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_공동의회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질문
녹취자: 이은정, 이새봄
2022년 담임목사님과 함께하는 열청캠프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안녕하세요? 청년부 신효리원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KNJ 김남준 목사님이십니다! 무려 3년 만에 저희가 열청캠프로 목사님을 뵙습니다. 먼저 인사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늘은 강단의 담임목사님 대신 삶과 신앙의 선배 김남준 선배님으로 조언을 듣고자 하는데요. 답변해 주실꺼죠? 선배님? 네. 그럼 저희 열린청년들의 다양한 고민을 총 8개의 카테고리 10개의 상황별 질문으로 여쭙고자 합니다.
상황 1) 이성간의 스킨쉽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까요?
여 : 자기야~ 나 손이 너무 텄어. (손이) 너무 건조한가봐.
남 : 아 그래? 잠깐만 내가 핸드크림 발라줄게. 오늘은 꼭 성공해야 되는데,
여 : 어, 사, 사람들 있잖아. 아. 그리고 우리 마스크 꼈어.
남 : 괜찮아, 포스트 코로나잖아.
여 : 아, 그래도.
남 : 아, 그래? 그럼 아, 맞다 우리 집 엄마 아빠 여행 갔는데, 우리 집 갈래. 라면 먹고 갈래? 라면,
나 잘해.
여 : 라, 라면? 우리 방금 짜장면 먹었잖아. 그리고 내일 주일이잖아.
남 : 아 맞다. 주일이구나. 라면 싫으면 야놀자 알아?
사회자 : 네! 여러분의 집중력이 상당히 높아진 게 느껴집니다. 드라마나 주변 보면 이런 상황들 참 많은데 우리 기독청년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스킨쉽을 허용해도 되는 걸까요?
목사님 : 젊었을 때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성적인 욕망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마는 누구든지 예외가 없는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욕망을 따라서 그냥 다 마음을 풀어버리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죄다, 이런 거를 먼저 따지기 전에, 자신의 삶이 굉장히 고달파진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러분들은 크리스천입니다. 크리스천은 이 속에 확실하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양심의 가책이 훨씬 큽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어느 선까지 스킨쉽을 할 수 있느냐? 그거는 각자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근데, 가장 극단적인 두 경우를 예를 들겠습니다. 다 크리스천 청년인데, 한 청년은 어디서 책을 읽었는지, 나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근데 뭐냐면, 이 성적인 터치는 절대 후퇴를 안 합니다. 후퇴하면 연대감이 떨어지고, 연합의 감정이 훼손됩니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것입니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 짜릿하지, 열 번쯤 잡고 나면 하나도 안 짜릿합니다. 그다음에 진도를 계속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이 있으나 없으나 솔직히 모두 다 똑같습니다. 이걸 안 청년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이었는데, 경건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자매를 사귀었는데, 나는 만나서 교제를 하기로 결정한 그 날 둘이 약속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날까지 손도 안 잡기로. 이거는 완전히 이쪽에 완전히 극단에 있는 쪽입니다. 근데 훌륭하게 연애가 진행되고 결혼했고, 지금은 아이 다섯 낳고, 잘 삽니다. 다섯, 다섯. 그때 손 못 잡은 한을 이제 결혼하고 다 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한쪽 극단은 뭐냐 하면, 신앙이 상당히 주님을 만났습니다. 자매였는데 다 실화 얘기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들 없기 때문에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교회에 와서 울며 괴로워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데이트할 때마다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게 잠자리까지 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근데 하여튼 데이트를 하고 나면 너무 즐거운데 집에 와서 미친 듯이 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는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요즘에 흘러가는 이 기류가 충격적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경건한 사람들은 정말 그럴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유튜브에 들어가서 이 문제를 가지고 궁금해서, 젊은 사람들이 토론하는 걸 봤습니다. 그날 토론의 주제가 뭐냐 하면 남녀가 사귀면, 근데 왜 이렇게 집중도가 뛰어납니까? 예배 시간에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런 놀라운 집중이, 성질이 다른 집중이 느껴집니다. 근데 이게 현실적인 문제라 그럽니다. 제가 오늘 여기서 막 부흥회를 하려고 하다가, 일주일 남겨놓고 생각을 딱 바꿨습니다. 말씀까지 다 준비해 놨습니다. 근데 딱 내려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근데 설교 속에서 이것까지는 안 나옵니다. 근데 이제 들어보십시오. 패널들이 다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가 좋으냐?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앙케트를 조사했습니다. 근데 충격적인 게 뭐냐 하면, 가장 권장할 만한 것은 사귄 지 한 달 만에 성관계를 갖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리고 응답자의 25%는 ‘선 성관계, 후 교제’, 그것이 훨씬 좋다‘ 물론 그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고려된 것이 아니겠지마는 교회에서 조사하면 그렇게 안 나오겠지만 충격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두 번 정도 만난 다음에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 두 사람 다,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사실은 죄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리고 윤리 관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도덕적인 가책이 덜할 수 있습니다. 생각 자체를 그렇게 가져버린 사람들은. 그런데 일반적으로 본다면 아직까지. 