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응답
녹취자 : 오희열
마지막 순서로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분이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또 여러분 자신의 더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질문 : 학교에 들어와서 계속 고민하던 부분, 그리고 너무나 고민이 심각하고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목회와 관련된 부분이어서, 아까 두 번째 말씀해주신 지식과 총명이라는 것, 이런 부분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학교에 들어오면서 제 역할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역할은 제가 스스로 믿고 깨우치는 게 아니라 제 주변의 사람들을 믿고 깨우치게 해 줘야 한다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가 사역자로서가 아니더라도 제 동역자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4,5,60대의 남자들 중에서 많은 퍼센티지가 갖고 있는 신앙의 문제점들이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인데, 거기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아까 지식과 총명에서 말씀해 주실 때 신앙을 갖고 나서 다시 거기서 실족하게 되었을 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지식과 총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동의를 하고 저 부분은 정말 굉장히 큰 부분으로 제 가슴 속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칼빈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신 이성과 오성의 관계가 바로 저런 것이구나, 사물과 사물들 간의 합리적인 관계에 대한 사실을 내가 깨우치는 것이 오성이고 이 총명의 관계를 가짐으로써 이 지성과 지식의 부분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려주는 역할이 중요한 부분이겠구나, 그래서 그 부분을 가지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하고 계속해서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기로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처음에 말씀하신 믿음을 통해서, 본질적인 믿음을 통해서 다시 지식과 총명이 더해졌을 때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부분이 4,5,60대가 제일 이해하지 못하는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4,5,60대에 실족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한 솔루션이 뭘까 너무 고민을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혹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목사님 : 저는 목회를 했기 때문에, 그 질문에 대해서 저는 교회 바깥에 있는 교수의 입장이 아니라 여러분처럼 같이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나는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이 기독교 신앙은 좋은 인문학적인 토양을 가지고 있으면 이 기독교 신앙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사실 한국의 형편으로 보면 인문학이 이제는 장사해먹는 수단정도로 떨어지고 이미 인문학은 외면당한지 오래고 학교의 철학과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면 솔루션이 뭐냐고 할 때, 나는 한 주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1년, 2년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인문학적인 마인드가 생겨나게 만드는 것이 설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행복한 것이 무엇이냐고 이야기하는데, 예수 충만, 성령 충만, 은혜 충만, 교회 봉사, 헌신, 선교, 이렇게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리끼리는 다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쪽 언어가 아닙니다. 개토화된 언어입니다. 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왜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교회에 새로운 사람을 많이 전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기독교 안에서 닳고 단 사람들의 언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면 이 자리가 이방인의 자리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고민을 기독교의 메시지 속에서 풀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솔루션은, 목회자가 그런 현실만을 고민하지 말고, 그 현실을 아무리 고민해봐야 현신은 현실이기 때문에 자신은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자신이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문학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기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라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 그런 주제들의 문제를 쭉 제기하고, 그것이 문학이 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역사입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판단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철학입니다. 그 위에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가르쳐주어서 그것이 설득될 때 자기의 인간으로서의 고민을 해결하는 빛이 들어오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설교의 선례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설교에 관심이 없고 150년 이내에 출판된 설교는 읽지 않는다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나도 모르게 표절할 수 있게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현재로 볼 때는 매우 약합니다.
미국의 설교자들 가운데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이 있는데 한국에는 약합니다. 결국 그런 고민들을 스스로 풀어내야 합니다. 목회의 목표는 마지막에 Christian thinker를 만드는 것입니다. Christian thinker를 만드는 것입니다. 당연히 거기에서 그런 설교 속에서 철학적인 고민들을 녹여내어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스스로 도키마조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게 만들고 진리 앞에서 서는 것을 노예처럼 취급하는 자기 상사 같은 사람에 의해서 감시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진리의 힘을 느끼며 거기에 속박 받는 삶을 사는 것만큼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그런 고민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설교해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질문 : 제가 스스로 했던 고민은 저한테 그 상황을 어떻게 벗어났느냐, 또는 벗어나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치열한 싸움을 통해서 하고 있고 일부는 해왔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인문학적인 토양이나 다른 방향의 이야기들은, 사실 저희 같은 신학생도 그렇게 되는 것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일반 성도들이 과연 목사님이 말씀하신 사항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Christian thinker가 될 수 있는 정도의, 칼빈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티쳐 버블리스를 가질 수 있는, 그 고요한 좌소 속에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목사님 :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의하면 “모든 살아있는 사람은 철학자다.”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네들이 “야, 우리 이렇게 이렇게 하면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는데 우리 이렇게 해보자.” 했더니, 할머니 한 분이, “에이, 그건 아니지,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한다면 이건 확실한 철학자입니다. 철학자로서 그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철학을 공부해서 철학자들과 철학적인 담론을 하는 thinker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무엇에도 쫄지 않는 주체로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확고하게 자기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 학문관, 모든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그 관점을 갖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관점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성경적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관점에서 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것으로서 창조와 타락과 회복과 구속과 완성을 바라보면서 내가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인간을 생각해야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늙음에 관해서 제가 최근에 설교를 했는데 조회 수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성경에서 늙음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옛날 사람들은 늙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서양의 늙는다는 관점과 동양의 늙는다는 관점은 어떻게 다른가? 키케로 같은 사람은 노년의 책에서 늙음의 가장 큰 유익은 젊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지금 시대에는 무시를 당합니다. 젊으면 무조건 갑질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것은 왜 그렇게 바뀌었는가? 그런 고민들은 모든 사람이 다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의 전체적인 그림을 이 안에서 알고 있는 가운데 설교하는 것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성경의 한 구절을 끄집어내서 강요하듯이 설교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설득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목회자의 교양의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해 보니까 불가능하지 않고 됩니다. 제가 쓴 책 가운데 가장 어려운 책이라고 소문난 책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라는 철학적 신학의 책으로 신학생도 읽다가 집어던지는 책이라고 하는데 우리교회에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권사님께 심방을 가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물었더니 철학적 신학 시리즈,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에 관해서 읽고 있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영어 천지입니다. 설교한 적은 있지만 교인들에게 읽으라고 권하지도 않았습니다. “권사님, 그 책을 읽으십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거기 못 알아들을 말이 어디있습니까? 목사님이 늘 하는 이야긴데, 저는 여섯 번째 읽고 있습니다. 각주까지 읽고 있습니다.” 하셨습니다. 그 책이 궁금하시면 한 번 알아보고 여기 계신 분들 수 만큼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목회를 해 보니까 모든 사람에게 다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선생님도 아실 것입니다. 더글라서 스위니 교수가 와서 강의를 했는데 그때 주제가 wisdom에 관한 것으로 철학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 교수는 너무 어려운 강의를 교인들에게 한 것 같다고 강의를 마치면서 몸 둘 바를 몰랐는데 나이든 권사님들은 강의를 듣고 나오면서 “저 교수님은 이상하십니다. 너무 평범한 이야기를 하시고는 왜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고 그렇게 미안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다 알아듣는 이야기이고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셨습니다.
