 가깝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좋은 게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교인들이 말씀 앞에서 서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목회자와 개인 적인 친분이었습니다. 일단 인간 적으로 친해지고 나면 그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굉장히 외롭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시작하고 25년의 세월이 다가 오지만 나는 설명 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 없이는 교인들하고 밥 먹은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매우 외롭습니다. 그런 것들을 외롭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그런 외로움이 만약에 있다면 그것을 좀 더 건전한 방법으로 가족들과 아내와 기도와 묵상, 독서, 시를 쓰면서 풀어내야지 만나서 같이 수박도 먹고 너무 친하게 지내면 저 사람이 또 섭섭할 것 아닙니까?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해 줄 수 없잖습니까? 목회자들이 이 집이 좀 잘 산다고 같이 두 부부가 제주도 여행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면 그렇게 하면 목회가 안 됩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은 뭐냐 하면 때로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고생하는 것을 몰라줘도, 때로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도 때로는 고통스러워도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이 곧 오신다.’ 그것이 우리에게 강력한 우리의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전도사로 생활 할 때, 교역자 회의를 하는데 그때 그 목사님이 지금 90세가 넘으셨습니다. 어느 교역자가 너무 마음에 안 드셨던 모양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방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교역자 다 나가고 나 혼자 남아 있는데 목사님께서 보따리를 싸시면서 너무 노여우셨던 것입니다. ‘저렇게 목회를 하고 주님을 어떻게 뵈올려고.’ 그러시면서 보따리를 싸시면서 울먹울먹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주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사모님들이 교육 받은 내용을 보니까 목회자 사모인턴쉽에서 크게 배운 게 3가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기도하고, 지혜롭게 행하고, 마지막에 인내하라. 사람마다 다 10주를 배우고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정확하게 집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의 사람으로 살고, 슬기롭게 살고, 마지막에 모든 것을 인내하면서 살아가게 만드는 그 힘은 무엇입니까?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 앞에 있다. 그리고 주님은 곧 오신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거잖습니까? 그런 게 속히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많이 배웠던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쓴 자신의 결심문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은혜를 받았을 때 때로는 며칠씩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이렇게 살겠다.’ 생각하면서, 스스로와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주님이 오늘 오신다면 그래도 내가 하고 있을 그 일에 몰두하자.” 우리가 하는 것은 주님이 오늘 오신 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하고 있을 그 일이 우리의 인생에 가장 본질 적인 일입니다. 그런 결심을 토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모두 약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주님은 곧 오시고 바로 먼 후일에 주님이 오실 것을 지금이라고 느끼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게 어디서 입증이 되냐 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고 신앙이 뜨거우면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지금 내 앞에서 매일 죽으시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과거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과거에 이루는 일을 현재로 끌어 들일 수 있다면 신앙은 미래에 일어날 그 일을 현재로 끌어 들여서 그래서 현재 그것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비롯해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 할 때 고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했던 것은 상주시는 것을 생각 할 때 하나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주실 부름의 상을 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 현재 그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면서 마음은 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거짓된 욕망과 이세상의 헛된 자랑을 버리고 그리고, 주님 앞에서 길을 걸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길이라고 하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쉬운 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목회만큼 이 세상에서 독특한 직업이 없잖습니까? 사명은 굉장히 큰데 요 모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 200명교인 쯤 한다면 사업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바보 같은 이야기라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 큰 회사는 몰라도 한 2만 명 정도 직원을 거느리는 회사는 내가 운영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권한이 있어서입니다. ‘너 그만둬, 너 잘하면 부장으로 승진 시켜줄게, 너 진짜 잘하면 사장으로 승진 시켜 줄게’ 그럴 권한이 있습니다. 옛날에 한화그룹에서 중동 지방에 도시 프로젝트 6조원짜리 하나를 수주 했습니다. 수주 사업의 수고 했던 직원들에게 표창장을 주는데 뜻밖에 회장님이 봉투를 하나씩 주는데 1억 원씩 줬다고 합니다. 얼마나 그 회사에 충성하겠습니까? 권한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목회자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욕을 하고 심지어는 목사님을 반대하는 운동을 해도 교회는 감옥이 없습니다. 교회 감옥에다 가둘 수도 없잖습니까? 그런다고 해서 같이 한번 싸울 것입니까? 아는 목사님은 진짜로 개척교회를 하다가 회계 집사를 입명 했는데 얼마나 꼬장꼬장하고 깐죽거리는지 목사님이 옛날에 운동을 좀 하셨던 분입니다. “에이씨.” 그러고 한방을 날렸는데 앞니 8대가 한꺼번에 부러졌다고 합니다. 그런 씩으로 해결 할 수 없잖습니까?
목회자는 정말 그런 점에서 세상적인 권력의 수단이 없이 그 사명은 2만 명 거느린 회사보다도 훨씬 중요한 사명을 수행해 내야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지막에 그 일을 다 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진짜 잘하였구나! 착하다 충성되다.’ 이렇게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ㅓ? 그것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오늘 의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열렬한 기도와 오직 말씀의 헌신하고자 하는 그 열렬한 마음 이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식하면서 살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심판이 겁이 나서 오늘 주님 앞에 잘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이 오실 그 날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기쁜 날일까 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맺혔던 가슴 아픈 많은 이야기 들을 주님께 토로 할 수 있는 날이고, 주님이 당신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의 흐르는 눈물을 씻겨 주시는 날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바로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 때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보다 훌륭한 대답이 없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가 다른 어떤 마음의 얼룩이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예수를 앙망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10주 교육을 받았지만 10주동안 우리가 얼마나 변화되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방향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재앙입니다. 방향이 올바로 잡히면 조금 속도가 늦거나 혹은 빨리 가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 사모인턴쉽 10주는 여러분들에게 방향을 정해 주웠을 뿐이고 이제 이 방향대로 힘차게 걸어가는 것은 이명희 사모나 김남준 목사의 몫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걸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특히 부교역자로 있는 분들에게는 교회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마다 하나님 앞에 배운 대로 깊이 인내해야 합니다.
(찬양) 뉘게 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인내하면서 기도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그런 방향대로 우리를 가게끔 도와주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 그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전 세계 어디서든지 실시간으로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도하고 또, 그렇게 우리에게 힘을 주는 책들을 읽고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고 성경을 탐구하면서 그런 꿈들을 계속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에는 창대하게 될 수 있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개강 할 때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큰 목회를 하고 싶어 하고 그리고 그런 말을 저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목회에서 성공한 삶을 보면 부럽지 않습니까?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을 추적해 들어가면 꽃길만 걸었던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런 길은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에게 걷게 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그런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지 않고 설령 잠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꽃길이 잠깐 있기 전에 수많은 피 흘리고 살 찢기는 가시 밭 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남이 우리를 바라보는 삶과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아는 내면의 삶은 얼마나 차이가 큰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것들을 모두 극복하고 걸어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10주 동안 배우면서 여러분들은 많은 생각을 하셨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짧은 말로 가슴에 아주 특별한 감명을 줄 때에는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 동안 그 말씀대로 살아온 그런 지나간 날들이 덧붙임이 돼서 그것이 오늘의 말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목회자의 아내로서 혹은 담임 목회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 이 많은 과정들이 결국은 그렇게 미래의 어는 순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감화를 주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오늘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끊임없이 회피하며 꽃밭만 찾는 사람들은 아주 추하게 늙어 갑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으면서 예수를 사랑하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고백을 매일 매일 가지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언젠가는 여러분들은 지금 교육을 받았지만 후일에는 여러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고 배우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까지 우리가 매순간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현재적으로 체험하며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