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 떼를 돌보라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겔 34:5-6)
녹취자: 장미연
이스라엘이 결국 멸망하는 것을 에스겔 선지자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포로 시대 때에 사역을 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이기도 했습니다. 또 국지적인 관측을 넘어서 우주적으로 본다면 결국은 이것은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게 될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고 교회의 사명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을 양 떼라고 묘사하셨는지 혹시 아십니까? 수많은 동물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당신의 백성들을 양 떼에 비유하셨을까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각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공격하거나 재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빠른 다리로 도망을 한다든지 큰 뿔로 받아버린다든지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한다든지 혹은 땅속으로 숨어버리는 두더지처럼 그렇게 엄폐할 수 있다든지 하는 재능이 모두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그것들중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이빨도 그리고 날카로운 뿔이나 힘 있는 다리. 그리고 자신을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 양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인간 가까이 두셔서 인간을 의존하며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만물의 질서가 다 깨지고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저주받은 땅에서 양들이 살아남는 방식이 바로 인간 가까이에 있으며 그 인간과 함께 번식하고 인간을 섬기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양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결국 양이 인간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생명을 부지하는 것처럼 너희 하나님의 백성들도 나를 그렇게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되었노라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순하다, 말을 잘 듣는다.’ 그런 뜻이 아니라 양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성. 그렇게 인간 가까이서 인간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며 목자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사는 존재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독립하려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어떻게 하든지 변화시키고 정화시켜서 하나님 의지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게 목양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에 의하면 목양의 목표는 회심하게 하고 회심한 사람들은 그 은혜를 보존하게 하는 것. 회심할 때만큼 주님의 품으로 파고드는 때가 있을까요? 그 은혜를 보존하고 있는 사람은 기도 없이 살 수 없으니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찬양)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존하며 사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잃은 양같이 모두 흩어져 유리방황하였습니다. 그렇게 양을 돌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하셨고 또 이스라엘이 멸망 당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목자를 잃은 양 떼처럼 방황하고 유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흩어진 양 무리를 바라보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달프게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가난하고 굶주렸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렇기도 했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흩어져 유리방황하고 영혼의 상태를 보시며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럼 뭘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만 구원받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양 떼를 돌보는 사명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께 주어진 사명이었고 그리스도는 목회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 소명을 나누어 주셨지만 사실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목양의 사명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교회가 장로들과 목회자들이 아주 심하게 다투고 교회에 분쟁이 일어납니다. 양 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양 무리에 대한 눈물은 간 곳이 없고 권력에 의지들이 충만하니까 그렇게 자기의 고집을 내세우며 교회야 상처를 받든지 말든지 박터지게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교회에서 사람의 각자의 재능에 따라 어떤 사람은 교사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장로로 또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목양은 그렇게 부름 받은 많은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나는 그냥 교회나 고치고 일이나 하지. 목양은 내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그렇게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목양의 사명에 대해서 깊이 눈을 뜨게 하는 사람들이 종교개혁자들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지배하는 교회와 지배받는 교회. 명령하는 교회와 순종하는 교회. 가르치는 교회와 배우는 교회. 지배하는 교회와 지배당하는 교회로 나뉘어져있고 평신도는 세금으로부터 시작해서 교회에 희생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짐만 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나타나서 이것들이 성경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르짖었던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목양의 사명을 회복한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명령하고 복종하는 그런 세속적인 위계질서의 정부와 같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양 떼들이 함께 한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그 말씀을 가지고 목회자는 목회자의 자리에서 평신도는 평신도의 자리에서 성심을 다해서 말씀의 섬김이들이 되는 것.