세계관이라는 것은 세계관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와서 가르친다고 세계관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세계관은 설교 속에 녹아나서 목회자의 삶을 보고 일관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구나, 하는 관점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속에 심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질문 : 저는 짧은 코멘트인데, 시작하실 때부터 철학과 시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의 전공은 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전공이 사회학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교수님의 추천으로 (녹음음질이 안 좋아 들리지 않습니다)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철학교수님이 저를 뜯어 말리셨습니다. 시는 환상을 좇는 것이고 우리가 하는 철학은 진실을 좇는 것인데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면 네가 찢어져서 없어질 것이라고 영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철학을 배울 때, 사람이 자기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철학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 삶에서 여유가 없어졌을 때 그 말 그대로 철학을 때려치고 시 때려치고 잃어버렸던 믿음을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되돌아보면 아직 제가 더 깊이 파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데 기독교철학을 보면 철학가들의 말을 굉장히 많이 인용합니다. 저는 철학을 했던 시절을 계속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이 리듬이 없었을 때 성경은 제게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는 롤모델, 그 캐릭터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고 그 사람을 닮고 싶다고 느껴서 결국 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으로 mdb를 하고 교회사역을 해봤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집중하자, 이 신학이라는 공부를 내려놓으면 다시 제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뚜껑 있는 데서 뚜껑 없는 데서와 같이 똑같이 못한 사람이 다시 될 수 있겠다, 한 때는 떳떳한 점이 있었는데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저는 계속 갈구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계속 하고 이것이 저를 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르게, 하나님 눈에 덜 부끄럽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저에게는 계속 이 신학이라는 학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시점에 와야, 제가 어떤 면이 모자라서인지, 하나님에 관한 사랑이 모자라서인지,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상담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신학을 공부한다면 그것과는 다른 이유일까 궁금합니다.
목사님 :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부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영문학자이고 수필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영어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미국에 한 발짝도 안 나갔을 때인데 고3 올라갈 때 워싱턴 타임즈, 뉴스위크지, 타임지 등을 거의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무신론자였습니다. 문제는 신학공부를 맨 처음에 하고 나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크고 교회를 섬기는 것인지 공부를 하는 것인지 두 사이에 갈등이 너무 컸고 나 같은 경우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4년 학부를 했기 때문에 항상 시간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돌아보아도 더 이상 열심히 살 수 없을 정도로 하면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런 고민은 신대원을 가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이야기할 때 형편이 허락되면 1학년부터 3학년 까지는 교회에 무보수로 봉사하고, 그 대신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일 권하고 싶은 종류의 섬김은 교사를 하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이나 목사님이 절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은, 담임 목사님이 내일이라도 당장 전도사로 쓰고 싶은 그런 교사가 되고, 무보수로 일하면서 최대한 공부에 전념하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우면 1학년, 2학년까지라도 무보수로 봉사하면서 최대한 공부에 전념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에 말씀드리자면, 언젠가는 사역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필요한 것은 공부의 양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practical theology를 계속 해야 하는데, 자기가 훈련받지 않고는 결코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 3학년쯤 된 후에는 본격적으로 학업과 목회를 병행하고 졸업한 후에는 목회에 무게중심을 실으면서 몸을 던져 열심히 사역하되 공부를 절대 놓지 말고, 그렇게 하면서 계속해서 탐구하면서 교회에 봉사하는데, 그런 가운데 오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다 신앙으로 녹여내면서 사역을 해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확실하게 병행했습니다. 너무나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말리셨고 그런 것이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연단이 된 것 같습니다.
질문 : 목사님의 인터뷰들을 쭉 봤는데 제가 거기서 캐치하지 못한 것 위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질문이 많은데 대답하실 수 있는 만큼만 대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은 굉장히 많은 책을 읽으신 것 같습니다. 성경 이외에 매일 조금씩 읽으면서 묵상하는 것이 있다면 세 권 정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성경 이외에 내가 세 권의 책을 무인도에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실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또 하나는 목회자로서 오랫동안 경험이 있으시고 많은 교훈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사역자가 될 사람들에게 너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하는 세 가지를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사역자들에게 설교를 많이 하셨는데 내 생애의 마지막 설교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어떤 본문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실지 궁금합니다.
