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하라
“여호와께서 마무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서 있는 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다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창 18;1-5)
녹취자: 이 솔
거의 똑같아 보이는 두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는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만나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소돔성이 멸망하기 직전 롯이 천사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당연히 맨 처음에 사람들이 왔을 때 그들을 천사라고 알아보기는 어려웠겠죠. 아마 그냥 평소 하던 대로 길손이라고 생각을 하고 맞아드렸는데 알고 보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였습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주제는 환대예요. 환대. 환대라고 하는 것은 따뜻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맞이하여 정성으로 대접하는 것 그것을 환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도 보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여 복을 얻었다라고 했는데 바로 아브라함과 롯이 그런 케이스입니다.
이 환대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들어올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말을 잘 들어줄 때 그 사람 마음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죠. 그 사람이 무심코 지나간 일에 대해서 말을 건네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보면서 저 사람 마음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나고 그리고 가진 것이 많고 탁월해도 자기가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라고 생각할 때에는 사람은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이 사상이 바로 환대예요.
타락한 다음부터 인간은 모든 생각이 자기 중심적이 되었어요. 그렇게 되면서 사실은 자기 마음에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너무 없는 거예요. 심지어는 결혼을 하고도 자기 아내나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감조차 없는 거예요. 최악의 갈등에 이른 부부들을 보세요. 전혀 상대방에게 추후에 내어줄 공간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축출해요. 그럼 그런 축출당한다, 내어 쫓긴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기분 나쁜 감정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유가 없이 살아가는 거죠.
귀티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배려와 환대예요. 말수가 적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예의 바르고 따뜻하며 다른 사람을 환대해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귀티가 나는 사람이에요. 작은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희생적이며 그러면서도 아주 확고하게 삶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귀티가 나는 사람들이에요. 남을 환대해 주는 것 없이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귀티가 나는 삶을 살 수는 없어요.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보이는 그 사람들에게 정성껏 절하고 그리고 자신의 집에 머물러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물론 이거는 그 당시의 문화적인 풍속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중동 지방에서는 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강한 관습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은 신들에게 복을 받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프리카 같은 데서는 어떠한 죄를 짓고 도망쳐 오는 사람이라도 그 동네 사람들이 그를 내쫓아서는 안 된다. 이런 규율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성경에서도 볼 수 있는 피난처 사상이에요. 그래서 도피소로 도망을 치면 그러면 그를 쫓아가서 도피소를 부수고 그를 잡아 끌어낼 수가 없었어요. 결국 뭐를 보여주냐면 모든 인간에게는 누군가의 배려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환대가 필요한 존재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죠. 근데 그것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환대를 받으면서 비로소 자신도 누군가를 환대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런 나그네를 향한 환대가 신약 시대에 와서 정점을 이룬 사건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에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에게 보여주신 것이 뭐냐 하면 그는 환대하신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우리가 거할 공간이 있다. 그것을 아주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우리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화목 제물로 주셨음이라. 성경에서 아주 극적으로 나타난 거죠.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런 놀라운 환대를 보여주셔서 감격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그분 안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순간에 생긴 게 아니라 이미 오래전 영혼 전부터 나를 알고 기억하시고 사랑하셔서 내가 있어야 할 그 공간이 하나님의 마음에 있고 내가 들어가기까지는 하나님도 결코 행복하시지 않은 분으로 묘사가 되요. 그래서 그분 속으로 우리가 들어갔을 때 그때 그분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고 그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환대를 받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되어서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행복을 누리게 하신 것이 구속 사건의 큰 그림이에요.
그렇게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행하라. 그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의 이웃 사랑이에요. 이웃 사랑의 첫 걸음은 이렇게 그 마음에 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거야. 이게 환대예요. 공간을 만들어주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친구 집을 방문하게 됐어요. 친구 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묻게 됐어요. 근데 마지 못해서 친구가 데리고는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밥 먹었냐? 좀 씻어라. 뭐 이렇게 얘기도 안 하고 자자. 그리고 불을 툭 끄고 골이 이만큼 난 상태 넌 이쪽에서 자 나 이쪽에서 침대에서 할 테니까 하고 확 돌아눕고 싸하게 분위기가 흘러요. 그거 뭐냐 하면 물리적 공간으로는 그 집에 들어갔지만 심리적 공간으로는 그 사람 속에 싫은 거예요. 그 친구가 나와 같은 처소에 여기 들어와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싫은 거예요. 그게 사실은 마음속에서는 문을 걸어 잠근 거예요.
