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직자 기도회 설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녹취자: 김경애
25년의 세월이 흘렀고 7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다가 교회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간증이 있겠습니까?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고 또 앞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둘째 주부터 시작해서 지난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달 사이에 예배인원이 약 200명이 늘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계속될지 줄어들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한 해를 우리는 좋은 출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침 사경회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또 그 사람들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1년, 2년, 3년 혹은 5년 후에 그 은혜를 받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말씀에 굶주리고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큰 은혜를 받고 완전히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신앙이 더 깊이지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새로운 신앙의 세계를 발견하면서 감동을 받는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저 6개월, 길면 1년, 그렇지 않으면 그 이하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20년 전에 혹은 25년 전에 교회에 와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아직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교회밖에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마음을 다해 주님의 교회를 섬겨 청년들이 중년이 되고 중년들이 노년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분들은 죽을 때까지 열린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차이가 어디에서 옵니까? 그냥 교회에 있기만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어떤 사람은 6개월 혹은 1년 은혜를 받다가 나가떨어지고 다시 옛날처럼 이 교회 저 교회를 돌면서 방황하면서 늙어 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씀의 은혜를 받고 지금도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를 받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이런 놀라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5장에서 시작하셔서 6장, 7장까지 이르기를 실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진정한 성품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되는가? 그래서 이루어지는 미래의 기독교공동체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결론부분에 와서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건축을 몇 번 해봐서 이해를 하지만 지반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에 지반이 물을 많이 먹은 지반이고 밑에 단단하게 건물을 지탱해줄 수 있는 그런 성분이 없다면 할 수 없이 인공적으로 그것을 만듭니다. 그래서 수십 개의 파일을 박아서 그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기초도 하지 않고 집을 지었으니 큰물이 일어나면 그 건물의 높이와는 상관없이 무너지고 말지 않겠느냐 그러나 반석위에 지은 집은 그렇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견고함입니다.
그런 신앙의 견고함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듣고 행하는 자는’ 이라고 나옵니다. 듣는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듣습니다. 살아가는 삶이 너무 곤고 팍팍하니까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교회에 전도 받거나 혹은 마음에 자극이 주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도 받습니다. 그런데 행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감동시켰던 은혜의 경험은 다시 척박한 그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은 길가에 뿌려진 씨 같이 되고 혹은 잠시 싹이 났으나 그러나 곧 마르게 되는 돌짝밭 위에 뿌려져 싹이 난 것과 같고 혹은 이 세상의 재리와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서 자라나지 못하는 가시나무 떨기 속에 뿌려진 씨같이 됩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험도 있고, 감동도 있고, 그리고 무엇인가 깨달음이 있어서 마음에 일시적인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심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즐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에는 부패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로운 자극이 계속되어도 그것을 삶으로 직접 옮기면서 부딪히고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며 자신과 씨름하면서 성화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그 말씀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제가 설교 초창기에 정말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매일 매일 나 자신을 불태우면서 설교했습니다. 얼마나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지 사람들이 설교를 듣다가 기절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 나왔습니다. 회개하다가 기절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모두 지금도 견고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체험의 깊이와 관계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곧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을 닮은 인격체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이것을 마음속에서 깊이 새기면서 주님이 주신 이 놀라운 사랑, 이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옳음을 깨달은 다음에 그 빛을 다른 인간들에게 비추어서 ‘저 인간은 왜 저렇게 밖에 못살까?’ ‘저 인간은 저래서 틀려먹었어?’ ‘저런 인간이 어떻게 교회의 중직이 될 수 있겠어?’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멀잖아?’ ‘탈세하고 욕지거리 하고 부당한 이득이나 구하고 그러다가 또 경찰서 잡혀가고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어?’ 빛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더 많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위대한 힘은 질서가 없는 곳에 진리는 질서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진리의 힘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불행해진 것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정하신 질서를 내 마음 안에서, 삶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질서를 떠났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진리의 말씀에 비춰야할 사람은 제일 먼저 자기 자신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이 그 말씀을 깨달을 때 질서가 없었던 마음에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가 없었던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가 없었던 생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의 힘입니다. 