목사님 : 마지막 설교를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올 5월에 제가 묻힐 묘지를 마련했습니다. 사실 제가 가려고 한 것은 아니고 우리 할머니와 아버지가 믿고 돌아가셨는데 선산에 잘 묻히셨는데 도시개발이 되면서 납골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 찾아가기가 싫어서 송길원 목사님이 하시는 하이패밀리의 양지바른 곳에 잔디장으로 묻어드렸는데 나도 그 옆에 묻혀야지 하면서 형제들, 식구들꺼를 계약해서 자녀들까지 한꺼번에 했습니다. 묘비에 뭘 새길 거냐고 해서 나는 “주의 말씀은 고난 중에 나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나이다.” 라는 시편의 말씀을 거기에 적어놓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게 된다면 진리가 어떻게 나를 살렸는지, 당신들도 그 진리를 따라 사는 것만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설교할 것 같습니다. 계획은 서 있습니다. 저도 선배 목사님께 배웠는데, 유언을 남길 때 내가 죽는 즉시 금고의 서류봉투를 뜯어보라고 했는데 돌아가시자마자 자녀들이 그걸 열어보니까 추도예배 식순, 설교자, 기도자, 성경본문, 설교제목까지 다 써놓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저도 아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목회자들에게 뭘 말하고 싶으냐고 했는데, 저는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에서 다 이야기했습니다. 어저께는 사실 이 자리에 횃불회 학생 두 사람이 왔습니다. 176명이 응모해서 열네 명이 되었으니까, 횃불 트리니티에서 두 학생이 상을 받아서 상패 하나씩 드리고 점심 같이 먹고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자네 정말 그길을 가려나”에서 얘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을 하자면, 제일 먼저 육체적인 준비를 하라. 목회를 잘 하고 설교의 능력이 있는 것은 다 빌려서 쓸 수 있습니다. 돈은 은행에서 빌리면 되고, 저는 노트북도 안 쓰는 것 아십니까? 쓰려면 쓸 수 있는데 안 씁니다. 왜? 다른 사람 시키면 됩니다. 내가 원고를 쓰고 이걸 타이핑 하라고 하면 되고, 제가 한참 창작력이 뛰어날 때는 3일에 한 권씩 신학책을 썼는데, 그때는 제가 타법이 따라갈 수 없어서, 내가 쓸 책의 목차를 잘 정하고 생각을 한 후에 기도원에 갈 때 부목사님 한 사람이 따라갑니다. 나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눈을 지긋이 감고 내가 불러주는 대로 타이핑 치라고 하면 3일 만에 원고지 1050매를 씁니다. 내가 하면 못합니다. 빌려쓸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단연코 우리나라에서 가장 하이테크한 영상 테크놀리지를 자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직원이 수십 명 되는 교회와 비교하면 장비도 비교가 안 되지만 그러나 우리 수준에서는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을 가지고 영상선교를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따가 제가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다 빌려 쓸 수 있는데 못 빌려쓰는 게 있습니다. 건강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목사님이 한두 달 아프면 보약을 사오고 뭘 끓여서 옵니다. 그런데 한 1년쯤 아프면 ‘저분이 언제쯤 나가실까? 어디 좋은 목사님 없나? 얼마나 돈을 드리면 나갈까?’ 합니다. 그래서 건강은 빌려 쓸 수 없습니다. 반드시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젊으실 때, 변호사님도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열심히 헬스를 하십시오. 그리고 더 젊으신 분들게 말씀드리고 싶은데, 여성분들도 가벼운 운동을 하지 마시고 과격한 격투기나 권투, 레슬링, 이런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셔셔 특수부대 출신까지는 못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과 맞짱을 떠서 세 명 정도는 순식간에 눕힐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자기방어능력, 공격능력을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신 죽을 때까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현저히 차이가 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많이 해야 하는데 저는 그것을 잘 못했습니다. 지금 후회가 많이 됩니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 그것과 함께 육체와 순결을 이야기했는데 성적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문율이 되었고 서로 기분나빠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것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아킬레스건입니다. 아무리 용사라도 그 발목의 힘줄을 끊어버리면 말도 못하고 걸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너무 관용스러운 분위기가 되어서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 어제 우리 집사람과도 차 타고 가면서 이야기했는데 작가의 아내로서 가장 괴로웠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라는 책을 1999년도쯤 냈는데, 저는 외부전화를 거의 안 받습니다. 총장님이야 이 번호를 가지고 계시니까 우리는 직통하는 사이지만, 거의 받지 않습니다. 목회 윤리적으로도 남의 교인들과 통화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일체 받지 않습니다. 정 필요하면 비서실 통해서 하게 합니다. 비서실을 통해서 우리 집 전화를 알아내서 우리 집사람에게 전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지금으로 보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건강에 해로웠습니다. 목회자 사모에게서 들어오는 상담들이 대부분 남편 목사의 성적불결이었습니다. 