그러면 그거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자도 이 문제로 굉장히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무신론잔데도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거는 확실하게 우리 양심에 새겨주신 하나의 율법인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냐면, 둘이 교제를 했는데, 내가 아는 한 연애의 케이스는 자매가 집요하게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근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남자가 그걸 대시를 합니다. 근데 안 된다고 하는데 계속 대시를 하다가 마지막에 결국은 “잠자리를 같이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깨어지자”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6개월을 널 사귀었는데, 네가 천연기념물이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헤어지는 커플들을 여럿 봤습니다. 그 사람이 자매일 확률이 높지만, 형제들도 똑같이 그런 대시를 자매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근데 남자처럼 그런 식으로 다가와서 “너 나하고 같이 자. 안 자면 내가 헤어져 버릴 거야. 네가 천연기념물이냐?” 여자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근데 대부분 반대의 케이스란 말입니다. 근데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냐면, 대부분 그렇게 노골적으로 교재 속에서 성관계를 요구하는 사람은 그게 첫 번째가 아닙니다. 첫 번째면 그렇게 못합니다. 니체 책을 읽어봤습니까? 굉장히 저돌적이고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인류 역사의 대철학가들을 완전히 똥으로 뭉개버리는 사람입니다. 근데 루 살로메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는 수줍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두 번 고백했다가 다 딱지 맞고 손목도 못 만져봤습니다. 그게 바로 성에 아직 눈뜨지 못한 사람의 특성입니다. 절대, 예전에 경력이 없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대시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참 사랑한다면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거를 ’나는 싫다‘ 그러고 나는 그렇게 할 때 엄청난 가책을 느낄 거라는 고민이 되어서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참아달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못 참으면 그건 사랑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결혼하고도 매사에 그런 식으로 여자를 대할 가능성이 매우 많은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오늘 무슨 케케묵은 정조 관념에 집착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육체의 결합 이전에 정신적인 결합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매들한테 얘기하는 건 뭐냐 하면, 이해를 하십시오. 형제들이 그러는 거를. 그게 뭐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게 보지 마시고, 그게 정상입니다.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근데 설득하십시오. 그리고 이해시키고, 참아달라고 얘기하고, 너무너무 참을 수가 없으면 빨리 결혼하십시오. 빨리 결혼하면 됩니다. 근데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라.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만약에 관계가 깨졌다고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사람이 아닙니다. 더 훌륭한 사람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비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자신의 순전함을 지키는 것이 그게 신앙적으로도 승리하는 길이고, 자기 인생도 더 많이 비참하게 꼬이지 않는 길입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그래서, 뱀다리 하나 덧붙이자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사족을 달자면, 그 뜻입니다. 뱀다리 하나 걸치자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제 개인적으로는, 스킨십이 성적인 욕망을 끓어오르기 직전까지, 거기까지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훨씬 보수적이었는데, 지금은 이제 훨씬 좀 나아진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저의 테이프를 들어보시면 결혼 결심 하기 전에는 절대 연애하지 말고, 연애를 시작했으면 6개월 안에 결판을 내고, 결혼하든지 말든지 결정하고, 헤어지든지 살든지 둘 중에 하나 그랬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던 때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 보니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면도 있더라‘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 내가 이해하냐면, 저 개인적으로 본다면, 라이트 패딩 정도까지만. 이해했습니까? 라이트 패딩? 그래서 가볍게 이렇게 텔레비전에서 마치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데,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 어깨 두 개 부딪히는 정도, 볼 부딪히는 정도는 할 수 있지는 않나? 그러나 그거는 손목만 잡아도 성욕이 생기는 사람은 손톱 만지는 그것까지가 경계선입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상황 2) ‘SNS 보여지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생겨나는 허무함과 열등감을 마주하고 있는 기독 청년들은 어떻게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남 : ‘어, 현수야 이렇게 찍으라고?
여 : 아, 아니, 오빠 카메라 쫌만 오른쪽으로. 아, 비율이 이게 뭐야?
남 : 미안, 미안. 근데 있잖아.
여 : 잠깐만, 댓글 좀 확인할게.
남 : 어. 현수야, 나 오늘 먼저 가볼게.
여 : 갑자기 왜 그래?
남 : 사실 중요한 할 말이 있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네.
여 : 아, 오빠 미안해. 잠깐만 기다. 띠링. 아니 그러니까, 띠링 띠링. 잠깐만 기다려봐. 나 이것만 확
인하고,
남 : 됐다. 너는 인스타 업로드하려고 나 만나? 갈게.
사회자 : 요즘 SNS는 필수처럼 여겨지는데요. 심지어는 취업 때 개인 SNS가 플러스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희들의 실제 삶은 SNS와는 거리가 있는 거 같아요. 또 보여지는 삶과 실제 삶의 괴리로 인한 허무함,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면서 열등감도 느끼기도 하고요. SNS가 피할 수 없는 대세이지만 그 안에서도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목사님~?
