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및 위원회 연합 새벽기도회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잠 26:16)
녹취자 : 오희열
유독 이 26장에는 게으른 자에 대한 교훈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아마 잠언에 있는 장들 중에 게으른 자의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장이라고 여겨집니다. 나의 친구 마이클 호튼 교수가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언을 읽었지만 잠언 속의 게으름과 자기 사랑에 대한 경고에 대해 그렇게 초점이 맞춰진 성경구절이 많다는 것을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내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를 불현듯 일깨워주기도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도움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나오는 게으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은 아마 지혜자 자신이 씨름했을 것이고 또 자녀를 기르고 신하들을 거느리면서 수없이 느꼈던 그 게으름에 대한 고통스러운 감정이 이렇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자의 일곱 사람의 말보다, 슬기로운 자 일곱 사람의 말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미련한 자는 마음이 항상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열렬하게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섬기는 사람들이 게으른 사람들을 봅니다. 흔히 하게 되는 생각은 저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까 깊이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의외로 자기 생각이 뚜렷하다고 믿고 있고 범사에 비판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게으른 자의 특징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오늘 성경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연히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똑똑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똑똑하고 슬기로운 사람 일곱 명이 논리 정연하게 차근차근히 일의 옳음과 그름, 잘됨과 못 됨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이야기는 상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내용이고 또 설복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그런 일곱 슬기로운 사람들이 하는 사리에 맞는 말보다는 자기가 훨씬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련한 자의 특징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련한 자의 심적인 교만입니다. 인간의 죄의 뿌리가 자기 사랑에 있다고 하지만 교만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자기 사랑이 자기 안에서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의지적으로는 자기 사랑이 죄의 원인이지만 더 깊이 지성적으로는 교만이 그 모든 죄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금하고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금한다고 판단하시는 것보다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만한 마음이 들자 하와의 마음속에 선악과를 따먹을 결단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인간의 죄의 뿌리 속에 있는 교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추출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들은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바꿔 읽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주 앞에 충성된 사람들은 사리에 맞게 말하는 일곱 사람의 지혜로운 말을 자기 생각보다 낫게 여기느니라”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날 동안에 겪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들, 그리고 이제껏 맞이하지 않았던 교회의 상황들을 통해서 예전에 몰랐던 지혜를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와 함께 따라 다니는 것은 악함이고 충성스러운 자와 함께 따라다니는 것은 지혜라고 말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착하고 충성된 종아”, “충성된 자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닫는 마지막 두 번째 중요한 진리는 바로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온갖 악이 생산되는 커다란 공장과 같습니다. 그 공장에서 수많은 제품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창조의 목적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두 가지 극단적인 가르침이 이 사회에 주어집니다. “왜 바보같이 그렇게 사니?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일해라. 경쟁에서 남보다 승리해라.”, 또 한편에서는 소위 요즘 유행하는 ‘휘게’의 논리를 세우면서 “그렇게 살 필요가 뭐가 있느냐? 느릿느릿하게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어떤 것이 우리의 인생에 더 큰 행복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 어느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의 끝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 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우리가 열심히 살고 있는가? 입니다. 인생을 짧고 세월은 물같이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렇게 석 달에 한 번씩 하는 이 특별기도회를 몇 번쯤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세월은 살 같이 빠르게 흘러가고 그 세월의 끝이 어디일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여기 살아있다는 것이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것, 그 은혜로 구속을 받아 그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원과 모든 것들을 한마음으로 한 방향으로 모아 하나님을 향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위해서 매 순간 충성스럽게 산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