입에도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현실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육체가 건강하고 순결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성경과 학문입니다. 지적인 준비입니다. 육체적인 준비, 지성적인 준비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성경읽기야말로 모든 신학의 지름길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성경을 꾸준히 읽는 것, 당연히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 이 세 가지는 필수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대로 하려면 해야 합니다. 아직 젊으신 분들은 그 까짓거 각오하고 마음먹고 덤벼 들어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누워서 히브리어 성경을 주루룩 읽을 정도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지만 번역을 놓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찾아낼 수 있을 정도는 공부해야 합니다. 나같은 사람도 하는데, 제가 신대원 다닐 때 히브리어 스투트가르텐시아 비블리아 스투트가르테시아 3분의 2 패싱하면서 읽었습니다. 너무 바빠서 완독은 못했지만 말입니다. 아람어도 혼자 독학으로 다 했습니다.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신학책을 읽어야 하는데 원리는 이것입니다. 제일 가운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파문처럼 바깥으로 나갑니다. 제일 가까운 곳이 신학책입니다. 언어부터 시작해서 신학책, 조직신학, 역사신학, 성경신학, 실천신학, 그 테두리 가지고는 안 되니까 역사, 철학, 과학, 음악, 예술같은 인문학분야, 더 나아가서는 전문적인 분야로 물리학 같은 것들을 더 많이 공부하면서 나아가고 건축학, 법학, 신학에 있어서도 법학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존 오웬 목사님도 법학자였습니다. 칼빈도 법학자였습니다. 올랑대학에도 법학공부를 하러 갔고 거기서 알타치아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새로운 법에 대한 이론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법적 사고가 새로운 신학적 사고에 눈을 뜨게 하는 한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학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분을 모셔놓고 법학총론이라도 들어보시면 좋습니다. 설교할 때 법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학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공부할 분야가 어마어마하게 넓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놀 때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고3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고3은 여학생을 만나고 싶어도 대학가서, 어디 뭐 먹으러 가고 싶어도 대학가서, 놀러가고 싶어도 대학가면,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항상 그런 고3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지금은 안 하는데 몇 년 전까지는 제 트레이드마크가 책이 잔뜩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한 다섯 권 정도 놓고 다녔습니다. 항상 읽는 책입니다. 부지런히 학문을 공부해야 합니다. 제발 신학책만 읽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방학 때 같은 때는 아주 절호의 기회입니다. 신학공부는 학기 중에 하고 방학 때는 신학책과 일반책을 쌓아놓고, 우리 아들에게는 방학 석 달 동안 신학서적과 인문학 서적과 역사서적 100권을 쌓아놓고 읽어내려는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읽으면 하루에 열 권 정도는 읽을 수 있습니다. 심하게 두꺼운 책은 아니고 요정도의 책은 열 권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김용옥씨도 하루에 열 권 읽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식의 세계를 계속 넓혀가야 합니다.
육체적 준비, 지성적 준비, 세 번째 인격적 준비입니다. 끊임없이 깨어지면서, 회개하고 새로워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못된 성질머리도 좀 죽이고 자기 맘대로 하던 것도 버려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덕적도라는 섬에 가서 두어 달 동안 공부한 적이 있는데, 시골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 부자가 코 뚫지 않은 송아지 하나를 감당 못한다.” 그 집에 송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코 뚫으러 가야하는데 농사일이 바빠서 시간을 놓쳤습니다. 그동안 송아지가 커버렸습니다. 막상 코를 뚫으러 가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이놈을 잡고 가는데 덩치가 커서 산으로 올라가니까 사람들이 딸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격적으로 성화되지 않은 목회자는 코 뚫지 않은 송아지입니다. 말씀에 코를 뚫고 오면 온순합니다. 툭 치면 코가 아파서 따라옵니다. 그렇게 인격적으로 성화되어 가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인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그리스도를 많이 닮은 것입니다. 로버트 맥체인은 스물여덟 살 쯤에 죽은 아까운 사람인데, 설교하러 올라가기 전에 온 교인이 흐느껴 울었다고 합니다. 그 얼굴에서 찬란한 빛이 나는데 하나님 앞에 서 있다가 온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 있다가 온 분에게서 저렇게 광채가 나면 진짜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얼마나 거룩하신 분일까 생각하면서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정도까지는 못 되더라도 냄새나는 그리스도인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적인 준비입니다.