목사님 : 여기서 우선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가슴에 새겨둬야 할 한 줄을 얘기하자면, 여러분들이 살고 싶은 거는 누구의 인생입니까? 그걸 묻는 겁니다. 누구의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우리 맨 앞에 집중하고 있는 자매님, 누구의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진심입니까? 이런 분들은 아까 말씀드린 것 같은 이런 위험에 빠질 염려가 별로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면, 전 SNS 안 하는 거 아십니까? 전 카톡도 안 합니다. 그럼 뭐 못해서 안 하나? 아니 그걸 왜 못하겠습니까?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사진을 찍어서 어디엔가 올려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그 못하겠습니까? 나도 합니다. 근데, 나는 안 하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그리고 그냥 문자 하나 씁니다. 그리고 궁금하면 자기네들이 얘기를 하라. 내가 이 얘기를 왜 했냐 하면은,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거를 잊지 마십시오. 자기의 인생에서 충분한 보람을 찾고, 이 마음속에 그 충분한 보람을 찾고, 자기 충일성이 있는 사람들은 SNS에 목매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난번에 호주에 있는 자매 하나가 SNS를 올려 자매인지,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요새 젊은 여성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호텔에 가고, 어마어마한 음식을 먹고, 차 이런 거를 해서 올려서 수백만 팔로워를 거느렸다가, 결국은 커밍아웃하고 그다음에 정신적인 문제를 겪어서 결국은 자기를 고백하고 그다음에 내려놨잖습니까? 얼마나 웃기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몰랐죠? 벤틀리 같은 거를 빌려줍니다. 3억짜리 차입니다. 벤틀리 보통께 3억입니다. 근데 뭐냐면 SNS 찍기 위해서 잠깐 타고 내리는 거 빌려줍니다. 호텔도 그런 게 있습니다. 1박에 400만 원 600만 원짜리 하는 거를 빌려줍니다. SNS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 사람들이 대부분 실제로 거기에 묵은 게 아니라 찍은 겁니다. 그렇게 하고 그거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거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거를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데, 그건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 인생을 살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근데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이냐? 자기 정체성에 관한 확인이 없이는 자기 인생을 절대로 못 사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관한 확인이라는 건 뭐입니까? 내가 누구인가 하는 거를 아는 것입니다. 그거 없이는 자기 정체성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나방처럼 계속해서 SNS에서 SNS로, 유튜브로, 막 이렇게 날아다니면서 시간을 평균 보통 세 시간 반을 소비한다고 통계가 나왔잖습니까? 핸드폰 붙잡고 있는 네 시간 정도. 그리고 요새는 여기에 아예 기록이 뜨잖습니까? 자기 사용한 기록, 물론 이제 이런 거를 이렇게 놓고 또 유튜버 같은 걸 틀어놓고 그냥 여기다가 블루투스 스피커에 걸어놓고 나처럼 책을 읽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하는 사람에겐 시간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음악만 나올 뿐이고, 나는 내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이거를 피고, 이것이 감각과 자기의 생각을 다 지배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짜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아니 진짜 젊은이라면 나는, 금으로 떡칠한 황궁에서 남의 인생을 살기보다는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서 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게 우리가 가져야 할 공통된 심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냐 하면,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지만,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면, 자기 속에 자기가 갇혀 있으면 자기가 누군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우리의 인생과 자기 자아관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많은 가르침은 일단 의심하고 들으십시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될 수 있으면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려고 하고, 바깥에서 가르쳐주는 비성경적 가르침에 대해서는 혹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 얘기하는 게 그것입니다. 뭐냐면은 그럼 객관적으로 자기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가장 좋은 게 책을 읽는 것입니다. 근데 요즘 책을 잘 안 읽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책만 강조하진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게 제일 좋은데, 책과 영화 이런 거를 보더라도 오락성으로 한번 확 소비해버리고 없애버리는 영화를 봐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텐션이 심하고 그럴 때에는, 그냥 우편 배달부 같은 메시지가 없는 그런 영화를 보면서 한참 웃고, 그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근데 늘 그런 것만 보는 사람은 자기를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영화를 봐도 끝나고 나면 뭔가 이렇게 깊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어떤 문제를 던져주는 그런 (영화를 보십시오) 최근에 제가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본 영화 가운데 있는데 The Trial of the Chicago 7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십시오. 근데 그게 68운동과 관련되고 어떻게 해서 말하자면 기존의 질서에 항거하는 현대적인 인권에 대한 생각들이 미국에서 출발하게 되었는가라고 하는 1960년대의 그 영화입니다. 그런 거를 보면서 인생을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영화를 봐도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독서라는 습관이 있으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독서를 아예 안 하는 사람들은 이걸 할 수가 없습니다. 독서를 해도 무슨 무협지나 보고 앉았고, 명랑 소설이나 보고 앉았고 만화는 책이 아닙니다. 그런 거 웹툰 같은 거 그런 게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나 문학, 그다음에 거기서 조금 더 진보하면 철학이나 아니면은 사상에 대한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생각의 폭을 키워야 합니다. 근데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두 번째 팁은 뭐냐 하면은, 근데 그거 가지고 해결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딱 찾았으면 너무 간단하게요? 근데 못 찾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음으로써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비록 많은 지식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압니다.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걸 아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 속에서 얘기했지만, 카네이션의 비율을 다시 한 번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엄마가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고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름다운 생화를 달고 왔는데, 한 사람은 색종이로 막 촌스럽게 오려서 붙이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쓴 글을 엄마가 가슴에다가 자랑스럽게 달고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거는 자기 유치원 다니는 자기 딸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가슴 위에 달린 카네이션 같은 존재입니다. 그 엄마에게는 그 어떤 화려한 장미 그 카네이션 꽃보다, 실물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 때, 그때 아까 말씀드린 그런 성적인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확고한 입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널 사귀지만, 제가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게 되기를 나는 모두 바랍니다. 근데 사랑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 빠진다는 의미가 주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빠지는 거는, 그거는 좋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지막 끝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너 없이도 살 수 있는데, 근데 난 너하고 있는 것도 참 좋다 점점 좋아진다. 그런 자기 확립을, 컴퍼스를 그릴 때 중심축을 딱 놓고 그다음에 이걸 돌리잖습니까? 이게 움직이면 안 된다 이것입니다. 내가 늘 하는 말이, 혼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둘이 만나도 행복하지, 혼자서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둘이 만나서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게 지금 이야기하는 주체성의 확립입니다. 독서를 하라. 사색을 하라. 신앙을 가지라 그 얘기입니다.
