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이 가장 좋은 재물입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 희생을 드리거든 너희가 열납되도록 드릴찌며”(레22:29)
하나님이 많은 것을 주셨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또 가진 것 없이 가난하고 지위 명예 없이 산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불평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눈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수한 감사, 그리고 감격에 제목들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말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감사의 정을 온 마음에 가득 가지고 있었던 때에는 우리가 반드시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승승장구하던 때문은 아닙니다. 그저 여름날에 심방을 하다가 한 사발의 시원한 냉수만 얻어 마셔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루동안 큰돈 못 벌었어도 안전하게 가장이 집에 들어오면 온 가족이 함께 감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의 생활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가늠하는 훌륭한 시금석이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불만과 그리고 부족에 찬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돌려서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돌려놓으실 때 우리는 생각이 바뀌고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뭐 감사할 제목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만 저는 오늘 크게 세 가지 영역에서 이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늘 피부에 와 닿는 감사의 제목 중에 하나는 우리의 가족들과 관계된 것입니다. 가족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이고 가장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족들간에 누구 한사람이 불행하고 고통 당하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들은 행복할 수 없고 또 아무도 다치고 상한 사람이 없어도 굶기를 밥먹듯 하고 질병에 시달리면 우리의 마음이 평화를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한해동안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속에서 주님이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일년동안 살았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교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어려움을 통해서 또한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들을 많이 체험했고 여러분들 중에 대다수는 먹고 입고 마시는 일에 풍족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적절한 신앙의 절제 속에서 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부족한 것이 없이 한해를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취직을 하지 못해 아우성이고 하던 사업들이 문을 닫고 도산한 일들이 줄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든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지난 한해동안 먹이고 입히고 가족들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나가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늘 공기 속에서 숨쉴 때에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물 속이라도 들어가고 나면 공기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듯이 우리도 늘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은혜 속에서 사니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를 모릅니다. 잠시만 결핍가운데 내동댕이쳐지고 끼니가 없어서 고통 하는 가족들을 대면하는 그 아픔을 겪어보십시오. 참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한해동안에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또 여러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사업이 잘되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더 많은 사업상의 성취를 거두었습니다. 이게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먹고 입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닌 것 같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세밀하게 보살펴주셔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우리들이 살아왔는지를 우리들이 되물어본다면 그것은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혼자서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놓고 참 많이 울었던 날이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주님이 먹여주시는데 왜 우리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먹여주시는 음식을 먹고 힘을 내어서 주께 불순종하면서 살까? 그런데 우리들이 주님께 순종할 때만 먹여주신 것 아니고 주님을 사랑할 때만 입혀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밥 먹고 나가서 힘내서 주님을 거스르고 그 옷 입고 나가서 주님을 반항하면서 살았어도 우리를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도록 먹여주시고 입혀주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이 이 땅에 이렇게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것이 그 신실하심의 증거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우해주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교회 적으로 참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작년 이맘때쯤 되어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땅은 덩그러니 마련해 났지만 그러나 빚 덩어리였고 무너진 공장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되나. 교회는 지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참 지도자로서 저도 어떻게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만 해도 우리가 일년 후에 이렇게 여기서 예배드리고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부족한 것이 없는 깨끗한 비록 공장이지만 이렇게 깨끗이 수리해서 이 속에서 이렇게 평온하게 둥지에 깃든 아기 새들처럼 행복하게 하나님 예배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고 생전 처음 교회라고 옮기도 지어보는 이 상황을 만나서 선배 목사님들의 걱정 어린 충고는 저를 참 새가슴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김 목사, 그저 교인 한 30%정도는 나간다고 생각해. 그리고 밀어붙여. 정말 그럴까?
