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에게 보이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녹취자: 이새봄
I. 본문해설
알다시피 예레미아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눈물로 예언한 선지자였습니다. 시시각각 나라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던 때 나라가 망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사람들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받지 않습니다. 방향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큰일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길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기 마련입니다.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으니 예레미아의 마음은 정말 불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 예레미아를 불쌍히 여기면서 하나님께서 여전히 전하지도 못할 말씀을 예레미아에게 주십니다. 그 말씀이 바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시도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레미아에게 부탁한 것이 바로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행하시는 하나님’,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은 하고 계시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데, 우리가 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이미 이 일을 만들고 계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새 많은 사람이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였다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당연한 줄 알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때에도 하나님은 서서히 간섭하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하나님이 누구에게 보이냐 하면은 그 고난의 때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레미아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뭐냐 하면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부르짖으라”, “응답할 것이다”, “보이리라”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카라(קָרָא)’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들을 수 있도록 이렇게 소리를 내어서 진짜로 부르짖는 것을 가리킵니다. 속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들리게끔 그렇게 크게 부르짖는 것, 비명 같은 거를 지를 때도 이런 말을 사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르짖는다’ 라고 하는 이것은 항상 마음에 커다란 열정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이렇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이런 말씀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시편에도 많이 나오잖습니까? 그것은 뭐냐 하면 그냥 소리를 내라는 게 아니라 더 큰 열정을 가지고 나를 찾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은 바로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특별한 어려움의 때에는 더 특별한 기도의 열정이 요구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없지만은, 특별히 기도를 온 마음을 쏟아서 기도해야 할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만났을 때 그때의 평소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르짖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특별한 때에 특별한 기도의 열정을 가져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목회? 항상 기도해야 되는 때지, 기도해야 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없습니다. 신앙생활? 기도 안 해도 되는 때, 기도가 필요 없는 때, 그런 때 없습니다. 늘 기도해야 되는 때입니다. 그런데 부인할 수 없이 ‘아 이때는 내가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쏟아서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때구나’ 하는 그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거를 못 느낀 사람은 눈이 먼 사역자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못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엄마가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은 애가 늘 이렇게 칭칭 거리는 거지, 근데 어떤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아 큰일 났구나, 얘가 많이 아프구나.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뛰잖습니까? 아니 그 정도 감각도 없으면은 애기를 못 키웁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이게 평범한 때인지 아니면 매우 특별하게 내가 기도를 쏟아 부어야 되는 때인지 그거를 감각이 오지 않습니까? 그것이 교회의 행사를 따라서만 오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들 평안하게 지내고 그리고 혼자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되는 그런 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기도해야 될 때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거기서 마음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문제는 기도가 될 때까지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찾아도 해결이 안 되는데 기도하면 놀랍게 하나님이 이미 앞서서 일하고 계셨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봐라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항상 한 학기가, 여름 한 학기가 이제 3월, 4월, 5월, 6월에서 이제 끝납니다. 끝나고 나면, 끝나자마자 이제 여름 성경학교 계획이 들어갑니다. 