상황 3) 기성 주식과 투자성 주식을 어떻게 분별하고 선용할 수 있을까요?
남 : 아, 10만 전자 어디 갔어. 뭐? 66층? 일론 머스크는 또 뭐야. 도지코인 화성 가야 되는데,
여 : 야, 너 이제 코인까지 하냐?
남 : 아 오늘 일론 머스크가 도지에서 시바 코인으로 갈아타가지고, 아 나 미치겠네. 진짜
여 : 주식이고 코인이고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남 : 네가 몰라서 그래 10년만 있으면 지금 쓰는 돈 카드 다 없어진다니까. 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
계가 코인 하나로 통용되는 세상이 온다고. 안하는 네가 바보야.
사회자 : 목사님, 도지코인 아시죠? 네 일론 머스크 코인이라고도 하는데요,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가르치는데 돈이 주는 효용성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주식과 코인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경우들도 많은데요. 그런데 투기와 투자 사이의 구분이 참 애매합니다. 우리 기독 청년들이 이를 어떻게 분별하고 선용할 수 있을까요?
목사님 : 주식 투자를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의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전문가적 시점에서 제가 조언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번 극동방송 사장을 지내신 김상환 목사님을 만나서 한번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주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제가 물어봤더니, 자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나는 내가 답을 다 알면서도 일부러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뭐냐 하면, 자기의 신앙의 경험에 의하면, 돈이 사람을 따라와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가면 사람이 너무 추하고 비참해진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주식에 대해서 제가 죄악시하거나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각자 자유 아디아포라에 속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그런 분야에 속한다고 봅니다.
근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주식 시세를 보는 평균이 직장인들이 약 340회라고 통계가 나왔답니다. 그게 뭐냐면, 폰에 눈을 못 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5분 단위로 주가가 막 이렇게 출렁출렁 거리는 게 보이니까. 그래서 아침 9시가 되면 남자 화장실은 도저히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들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모두 화장실에 몰려서 팔 거 팔고, 살 거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편을 옆에 놓고 아니면 컴퓨터에 창을 띄워놓고 계속 한쪽으로 주식 시세를 보면서 일을 하니까, 그거는 일을 할 수 없는 폐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뭐냐 하면, 주식을 하는 건 좋은데, 이렇게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가끔 들리는, 뭐 예를 들자면 저도 들었습니다. 93년도에 이동통신이 생길 때 자녀에게 200만 원씩 이동통신 주식을 사줬고 20년 후에 까보니까, 한 아이당 20억으로 변했다고 그랬답니다. 그런 걸 꿈꾸면서 내가 지금 돈을 투자하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벼락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투자를 하지는 말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자기가 벌어들이는 수입과 경제 상황을 생각해서 이게 확 주저앉아도 자신의 삶이 거의 흔들리지 않을 정도 선에서 하는 게 좋다. 이것입니다. 물론 그걸 해서 먹고 사는 사람에겐 이런 충고가 적용이 안 되겠지만, 그러나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 사람들은 그런 정도의 선을 그어 놓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왜냐하면, 모든 자신의 인생의 미래가 주식 가격에 달린 것입니다. 근데 그렇게 해서 결국은 뜨는 때가 있다고 치자 이것입니다. 근데 내일이면 곤두박질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up and down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설교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미국에서 슈퍼볼 해가지고 몇천억 몇백억씩 받은 사람들이 예외 없이 다 불행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로또 맞은 사람들을 가지고, 기획 특집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모두 불행해졌습니다. 불행해지지 않은 사람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그중에 한 케이스는 로또 받자마자 남편에게 아내가 물어보는 것입니다. 여보 공돈이 3천만 원 생기면 당신 뭐 할래? 그러니까 ’뭐도 하고 뭐도 하지’ 그런데 아니 어차피 그 예상도 못 했을 건데 가난한 사람 도와주면 안 돼? 그러니까 그것도 괜찮겠다. 여보 내가 로또 맞았는데 3천만 원이 나왔어. 당신 입으로 가난한 사람 도와주자 그랬지? 이거 도와주자. 그 사람은 로또를 맞고 부부 관계가 훨씬 돈독해졌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순서가 똑같습니다. 큰 로또 맞고, 제일 먼저 이혼하고, 스포츠카 사고, 차 사고, 집 사고, 재혼하고 그다음에 또 깨지고, 재혼하고, 여자관계, 알코올 중독, 마약, 마지막에 조금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분의 뜻대로 투자했는데 도지코인인지 무슨 돼지코인인지 샀습니다. 