지혜는 없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일년 후에 이처럼 평온한 곳에 예배드리게 해주셨고 등록하지 않고 다니던 사람들이 거리관계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서 조금 줄었지만 본 교회 등록교인들은 열댓 명 정도 방배동에 남고 모두 함께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새로운 교인들을 보내어주셔서 방배동에서 많이 모였던 때보다 좀 더 모이는 그런 은혜들을 하나님이 베풀어주셨습니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어려움은 모두 사람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게 하는 과정이었고 주님이 우리를 괴롭히시기 위해서 베푸신 난관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는 지난주에 새 가족 환영회를 하면서 어느 지체가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듣고 처음이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아름답게 성도들이 헌신해서 지어놓은 예배당에 아무 것도 희생한 것이 없이 교회에 와서 누리게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또 희생할 기회를 제가 드리지요. 곧 드릴 것입니다. 참 얼마나 감사한지, 자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도 참 주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그것보다도 더 감사한 것은 이 큰 역사를 이루는 과정에서 철새처럼 교회의 전기 줄에 앉았던 교인들이 이제 교회에 처마 끝에 둥지를 튼 참새들처럼 이곳에 자기의 영혼에 깃들 집이라고 하는 의식들을 갖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 저로서는 목회의 큰 축복이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힘에 넘치도록 헌금을 하기도 했고 또 많이 하고 싶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가슴앓이 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당장 달려가서 그 헌금 안 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사연 속에서 우리들을 인도하셔서 견고할 자를 견고하게 세우게 하시고 자기도 상상하지 못했던 헌신을 하게 할 자를 헌신하게 하셔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이전하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깊이 헌신한 평생 기도에 작정은 헌금 못지 않게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아름다운 제사였습니다. 한창 잠이 많은 젊은이들이 새벽잠을 눈을 비비면서 쫓아내며 어두운 길을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와서 새벽기도 드리는 광경을 보면서 제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돈 한푼 학생인 처지에서 내지 못했어도 그렇게 교회와 조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러나 누가 크게 마음상하지 않고 어느 목사님은 공사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사 이 새끼!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김 목사 각오하라고, 망치 들고 쫓아오더라고,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망치 들고 안 쫓아오고 나보고 김 목사 이 새끼라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고 여기서 일하다가 나간 모든 인부들이 그렇게 교회에 대해서 좋은 마음과 감사함을 갖고 자기들은 교회에 안 다녀도 자기들이 사람을 인도해서 교회에 오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열린 교회 가봐라. 왜 내가 지었으니까. 그렇게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참 너무 너무 감사했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나보고 욕한 것이 아니라 제가 등산화 신고 안전모 뒤집어쓰고 마당 한가운데 지휘봉 들고 서서 소리소리 큰소리 치면서 공사하게끔 하나님이 세워주셨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만해도 하품이 나는데 세 번째 또 하나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안에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모든 다른 축복들은 일반적인 섭리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오지만 우리의 영혼의 축복은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영혼에 오셔서 우리를 만져주심으로서 내려주신 축복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과 이 세상에서의 섭리 속에서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혼에 오셔서 직접 만져주실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사실 교회를 짓고 하면서 힘이 조금 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설교 속에서도 느껴졌는지 어떤 사람들은 자꾸 날 만나서 힘들지요 하는데 그게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잘해요 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이제 행정적인 일들을 많이 행정 목사님에게 넘기고 나서 제가 조금 자유로워지니까 힘이 났습니다. 이런 것도 제게 있어서는 한해 동안에 빼놓을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뛰어난 하나님의 은혜는 저와 여러분 각 사람 속에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의 은혜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둠 가운데 회심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 회심의 은혜를 경험하는가 하면 불신자인 상태에서 주님을 영접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뒤로 물러가 미끄러졌던 사람들이 자신의 참 모습을 보면서 새로 일어설 마음의 결심을 다시 갖기도 하였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그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영혼 안에 행하신 놀라운 은혜로운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없고 이일도 안되고 저 일도 안 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이렇게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생각하면서 참 감사하다. 