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확정하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손하리이다.” (시57:7)
녹취자: 송미옥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지은 시입니다. 아마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내 마음이 확정 되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하는 것을 보면 보통 결심이 선 마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낙쿤’이라고 하는 단어가 ‘확정되었다.’라고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수동태의 동사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기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끔 확정하게 해 주었다. 라는 뜻입니다. 원래 ‘쿤’이라고 하는 동사는 ‘준비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무엇이든지 즉시 할 수 있도록 채비를 차리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해야지 힘이 있을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확고하게 뜻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왕의 상에서 나오는 음식들이 율법으로 취식이 금지되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을 받으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거절하면 왕의 호의를 거부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매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다니엘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뜻을 정한 것입니다. 어떤 뜻이었을까요? ‘죄 때문에 나라가 망했으니 이제 다시는 내가 죄를 범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굳게 세우니까 기적적으로 하나님이 그 시험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이러저러한 상황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맞서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뜻을 확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우니 우리의 사역을 어떻게 할까? 한 번 기다려 볼까? 빙 돌아 가볼까? 아니면 포기해 볼까? 이것은 마음이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현실이라는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불평이 많습니다. 이럴 때 마음을 확증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행해야겠다는 단호한 결심 아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채비를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상황을 어거해 가는 광경입니다.
시인이 무엇을 확정했습니까? 지금 확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울은 자객들을 풀었고, 자신은 혈혈단신으로 도망을 다니고 있었으니 목숨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그가 무엇을 확정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라고 했으니 자신의 마음을 확정했던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확정했다는 것입니까? 마음을 어떻게 하기로 확정했다는 것입니까?
바로 1절에 나오는 이 이야기입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아래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련을 만났으나 이로 인하여서 내가 죄를 짓거나 침체에 떨어지지 않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내가 피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인생의 위기 속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이 결심을 향하여 마음을 확정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오늘 목회자인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마음을 확정하고 사역을 하는 것과 확정없이 사역을 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천지차이입니다. 마음을 굳게 확정하고 ‘내가 지도자다.’ 그리고 내가 이 상황을 헤쳐 나가도록 하나님 앞에 지명되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처음 결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인은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믿음에 어긋나는 일을 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전쟁이 일어날 때에 피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보면서 반석 아래 숨는 것처럼 주께로 피하겠다고 결심했으며 그의 날개 그늘 아래서 하나님과 교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결심은 무엇입니까? 지도자로 세워 놓았으면 뜻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지도자인 여러분에게 주님이 주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확정할 수 있는 뜻이 있기는 있습니까? 붙들어야 할 계획이 마음에 확고하게 살아 있기는 한 것입니까? 이것이 없으면 그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확고하게 마음에 뜻을 정하십시오. 어떻게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이 위기 속에서 이끌고 갈지 담대한 사람이 되십시오.
한 번 그림을 그려 보십시오.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모든 사람들이 배 위에 납작 엎드려서 두려워 벌벌 떨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은 그 폭풍 속에서 뱃머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호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마음이 확정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다만 나를 믿으라.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고, 내가 너희를 인도하리라고 하는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양떼를 놓치지 아니하겠다는 결심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 나가겠다고 하는 견고한 신념 그리고 그것을 향해 자신의 마음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담대함 그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귀를 귀울여 듣지 않습니다. ‘힘들다, 어렵다. 너무 견디기가 어렵다.’ 듣는 사람 10명 중 9명은 무시합니다. 체면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일쯤은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더 깊은 목회의 폭풍 속을 헤쳐 온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만날 파도는 이것에 비할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는 순교의 위협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도자로서 마음을 굳세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확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의 그림을 그립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모두 안 된다고 하는 이 때에 나는 시련의 파도를 타고 나의 양떼들을 더 안전한 폭우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항상 충만한 기쁨 속에서 어려움을 기대해야 할 계기로 삼으면서 양떼들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우리는 이길 것이라고 하는 담대한 확신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기 속에서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 속에 주저앉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거기서 희망을 가지고 일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순장이나 구역장을 하고 있다고 칩시다. 이제 겨우 모이려고 보니 코로나로 다시 와해되어 버리고 예배당에도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구역원들을 향해 한숨이나 쉬고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라고 하며 푸념이나 늘어놓는 구역장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더한 일들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지도자는 담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낙심할 수 있을 만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더 굳게 붙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꾸어 놓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충만한 기쁨을 보여주십시오. 무릎 꿇지 않는 담대함을 보여주심시오. 긍정적인 말로 모두를 위로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오히려 이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더 놀랍게 일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 지도자인 여러분들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목할 사실은 이렇게 고백한 시인의 마음의 변화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할 것입니다.’ 지금이 노래할 때입니까? 지금이 찬송할 때입니까? 사울을 피하여 굴에 숨어있고 발각만 되면 살해가 될 위협 아래 놓여 있는데, 지금이 찬송할 때 입니까? 노래 할 때 입니까? 그런데 그런 마음이 생긴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시인도 원래 이 마음이 아니였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했고, 주님께 도망치겠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맞서 싸우겠다고 말하지 않고 피하겠다고 주님 앞에 고백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삼키려는 자들이라고 고백을 했고 자신의 영혼은 사자들 가운데서 겨우 목숨이 붙어 있다고 고백을 했으며 그들의 이빨은 창과 칼이요 혀는 날카로운 화살이요 혀는 날카로운 활과 같아서 어느 때에든지 자신은 찔려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노래라니요? 그런데 찬송이라니요?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까? 마음이 확정되고 나니까 그 두려움이 변하여 노래가 되었고 그 무서움이 변하여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속에서 담대한 믿음으로 내면의 세계가 충만한 기쁨으로 변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도자가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숨 쉬는 지체들과 함께 한숨 쉬지 마십시오, 성경에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 그 한숨을 노래로 바꾸어 주십시오. 불평하는 지체들과 함께 원망을 늘어놓다가 함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원망을 하나님을 향한 찬송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이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무언가 받은 응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언가 하나님께로 받은 응답이 있고,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확신과 신념이 있어야 그것이 가능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위기의 때에 지도자의 역할을 해 달라고 하나님이 거기에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대접도 받고 존경도 받다가 이런 어려울 때에 선봉에 서서 주님을 따르라고 갈 길이 여기라고 외치게 하기 위해서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미천해도 그런 사람을 영적인 지도자로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위기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히 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이 시편에서 다윗은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어 주님의 날개 아래에 피했지만 거기서 주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커다란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시인이 쭉 이야기를 하다가 앞뒤 문맥 없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문맥이 직접 화법으로 훅훅 들어오는 데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저는 시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들었던 음성 혹은 그의 마음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던 하나님의 응답이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시인이 연약하여 주께 피했으나 응답을 받은 후에는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지도자로서 마음을 확정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감격을 먼저 맛보십시오. 그래서 그 두려움이 변하여 노래가 되고 그 염려가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담대한 기쁨을 선사하십시오. 그리고 능력 있게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양떼를 이끌고 이 어려움 속에서 헤쳐나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혜가 여러분들의 섬김 속에 불 일 듯 일어나게 되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