이것은 내가 눈물을 펑펑 쏟았느냐? 설교를 듣다가 졸도를 했느냐?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감동과 함께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한 진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웁니다. 그러면 나는 그 진리의 말씀을 내 마음에 받습니다. 그 말씀이 아프고 쓰리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자기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프고 찔릴 때에는 사실은 한 방울의 눈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진리가 자신 안에 계속 머무는 진리 그 힘으로 무질서하게 살 나를 질서 있게 살도록 만들어주고 무질서하게 생각할 나를 질서 있게 해주는 그 위대한 힘은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으로 다른 인간들을 판단하면서 죄를 짓지 말고 오히려 나 자신에게 적용해서 자기가 깨어지고 그리고 자신이 제법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깨달은 이 진리의 말씀을 보니 내 안에 나의 삶에 무질서한 것이 있었구나! 하며 그 진리의 말씀을 비춰서 바르게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무질서한 자신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그냥 아무데나 옷을 던져서 집어던지고 가방을 집어던지고 라면 먹던 그릇을 그냥 내려놓고 과자부스러기가 있고 과자봉지가 있고 개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놀랍게 변해서 방을 깨끗이 정돈합니다.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지식은 깊어가고 교회의 직분은 올라가는데 삶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완전한 인간은 없겠지만 신앙이 깊어지면서 삶이 질서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변해서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질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하게 되면 모든 생각은 그 사랑을 중심으로 질서가 다시 재편됩니다. 만나야 하니까 시간을 비워야하고, 만나야하니까 돈이 필요하고, 함께 즐거워해야 하니까 미래를 위해서 계획이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저는 올해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 중에 하나님이 주신 올해의 목표라면 뭐하지만 올해에 특별히 마음을 기울여야할 목회가 있는데 그것은 미끄러진 사람들을 붙들어주는 것이다. 왜? 미끄러진 사람들을 돌보는 목회자와 양떼를 돌보는 팀장이나 구역장의 에너지를 수없이 빼앗습니다. 왜? 미끄러졌기 때문에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역이 점점 그런 사람들은 밖으로 밀려납니다. 그래서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집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열렬하게 은혜를 받고 그리고는 미끄러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자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래도 새로 가서 전도하는 사람들보다 그래도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안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다시 일깨워서 다시 예수 믿는 것이 행복한 삶이 되도록 그들을 이끌고 영혼의 변화가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10월, 11월부터 저에게 그런 생각은 안가진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정말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람이 400명, 500명씩 늘어나서 교회가 커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 아직도 하나님을 안 믿고 또 믿어도 안 믿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 많이 불러다가 예수를 믿게 만들고 새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똑같이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사람은 잘 사랑하고 품어 주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듣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더 많이 돌보고 사랑하고 또 깨우쳐 주고 가르쳐 주어서 행하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지만 신앙이라는 것이 반석위에 집을 지은 것 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힘이 언제 강하게 느껴집니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위기를 만났을 때? 아닙니다.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어느 날 의사가 ‘더 이상 치료할 길이 없습니다. 조용히 집에 가서 죽음을 기다리십시오.’ 이런 선고를 받을 때조차도 흔들림이 없이 ‘이제껏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일생동안 얼마나 행복하게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예수를 바라며 살게 해주신 하나님이 감사한가!’ 하면서 일체의 평안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견고히 서있을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서구 사람들이 신앙이 없는 것 같아도 제가 만난 구라파사람들을 보면 이런 점에서 분명합니다. 자신의 마지막 소망이 우리 주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절대적이지는 아니지만 제 느낌에 그 사람들은 신앙이 없는 것 같은데 어려움을 당하면 신앙을 보여주고, 한국 사람들은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어려움을 당하면 신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무슨 차이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냐? 혹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들이냐? 이 차이가 아닙니까? 그래서 신앙이 견고해지는 것은 좋은 목사를 만난다고 신앙이 견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길을 가르쳐줄 뿐입니다. 그리고 돌보아줄 뿐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스스로 은혜를 받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진리를 적용하고 그러면서 보다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에 하나님 앞에 모든 기도의 제목보다도 가장 앞에 놓고 우리가 기도합시다. 그래서 올해는 하나님이 미끄러진 사람들, 교회 안에서 미끄러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미끄러진 사람들, 믿다가 미끄러진 사람들만 말고 안 믿었는데 인생이 미끄러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교회에 보내주셔서 교회에서 돌봄을 받게 해주셔서 그래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사람들이 다시 은혜를 받고 영적인 침체에서 회복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우리 한마음으로 전심으로 같이 기도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