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회복하고자 했던 교회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 수리나 한다, 나는 책이나 만든다, 나는 교회에서 행정이나 본다, 나는 교회에서 열심히 커피 탄다. 그러니 양 떼는 목회자들이나 돌보라고 하라.’ 이것은 교회의 이상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는 만인 제사장이 된 동시에 모든 사람이 말씀의 섬김이들이 되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구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을 북돋우고 연약한 자를 세워주면서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그들도 진리의 빛 안에 살도록 돕는 것. 삶 전체로 그들을 큰 목자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혀 살도록 돕는 일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교회에서 섬기는 이들을 뽑았습니다. 특히 장로들을 뽑고 제가 어느 날 원래 장로를 뽑는 것은 당회에서 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꼭 보면 당회가 좀 나중에 마음이 변심하게 되면 이상한 사람들을 장로로 세우면서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나부터 먼저 그런 권한을 내려놨습니다. 누구를 장로 시키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직까지 세워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구역장들에게 앙케이트를 걸어서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참 놀라운 것은 자기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 추천을 안 해줍니다. 자기네들과 가끔 와서 밥이나 사고 이러는 사람 절대 도장 안 찍어줍니다. 자기네들과 함께 땀 흘리며 아웃리치하고 함께 땀 흘리며 선교가고 함께 영혼들을 섬기며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사람들. 그것도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이 입증된 사람들. 교회를 향해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도장을 찍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느낀 게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물질로 봉사하거나 혹은 인맥을 가지고 있어도 절대로 구역장들이 도장 찍어주지 않는구나. 물론 구역장들이 장로를 추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그분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장로를 세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세워졌을 때 ‘저 사람이 왜 됐지?’ 그런 사람이 세워지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교회가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생사를 같이 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구나. 생각을 느끼게 됩니다.
그게 목양입니다. 양 떼들과 함께 살고 양 떼들과 함께 죽는 그런 속에서 결국은 교회가 세워져가는데 이 사명을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구역장을 10년 동안 잘하면 시집가면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도 견딜 수 있고 직장에 가면 이상한 상사 밑에서도 견딜 수 있고 가정에서 자식들이 아무리 나쁜놈이어도 걔네들과 함께 참으며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내년에 영혼을 섬기자. 구역장을 하느냐, 교사를 하느냐 그것도 좋겠지만 그것도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내 마음에 품고 그의 구원을 나의 구원인 것처럼 여기고 그의 영혼의 변화를 내 영혼의 변화인 것처럼 여기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남을 위해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 기도도 거의 없습니다. 자신을 향해 기도가 모아지면 모아질수록 그 기도는 결국 마지막에 할 것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마른 쭉정이처럼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서 솟아나서 밖으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영혼을 목양하는 사명을 목사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지체들과 함께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 사명의 온 교회가 충실하게 될 때 이 말씀의 떡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나누어지면서 그 말씀으로 영혼이 심령이 부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마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설교를 들었을 때에는 그저 그랬는데 구역 식구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깨달아지고 심령에 큰 은혜를 받은 성도들을 보면서 여러분도 은혜 받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의 사명은 이렇게 양 떼들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섬길 영혼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그를 위해 낮아지는 법을 배우고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를 위해 눈물 흘리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비밀한 은혜를 받으면서 영혼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그 고난의 섬김을 기억하며 티끌만큼이라도 우리가 그 목양의 섬김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그 때에 진정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에는 은혜의 부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그렇게 당신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양 떼들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당신이 안 계셔서 흩어진 것이 아니라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 당신은 당신이 직접 우리를 목양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당신 닮은 목회자, 당신 닮은 사람을 통해 양 떼들을 목양하길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양 떼들을 사랑하십시오. 흩어져서 들짐승들의 밥이 되어버렸고 양 떼가 높은 산이나 높은 메 뿌리에 다니는게 아닙니다. 양 떼는 낮은 지역에 풀밭을 거닐어야 할 피조물들입니다. 그런데 그 들짐승들에게 쫓겨쫓겨 저 높은 산꼭대기까지 돌가닥길을 오르게 되었으니 그 위험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 주위에 곤고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영혼을 위해 봉사하는 말씀의 섬김이들이 되십시오. 목양하십시오. 한 영혼을 위해 살아도 이바지하면서 사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의 영혼이 사는 비결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