네 번째는 정서적인 준비입니다.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사회에서 분식집이라도 해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 굽히지 않는 열정이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내가 빗나간 열정을 조심하라고 하면서 열정주의와 싸웠습니다. 지금은 빗나간 것이라도 보고 싶은데 빗나간 열정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것처럼 맥아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교역자라고 기껏 들어와서 6개월, 1년 하고나서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하고, 메뚜기 뛰어다니듯이 이 교회에서 1년, 저 교회에서 1년, 하면서 목회자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갈 때 기도 많이 하고 가고, 갈 때 하나님께서 “떠나라!”하는 확실한 응답을 받고 떠나야지 그 사람이 담임목사가 된 후에도 쉽게 사표내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한 번 목회자가 되면 “날 잡아 잡수시오.”하는 마음으로 엎드려서 한 곳에서 충성할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한 교회에서 7년, 다른 교회에서 8년 있었습니다. 두 교회에서 밖에 전도사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갈 때 확실하게 인도를 받았고, 떠날 때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가라.”하셔 갔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교회에서 28년째 목회를 하는데 저는 그만두고 싶은 날이 없었겠습니까? 많았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모릅니다. 내가 늘 행복하게 목회하는 줄 알겁니다. 개뿔. “내가 어디 가면 이 정도 대접을 못 받을까? 나는 학교에서도 환영하고 어디서든지 오라고 하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 이렇게 기가 죽어서 죄도 짓지 않은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가?” 모세의 탄식이 저절로 나옵니다. “내가 저들을 낳았습니까?, 내가 이 사람들 엄마입니까? 왜 자꾸 나보고만 죽으라고 하십니까?”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지금은 너무 감사하고 제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영적인 준비입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역사를 보면 테리미팅이라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모임입니다. 신학공부를 다 마친 사람들이 목회자로 바로 가지 않고 산속이나 수양관에 모여 테리미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실 때까지 기다린다, 그것이 나를 본격적으로 목회자로 보내시는 사인이다.” 그러면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의 경건이나 신앙의 표준을 동료들을 보고 잡을 것이 아니라, 우리 학교 다닐 때도 신학생인데 맨날 에로영화나 보러 다니고 맥주집이나 다니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사람들이 뭘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뷔페에 가서 무순을 먹어보면 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씹어보면 무맛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지금 신학생 때인데 이렇게 잘근잘근 씹어보면 성숙한 목회자의 맛이 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이 다음에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여러분의 기를 죽이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한 학기 끝나면 항상 일주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봄학기 끝나면 여름성경학교가 기다리고 있고 가을학기 끝나면 신년도 목회 계획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산에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금식하면서 “이번 여름 성경학교에서 하나님이 큰 복을 부어주십시오.” 하면서 가정사들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사역 아니겠습니까? 겨울에는 “신년도 계획에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셔야 합니다.” 하면서 일주일 금식기도하는데 그때 은혜를 많이 주셔서 영혼의 묵은 때를 빨래하듯이 털어냈습니다. 새로운 영적인 힘을 받아서 내려옵니다. 요즘은 수양관에 누어서 TV나 보려고 하지 가서 기도도 하지 않고, 한 번 올라가면 열두 시간씩 기도하고 성경 말고 다른 책은 들고 가지 말고 성경 딱 한 권 들고 옷가지 들고 가서 기도하지 않으면 성경읽고 그렇지 않으면 자든지 셋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매달려서 일주일 동안 묵은 때를 털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신학생들이 저 때에는 많았습니다. 지금은 볼 수가 없습니다. 열정이 없는 것입니다.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요한에게 임하니라”했는데, 히브리어로 “(히브리어 45:58)” 그 기사가 구약의 선지서에 나오는 선지자의 소명기사와 똑같은 패턴입니다. 선지자가 나올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미가에게 임하니라.”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구약의 똑같은 패턴입니다. 세례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말이 아주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과 모든 정신이 하나님께 헌신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은 사라지고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에 불붙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의 소명의 광경을 보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소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숯불로 입을 지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별되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준비, 크게 육체적인 준비, 지성적인 준비, 인격적인 준비, 정서적인 준비, 영적인 준비를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첫 번째는 성경 이외에 매일 펴 놓고 묵상하는 책이 있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거스틴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120번 정도 읽었습니다. 거의 외웠습니다.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라는 책이 그 소산물인데 저는 항상 집중적으로 애독하는 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신학자들을 관통하면서 그 사람이 쓴 지상의 모든 것들을 읽는다는 목표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사람들이 칼빈,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초대교회의 교부 마지막이었던 어거스틴, 이런 것들이 저의 신학 사상을 형성하는 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인도에 가게 되면 무슨 책을 가져갈까? 성경은 확실하게 가져갈 것이고, 그 다음 확실하게 어거스틴의 책을 가져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재밌는 것이, 요즘 파스칼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파스칼은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발명에 재능이 있어서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잭키도 파스칼의 원리이고 노선버스 하는 것도 파스칼이 파리에서 제일 먼저 만든 것입니다. 예전에는 모두 개인마차를 타거나 걸어 다녔는데 공용 마차제를 만들어서 몇 시 몇 분에 어디에 도착하니까 탈 사람은 각자 와서 타고 요금은 얼마를 내라, 이것을 만든 사람이 파스칼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파스칼은 17세기 사람인데 아버지가 세무법원장이었습니다. 파스칼의 아버지는 매일 고생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는데 그 이유가 세금을 잘못 계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스칼이 19세 때쯤에 아버지가 너무 딱해서 계산기를 만듭니다. 수동식 계산기였습니다. 덧셈, 곱셈, 나눗셈, 뺄셈이 되는 기계를 만든 것입니다. 얼마나 특허권이 많았겠습니까?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평생 혼자 살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자기도 몸이 아픈데 가난한 고아들을 집으로 데려다 놓고 돌보면서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이들을 서포트 할 수 있는 돈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가세가 기울어서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책을 내다가 팝니다. 끝까지 팔지 않은 책이 두 권이었는데 성경과 어거스틴의 책입니다. 저는 파스칼의 팡세에 대해서 12월에 김영사에서 출간하기로 해서 집필을 하려고 자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읽어보십시오. 굉장히 놀라운 인물입니다. 제가 세 권까지는 모르겠고 두 권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또 질문 있으십니까?