그래 가지고 천, 2천만 원을 탈탈 털어서 대부까지 대출까지 받아서 집어넣었는데 그게 10억이 됐습니다. 그게 여러분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보증이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거기에 달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니라‘라고 성경이 이야기한 건 의미 심장한 것입니다. 어떻게 돈을 사랑하는 게 일만 악의 뿌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성욕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그러면은 이해를 하겠는데 그게 아닙니다. 그건 부분적입니다. 뿌리는 돈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 절대 안 할 거다 내가 그런 식으로 뭐 쓸데없이 그런 서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근데 안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근데 난 이런 거는 괜찮다고 봅니다. 내가 한 달에, 그 4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는데, 매달 40만 원씩 아주 윤리적이고, 천천히 가기는 하지만 절대로 망하지 않을 기업 같은 데다가 이렇게 적금을 붓는 방식으로 한 40만 원이나 20만 원 정도 40만 원도 좀 많겠죠. 20만 원 정도씩 그냥 한 10년이고 15년이고 꾸준히 투자하는 식으로 적금을 붓듯이 투자하는 사람들은 삼전을 산 사람도 그렇게 산 사람은 돈을 벌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하고 절대로 자신이 주식에 대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착각 일으키는 게 볼링입니다. 근데 제가 볼링이라는 걸 거의 만져보지 못했는데, 첫날 가서 굴렸는데 150점 가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볼링에 대해서 만큼은 내가 천재적인 뭘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친구들이 똑같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칠 때 다 그렇게 나온다고 130씩 120, 130 많이 나오는 애들은 150씩 나왔다고 그러는데, 그다음 날 가고 그다음 날 가보면은, 다 자꾸 밑으로 내려갑니다. 파친코에서 미치는 사람들이 가서 다 이렇게 새로 들어오니까 저기서 내가 다 압니다. 그거. 스위치를 딱 돌려서 확률을 조장합니다. 한 번에 몇백만 원을 따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가면서, ‘나도 몰랐던 포텐이 나한테 있구나.’ 아 그게 뭐냐면 이 슬롯머신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만하지 마십시오. 저는 적금 파입니다. 적금으로 뭐 많이도 아니지만 하여튼 남는 돈이 있으면 적금으로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십시오. 하고 싶은 얘기 진짜 많은데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상황 4) 어떻게 하면 스마트폰을 절제하며 사용할 수 있을까요?
남 : 어우, 이제 발표 준비해야겠다. 띠링, 뭐야, 이 유튜버 복귀 영상 올렸네. 이것만 보고 시작해야
지. 아이, 뭐야, 벌써 열시야? 아, 이젠 진짜 해야 되는데, 큰일이다. 잠깐만 집중해야 되니까, 공부할
때 듣는 음악. 어, 뭐야. 당신이 모르는 김남준 목사님의 10가지 TMI? 야, 이건 진짜 안 볼 수가 없
네. 딱 이것만 보고 진짜 시작이다. 진짜~. 앗, 새벽 2시? 아 망했다. 내일 발표 어떡하지?
사회자 : 네 공감 많이 됩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죠? 어쩔 땐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거 같아요. 저의 취향..저의 감성..저의 고민 물론 설교나 강의를 듣기도 하고 유익도 분명히 있는데요. 절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절제하며 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목사님 : 근데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기 전에 한 번 심리 분석을 해보십시오.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내가 10년 전에 그 대학에서 강의할 때만 해도 첫 시간에 핸드폰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땐 그런데 젊고 순수한 애들이잖습니까? 그러니까, 그때도 내가 스마트폰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거는 내가 뭐 사진을 찍거나 자료를 보는 것 이외에는 사실 안 봤습니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 자체를, 제가 기계에 대한 관심이 되게 많은 거 아십니까?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서부터 이게 나에게 주는 굉장히 해로움이 굉장히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 내 학생들에게 얘기한 것이, 애들이 여기에 거의 빠져서 사는 것입니다. 삶이 통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얘기했습니다. 첫 시간부터 (말했습니다). “만약에 너희들이 이 핸드폰을 발 아래 놓고 구두 발로 짓밟아서 박살을 내버린다면 너희들의 인생이 바뀔 거다” 그랬습니다. 근데 지금은 그게 좀 너무 가혹한 견해였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없으면은 사실은 사회적으로 소외가 되는 그런 문제들이 지금 이제 발생하고 있고, 이거 스마트폰 없이 직장생활 할 수 있을까요? 