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 24:32)
녹취자: 조경훈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별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시체를 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직접 보지 못했으니 반은 믿고 반은 못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것은 사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와 근심이 엄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헌신된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하시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같은 속량의 개념으로 영적인 구원을 믿었다기보다는 정치적인 속량을 믿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분을 메시야로 알고 그 분을 통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세상이 될 줄 알았는데 허망하게 사라져버리시고 시체도 간 곳이 없고 누군가는 죽어서 시체를 치웠다고 하고 누군가는 살아나셨다고 하니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 사람들은 어디 가든지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팔로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인생에 가장 중요한 목적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허망한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근심과 걱정이 가득 찬 채로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길손이 나타났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라고 한 데 말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까지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셨고 그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이 사람들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끼리 예수와 함께 있었던 잠시 동안의 여정을 회고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자신들이 서로 나누고 있는 중에 아주 중요한 복음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말씀하실 때’ 와 두 번째는 ‘마음이 뜨거워질 때’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해 주실 때 이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뜨거워졌다’ 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 원문에 보면 ‘불붙었다’ 라는 의미입니다. 불붙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런 불꽃도 없이 차가운 등잔에 불이 붙여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열이 나고 빛이 환하게 비치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들에게 말씀해 주셨을 때 이들에게 지성에는 빛이 들어와서 구약의 역사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게 되었고, 의지적으로는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서 불붙게 되었는데 이 불이 결국 사랑의 불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불, 예수 사랑의 불입니다.
사실 이들이 깊은 염려와 근심에 잠겨있었던 이유는 결국 두 가지였습니다. 빛이 없었고 열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신은 무지하여 방황하고 정착점을 찾지 못하고 마음은 사랑이 없어서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은 잠시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며칠 동안 기도하면서 도대체 나의 인생, 혹은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문제가 뭘까?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그 모든 기도를 하나로 집약하면 무엇이 될까? 우리의 인생의 문제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까 너무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고통입니다. 그것이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괴롭다느니, 사업이 힘들어서 마음을 둘 곳이 없다느니, 부부관계가 깨져서 괴롭다느니 등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들로 나타납니다.
예전에도 인생을 살면서 불안하고 염려하고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심하고 염려하던 것들을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신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평안은 감사한 줄을 모르고 금방 지나가 버리게 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기적의 만나를 먹고 기적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앞에서 죄 짓고 악을 행했던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성품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일입니다.
목양을 하면서 수많은 양떼들의 고민을 듣고 위로해주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모르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멸망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속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고통이요 죄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시 불타오르는 것이 사실 우리 인생에 모는 숙제를 푸는 한 가지의 해답입니다. 내가 겪는 문제가 무엇이든지 심지어는 내 앞에 죽음을 앞두고 있을 지라도 내 마음에 불꽃이 타올라 그 빛으로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고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면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순간도 나에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관점에서 물러가기 시작할 때 인생도 복잡해지고 종교도 복잡해지고 우리의 믿음도 혼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숙제는 하나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붙는 것입니다. 언제 여러분들이 가장 총명했는지 기억해보십시오. 공부 많이 했을 때? 책을 많이 읽었을 때? 책을 유난히 많이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죽 얘기하는데 기가 죽습니다. 나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밤까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사는데 그렇게 책을 읽는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해야 할 의무들이 자꾸 나에게 다가옵니다. 지금 한 주간 동안을 설교준비에 쏟고 있습니다. 나도 책을 보고 싶습니다. 공부하고 싶습니다. 삶이 그렇습니다.
결국 그렇게 공부 많이 할 때 여러분들이 지혜로웠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공부 많이 배운 사람이 지혜롭다구요?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둘이 제자훈련을 받던 사람들 중에는 이혼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고 둘이 손잡고 새벽기도를 나오는 부부는 헤어지는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많이 배워서 지혜로워졌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정신이 가장 또렷하고 지혜로웠던 것입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면 안 하려고 했고 인생의 시간들이 많이 절약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 사역자고 교회에서 사명을 받아서 일하는 직원들이지만 고뇌가 없으시겠습니까?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 고뇌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고뇌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경험입니다. 사랑하면 마주하는 세계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커다란 숙제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사경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붙게 하기 위해서 사경회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천 명이면 천 명 고민하는 종류는 패턴이 있어도 구체적인 내용은 다 다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한 두 가지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니라 돈도 없고 남편도 바람을 피고 애들은 말 안 듣고 시어머니하고는 관계가 깨지고 장사는 안 되고 사업은 망가지고 직장은 퇴출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을 겪으면서 살아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결국은 마지막에 사람들을 섬기는 것도 어떤 사람이 섬깁니까? 요즘 교구 팀장님들은 만나서 보고 있는데 똑같습니다. 코로나 나기 전에 열렬하게 목양하면서 양떼를 잘 돌보았던 사람들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방법은 다른데 훌륭하게 해내고 간증이 있습니다. 그때 안 되던 사람들은 지금도 안 됩니다. 지금 코로나 때문이라지만 끝나보세요. 지금 안 되던 사람들은 코로나가 끝나도 안 됩니다.