반대로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근데 중학교 2학년 때 중동고등학교 다닐 때 일이었어요. 1학년 때인가. 1학년 때. 중학교 1학년 때.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차를 탔는데 졸다가 종점까지 갔어요. 눈을 떠보니까 나는 미아리에서 내려야 되는데 눈을 떠보니까 우이동이에요. 근데 그때만 해도 거기에 전기가 안 들어왔어요. 캄캄해요. 버스표는 없어요.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는데 이미 벌써 그 차가 거의 막차 수준에 가까워서 나오는 차도 없어요. 야 이거 진짜 큰일 났다. 그러고 있는데 거기서 한없이 기다리는데 다음 차가 내렸어요. 그러더니 나같이 똑같이 중동 배지를 단 학생이 걸어오는 거야. 어 너 중동 학생 아니냐? 네. 딱 보니까 고(高)자야. 나는 중(中)자인데. 근데 너 목소리도 아주 어른스러워. 너 왜 여기 혼자 있니? 선배님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졸다가 여기까지 왔다니가 지금 차 없어. 그랬더니 너 집이 어디냐? 그래서 제가 월곡동입니다 하니까 너 거기 못 걸어갔다. 엄청 멀어서 집에 가서 자고 나하고 같이 내일 학교 가자. 근데 뭐 거기서 괜찮습니다 라고 할 계제가 없어 따라 들어갔어. 아직 그림이 생생해. 들어갔는데 엄청 큰 시골집인데 자기 집이 아닌 거 같애. 방이 하나야. 방 하나에 한 다섯 식구가 잠들어 있어. 근데 들어오라는 거야. 가방 하나 내려놓고 배도 고팠을 텐데 윗목에 엄마가 아마 상을 봐놓은 모양이에요. 밥 보재기에 이렇게 펴더니 자기 밥이 고봉밥이야. 시골 사람처럼. 그걸 반을 덜어주면서 이거 너 먹어라. 해서 먹고 그 당시에 씻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근데 어쨌든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너 여기서 자라. 그리고 자기 자리를 내주는 거예요. 자기는 약간 불편한 자리로 가고 다시 이불을 가져와서. 그리고 이제 거기 앉아서 생전 만난 적도 없고 본 사람도 없는 사람에게서 환대를 받았어요. 근데 그때 저도 뭘 좀 알고 숙기가 있었으면 그 형님이 몇 반인지를 알아보고 다음 날이나 며칠 후에 찾아가서 정말 고마웠다고 그러면 좋은데 그런 인생 사는 이치도 잘 몰랐고 이 중학교 1학년이니까 그냥 감사하다라고 하는 사실만 마음이 새겼어요.
그러니까 그게 환대예요. 마음속에 그 공간을 마련해 주는 거. 사람들은 모두 곤고한 나그네와 같애. 그래서 그렇게 마음의 공간을 맞이해줘서 들어오게 하면 그러면 아주 따뜻한 느낌을 받는 거야. 그래서 아마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자기네 집에서 자게 된 거를 아주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친구를 따라서 집에 들어왔는데 뜻밖에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줍니다. 잠옷 없지? 내가 안 입는 잠옷인데 깨끗하게 빨아놓은 거다. 이거 너 입고 칫솔은 내가 하나 새로 여기다가 사다 놨다. 이렇게 친절하게 하면서 자기가 그 집안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공간적으로만 받아들여진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까지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그 속에서 쉼을 누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가 그것를 보여주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가장 탁월한 증거는 환대의 삶이에요. 그래서 만약에 예수님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아주 예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옥에 쓸어놔야 마땅한 인간들이다 라고 보는 동안에는 진짜 복음을 전할 수 없어요. 저 사람에게 환대 저 사람들이 환대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되는 거죠.