업무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들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안 하면 안 되고, 우리 직원들도 이제는 어디를 가든지, 이거는 뭐 하나만 가지면 재택근무가 가능한 수준의 세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십 년 전에 내 견해를 조금 완화시키고 싶습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일을 하기 위해서, 그다음에 자기에게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정보를 찾는 동기가 두 개가 있는데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정보를 찾는 경우가 있고, 정보 자체를 위해서 정보를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김남준 목사의 10가지 TMI 그거는 뭘 생산을 해내기 위해서 그걸 찾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호기심이 들어서 보는 것입니다 .어우, 이 여성 굉장하군, 그런 거 보면 틱톡에 많이 뜨잖습니까?. 그 여자가, 뭐 헬스, 하고 하는 그런 레깅스 입고 하는 거 나오는데 그거를 찍어서 본 정보가 나에게 무엇을 생산하게 합니까? 그러니까. 그 두 개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뭔가 이렇게 내가 정보를 찾고 아무리 많이 핸드폰과 컴퓨터 속에 살아도 괜찮은 거는, 그 정보를 가지고 무엇인가 의미 있는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근데 아무 생산의 목표가 없이 정신 줄을 놓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거 틱톡이라고 그러나요?. 난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유튜브 열면 쭈르르 화면 여러 개가 나오는데 하나 툭 치면 15초 안에 딱 되는 거 있잖습니까? 하나 딱 뜨면 그다음에 위로 이렇게 올리면 계속 밑에 것이 계속 뜨는데 그게 한 시간 보내는 건 일도 아니고, 한참 하다가 보면 아까 얘기했지만, 새벽 2시네 라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정신이 배회하는 것입니다. 이게 첫 번째 현실입니다. 두 번째 말하고 싶은 것은 왜 그럴까? 그 심리를 분석해 보자 이것입니다. 왜 그럴까? 이게 뭐냐면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뭐냐 하면, 끊임없이 재미를 만들면서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조금 아까 그 여러분 혹시 뽑기 하지 않았습니까? 추첨? 나하고 저녁 먹는 거 당첨된 손 들어보십시오. 대박이네. 그다음에 티타임 갖는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10만 원 외식 상품권 송도 이동갈비 받은 사람? 와, 대박이다. 그거 제 아이디어입니다. 아니 뭐 제가 맘만 먹으면 담임 목사님과 함께 일본 여행하기도 내가 쏠 수 있습니다. 알프스도 갈 수 있습니다. 여기 그 강남에 가면은 그 융프라우요흐 다방이라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아직 이해를 못 했습니다. 느립니다. 그러니까 이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냐면, 그걸 왜 했을까요? 여러분 재밌으라고. 재밌잖습니까. 그러니까 계속해서 재미를 만들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재미와 의미를 찾아가야 합니다. 재미만 찾아가면 삶이 방향을 잃습니다. 그리고 계속 맛집만 돌아다니면서 맨날 말하자면 음식 보고 혓바닥 내밀고 침 흘리는 강아지처럼 됩니다. 그러니까 재미와 의미를 함께 찾아가면서 균형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근데 내가 주위에서 보면 너무 재미없습니다. 신앙도 없으면서 수녀처럼 하고 다니고, 수녀처럼 다니는데 신앙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목회자 흉내를 냈는데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대개 결혼도 잘 못 합니다. 왜냐하면은 예쁜 여자 탈렌트들을 잘생긴 남자 탤런트가 뺏어가는 게 아니라 개그맨들이 다 뺏어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재밌으니까. 요새 그래서 뭐 한지민하고 김준호?, 김준호가 재밌잖습니까? 나이는 좀 많아도 재밌잖습니까? 그러니까 재밌는 사람한테 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사람이 매력이 너무 없습니다. 몇 년을 사귀어도 나를 재미있게 해주지를 못합니다. 근데 그거는 그 사람의 사회성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꼭 돈만 가지고 재미있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재미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삶을 살 때, 삶이 훨씬 윤택해지고 재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역자들이 한 삼십여 명이 모이잖습니까? 그러면 우리 함께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 그럴 때 저는 우르르르 몰고 삼겹살 집에 가서 30명이 진을 치면 조폭들 단체 방문 같지 않습니까? 그렇게 안 합니다. 그럼 뭐냐하면, 저녁 때 아이디어를 내가지고 전도사님 시켜가지고 뽑기를 만들어 그래가지고 조장을 선정을 해서 뽑기를 하고 그다음에 여기는 갈빗집, 삼겹살집, 된장찌개집, 그 다음에 모구천, 아니면 스파게티집, 이렇게 차별을 두어 가지고, 그리고 뽑기를 뽑으면서 사람들이 전부 다 그것에 대해서 와, 하거나 에이, 하거나 이런 재미를 만드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그런 재미를 사람들에게 계속 만들며 살아갈 때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윤활유가 되고 자기 자신에게도 윤할유가 되는 것입니다. 제발 수녀처럼 살지 마시구요, 경건하지도 않으면서 목회자처럼 흉내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말고 재미있게 사십시오. 그 대신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뭐냐 하면은 자기의 인생에서 의미를 못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틱톡을 계속 넘기면서 3시간 4시간 밤을 새우는데, 마지막에 다 지쳐버린 허무함 빼고 뭐가 찾아오는 게 있겠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다. 근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그걸 알면서도 이게 안 끊어지는 것입니다.
