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는 두렵지 않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본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할 때에 지은 대표적인 고난시(苦難時)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마아가에게서 낳은 셋째 아들이었다고 사무엘하 3장 3절이 말합니다. 이복형 암논이 자신의 누이 다말을 욕보이자 그를 죽이고 도망갔다고 사무엘하 13장 2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로 3년의 세월이 흐른 후 신하들의 간청으로 다윗은 마음이 풀려 이 아들을 돌아오게 하였습니다(삼하 14장).
(글나 압살롬은) 아버지의 용서를 반역으로 갚고자 준비하였습니다. 그의 계획은 면밀 주도했습니다.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기 시작했고, 반란을 위해서 아버지에게 충성스럽던 신하들을 포섭하기 시작했습니다(삼하 15:6). 그렇기 때문에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났을 때 다윗은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재를 무릅쓰고 그는 왕궁을 빠져나와 도망쳐야 했고,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이 고난의 때에 다윗을 영적으로 새롭게 해주시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다윗은 순결해졌고, 더 깊은 영적인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편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신자는 두렵지 않다 입니다.
II. 신자는 두렵지 않다
다윗의 이 비탄시가 담대한 선언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시련에 처한 사람의 고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담대한 힘이 전달되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말입니다(시 27:1). 안팎으로 그는 끔찍한 시련(試鍊)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딸이 강간을 당하고, 강간범은 자기 아들이었고, 얼마 후 그 아들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살인범은 자신의 또 다른 아들이었습니다. 그 자식들은 아버지 다윗에게 있는 경건이 손톱만큼도 없는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시인이 밖으로 그 끔찍한 반역을 경험하고, 아마 안으로는 자신이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환란 속에서 자신의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이 비참한 환란에 결코 꺾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A. 빛이심
제일 먼저 여호와가 그의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라고 말입니다. 히브리말로 ‘오르’(or)라고 하는 이 단어는 빛입니다. 이 빛은 성경에 비유적인 의미로 자주 등장하는데 크게 세 가지 용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물리적인 빛입니다.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빛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윤리적인 빛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착한 행실의 빛을 비추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계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이 됩니다.
결국 시인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라고 했던 것은 진리(眞理)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진리이시며 그 하나님이 자신의 어두운 인생길에 빛이 되시고, 자신의 어두운 마음에 광채가 되시니 이런 환란을 만나도 자신은 반드시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다윗도 한때 빛을 잃어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지자 그의 총기는 사라졌고, 끔찍한 간음과 살인의 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끔찍한 비극의 때를 만났지만 그의 마음의 눈은 진리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진리의 빛이시기에 그는 어떠한 시련과 환란을 만나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환란과 시련을 만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또 긴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가 이런 시련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6개월 전만 해도 6개월 후에 우리가 이런 혼란에 빠지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세상만사가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지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그는 자신이 그 모든 시련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니 시인은 이 시련 속에서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혼의 생명을 누렸던 것입니다. 높아졌던 마음은 이 시련을 통해 낮아졌고, 형식적으로 드리던 기도는 가슴을 찢는 간절한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107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고난을 매우 심하게 겪으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주님의 말씀대로’ 직역을 하자면 ‘주의 말씀을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 때문에 자기의 영혼을 살려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고난이 극심한 날에 사람들은 살 용기를 잃어버리고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고난이 극심한 날에 힘쓴 일이 있었으니 이것은 주의 규례를 지키기로 굳게 정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그는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56편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시련은 컸고,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의 시간을 지내고 있었으나 그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빛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요동치 아니하는 것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마음을 집중하고 말씀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 말씀을 통해서 힘을 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주시는 은혜의 힘이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할 능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는 살을 에는 것 같은 이 끔찍한 극도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말년에 다윗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와만이 참 진리이시며 그 진리의 빛 없이 살 수 없는 미천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으니 (그는) 이 진리의 힘으로 환란을 이겼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며 능히 현실을 이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구원이심
두 번째는 하나님이 구원(救援)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라고 노래합니다. 여호와가 자신의 구원이시라는 사실이 그 전대미문의 끔찍한 시련을 통과하는데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의 개념은 구약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밝게 계시가 되는데 크게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육적인 어려움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두 번째로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 속에서 구출해주시는 것을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영원한 형벌을 받을 운명에서 구출해주시는 것을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바로 그 모든 고통의 궁극적인 이유인 죄로부터의 구원임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셨고,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시인의 생애에서 고난의 때가 아주 많았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도망을 다니던 때도 있었고, 밧세바와의 범죄로 그는 가혹하리만치 고통스러운 영혼의 어두운 시기를 지나기도 하였습니다. 또 압살롬의 반란 말고도 다른 반란도 있었습니다. 왕국은 많은 일을 겪었고 그때마다 왕인 다윗은 쉽지 않은 시기들을 지나야 했을 것입니다. 또 그 수많은 전쟁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때의 괴로움을 합쳐도 이때를 능가할 수는 없었으니 반란의 수괴가 자신의 아들이었고, 그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기쁜 소식은 사랑하는 자기 아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비보와 함께 전해졌습니다. 반란이 진압되던 그날 문루에 올라가며 다윗왕은 이제 제왕이 아니라 한 아버지로서 슬피 울었습니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하고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이 고통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여호와가 자신의 구원이시라는 사실을 붙들었고, 이 때문에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 다윗이 이 큰 고난(苦難)을 당했을까요? 그가 당한 이 고난은 강성한 왕국 모두를 동원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고, 왕궁에 쌓여있는 그 수많은 보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통을 겪고 있는 다윗에게 값진 의복과 기름진 밥상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왜 이 큰 고난을 당해야 했을까요? 누구의 죄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징벌이었을까요? 