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순종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6-27)
녹취자: 황인준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해 말하면서 복음을 자신이 전하고 있지만 이 복음은 자기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의 글들과 예언자들에 의해서 이미 우리에게 계시된 것이고 그들이 우리에게 계시해주기전에 이미 하나님 마음 안에 있었던 은혜로운 구원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영원한 하나님의 지혜이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특히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또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복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신 효능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서 다양한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언어와 문화와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이 다른 수많은 민족들에게 전해졌고 위로부터는 왕가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저 아래로는 노예에 이르기까지 이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전해질 때에 그렇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에게 전해졌어도 하나님이 이 복음을 전해지게 하시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시려고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구원의 은혜를 오해하는 이유도 그것인데 죄 가운데 있다가 구원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굉장히 강조를 많이 하는데 그렇게 구원해 주신 이유가 순종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미 다 경험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아무리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은혜를 놀랍게 체험해도 불순종하면서 살면 며칠 못 가서 그 기쁨은 모두 사라집니다. 그리고 예수 믿지 않던 시절보다도 더 큰 혼란이 내 마음속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결코 불신자의 삶보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고 충격 받은 것 가운데 하나가 그 후에 나도 경험하게 되었지만 교회 안에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너무 불행해 보이는 겁니다. 입으로는 본인들이 예수의 놀라운 복음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놀랍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삶은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나의 이중성을 보게 되었고 처음에 이상했는데 저도 영적인 침체에 들게 되고 방황하게 되니 똑같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높으신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예전에 높은 상전에게 노예들이 순종하듯이 그런 식으로 순종한다는 뜻에서 순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관에 관한 것입니다. 예전에 복음을 모를 때에는 내가 누구인지, 세계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삼라만상들, 동물과 식물과 환경은 내게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들을 때 그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아주 놀라운 질서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환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지 그것을 한 번에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진짜 제대로 회심한 사람들은 제일먼저 거듭나는 순간 철학자가 됩니다. 누가 뭐래도 일관되게 살아갈 수 있는 이 세계관의 틀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주입된 틀이 아니라 내가 예수를 만나고 발견한 틀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아주 명료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삶 자체가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지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대부분이 열린 교회에 와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인생의 갈 길이 있었는데도 여기가 한 직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신앙을 고백하면서 사는 그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시작을 한 것입니다. 젊었을 때 온 사람이 중년이 되어가게 되면 사람들을 순종하게끔 행정도 하고 미디어도 만들고 책도 만들고 계획도 세우고 행사가 있으면 프로그램도 짜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알게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서 수고하지만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온갖 방해하는 요소들과 싸우면서 자기의 일들을 해내게 됩니다. 그렇게 정신을 골똘하게 집중하면서 일을 하는 가운데 원래의 자기를 이 교회에 있게 만들었던 그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복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손길이 내 영혼을 어루만지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참된 세계관을 가지고 인생관을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그 감격은 없어지고 일부만 남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를 전하는 통로는 되는데 진리는 그 통로에 묻어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위험성입니다.
제가 18세기 위대한 부흥의 시기에 한참 빠져있던 30대 때에 영국의 조지 위필드(George Whitefield)라는 전설적인 설교자가 그를 놓고 역사적인 평가가 갈리지만 소위 얘기하는 스트리트 프리칭(Street preaching)을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들으며 길거리에서 울며 회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뉴잉글랜드에 집회를 가면서 자기가 하던 일을 요한 웨슬리(ohn Wesley)의 동생인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에게 잠깐 맡기고 가게 됩니다. 찰수 웨슬리가 설교를 하는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윗필드가 했을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놀랍게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전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찰스 웨슬레가 굉장히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설교자보다는 찬송가 작곡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사람을 말하자면 디엘 무디(D. L. Moody)가 부흥운동 했을 때 아이라 생키(Ira D. Sankey)가 했던 일과 똑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윗필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당신이 맡겨준 일을 내가 했는데 당신이 했을 때와 같이 사람들이 회개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그 일을 하신다. 그런데 Through me가 아니라 by me다.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나에게 먼저 일어나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를 도구로 해서 사용하시니까 저 많은 회중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내 마음에는 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너무 고통스럽고 고민이 된다.” 그 때에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아주 깊이 공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목자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사람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위해서 많은 일을 거든 적은 있지만 예배자였던 적이 언제일까요? 수많은 설교를 송출한 적은 있지만 그 설교를 듣는 회중이었던 적은 언제였을까요? 수없이 많은 예배에서 찬양을 인도했지만 그 찬양이 자기에게 울려 퍼진 적이 있나요? 수없이 설교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설교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러면서 자기가 섬기는 일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생생한 은혜의 감격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쭉쭉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나무로 성장해 가는 겁니다. 처음에 왔을 때 그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고 말씀으로 봉사했던 사람들은 자라는 게 아니라 삐쩍 말라가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관심사는 일, 그리고 일이 제대로 안 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고통과 고민, 이런 것들로 꽉 채워져 있게 됩니다. 이 속에 있는 것은 ‘오늘도 성도들이 우리가 내보낸 설교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다니 정말 감사하다! 저 사람들이 이제야 내가 터득했던 이 순종의 기쁨들을 터득하는구나!’ ‘이것이냐?’ 제가 묻는 겁니다. 다 사라지는 겁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어제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한 시대를 휘어잡았습니다. 칭찬하는 사람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이단 시비에 휘말리기까지도 했었고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얘기와 긍정적인 얘기가 모두 다 지나갑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쓰셨다’ 아내와도 이야기했지만 ‘아마 한국 역사에서 그분의 공과는 뒤로하고 그 정도 규모로 쓰임 받는 사람이 예전에는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지 않겠나?’ 둘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구를 120바퀴 도셨다고 합니다. 집회를 하기 위해서... . 위슬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 인간이라는 건 잠깐 있다 가는 것입니다. 우리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꽃다운 23살이었습니다. 23살에 사랑의 교회에 가서 펑펑 울고 은혜를 받으면서 그리고 24살에 신학교 제 조교로 왔습니다. 엊그제 같은 일인데 아들이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좀 더 지나면 손자가 그 나이가 됩니다. 그리고 “김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더라. 김수미 권가께서도 돌아가셨다더라. 그게 인간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금 일하고 있을 때 이것이 어마어마한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책을 기가 막히게 만들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 진리가 내 마음을 움직여서 나를 행복하게 하고 이전보다 내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만들고 주님예수께 예전보다 훨씬 더 순종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서 ‘김남준 목사야! 첫 번째 책 썼을 때 훨씬 더 순종은 많이 했다. 어떻게 권수가 쌓이면 쌓일수록 너는 빗나가냐’ 이렇게 말씀하시면 내가 하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세월은 끊임없이 지나갑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교회일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장로님들도 장로가 되고나면 엄청나게 일이 많아집니다. 최근에도 한 장로님이 너무 일이 많은데 구역장 내려놓으면 안 되겠냐고 하시기에 제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교회 일 하느라고 주일에 일이 집중되어 있는데 주중구역장이라도 하라고 하는 이유는 구역장 모자라서가 아니라 여러분 영혼을 위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로마서 마지막 쓰면서, 맨 처음 시작할 때도 사도바울의 관심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하였고 끝날 때도 관심이 믿음으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도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값싼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어떻게 하면 이 많은 색깔과 문화와 피부색 등 모든 게 다른 수많은 민족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을 꿈꿨던 것입니다.