근데 제일 좋은 방법은 뭐냐 하면, 이런 폰을 하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거는 꼭 필요한 업무용으로만 해놓고 이렇게 보고, 그리고 그냥 문자하고 전화 받는 거를 중심으로 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거 요금도 얼마 안 냅니다. 내가 한 달에 1만 6천 원 냅니다. 여기 오는 메시지 일로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인터넷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이거는 스미싱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이거는 수사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서 절제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에게 충고하는 건 뭐냐면, 너무 많이 이렇게 몰입을 할 것 같으면 퇴근하고 집에 올라갈 때, 그냥 이거를 폰을 차에다가 넣어두고 그냥 올라가라(고 합니다.) 밤 9시에 직장에서 전화하거나 문자 보내는 건 불법입니다. 그거 노동위원회에 제소하면은 다 회사에서 걸립니다. 그러니까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 급한 일이 무엇이 일어나겠느냐? 그런 급한 일이 있으면 일로 전화해라 이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거를 끊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된다 치료받으십시오. 그거는 정신병입니다. 정신 신경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거 치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서 약 먹고 심리 치료받으면서 거기서 떼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냥 핸드폰만을 내려놓는다고 하면은 답이 너무 모호합니다. 핸드폰을 안 보는 시간에 내가 뭘 할 거냐? 그래서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성경 다섯 장씩은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읽는다. 아니면 예를 들자면 재미있는 소설, 오만과 편견, 내가 이거를 쭉쭉쭉쭉 나눠서 내가 일주일 만에 읽겠다. 그래서 최소한 이만큼씩 읽겠다. 그리고 그다음에 뭐 죄와 벌이 그렇게 놀라운 인간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다니까, 죄와 벌을 들고 다녀봐야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게 보지도 않겠지만 그러나 그런 거 상관없이 내가 한번 읽어보리라, 되게 꼭 읽어야 될 유명한 책들은 제목만 알고 내용을 하나도 모릅니다. 기억도 안 납니다. 읽어도 고등학교 다닐 때 논술 고사 준비할 때도 그 소설을 읽고 논술 고자 준비한 게 아니라 소설에 관해서 쓴 글을 읽으면서 논술을 준비했잖습니까? 뭐 논술 안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러니까 그럴 필요 없이 보는 것입니다. 토인비의 역사의 한 연구가 대단한 책이라 그러더라 그 전설적인 책을 내가 한번 읽어보리라, 중간에 읽다 덮는 한이 있더라도 항상 휴대하고 있는 책이 있어야 합니다. 그 책이 내 책이면 너무 감사하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회자 : 그럼 이제 목사님 스마트폰에서는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어플은 어떤 걸까요?
목사님 : 어플 자체에는 사용하는 게 없습니다. 제가 핸드폰 쓰는 시간에 거의 80% 이상은 유튜브입니다. 유튜브 음악, 씨디를 살 필요가 없습니다. 다 들었으니까,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그 성가로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그리고 뭐 쇼팽 그다음에 차이코프스키 등등 클래식들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요새 나는 복음 성가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리고 뭐 그렇게 한때는 시세를 아주 좋아했었는데 자꾸 바뀝니다. 그래서 음악 듣는데 대부분 보냅니다. 그리고 네이버가 이제 뉴스를 잘 요약하고 있으니까, 그냥 한가한 시간에 주르르 이렇게 보면 뉴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그런 (것을 봅니다.) 또 어플 쓸 때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줄자 어플, 이렇게 참 편리합니다.
상황 5) 교회와 가정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부모님을 볼 때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여 : 저희 아빠는 교회학교 부장님입니다. 교회에 가면 저는 부장님 딸로 유명하죠. 아빠는 정말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학생들이 존경하는 그런 분이죠. 불신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은 저를 정말 부러워합니다. 근데 사실 저는 아빠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아빠의
삶은 너무 달라요.
남 : 임현수, 청년이라면 열정이 있어야지. 다음 달부터 내가 있는 그 부서로 와. 목사님께도
말해놨다.
여 : 아니 아빠, 왜 나한테 상의도 없이 말해? 내가 언제 섬김한다고 그랬어?
남 : 이현수 너. 오늘 큐티 했어? 가져와 봐. 그리고 너 지난주 순모임 갔어, 안 갔어?
여 : 아빠 그만 좀 해. 아빠는 교회에서는 그렇게 헌신적이면서 정작 나한테는 관심 있어?