근데 항상 그때가 되면은 이 정신과 몸이 초긴장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박희천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3월, 4월, 5월, 6월에 씨를 뿌리고 이렇게 했다가, 그래서 여름 수련회 때 추수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9월, 10월, 11월 동안 추수한 거를 상하지 않게 잘 보존했다가 창고에서 꺼내서 그 다음 부서로 올려 보낸다, 그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1년 장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이 수확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애들이 회심하고 예수를 믿어야 되겠는데 그게 내 힘으로 되느냐구요. 늘 주일학교를 위해서 기도하지, 교역자인데 뭐 안 하겠습니까? 그렇지만은 그거 가지고 안 되잖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끝나고 나서 일주일 금식기도 들어가는 겁니다. 거기서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항상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겠다.’는. 그때가 사실은, 그때부터 저는 회심 집회를 경험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은혜를 받고 그리고 아이들이 변화되면은 그 다음에 9월부터는 착실하게 심방을 하면서 아이들을 잘 돌봐서 내년에 올려 보내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사역을, 사역만이 아니라 여러분 개인의 영적 생활이나 미래의 진로나 아니면 뭐든 것 있잖습니까? 이게 그런 것들을 놓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서 간절히 부르짖어서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은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건 기도 같은 걸 하는 사람을 별로 못 봤습니다. 오죽했으면 나 안수 받을 때 안수 위원들이 안수를 하면서 그 안수 받으러 온 사람들 등짝을 막 때리더라고, 이제 저 저기서는 안 들리고 여기 강대 안에서는 들리게, “이 사람들아 울어라 울어 오늘이 무슨 날이냐, 네가 십자가 지러 가는 날이다. 눈물도 안 나냐, 이 사람들아.” 그러면서 감정을 가지고 등을 때리더라고. 왜 그렇습니까? 평소 산만큼 사는 거지 이게 무슨 목사가 된다고 무슨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거에 관심 없으십니다. 사람이 얼마나 변해 가느냐는 겁니다. 특별한 때가 언제인 줄 알고 부르짖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성품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성품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는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다.” 그게 아니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개인적인 문제라는 걸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네가 내게 기도하면, 부르짖으면, 나는 네게 응답하겠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흥회를 해도 모든 사람이 은혜 받습디까? 옆에 있는 사람은 생애적인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도 옆에 있는 사람은 깊은 근심 속에 잠들다가 돌아갑니다. 이거는 단순히 말의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의 어떠함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절히 부르짖어 응답하는 사람에게, 부르짖는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알 수 있는 응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눈물로 기도했는데 응답을 받고 돌아오는 그 순간의 그 감격은, 그거는 대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진짜 자기가 너무너무 사랑하던 사람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응답을 받은 것에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충만한 기쁨이 막 그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 속에서 사람들이 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라는 말 전혀 안 믿었습니다. 지금도 별로 그렇게 신뢰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신대원 3학년 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진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으름』에다가도, 『다시 게으름』에다도 썼지만은 진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총신 채플실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면 한 시간 반, 길면은 두 시간 반 온몸이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기도했을까, 어느 날이었습니다. 날짜는 특정할 수 없는데, 간절히 기도했는데 제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이렇게 말씀이 생각난 게 아니라 주님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함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겠노라” 그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없었고 그 이전에도 없었습니다. 딱 그거였습니다.
뭘 인도하신다는 건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집은 지금 쫓겨나게 됐지, 생활비는 전혀 없어서 그렇게 굶을 정도의 상황까지 됐지, 영양실조로 세 번씩이나 쓰러졌지, 아기는 아프지, 최루탄은 계속 쏟아져 들어오지, 뭘 인도하신다는 건지 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 그 이후로부터 기도하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을 계기로 모든 염려가 싹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의 눈물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서러워서 울었는데 그 이후로는 편안합니다. 마치 배를 타고 지나가는 걸 비유하자면, 요동치고 풍랑 이는 바다를 지나가다가 그 파도가 모두 그치고 잔잔한 강물 위를 큰 배가 지나가 가는 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여보 너무 근심하지 마.” 어느 때처럼 정말 많이 걱정할 때였습니다. “근심하지 마.” “왜?” “응답 받았어?” “응, 응답 받았어.” “뭐라 그러셔?” “글자도 안 틀리는 건데, 음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겠노라,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게 뭔데?” “나도 모르지. 그런데 다만 그 사실 하나만을, 그 사실 하난데, 그게 뭔지는 모르지.” 근데 쏟아져 들어오는 거는 뭐냐 하면 말할 수 없는 평강입니다. 