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목회할 것인가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녹취자 : 김라영
코로나시대에 어떻게 목회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만약 그에게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목회의 시절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서아시아 지방에 머물면서 특히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때일 것입니다. 또 반대로 ‘당신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목회의 시절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똑같이 그때라고 말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고통스러운 것과 행복한 것이 공존할 수 없는데 목회의 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가 가능합니다. 그게 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장면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그는 이 예루살렘 가는 길이 자신의 마지막 순교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밀레도라는 곳까지 갔을 때 그는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서 장로들을 오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을 만나는 게 마지막일 것 같아서 유언과 같은 설교를 남기기 위해서 특별히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18절에서부터 25절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37절에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할 일 많은 사람이 3년이나 한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한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해서라기보다 에베소 사람들을 말씀으로 든든히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말씀 목회를 했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인구 5만 명이 모이던 대도시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폼페이 같은 도시가 5만 명 정도가 있었다고 하니 에베소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많은 이단적이고 이교적인 사상이 왜 없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가 떠나고 나면 앞으로 도래하게 될 광경이 다 보였습니다. 자기가 떠나면 사나운 이리떼들이 몰려올 것을 알았습니다. 이단들과 이교도들, 말하자면 불신자들의 거대한 박해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가르친 사람들 중에서도 복음을 떠나 이단이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일깨워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일깨워’는 신앙적으로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누가 깨워서 깨어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자각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만 뜬다고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끔 현실을 보면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 생각하며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은혜를 주셔야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자기 각오도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일깨우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이 마르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 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이스라엘은 타락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잊지 말라’, ‘기억하라’, ‘생각하라’는 말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깨어 있다’라고 하는 것은 곧 잊지 말아야 할 무엇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뭘 기억하라고 했을까요? 우리 모두 같이 한번 31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가르침의 목회입니다. 즉, 훈계하였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목회자 사도 바울이 3년 동안 에베소에 있으면서 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훈계한 일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타이르다’, ‘권고하다’ 이런 뜻입니다. 타이르고 권고하는 것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상품이 별로 좋지 않으니 내일 오십시오. 더 신선한 상품을 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그런 데 쓰이는 단어가 아닙니다. 명확한 진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꼭 그리 하도록 강력하게 충고하는 것을 뜻 합니다. “이렇게 하라. 안 그러면 이렇게 큰일이 난다. 굉장히 나쁜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엄중하게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무엇에 대해 훈계했을까요? 21절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21절은 말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이 두 가지를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했던 자신의 설교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그 자리에 계십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한 가지가 없다면 교역자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으로 교훈하는 사랑입니다. 그 태도는 때로는 엄중할 수도 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때로는 눈물로 호소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예화를 들면서 가르칠 수도 있고, 때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듯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때 심겨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목회사역을 하면서 ‘아, 내 목회는 말씀 목회였다. 내가 정말 부족했다. 그러나 영혼들에게 말씀이 심겨졌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위해서 가장 열렬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훈계하였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단들이 떼거지로 일어나도 너희는 능히 믿음을 지키고 거기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 바울에게서 첫 번째로 배우는 것이 가르침의 목회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영혼들이 믿음을 파수하며 살게 하십시오! 이렇게 가르치는 목회를 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한 영혼의 목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각 사람”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스어로 ‘일일이’, ‘낱낱이’, ‘한 개씩’ 혹은 ‘한 사람씩’이라는 뜻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르쳤던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모인 숫자에 치중하거나 현혹되어 목회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렇게 목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에 보면 칼빈이 제네바에서 목회할 때 가장 많이 쓴 시간 중 하나가 심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많은 신학 활동과 논적들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 시의회와의 관계 이 모든 것을 꾸려가면서도 칼빈은 병든 자, 고아들,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심방했습니다. 