그 순종은 사랑의 순종입니다. 예전에 사랑하던 것, 모두 버리고 하나님을 제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기쁨이 있는 사람은 남이 순종하지 않을 때 슬픔이 있습니다.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은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크게 양쪽으로 크게 정도 적으로 더 크게 일어날 때 그게 목회의 소명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말한바와 같이 목회자의 소명은 성도의 소명과 별개의 소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남이 불순종하는 게 마음 아프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명해집니다. 교회에서 못질을 한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원고를 쓰던지 설교를 하든지 전도를 하든지 심지어 홍보 전단지를 아파트 대문에 붙이고 오는 것도 주님 사랑의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꿈이 그 모든 사람들이 순종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런데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렇게 순종할 수 있는 비결이 믿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느 교회에 가서도 내가 교회에 토지와 재산을 자랑하지 않지만 여러분은 자랑합니다. 여러분 같은 분들 없습니다. 정말 자랑합니다. 그런데 내가 묻고 싶은 겁니다. 한 교회에 일꾼으로서만 성공한 사람이 되지 말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더 많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신다.’. 복음은 우리를 순종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견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열정이 있는데 사실은 사람에 열정인지 하나님 사랑에서 비롯된 열정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참고 견디면 그게 진짜 동기가 하나님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은혜를 받으십니까? 공과를 만들고 배포하고 그 안에 있는 PPT를 그리고 이 공과 책을 홍보를 하고 미디어를 보내고 하는데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담임 목사 설교를 송출하는데 본인들이 한 예배자로서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들을 공격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진지하게 묻는 질문입니다. 모든 것은 있는 건 있는 거고 없는 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나무를 수종 갖다 심어도 물 안 주고 비료 안 주고 햇빛 제대로 들지 않고 병충해 제거해주지 않으면 고급 수종임에도 불구하고 볼품없는 나무로 비틀어지는 거고 비록 수종이 그 정도 고급이 아니어도 정성껏 돌보면 멋있어지는 것입니다.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 강아지 한 마리에 삼백만원, 오백만원 할 정도로 좋은 품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게을러 눈곱 하나 안 닦아 줍니다. 지저분하고 곁에만 가도 냄새가 느껴집니다. 오십만 원짜리 말티즈 우리 코코라도 샴푸하고 매일 닦아주고 깨끗하게 하고 나가면 그게 강아지의 새끼 때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돌봐주었느냐에 갈립니다.
복음은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견고하다할 때 그게 맡겨준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있긴 있는데 이 속에서 힘줄 같은 것들이 속에서 뻗히면서 대들고 반항이 아닌 자아가 힘줄 같이 뻗히면서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가더라도 죽어도 꺾어질 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견고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콘크리트 위에 콘크리트를 부으면서 전봇대를 꽂아놓은 것 같이 그냥 그렇게 있는 겁니다. 진짜 견고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생명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면서 나를 여기 세워주신 것을 너무 감사하고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전해지는 이 일에 감격하고 기쁨을 누리는 겁니다. 복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내가 전에 끔찍한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내가 받는 은혜가 절대로 나에게 합당한 은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감격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겁니다. 그게 바로 견고한 것입니다. 살아있어서 살아있어야지만 그게 진정으로 견고한 겁니다. 그래서 말뚝을 박아놓은 것을 보고 견고하다 말하지 않고 때에 심겨져서 때를 따라서 꽃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러면서도 폭풍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있는 그 나무를 우리들이 견고하다고 부르는 것입니다. 복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복음에 깊이 감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복음에 대한 감격은 순종하는 삶과 비례합니다. 복음이 아주 건조하고 늘 들었던 지겨운 엄마의 잔소리처럼 느껴진다면 자신이 복음을 보는 것과 복음대로 살아가는 삶이 빗나가 있기 때문에 이 감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감격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그 삶과 복음을 믿는 것이 일치가 될 때에 감격이 증진되고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복음이 내 안에 더 많은 깨달음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끊임없이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내가 정말 여전히 복음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순종하며 사는지, 내가 정말 살아있는 견고한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을 깊이 생각하면서 섬기면 섬길수록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