엊그제 당회를 했는데 장로님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해요. 목사님 요새 정말 코로나라서 어렵지만 은혜로운 일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50대 초반에 있는 부하 직원인데 이혼을 당했어요. 부인에게. 알코올과 그 다음에 도박에 빠져 있고 하니까 그냥 살다 살다 그냥 남편을 버린 거예요. 그래서 직장생활에 잘 적응도 못했겠지. 너무 불쌍해서 집에를 찾아갔더니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통곡을 하면서 울더래요. 자기 좀 살려달라고 자기는 너무 살고 싶다고. 그래서 성경 공부를 시작을 해서 지금 석 달 정도 공부를 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은 모두 이렇게 코로나라고 하는 상황이 되니까 사람들에게 이렇게 남을 받아들여주는 이 배려의 공간 자체가 더 없어진 거야. 경제적으로 어렵지 그 다음에 사회적으로도 어렵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여유가 없으니까 남에게 그런 공간을 내줄 수 있는 그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는 거예요.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영적으로 보면 지금 희어진 밭이에요. 겉으로는 이렇게 기독교를 욕하지만은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찾고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찾아요. 한번 여러분 눈을 들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쭉 한번 여러분 주위를 보세요. 그러면 곤고한 사람들이 여러분 레이다망에 들어오게 될 거예요. 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돈이나 무슨 그 이 세상에 있는 명예나 지위나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은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절히 원하는 것은 공간이에요. 공간. 누구의 마음 속에서 환대받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을 너무나 간절히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바로 이 공간을 갖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간절히 저녁 때 나와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 큐티를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많이 받으면 이 공간이 많이 생겨요. 그래서 온 세상 사람이 다 들어가도 남을 만한 그런 공간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그 안에서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환대를 받게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될 일인 거죠. 그래서 한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을 아는 거죠.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말씀을 대충 정리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나그네를 대접을 하고는 두 가지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게 실현될 것을 이 사람들이 와서 보증을 해주죠. 그리고 신학에서는 이때에 임한 사자들이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현현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를 천사의 존재를 매개로 해서 그래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래서 18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니라 하고 되어 있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소돔성의 멸망에 관한 예고를 들어요. 그래서 그 조카 롯을 위에 간절히 빌었을 거예요. 근데 똑같은 사건이 또한 롯에게도 나타나는데 롯이 똑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환대해요. 그랬더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 주어지냐 하면 그 성난 군중들로부터 롯의 가정의 식구들을 모두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모두 멸망당할 소돔의 그 불벼락의 심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되요. 무슨 뜻이냐면 환대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에요. 그래서 잠언의 말씀에 가난한 자에게 꾸워주는 것은 여호와께 꿔주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구제하는 것은 여호와께 꿔주는 것이다. 여호와께 돈을 꿔주는 것과 같다. 무슨 뜻이냐면 환대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어요. 그것이 성경의 사상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환대하고 나면 그 기쁨이 환대를 받은 사람 마음 속에서 먼저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를 따뜻하게 환대하고자 하는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마음에 먼저 보상이 주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이 안에서 느껴지는 거죠. 그리고 그를 환대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셔요.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에요.
지금은 너무 사람들이 강팍하고 그다음에 너무 완강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냉엄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근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런 때가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이 좋은 기회예요. 그래서 환대해주어야 해요. 그래서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그가 내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 안에서 자신이 대접 받는다 라는 느낌을 받게끔 해줄 때 근데 그것은 공짜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반드시 그 선한 일에 대해서 갚으시는 거죠.
행복한 사람은 마음 안에 그런 공간을 많이 마련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너무 많이 마련한 사람들은 자기는 그 안에 오히려 없고 마음 전체가 무한한 무수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버린 사람이 가장 하나님 앞에 행복한 사람이에요.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에게 그 사람 마음 안에서 쉴 공간을 얻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이 그분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신 것과 같이 너무 행복한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런 공간을 충분히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