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의 인간됨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19-22)
녹취자 : 오희열
사도바울은 세 번의 대 전도여행을 하게 됩니다. 세 번째 전도 여행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전도 여행이었습니다. 아마 그는 거기서 순교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그 여행을 모두 마치고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순교하기까지 짧으면 5년, 길면 7년 전의 일일 것입니다. 이 편지는 그보다 더 늦게 쓰여서 아마 순교하기 2년 내지 3년 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로마에 갇혀있었고 디모데가 바울의 옥바라지를 했던 것 같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 사도를 너무 사랑해서 쓸 것을 돕는 일에 헌신하였는데 그 물질을 가지고 에바브로디도가 왔습니다. 그가 질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 소식이 빌립보 교회에 전해졌고 빌립보 교회가 근심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에바브로디도는 근심하는 교인 때문에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처지에서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된 에바브로디도를 빨리 빌립보 교회에 돌려보내면서 편지를 써 준 것입니다. 아마 이 편지는 에바브로디도가 휴대하고 가서 전해주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기 위해서 보내야 할 사람은 디모데이다, 디모데가 너희에게 빨리 가서 너희를 돌봐야 하는데 에바브로디도부터 먼저 보낸다.” 하면서 순교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바울이 디모데의 사람됨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고 있었는지를 엿보게 만드는 대목들이 등장합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0절에 보면,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사람밖에 내게 없음이라” 했습니다. 디모데의 사람됨의 첫 번째 특징은 뜻을 같이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뜻을 같이한다는 것은 바울과 대등한 사역자로서 뜻을 같이한다기보다는 대선배이고 아버지와 같은 사도바울의 뜻을 잘 헤아린다는 뜻일 것입니다. “뜻을 같이하여”는 사도바울 자기 자신이 빌립보 교회가 어떤지 알고 싶은데 내 뜻과 똑같은 뜻을 가지고 빌립보 교회에 가서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은 디모데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디모데는 바울의 뜻을 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우리 교회의 영원한 주인이시고 대제사장이신, 대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뜻을 얼마나 많이 잘 통하며 그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를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디모데가 바울의 그 뜻을 잘 헤아렸던 것처럼 여러분이 담임목사와 어떻게 그 마음을 같이 하고 그 뜻을 잘 헤아렸는가, 그것이 한 사람의 사역자의 인간됨의 표시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결국 이 다음에 목회를 하게 되면 사람들을 데리고 목회를 하게 될 텐데 사람들이 각기 교인들을 떼어 맡아서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마음속에는 어떤 사람이 하는 부서는 근심이 안 되고 잘할 것이라는 마음이 자꾸 들고, 어떤 사람은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왜 나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을까? 왜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의심한다기보다는 염려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디모데와의 사이에서 종이 한 장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뜻을 같이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 편지를 보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누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김성구 이외에 진실하게 생각할 자가 없다.”라고 하면 옆에 있는 오우진 목사나 다른 목사들은 얼마나 썰렁하겠습니까? 이것은 디모데가 얼마나 인정받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자기에게 일을 시킨 지도자인 사도바울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 교인에게도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세밀하게 그들의 목회적인 형편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체험적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너희들을 깊이 생각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림의 작은 조각을 붙이면서 큰 그림을 완성하다 보면, 바울이 보기에 디모데라는 사람은 먼저 자신과 마음이 잘 통해서 거의 분신처럼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하나 나오고, 물론 그 속에 흐르는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교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정확하게 그 교인들을 위해 목회적인 일들을 살필 수 있는 애정과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쪽이 없고 사람에게만 그렇게 하면 아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게 해 주신 것은 우리끼리 즐거움을 누리고 서로 인정받게 하려고 만나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게 하기 위해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는 그런 점에서 빌립보 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목회에 있어서도 기가 막히게 그들의 처한 형편을 알아보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이런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를 죽이듯이 세 번째가 또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 같다가 마지막에 자기의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익의 갈림길에서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아주 짧은 순간에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순간에 자신의 이익이 사역과 충돌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길 때 아주 싸늘하게 돌아설 수 있는 사람, 이것을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되”라고 한 것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제테오”,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 말을 했습니까? 사도바울이 수많은 동역자들을 만나고, 말씀 사역과 목회 사역의 능력이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겠습니까? 그 가운데 별의별 동역자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때 아주 자신 있게 “결국 그들은 잠시 뭉쳤으나 자기 일을 구하는 사람들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고 그와 대조적으로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세 번째로 말하는데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결코 그렇지 않고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복음을 위해서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이 무엇입니까? 이 복음은 구원에 관한 복음이고 모든 사람에게 그 복을 누리게 하는 의미에서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면 이 디모데의 관심은 선생, 스승에게 잘 보여서 후계자가 된다거나 혹은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도록, 구원 얻은 사람들이 그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도록, 그들의 삶이 복음의 정신에 알맞게 질서를 갖추도록, 그들의 모든 섬김이 그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역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수고했기 때문에 자기 이익을 위해서 구하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 번째에는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라고 합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세월이 많이 흘러가도 “어떤 사람”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습니다. 한 20년 후에 우리 모두가 세월이 많이 지났을 때, 나는 그때 여기 있지도 않겠지만 누구에 대해서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한번 본인도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보십시오. 늘 뭔가를 사주면 잘 먹던 사람, 무슨 기회든지 놀 수 있는 찬스를 만들어보려던 사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겠습니까? 아니면 늘 영혼들의 변화를 위해서 눈물 흘리던 사람,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그렇게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사람으로 기억되겠습니까? 그런데 “디모데”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헤아릴 수 없이 지독하게 연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연단은 끊임없는 역경을 만나서 고난을 당하고 그것 때문에 신앙이 성숙하게 되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름다운 말일 수 있지만 디모데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말해서 전쟁에 나가서 싸워야 하는데 등 뒤에는 무거운 짐, 다리에는 모래주머니를 차야 하고, 체력은 약한데 무거운 군장을 지고 다른 사람과는 비교될 수 없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목회”라는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연단입니다.
이 연단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연단이 없는 사람은 연단이 없기 때문에 연단을 안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연단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 연단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 모두가 알 정도로 그렇게 많은 연단을 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특징은,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과 같이 나와 함께”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을 만났지만, 사도바울 자신이 생각할 때 자식과 같은 목회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디모데가 바로 그렇게 자신이 영적으로 낳은 자식처럼 그렇게 아버지에게 함과 같이 사도바울에게 한 것입니다.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의 몸종이 된 것도 아니고 바울이 하수인이 된 것도 아니고 추종자가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영적인 자녀였고 제자였으나 목적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선생님이 추구하는 복음의 시련에 대한 가치가 그리스도 예수로 구원받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합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동일한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자신을 모두 쏟아부으며 그렇게 하나님 앞에 할 수 있었는데, 사도바울은 그것을 회고하기를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과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자기 자신이 열렬한 신앙으로 매일매일 주어지는 이 목회의 과업들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을 섬겨 가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충성스럽게 섬긴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게으르게 섬긴 사람들은 나중에 나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것의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