서로 서로 말해주어야 합니다. 야! 너는 얼마나 좋나. 하나님이 그렇게 한해동안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또 한해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목양 받을 교회를 주시고 우리의 영혼이 변화 받도록 만들어주시고 이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감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그런 감사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지 되는가. 오늘 성경을 보니까 “감사의 희생을 드리려거든” 하고 나오니까 그런 감사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희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내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게 있는 것도 주님의 것 같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의 것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게 감사한 마음이 없을 때에는 남이 가진 것도 내 것 같고 하나님이 아직 안 주신 것도 하나님이 불법을 행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는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그리고 주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시기심 같은 것들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지방에 내려가서 세미나를 하면서 어느 목사님을 만났는데 목사님이 경기도에 있는 어느 신학교에 이사님이십니다. 자기네 학교 자랑을 아주 많이 하시면서 신학교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수지가 안 맞는데, 그래서 돈을 물같이 갖다가 들어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 등록금 받아서 계산이 안나오는데 이사회 하면서 학교에 보고를 합니다. 이사님들,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강의동 하나 지어야 되겠습니다. 15억입니다. 같이 있던 어느 장로님이 손을 들면서 총장님 그거 제가 짓지요. 그 다음에 몇 달 모여서 이제는 지어져가고 있는데 강단이 없습니다. 25억입니다. 저 구석에 있던 사람이 주님이 저보고 지으시라고 합니다. 이러면서 학교가 매 학기 운영되어간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데모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들 등록금 걷어야 교수님들 월급밖에 안 되는데,
그분들 중에 어떤 한 분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가 정말 가난하고 고통받았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선하게 인도해주셔서 이만한 기업이라도 가지고 살게 해주셨는지를 생각하면 내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하면서 그분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알거지가 되어서 밥만 먹어도 나는 본전보다는 더 나은 것입니다. 왜 그때는 굶었으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그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원하실 때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예쁘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땅이 없겠습니까, 건물이 없겠습니까, 돈이 없겠습니까?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하나님은 수시로 우리의 마음을 확인 받고 싶어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 삶을 너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계획하고 그리고 한번 큰 뜻을 품어라.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괄목할만하게 일할 수 있도록 그 일에 적합한 삶이 되도록 자기를 준비해봐라 제가 늘 말합니다. 어째든 그렇게 주님 앞에 감사한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희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하지만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은 공부 열심히 하는데 남 주려고 공부해야지 밥 벌어먹으려고 공부하면 안됩니다. 사업을 해도 다 벌어서 다른 사람 퍼줄 생각을 하면서 사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저 나는 밥이나 먹고 그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님의 회사에 한 직원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고용을 창출하고 그 고용관계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 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참 신자가 됨으로서 보여주고 그리고 그 참 사람들이 어떤 세상을 그렇게 보고싶어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런 사랑을 많이 받고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이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재능 좀 바쳤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주일날 돌아갔다가 한 주일 있다가 오지만 한 주간 동안 교역자와 직원들은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한시가 되어야 퇴근하는 교역자들이 허다하고 직원들도 8-9시까지 근무하는 직원들이 꼭 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근무하는 것입니다. 절대 직원이 많지 않습니다. 손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틈나는 대로 성도들이 좀 많이 섬겨주면 직원이 좀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그 재능을 하나님 앞에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 기뻐하십니다. 디자인 잘 하는 사람들 제발 좀 가서 거들어주십시오. 그리고 기계라도 만질 줄 아는 사람들은 가서 좀 거들어주고 힘이 좀 넉넉한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밥 판이라도 좀 날라주고 시간이 남고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며칠에 한번이라도 와서 마당이라도 한번 쓸어주면 정말 좋겠습니다.