정말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목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세 번째는 쉬지 않는 목회입니다. 그리스어로 ‘오크 에파우사멘’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오크’는 ‘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이고 ‘에파우사멘’은 ‘쉬었다’는 뜻입니다. 합하면 ‘결코 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한 번 설교하면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어린이들이 막 몰려오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모두 갈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역자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태한 것입니다. 태만한 것입니다. 이는 양떼를 죽일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죽이는 것입니다. 설교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당장 물을 수는 없지만 갈멜산에 장작을 쌓아놓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설교 준비를 했는데 성과가 이것밖에 안 되었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목회자에게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준비도 안 하고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밖에 못 했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양심의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네 번째는 눈물의 목회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가 눈물로 목회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가르침은 감정이 솟구쳐서 하는 훈계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그냥 솟구치기만 하는 설교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어 성경에 ‘메타 다크 리온’이라고 나옵니다. 복수입니다. ‘with tear’가 아니라 ‘with tears’입니다. 한두 번 흘린 눈물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산에 비가 하루만 잔뜩 쏟아지면 그다음 날 기분 좋게 소리를 내며 물이 흐릅니다. 고여 있던 장구벌레들이 다 떠내려갑니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렇게 물이 흘러야 산이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교회에는 은혜가 흘러야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영혼들은 툭툭 넘어지기 시작합니다. 침체에 빠지고, 심지어 죄를 짓게 됩니다. 산에 올라갔는데 물이 거의 없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갖 지저분한 벌레들이 생겨납니다. 목회자의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목회지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이 없는 목회는 종교적인 근로 활동입니다. 그게 삯꾼목자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삯꾼과 참 목자의 비유에서 삯꾼은 굉장히 나쁜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도 평소에는 할 일을 다 하고 삯을 받습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소에는 참 목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이리나 늑대가 밤중에 오면 그들은 다윗처럼 양을 지키지 않고 도망가 버립니다. 그것이 삯꾼입니다.
사도 바울의 목회에는 많은 눈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에서 많은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그 제자들이 위대한 선교의 시대를 만들어갔던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정리해봅시다. 첫 번째는 가르침의 목회입니다. 두 번째는 한 영혼을 돌보는 목회입니다. 세 번째는 결코 쉬지 않는 목회입니다. 네 번째는 눈물이 있는 목회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목회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라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요동하지 말고 주님을 꼭 붙드십시오.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가서 자기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기가 맡은 부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눈물이 확 쏟아지는 기도의 영을 가지십시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때가 묻습니다. 사람이 불결하고 더러워지는 것은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순결을 간직하는 것은 세월이 흘러가고 목회의 경력이 오래될수록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들도 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끊어버리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도사일 때 제일 행복한 시간이 말씀 전하는 강단에서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공간이 저만을 위해서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내가 다른 건 잘하지 못하더라도 딱 하나 이 강단을 내가 눈물로 적신다. 다른 이들은 예배실을 다 떠나도 나는 남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붙들고 눈물로 이곳을 적실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합니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도 똑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당신의 고단한 발자취를 따라 당신의 품 안에서 얼굴을 파묻고 울부짖는 자들의 마음속에 당신은 계시나이다”(Confessiones, 5.2.2) 사도 바울이 흘렀다는 눈물이 그런 종류의 눈물입니다. 그냥 괴로워서 운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닥치고 있는 목회적인 현실과 고난을 신앙으로 승화 시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품을 파고드는 눈물이었습니다. 서러움의 눈물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생생하게 얘기를 하자면 골목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세게 얻어맞고 발길에 채였습니다. 서러운데 저기서 엄마가 오는 것입니다. 달려가서 엄마의 품에 안기면서 “엄마, 저 형들이 나 때렸어….”라고 고자질하며 서럽게 웁니다. 그때의 눈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품을 파고들었던 목회자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선배들이 “넌 왜 목회를 그것밖에 못 하니?”, “넌 왜 1년을 목회했는데도 전도를 못 하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얼마나 잘하나, 내가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주의 종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품을 파고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르침의 목회, 한 영혼을 돌보는 목회, 결코 쉬지 않는 목회, 눈물 흘리는 목회를 해서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쯤 되어서는 여러분들 중에 중국과 여러 나라에서 정말 존경받는 큰 산과 같은 목회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감화를 주고, 그 사람들에게 또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심어주는 목회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