질문 : 첫 사랑을 말씀하셨고, 목회는 사랑을 풍부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아침에 오는 당일인줄 알고 질문을 올렸습니다. 맨 처음 전도지에 어떤 말씀을 위주로 전도지에 수록하셨고 전도를 하셨는지, 28년 전에는 전도사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그 교회에서 하셨을 것이고 열린교회에 왔을 때는 그 전도지에 어떤 말씀과 어떤 식으로 전도를 하셨는지 첫 번째 질문을 드리고, 두 번째는 설교말씀을 준비하다가 요즘 메시지를 듣다보면 레마의 말씀이라는 이야기를 목사님들이 하시면 제가 들어가면 저에게 주는 말씀이라고 하고 어떤 교인이 들어오면 그 사람에게 주는 말씀이라고 하실 때 대처하시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교지로 말씀선포를 하시고자 할 때 몇 날 며칠을 준비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준비하신 그 말씀을 그대로 하시는지, 아니면 그 레마의 말씀을 그대로 하는지, 목회의 방향을 어떤 설교를 하는지, 제가 조그만 입당교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바로 이 시점에서 여쭤보는 것입니다. 오늘 꼭 이곳에서 정말 와보고 싶다는 열망,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저에게 책도 안 주셔서 말씀드렸더니 책을 갖다 주셨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책도 권유하셨습니다. 저의 삶을, 그리고 저의 부모님의 삶을, 5월달에 저도 장지를 그렇게 해 드렸고, 죽어서 나는 어떻게 유언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던 그 책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를 쓰고 어제 사고가 났는데도 야간 응급실까지 왔는데도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처음 전도사님 하실 때 어떤 말씀으로 어떻게 전도를 하셨는지, 전도지에는 어떤 말씀을 수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목사님 : 전도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면, 열린교회를 개척하고 만든 전도지를 최초로 제가 만들었는데, 저는 전도문구가 이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기독교에서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열린교회에서 끝납니다.” (구할 수 없습니까?, 도서관에 자료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원조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기독교에서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열린교회에서 끝납니다.” 그랬고, 두 번째는 레마 말씀하셨는데, 이것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로고스와 레마를 나누어서 로고스는 누워있는 객관적인 말씀이고 레마는 살아서 내 마음에 역사하는 것이라는 것은 아주 주관적인 성경해석이고, 성경신학적으로 지지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이 선도적으로 그 말씀을 도입하셔서 로고스와 레마를 갈라서 말씀하시면서 로고는 별 볼일 없는 것이고 레마를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똑같은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로도 쓰이고 로고스로도 쓰였는데, 결국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역사하심으로 자기가 받는 감화, 그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지, 로고스와 레마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설교준비에 대해서는,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열린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6800회를 설교했습니다.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서는 훨씬 많이 했습니다. 지금 갈수록 설교 횟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설교를 쏟아냈는데 모두 녹취로 풀려있는 것을 잠시 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갈수록 설교를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 그것은 아마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느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설교가 착상에 떠오르고 원고를 작성하면 제 설교 원고는 풀 스크립트가 아니라 요지를 적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길어집니다. 두 칼럼 정도의 길이로 작성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프롬프터 스피치를 넣어서 즉석에서 설교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설교 한 편을 준비하는데, 많은 경우에는 프레임을 열일곱 번까지 교정했습니다. 보통은 일곱 번에서 열 번 정도 교정을 하고 시간으로서는, 어떤 설교는 한 20시간 걸리고 어떤 설교는 열 시간 정도 걸립니다. 한 편 준비하는 데 열 시간은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질문 : (녹음 음질이 좋지 않아 녹취가 어려웠습니다) 저희가 횃불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레마 말씀을 하실 때 속으로 뜨끔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찬수 목사님이나 ... 주일설교에서 레마의 말씀을 많이 사용하시... 저희 학교의 특징 중에 하나가 학부가 없는 비슷한 배경에 있는 합신이나 아신... 최근에 아사밤 책도 내시고 북콘서트로 성도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위로하시는데 세월호 사건이나 코로나를 통해서 ... 그런 개인적인 우울감이나... 목회를 하시면서도 연구나 출간을 중단하시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목사님 :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면, 신학공부에 있어서 개별성과 보편성의 문제와 관련된 질문이라고 봅니다. 신학공부를 할 때는 모두가 자신의 신학적인 입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감리교에서 자랐으면 감리교 신앙고백을 토대로 신학을 시작합니다. 당연히 감리교를 나온 사람은 감리교 신학교를 갈 것입니다. 부득이하게 감리교 신학교를 못 같다고 할지라도 감정적으로 감리교 신학에 대해서 배타적인 학교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수용해주는 학교를 갈 것입니다. 어쨌든 신학을 시작할 때는 자기 신앙고백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장로교 신자는 장로교 신학에서 출발하고 감리교 신자는 감리교 신학에서 출발하고, 감리교 신자에게는 조나단 에드워즈보다는 웨슬리가 중요한 인물일 것입니다. 오순절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또 다를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의 개별성이라고 합니다. 개별적으로 자기가 각기 다른 터전 위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여기서 포물선을 그리는 방식으로 신학을 해야 합니다. 나는 여기서 장로교 신학을 했으니까 여기서 장로교 신학이 뭔지만 배우고 끝내야겠다고 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매우 논쟁적인 사람이 되거나 우물 안에 갖힌 사람이 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장로교 신앙을 토대로 신학을 시작했지만 신학교 입학하기 전에 박형룡 박사 전집을 읽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시작해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이렇게 넘어가야 합니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마지막에는 역사적으로 보면 성경이지만 속사도 교부들까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포물선에 걸리는 것이 어디입니까? 속사도 교부들, 초대교회 교부들, 그 다음으로 초대교회 교부들 끝에 중세로 넘어가는 그 마지막 지점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있고, 그 이전에는 테르툴리아누스나 이레나이우스 같은 사람이 있고 중세신학으로 들어가면서 라틴 교부들과 동방교부들로 갈라지게 되고, 중세신학자들이 나오고 실질적으로 다메세코스의 요하누스 같은 사람에게서 동방교회의 신학은 끝나지만 초기에는 동방신학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신학이 깊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밟고 중세신학을 가고 중세신학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르네상스가 일어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종교개혁 시대 때의 신학자들이 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 등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이후에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나오면서 종교개혁자들이 그렸던 굵은 선들을 미세하게 그리면서 이성의 시대가 오게 되고, 계몽주의가 도래하게 되고 계몽주의 하에서도 어떻게 하든지 몸부림치면서 싸우려고 했던 기독교 사상가들이 있었고 그 시대를 지나가면서 그 다음 18세기, 19세기 자유주의 시대가 오고, 현대로 넘어옵니다. 이런 것을 포물선을 그리면서 지나가면서 초대교부들부터 시작해서 다시 거꾸로 읽어 나오는 것입니다.