사무엘하 12장 10절에 보면 멀리 볼 때에 이미 밧세바와의 범죄에서 이러한 고난은 예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다윗이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며 자신 모두가 갈려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이 과거의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였다고 해석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리가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멀리는 밧세바와의 범죄에서 이런 불행이 예고되었으나 지금 시인이 겪고 있는 사건은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이라기보다는 이런 시련을 통해 그를 더욱 온전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계시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심지어 삼천 년 후를 살고 있는 우리도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더 큰 뜻이었습니다. 모든 구원 계시의 핵심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6장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그리고 그 소용돌이치는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 구약 시대에 비해 더욱 충만한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을 믿는 자들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을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수들을 용서하셔서 당신의 사랑 안에 살게 하셨습니다. 이는 이 이후로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당신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고난이든 민족의 죄 때문이든, 나의 죄 때문이든 내가 과거에 행한 어떤 일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든, 아니면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위대한 일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단순한 섭리이든 어떤 경우든지 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믿음의 반응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찬양)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그렇게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가치는 평안하게 살 때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큰 시련 속에서 그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놀라운 자산이 되시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러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불행을 넘어서 다른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온종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현재 이탈리아의 사태입니다. 나라가 이 큰 재난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공공연하게 병원에서 75세 이상 넘은 사람들은 그냥 포기하라고 말할 정도라고 하니까 얼마나 큰 불행이겠습니까? 더군다나 이런 선진국들은 대부분이 다 고령 사회입니다. 그래서 죽는 치사율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2%밖에 안 되는데 거의 7%에 육박하는 치사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다시 한번 이런 시련의 날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감격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 25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 히브리서를 받던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고난의 날에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시련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는 구원자이심을 알고 이 믿음으로 시련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C. 생명이심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이 생명(生命)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말입니다. 생명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하임(chaym)이라고 하는 복수형태로 나오는 단어입니다. 신비한 것들을 복수로 사용하는 습관이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뜻입니다. 육체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입니다. 당연히 육체의 생명은 육체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고, 영혼의 생명은 영적으로 살아있게 하는 힘입니다. 모든 절망과 좌절, 낙심과 이에서 비롯되는 모든 비극은 결국은 영혼이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상실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주며 보람 있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인생은 시련을 만났기 때문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려버립니다. 그 차이는 결국은 정신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의 힘은 마음에서 작용하고, 이것은 영혼의 생명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영혼에 있고,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결국은 이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살아있게 하시는 날 동안에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게 하시는 동안에 우리는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힘이 모자라기에 인간은 좌절하여 절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질병이며 창조와 구원의 목적을 따라 살 수 없게끔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에는 하루를 사는 것이 그렇게 많은 에너지가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란을 당할 때 육신은 물론이거니와 정신과 영혼은 막대한 힘을 소진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강하게 먹고 영혼에 더 많은 은혜(恩惠)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 많은 시간을 말씀과 함께 보내고, 간절한 기도 속에서 주님과 교제를 힘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더이상 지탱할 능력이 없을 때 결국은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유익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주님 앞에 용서를 빌고 사랑을 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작은 불이 아니었던 큰불은 없습니다. 불길 같이 타오르는 은혜도 한때에는 작은 불씨와 같은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의 힘으로 환란을 이겨낼 담대한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승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자녀들에게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가 주어지지 않을 때에는 없었던 신비한 힘을 갖게 하십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의 근원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솟아나게 되는데 이게 바로 경건의 비밀입니다. 받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신앙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영혼의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만한 은혜를 구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핍절한 영혼에 생명의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의 능력으로 시인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그 끔찍한 시련의 때를 지납니다. 한때는 범죄자였으나 이 시련을 겪으면서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면서 이 어려운 때를 이기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적용과 결론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시련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는 그런 날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평안한 질서가 흔들릴 때 우리의 믿음은 순전한지 여부를 시험받는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믿음의 순전함을 입증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신비한 은혜의 힘을 (경험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생사 간에 주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부름을 받았으니 그 외에 다른 인생의 길은 없는 것입니다. 불같은 시련 속에서 신앙은 연단을 받고, 이로 말미암아 고귀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 어지러운 현실에 마음의 압박을 과도히 받지 말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마음에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결국은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가장 선하게 갚아주실 것을 믿으며 매 순간 하나님 의지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생활에 힘쓰십시오. 많은 모임이 취소되고 이런 때는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홀로 있어 오락이나 유흥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못 읽었던 경건 서적을 열심히 읽으며 여러분들의 마음을 신령한 양식으로 채우십시오. 꼭 이기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