모두들 요즘은 바쁘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시간을 교회에 와서 쓰레질하고 뭐 하는 것 가지고 충성을 재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다 원거리에 있고 시대가 다릅니다. 그래서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의 충성심은 교회를 중심으로 얼마나 모이는가에 달렸다기보다는 각자 내던져진 삶의 자리에서 주일날 예배를 통해 만난 하나님을 붙들고 진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의롭게 신앙의 양심을 따라서 주 뜻이 이루어지리라 외치며 사는 독수리와 같은 그런 삶, 그것을 통해서 충성이 입증이 되는 시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쁘고 그런 사람이 교회에 와서 엎드려 봉사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모두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힘닿는 대로 재능과 그런 것으로 섬겨주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그런 종 된 섬김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화장실 좀 가서 쓰레기통도 좀 비워주고 세면대도 좀 닦아주고 하는 이런 보이지 않는 구석을 스스로 섬기는 이런 섬김, 꼭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이 있는 사람들은 좀 많이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샘물교회 개척했는데 얼마나 교인들이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한사람도 목사님, 돈도 없는데 왜 빚까지 얻어서 남의 교회 개척해줍니까? 정말 그런 식으로 할 것입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헌금은 많이 못했지만 그러나 그 교회에 많이 퍼주기를 원했고 그리고 잘 세워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시지만 힘에 넘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눈물로 그 교회를 위해서 빌어주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믿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내년에도 교회를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말씀드리지만 여러분들 중에 2-300명이 따라나가도 저 전혀 여러분들에게 앙심을 품거나 섭섭해하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리를 비워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계속해서 전래가 되면 어떻습니까? 모르는 교회도 세워주고 얼굴 한번 안본 교회도 개척해주는데 그래서 사역자들마다 나가서 그렇게 수많은 동리에 가서 우물을 파고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돈이 필요합니다. 이번 샘물 교회 하나 서는데 1억이 들어갔습니다. 내달에도 돈만 있으면 하고 싶습니다. 나갈 사람도 있습니다. 개척한번 시켜주면 할만한 교역자들 우리 교회에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목이 많은 사람들은 물질도 하나님 앞에 많이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두 종류의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돈이 없기 때문에 많이 바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섬기고, 돈은 많지만 하나님 사랑하지 않아서 거의 안 바치는 사람도 섬겨서 변화 받을 때까지 봉사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도 변화되면 하나님 앞에 많이 바칠 것입니다. 그런 물질적인 면에서 실행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삶에 있어서도 희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교회 지체들 가운데는 화요일 날 여리고 전도 한번하고 나면 하루동안 누어서 끙끙 앓아야 하는 연약한 지체들도 있습니다. 토요일 하루 전도 나오고 토요일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리 보존하고 누워야지 만 겨우 주일 예배에 나오는 그런 지체들도 있습니다. 누가 시켰습니까? 누가 강요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각자를 강권하니까 주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있어서 강요하는 사람 없고 따지는 사람 없지만 주님 앞에 자기를 그렇게 드리지 않고는 살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육신적인 건강도 주님을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새벽기도회에 안 나오는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오려면 참 힘이 듭니다. 자려고만 하면 작정서 쓴 게 생각이 납니다. 그거 왜 썼을까? 그래도 나옵니다. 충성! 그리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셨던 희생을 우리의 희생의 실천을 통해서 배워 가는 것입니다. 이게 참 신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이 세상에서 그냥 구름 위를 떠가는 것처럼 신앙생활 하게끔 하나님이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연단 하십니다. 그냥 무릎에 관절염이 생기도록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십니다. 회심하지 못한 영혼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나 같은 죄인이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을 때 내 안에서 주님이 얼마나 슬퍼하셨을지 깨닫게도 하십니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지체를 위해서 물질적으로 많이 희생하면서 비로소 나를 위해서 자기를 다 허비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의 마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많이 바치면서 살아야 합니다. 희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희생의 고통이 따를 때마다 항상 영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하나님이나를 사랑하시면서 이 세상에 자기의 죄 때문에 고통받다가 쓰러질 인생을 예수 위해서 희생하게 하실까? 예수님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니, 예수님 때문에 내가 괴로움을 당할 수 있다니, 예수님 때문에 내가 부자인데도 가난해질 수 있다니 이게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 은혜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감사의 제목들이 많으니 희생하며 사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하던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 희생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열납되도록 드릴지니라”입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리고 만약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의 제사, 혹은 감사의 희생을 바친다면 너희의 용납됨을 인하여 제사할지니라”
여기서 우리들은 제사에 관한 구약 속에 흐르는 두드러지게 붉어진 사상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물과 제사자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하는 제사 제도 속에 흐르는 일관된 신앙사상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여러분들이 아벨과 가인이 각각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인은 땅에 곡식으로, 아벨은 양으로, 짐승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성경을 기록하셨는가 하면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제물이 열납되지 않은 것은 제사자를 열납하실 마음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성경은 아벨의 제물과 아벨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제물과 가인은 열납하지 않으신지라 기록하지 않고 반대로 아벨, 가인이라는 사람을 먼저 거론하고 이어서 그의 바친 제물을 거론하시는 것일까요? 왜 그런 것 같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엇으로 제사를 드리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입니다. 이게 구약 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흘러나오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신약까지 이어집니다.