한 때 제가 중세교부들, 중세 신학자들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배우면서 학교 다닐 때는 다 쓰레기라고 배웠데 쓰레기가 아니라 엄청난 사상들이 그 안에 있고 사실 저는 중세 신학이 없었더라면 과연 종교개혁이 가능했을까에 대해서 의심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1975년도, 60년대까지만 해도 이것을 다 디스크럽트, 끊어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대는 중세와 단절되고 중세는 르네상스, 종교개혁과 단절되고, 종교개혁은 그 이후 17세기 신학과 단절되고, 17세기 이후의 신학은 19세기 신학과 단절되었다고 배웠는데 좀더 들어가 공부하고 멀러 교수와 친근하게 지내고 우리 교회에도 여러 번 오셨고, 정말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에 있어서는 금자탑을 쌓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하버드에서 두 번 콜링을 받으셨는데 안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랬냐고 했더니 모든 자료가 여기에 다 있고 자유롭게 칼빈주의와 정통신학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교회적인 입지와 여건들이 너무 좋아서 굳이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어떻든 간에 굉장하신 분이고 그의 대작인 PRRD, Post 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라고 하는데 불후의 명서입니다. 그것을 보면서도 저는 새롭게 17세기 신학에 대해서 눈을 뜰 수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논의들이 이루어집니다. 개신교도인 것이 자랑스러워질 정도로 세계 전체를 끌어안은 웅장한 신학들을 구사해나갑니다.
그런데 데카르트 이성주의의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마스트리 스트리 같은 사람들이 싸우며 폭론은 했을지 모르지만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또 다른 여러 가지 반성을 하게 하는데, 그렇게 하면서 신학에 대해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한 번 갈 때는 이렇게 가고, 이 입장을 유지하면서 하게 되고 여기서 다시 공부하면서 오게 되면 자기가 출발한 지점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감리교 신학을 하지만 어디까지 장로교 신학을 용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감리교에 서 있지만 이런 것은 내가 양보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이런 판단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포물선을 그리지 않은 사람들은 같이 데려다 놓으면 쌈박질만 합니다. 그러나 포물선을 그린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비블리컬 에큐메니즘의 마인드가 생겨납니다. 근본적인 조항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더라도 비근본적인 조항에 대해서는 폭넓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같은 사람을 우리는 외골수처럼 각인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굉장히 폭넓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총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칼빈은 자신의 칼빈주의 5대주의, 그것도 칼빈이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멀러 교수님이 오셔서 강의하실 때 그 질문을 했더니 “Don’t plant tulip in your reformed God.”이라고 했습니다. 웃지 않으시는 것 보니 맥락을 이해 못하시는 것 같은데, 튤립 아실 것입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 Total Depravity로 시작해서 성도의 견인까지, 칼빈의 금과옥조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후대의 해석이고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네덜란드에 가서 학회에 참석했을 때 거기 한 교수가 나와서 Irresistible Grace에 대해서 지금 사람들이 이해하는 의미로 칼빈이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자신은 hesitate 하겠다고 했습니다. Irresistible 이라는 의미를 현대의 칼빈주의자들은 너무 강압적인 결정론주의로 해석하는데, 그 사람들이 hesitate 한다는 것은 deny 한다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훨씬 폭넓은 이해를 갖게 되는데 확실한 사실 하나는 자기 것을 공부하는 사람은 사실 자기 것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자기의 고유한 것을 알지, 자기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은 자기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해야 할 양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겸손해지지 않습니까?
거의 대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분만 더 질문해주십시오. 네, 장로님.