우리들은 양떼들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까? 우리의 창고는 끝이 없이 넘칩니까? 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목회를 하고 영혼을 돌보는 사람의 첫 번째 조건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인격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차고 넘칠 때 비로소 내가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아파하는 것을 내가 함께 고통으로 느끼고 그들이 슬퍼하는 것을 똑같은 나의 슬픔으로 느끼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을 빌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심령이 이미 불꽃이 꺼져있으면 무엇을 갔다 놔도 그것이 불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사랑으로 해결해 주라고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건 사경회를 하건 모든 우리의 사역의 영광은 사람들 마음속에 사랑의 불이 붙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목회의 보람이고 교회를 섬기는 보람인 것입니다.
나는 이와 관련해서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불을 옮겨주는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이 사역자들로 불러주셨는데 자기의 마음에 등불은 꺼져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 사람은 과연 그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할까요? 하나님의 일도 일입니다. 그러니 방법을 잘 선택하면 일이 잘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하나님의 영적인 역사는 제도와 방법 위에 부어지는 것에 아니라 사람 위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사역을 하는 동기 자체가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 내 안에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 때문에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섬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불꽃을 오늘도 자신이 유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커다란 숙제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근무는 대신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가까이 있다고 해서 불꽃을 받는 것이 아니고 목회자 가까이 있다고 해서 그 불을 저절로 받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내가 설교를 한다고 해서 그 불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날마다 만나는 은혜의 경험 속에서 그 불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 예배자들의 눈빛이 그 사랑을 받기 원하는 갈망으로 불타지 않습니다. 그것이 설교자로서의 가장 큰 고통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복음을 몰랐습니다.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구약을 헛되이 읽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불꽃을 우리 안에 간직하면서 사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씨름해야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 속에 사랑의 불꽃을 누리며 사는 자신의 삶과 그 사랑의 불꽃이 없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곤고한 삶을 비교하며 내가 어떻게 하면 저들을 도울 수 있을까? 라는 눈물이 흐르는 것이 사역의 동기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남을 향해 흘릴 눈물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나 다른 사람의 영혼이나 본질이 똑같기 때문에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만이 남의 영혼을 위해서 울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의 과거를 돌아보면 자기의 부족한 것을 가지고 많이 눈물 흘리던 때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많은 눈물로 기도해주던 때였습니다. 그게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동일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불꽃이 제자들의 마음에 일어났더니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근심과 염려 고통과 두려움이 모두 변하면서 마음속에 기쁨과 소망이 꽉 차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가 다시 사셨다는 환희의 감정이 가슴 속에 꽉 차게 되어서 이것을 누군가에게 전해주지 않으면 안 돼는 마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일을 위해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최고의 숙제는 나만을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기도의 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것 말고 별도로 나의 영혼만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길이에 상관없이 갖기를 나는 여러분들에게 권고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드리는 20분밖에 안 돼는 짧은 시간은 나의 영혼만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다. 다른 기도시간은 정해져있으니까 그 때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되 내 영혼에 불이 붙어야 그 불꽃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도 불붙일 수 있으니까 간절히 자신의 마음과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그런 시간을 20분이라도 따로 시간을 떼어놓아서 가져보십시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사랑의 불꽃을 우리 모두 지니고 그 사랑 때문에 맨 처음 이 길에 들어섰듯이 지금도 이것을 가지고 일한다면 하나님이 제일 먼저 여러분의 영혼을 행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김남준 목사는 죽습니다. 그리고 사라집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빨리 없어집니다. 사람과의 인연 그리고 사람과의 기억, 추억 이런 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실제적으로 주님의 은혜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고 마음에 불붙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맑은 지혜가 생기면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인생 삽질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의 불꽃이 꺼져서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지내온 모든 날들이 여러분들의 영혼에 무엇을 가져다주었습니까? 끊임없이 영혼이 썩어 들어가고 고통 받고 사랑하던 관계가 깨지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면서도 눈감으면 오늘 저녁에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불꽃이 꺼지면 그 어둠 속에서 마귀가 때를 얻는 것입니다. 아무데나 끌고 다니면서 절망과 좌절 속에 몰아넣게 되는 것입니다.
벌써 이 불꽃이 살아있는 사역자들, 불꽃이 살아있는 성도들은 다릅니다. 모든 것을 그 빛으로 해석합니다. 지성이 엉키지 않습니다.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이성으로 올바로 분별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갑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풀어준다’ 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문자 그대로 풀어진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풀어진다는 것은 묶여있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묶여있는 것이 풀어진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해석입니다. 성경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들추어서 해석을 해 주실 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서기관들은 앉아서 성경을 필사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평생을 필사했지만 그들은 복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성경을 풀어주기 시작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돌멩이같이 돼있는 우라늄이 핵폭발을 일으키듯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폭발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순식간에 하나님 사랑하는 불꽃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고 그 의미를 깨닫고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이 해석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여러분들이 그 사랑의 불을 받는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해석되는 곳에 사랑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해석을 궁금해 하고 그 해석을 깨닫고 싶어 하는 것이 신앙의 성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 받을 사람들은 질문이 많이 떠오릅니다. 그에 대한 답을 성경을 해석하는 속에서 찾게 됩니다. 거기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읽어도 잡지를 읽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들어도 학교 다닐 때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듯이 귀에 안 들어옵니다. 결국 해석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적용되면서 진정한 해석의 능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힘들게 사경회를 하고 어제도 라디오 사경회를 9시에 하고 그런 노력을 교회가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불길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가슴에 깊이 명심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