예를 들자면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들자면 노아의 홍수 사건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노아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성경은 그 제사의 향기를 여호와께서 흠향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가 싫으셨다면 그 향기를 흠향하셨을 리가 있겠습니까?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아 하나님을 제사했던 아브라함은 그 단에서 항상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축복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피해를 주시는 분입니까, 고기에 굶주리신 분입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그가 무슨 고기, 무슨 피로 당신께 제사를 드리는가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 아브라함이 당신의 마음에 어떤 사람인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에 합하여 그 제사를 드릴 때마다 흠향하셨던 경험도 있고 거절하셨던 경험도 있는 사람이 다윗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하고 충성스러운 우리아까지 살해한 후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됩니다. “다윗의 소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하니라” 그러한 하나님의 평가가 있고 나서 다윗은 시편 속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기뻐하셨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제사 드리는 다윗이 전에는 하나님 마음에 기쁨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에 그의 드리는 제사도 하나님이 거절하신 경험을 뼈아프게 다윗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계속 대 선지서와 소 선지서를 타고 그리고 계속 흘러갑니다.
이사야에 와서는 이유 없이 짐승의 목을 꺾고 아무 의미 없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쌓여 가는 진노를 말함으로서 제사제도에 참여함으로 오히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간다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약으로 이어지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제사가 성취된 후에는 성취는 되었지만 그 제사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이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 혹은 영적 제사니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능도 좋고 건강도 좋고 물질도 좋고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비교될 수 없이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제물이 있는데 그것은 변화된 여러분 자신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을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내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어떻게 불법과 불의를 일삼던 사람이 공의를 사랑하게 됩니까? 무자비하고 자신의 행복밖에 모르던 강포한 사람이 변하여 불쌍한 사람을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알고 가난한 자들을 보고 아파할 줄 알며 그들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기까지 그들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교만 충만하던 사람들이 성령 충만해져서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오, 예수 죽인 죄인이나 하나님이 용서해주신 사람이라는 고백을 가지고 이 세상에 수많은 인생의 목표와 아름다운 꿈 접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까? 주님 만나고 정말 변화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한해동안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원하셨습니까?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이 세상에 보화들을 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정말 원하셨던 것은 여러분들 자신입니다. 우리들이 참 신자가 되어야지 만 주님이 이 세상에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가지셨던 그 목적을 따라서 사람답게 살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목표는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진실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이유는 이 세상이 정말 세상답게 되기 위해서 우리들이 그렇게 참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변화된 성도만 있으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것입니다. 설마 주님이 물질이 없으시고 짐승들이 없어서 우리에게 제물과 헌물을 요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솔로몬의 창고에 있는 아름다운 보화보다도 더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님을 만나고 깊이 변화되어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밖에 몰랐던 영혼들이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전부인 줄 알고 자나깨나 생각이라고는 자기의 행복, 그리고 이 세상에 행복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 거기에서 돌이켜 서서 깊이 깨달으면서 정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변화된 사람들을 보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성악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든 악기 중에서 사람의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악기는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모든 목소리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소수의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인간 자체가 아름다운 악기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저것 제물을 말하지만 하나님 보실 때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물은 그 사람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시면 그 사람이 똥을 퍼도 똥통 보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안 기뻐하시면 그 사람이 선교를 해도 그 현장 보시면서 마음 아파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비전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 사람되는 것이 교회의 가장 큰 비전입니다. 