질문 : 현실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양상들이 있지만 한국교회의 난맥상들을 많이들 걱정하고 어디서부터 이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궁금합니다. 난맥상에 대해서 거의 동의는 하실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해법에 대해서는 정말 너무 많은 주장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여러 가지, 제가 아까 말씀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한국 교회의 수많은 목사님들, 그리고 목사님이 되실 전도사님들이 모두 김목사님 같은 분이 되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그렇게 많은 묵상, 이해를 하고 또 그렇게 많은 저서를 낼 수 있는 분은 특별한 부르심이고 특별한 달란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하셨고 많은 생각을 하시고 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교회의 문제에 대한 목사님 나름대로의 진단을 말씀해주시고 나라면 이런 식으로 풀어야겠다는 개인적인 의견일지라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장마가 져서 강이 단절되었다고 합시다. 다리가 끊어지고 토사가 쓸려 내려가서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이 끊어졌습니다. 어쨌든 다리는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 무너진 둑 위에 서서 물은 철철 넘쳐 흐르고 다리는 다 끊어져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도대체 뭐가 문제냐? 하면서 거기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한심해 보이는 것 같아도 거기에 큰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 먼저 해야할 일입니다. 언젠가는 장마물도 줄어들 것이고 밑에부터 돌이 차야 사람이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라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난맥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난맥상이 없었던 교회의 시대가 언제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 이후의 교회들의 전형적인 표준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성령 충만하고 사랑 충만했던 공동체이지만 거기에서도 과부들을 돕는 문제들을 비롯해서 헌금 사기치는 문제, 신비주의가 들어와서 교회를 더럽히는 이야기까지 다 나옵니다. 해 아래 있는 교회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30년 전의 교회가 순수했다고 이야기하는데 30년 전에도 사기꾼 많았고 그 때는 30년 전을 회상하면서 그때는 순교도 불사했는데 요즘 목사들은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고 했고, 일제 강점기로 가보면 더 이야기를 거슬러서 초대교회 때 제사지낸다고 순교하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변절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죽을 때 까지 계속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의 문제, 교회의 문제를 생각하는 문제의식과 함께 내가 있는 이 교회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헌신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거스틴을 읽어보면 어거스틴의 교회의 개념 가운데 Totus christus 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영어로는 Whole Christ입니다. 그 교리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형식적으로 교회에 들어온 모든 사람을 예수의 몸이라고 여기는 사상입니다. 제가 갖는 하나의 불편한 느낌은,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아주 criticize 를 많이 합니다. 비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애정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게 나는 역설적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비록 교회가 어느 한 부분을 잘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치 자신의 몸의 상처를 대하는 것처럼 대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은 다 나았는데 30년 동안 무좀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여름에는 좀 없어지는 것 같다가 겨울이며 다시 성이 나서 무좀이 발목까지 올라옵니다. 무슨 약을 발라도 낫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좋은 약이 나와서 완치가 되었는데 병원에 가도 특별한 게 없고 마늘 삶은 물에 넣어봐라, 잉크를 발라봐라, 별의 별 짓을 해도 낫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번도 제 발가락을 도끼로 잘라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내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교회를 비판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놈의 것, 그냥 도끼로 잘라 내버리면 깨끗해질 텐데...” 그것을 잘라내면 또 다른 것들이 생겨납니다. 어디는 안 그렇습니까? 미국교회의 분열사를 보십시오. 프리스턴에서 갈라져 나와서 학교가 나왔을 때 15년 동안 안 갈라지면 우리도 좇아가겠다는 목회자들이 많았다고 했는데 15년 못 되어 또 갈라졌습니다. 해 아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물론 진지하게 연구하고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의사가 무좀 난 발가락을 보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요즘은 좋은 약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 번만 바르면 낫는 약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어차피 자기 혼자서는 전 세계의 교회를 교치지 못합니다. 이 평촌 구석에 앉아서 피를 토하듯이 이야기해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맡고 있는 교회에서 자기가 염려하는 문제가 최대한 없고, 온전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 모든 교회들을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장학금과 도시락을 들고 어떤 학교를 찾아갔더니 그 학교에서 하는 말이, “아니, 목사님은 칼빈주의자인데”, 저는 칼빈주의자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릴벡 총장이 왔을 때도 “나는 누군가가 나중에 내가 누구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칼비니스트라고 기억되고 싶지 않다.”, “그러면 누구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칼빈을 좋아하지만 칼비니스트라고 불리기 싫고 어거스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천국에 가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우리 할머니와 어거스틴 밖에 없다고 하지만, 어거스티니안 김남준이라는 호칭을 원하지 않는다. 에드워즈를 내가 너무나 좋아했고 그의 전집을 두 권 빼고 다 읽었지만 에드워지안이라고 불리를 원하지 않는다. 오웬을 너무나 좋아하고 오죽했으면 존 오웬이 우리 담임목사님이고 나는 부목사라고 생각하며 사역해왔지만 나는 오웨니안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그러면 뭘로 불려지고 싶은가?”, “김남준, 나에게 있어서 존 오웬이나 조나단 에드워즈나, 칼빈은 내가 김남준이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김남준으로 죽는 것이지, 천국에서 무슨 알미니우스주의자, 칼빈주의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학교 목사님이, “칼비니스트인 목사님께서 이런 알미니우스주의 학교에 오셔서 설교도 하시고 장학금을 주십니까?” 하길래, “그것은 저 하위 개념이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형제가 아닙니까?” 칼빈도 마지막에 죽기 얼마 전까지 멜라게톤을 보내서 후아송에서 가톨릭과 대화를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정말 그 사람은 삐에르 교회를 사랑한 목회자가 아니라 보편 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했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런 심정을 우리가 함께 물려받으면서 우리의 보편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몸으로 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 내가 맡은 교회부터 잘 해야 합니다. 대부분 비판의 날을 세우는 목사님들의 교회를 찾아가서 뒤져보면 그렇게 썩 건강한 교회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노회에 가서 23년 동안 한 번도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회에 가면 “법이요!” 하면서 거의 마이크를 독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교회를 보면 법과는 거리가 멉니다. 심지어는 교인이 모이지 않아서 교회가 문을 닫는 상황도 있고, 거기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노회에 와서 정치적인 것, 사회의 한기총 같은 곳에 가서 명함 내놓고 다니는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데 너무 불행한 것입니다. 목회자가 목회하는 그곳에서 자기의 양떼와 소떼들과 함께 즐거움을 찾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지, 거기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곳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얻는 행복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참 조심스럽고, 내가 너무 미약하고 교회도 교회답게 못하는 면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니까 감히 그렇게 용기를 내서 다른 교회에 청룡도를 휘두르며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소심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