그래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그리고도 매일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 장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다 리노베이, 리모델링했지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낡은 의자에 앉아서 나무 냄새, 들려오는 저 창 밖의 동네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 계속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게 언제였냐면 7월, 그렇게 기도한 게... 어쨌든 그 기도를 하고 한 달 뒤쯤 내수동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이 전도사님 집에 한번 심방 간답니다.” 목사님이 그런 심방 안 하시는 분인데. 그래서 심방을 하고 그 다음 주, 그 다음 달에 교역자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시나 보구나’, 했는데, 그러고 나서 8월 달에 그러고 나서, 2월 달에 교수로 임명이 됐습니다. 그리고 교수로 임명이 되고 나서 바로 그 같은 달에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월세 집으로 다시 들어가고. 그러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나는 그때의 응답의 효력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확실한 거 하나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확신을 주셔야 됩니다. 놀라운 평화,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는 평화, 그걸 주시는 겁니다. 응답입니다. 이게. 그것입니다. 이런 간증을 강영안 교수님이 장로님으로 계신 교회에 가서 했더니 인터넷에다가, 이 저기 뭐야, 신사도 운동하는 사람 아니냐고. 예, 신앙에 그런 신비가 있는 겁니다. 그런 세계에 한 번 여행을 해보십시오. 뭐 그런 여행을 한 게 저는 한두 번은 아니지만 그때는 너무 특별했기 때문에. 근데 하나님이 간절한 기도 치고 고통 가운데에 몰아넣지 않은 채 그런 기도를 드리게 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모든 게 그 고통에서. 진짜 죽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응답을 해주시더라고요. 여러분 부르짖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보여주시리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네게 보이리라” 그랬습니다. 뭘 보여준다는 것입니까? 성경에 의하면은 아주 형용사가 많이 붙었습니다. “일을 보여주리라” 했는데 이 ‘일’은 말씀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겁니다. 어쨌든 ‘일’인데 그 일이 뭐냐 하면은, 은밀한 일이다, 근데 큰일이다, 근데 네가 알지 못하는 일이다, 세 개나 붙었습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씩 생각해 봅시다. 자, 네가 알지 못하는, 여기서 알지 못한다는 건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너 수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네가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하는 일을 내가 응답과 함께 너에게 보여주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뭐겠습니까? 이게 뭐겠습니까? 이게 이스라엘의 망국의 비전입니다. 망국의 비전. 말이 안 되는 거 같죠? 망국과 비전이 어떻게 함께 갈 수 있겠느냐. 근데 그게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망한다, 남왕국 이스라엘. 그러니까 북왕국은 이미 망했고 남왕국 유다가, 전체를 이스라엘이라고 그러잖습니까? 남왕국 유다는 망한다, 망하는데 그 망하는 것과 함께 그냥 망하는 게 아니라 아주 놀라운 비전이 나타납니다. 그게 바로 새 언약의 비전이고 그게 바로 영적인 이스라엘의 비전입니다. 그거를 이 환란을 통하지 않고는 이 하나님이 보여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근데 그거를 역사에 전개되어도 의미를 아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그 일을, 그런 비전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그 일이 어떤 일이냐 하면 크고 은밀한 일이다. 아주 큰일이라는 것은 이게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밀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제껏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왔던 일이다, 이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시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건 응답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응답과 함께, 응답과 함께 하나님이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이 아무도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예레미아에게 깨닫게 하신 것이 뭐냐 하면, 예레미아는 처음에 나라가 망하면 망한다, 이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깊이 울부짖으면서 깨닫고 나보니까 하나님이 보이는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당하게 하시는 그것이 오히려 더 큰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나타나는 사인이었다는 사실을 후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다 망한 다음에 노래하잖습니까.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니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그러면서 결국은 육적인 이스라엘의 껍질을 깨고 부활하는 영적인 왕국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의 말씀을 자기가 전한 말씀을 통해서 구약 여호와의 종교에서 신약의 예수의 종교로 넘어가는 그 가교를 놓은 사람이 바로 이 예레미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비전이 무엇이라고 묻는데 비전이 두 가지입니다. 자기 암시적인 비전이 있고 계시적인 비전이 있습니다. 야곱이 형들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되겠다, 형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되겠다, 이런 거는 자기 암시적인 비전이고 하나님이 요셉을, 요셉을 해와 달과 열한별이 되게 하겠다, 그 마음을 품은 것은 계시적인 비전입니다. 계시적인 비전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에게 나타나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암시적인 비전은 탐욕을 따르게 하지만 계시적인 비전은 성결을 따르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걱정으로 세월을 보내지 마십시오.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부르짖으라, 응답하리라, 보여주리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