여러분, 돈이 들어갑니까? 뭐가 들어갑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음을 달라고 그러십니다. 정말 우리들이 새사람이 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마음을 한 주일에도 몇 번씩 느낍니다. 그런 날은 별로 없지만 어떤 날은 힘들어서 하는 것 없이 빈둥빈둥 지내도 그렇게 고단하고 쓰러질 것 같이 힘든 날이 있고 어떤 날은 계산을 해보면 하루에 설교를 8시간 한 날도 있습니다. 그래도 정신이 쇠락하고 기쁩니다. 왜 영혼이 변화되는 것만 보면 그렇게 행복하고 기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이 드는데 여러분들의 영혼의 주인이신 주님이 보실 때 여러분들이 정말 많이 변화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정말 기쁨을 이기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옛날에 교회가 아직 작았을 때 제가 부산에 있는 어느 교회에 집회를 나갔습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외부에서 온 강사 목사님들을 화려하지는 않지만 예절바르게 대접하는지 제가 참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무개 교회의 담임목사인데 이제 다음주에 열린 교회 김 목사님이 자기네 교회에 집회를 오는데 준비 때문에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었다며 질문하는 게 무엇인가 하면 목사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시는가? 그랬더니 나에게 물어봤으면 나는 중식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을 텐데, 그 자매가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뭐라고 했는가 하면 목사님, 우리 목사님은 그런 데 관심이 없고- 사실 그런데 관심도 있는데 -우리 목사님의 양식은 말씀 전할 때 영혼들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그냥 전화기를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근거 없는 무한한 감동에 사로잡히셨습니다. 이미 벌써 광고 시간에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교인이 반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설교자가 가기 전에 교인들이 마음을 다 열고 기다렸습니다.
사실은 그 마음이 제 마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정말 우리 같은 인간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주시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주시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주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고 주님이 안 가지고 계신 것 중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면 없는 자를 있게 하실 수도 있고 있는 자를 없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조달하실 수 없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조달하시지 않습니다. 죄인들의 돌이키는 마음과 신자의 부지런한 자기 부인의 삶, 그리고 하나님 앞에 끊임없는 자기 깨어짐 이것은 하나님 혼자 하시지 않으려고 이미 작정하신 일입니다.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할 힘을 주시고 깨트려지려는 사람들에게 깨어짐을 주시며 하나님 앞에 돌이킬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이킬 능력을 주십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런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에 눈떴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변화되지 않는 우리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는지 그리고 변화된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가슴에 새기면서 하나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것이 모든 희생과 제사에 선행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추수 감사절에 아름다운 곡식과 그리고 감사 헌금을 드리는 것도 주님 앞에 참 고귀하지만 한번 우리 자신의 열매는 어떻습니까?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일년동안 마음도 지키지 못하고 불순종과 그리고 흐트러짐 속에서 경건의 세계도 무너진 채 살아감으로 들 포도만 잔뜩 맺힌 삶으로 헌금 봉투 하나 들고 여기에 나온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주님의 마음에 최고의 기쁨은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한시간만이라도 눈을 떠서 여러분 자신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알기만 한다면 여러분들은 결코 막 살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희생하는 삶을 살고 그래서 그 희생과 사랑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주님을 닮아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마음이 든든하고 기쁘고 주님이 내 이름을 너무 사랑하셔서 욥처럼 사단에게조차도 자랑하고 싶을 정도의 그런 사랑스런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모시고 사는 그곳이 하늘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에 때는 마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한 포도를 추수하기 직전에 계절과 같습니다. 이틀만 더 남극에 햇볕을 주셔서 그 포도를 무르익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처럼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을 하나님이 그 남극의 햇살과 같은 하나님의 영혼의 은혜를 여러분 모두에게 베풀어주셔서 잘 익은 극상품 포도처럼 그렇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었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