사회자 : 목사님, 이거는 참 들어내기 힘든 고민인 것 같아요. 교회에서는 신실하고 인자한 부모님이시지만 가정에서는 권위적이고 신앙을 강요하실 때도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럴 때 사실 자녀로서 거절하기도 힘들 거 같고요. 이럴 때 부모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목사님 : 참 어렵죠. 근데 여러분들은 지금 결혼을 안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저 자매의 이야기 대사에 깊이 공감하고 그런 위선적이고 나쁜 아빠 같으니라고, 그리고 한번 욕해주고 싶겠지만 여러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길러보면, 그렇게 되기가 매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된 사람들이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여러분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면 대부분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근데 이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현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어떤 거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 그것이 부인할 수 없이 현실로 존재합니다. 그때 제가 항상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게, 그 현실을 빨리 파악을 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현실인가 아니면 절대로 못 바꾸는 현실인가, 아니면 아주 쉽게 바꿀 수 있는 현실인가, 조금 힘들게 바꿀 수 있는 현실인가, 절대로 못 바꿀 것 같은 현실인가, 이거를 빨리 판단을 해서 그거를 인정하면서 자기가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런 경우도 보면 이해를 합니다. 뭐냐 하면 아버지가 그러면 안 됩니다. 그렇죠? 그리고 와서 자기가 그렇게 존경받는 아버지면 가정에 와서 자녀들에게 따뜻하게 해주고, 뭔가 이렇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처럼 자기 집에 있는 자기도 아빠를 존경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돼야 하잖습니까? 근데 사실 그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역지사지가 돼서 생각해 보십시오. 뭐냐 하면 싸가지 없는 딸 되는 게 쉽습니까? 아니면 엄마한테 정말 그 칭찬받는 딸이 되는 게 쉽습니까? 그냥 싸가지 없는 딸들은 싸가지 없게 되려고 아주 분투하며 노력했기 때문에 싸가지가 없어진 게 아니라 그냥 생긴 대로 살다 보니까 왕 싸가지가 된 것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도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그 아버지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특별한 분투하는 것 없이 살면 그리고 또 그분이 또 분투한 것도 있을 거 아닙니까? 주일학교 부장이면 또 주일학교를 위해서 돈도 쓰고 뭐 교사들 먹이고 기도도 하고 뭐 금식도 하고 그랬을 겁니다. 근데 온전하게 되기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근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 그러다가 상처를 너무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위선적인 모습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신앙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게 됐습니다. 예수를 안 믿게 됐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돼서 결국은 불행해졌습니다. 근데 너 왜 이렇게 불행해졌냐? 이렇게 나중에 누가 물어볼 때, 우리 아빠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면 내가 안 그랬을 텐데, 그렇게 자기 인생에 대해서 변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거는 영혼이 없는 사람의 답변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내가 딸이라면 이렇게 그 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네 아빠 그런 걸 인정을 해라” 네가 어느 날 갖다 놓고 아빠한테 나 이런 거 실망했어. 그러고 딜이 된다고 해서 관계만 깨지지 아빠가 변할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5퍼센트는 너무 큰 가능성입니다. 그냥 우리 아빠는 생긴 대로 살다가 죽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속 편합니다. 쉽게 안 바뀝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이쪽 편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놔두고, 차라리 거기서 나는 저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 되겠다라고 마음을 먹으십시오. 그리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어떻게 예수를 믿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그것이 주체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입니다
결국은 뭐냐 하면 그 아빠도 사실은 그 딸을 보면서 그렇게 실망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딸이 아빠 핸드폰을 이렇게 보니까 그냥 딸이라고 적었더랍니다. 그래서 아빠 이게 뭐야, 딸한테. 툭툭툭툭 치면서 ‘예쁜 딸’ 이렇게 입력을 해줬답니다. 며칠 있다. 다시 이렇게 보니까 딸로 돌아갔더랍니다. 안 예쁘다는 것입니다. 그거 고치려면 일부러 들어가서 편집해서 주소록 수정했을 거 아닙니까? 그거를 자기는 지금 말을 하고 있고, 아빠는 말을 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라고 하는 것은 울림입니다. 내가 실망한 사람은 대부분 그 사람도 나를 보고 실망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내 가족을 내가 누구라고 정의를 했습니까? 가족이란 누구인가를 뭐라고 정의했는지 기억나십니까? 기억 나는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큰 소리로 말해 보십시오. 박수 쳐주십시오. 특별한 타인입니다. 담임 목사와의 식사에 초대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손을 다 끌고 오는 건 안 되고 혼자만 오십시오. 붙여주겠습니다. 특별한 타인입니다. 특별한 타인. 그러니까 사랑해야 하는데 근데 가족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 그런 사람이 돼선 안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마흔 통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서른 통 읽었죠? 이제 마흔 통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하고 계속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이는 들었고 그다음에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서 부모님이 자기를 성숙한 어른으로 취급 안 하고 막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막 고민을 하면서 나가서 살겠다. 그러면 막 너무 섭섭해하시고 또 몸도 안 좋으셔서 돌보셔야 한답니다.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는지 아십니까?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은 헤어지는 게 가장 잘하는 거다. ‘부모와 헤어져라. 그 대신 저 부산으로 가서 헤어지면은 부모님 돌볼 사람이 없으니까, 바로 그 48평 아파트를 산다면 둘로 쪼개서 24평 28평 해서 등기해달라고 그래서 옆에서 살아라.’ 웃지를 않습니다. 이게 내 얘기가 이렇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유머가. 무슨 소리인지 아십니까? 그래서 옆에서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면서 보살펴 드리되, 독립된 삶을 살아라. 그게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길이다.
나는 저런 케이스라면, 나는 내가 저 자매였는데 신앙이 뛰어나다면 아버지의 진실한 변화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것이고, 그 정도 신앙이 안 되면, 아빠는 아빠대로 살게 두고 나는 적어도 아빠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지는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으니까 실망시킨 사람 때문에 마치 신앙생활을 못 하는 것처럼 휘둘린다고 하는 것 자체가 주체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거는 그 자매의 아빠가 신앙은 아니잖습니까? 신앙은 예수님을 믿는 게 신앙이지, 어떤 사람이 예를 들어서 그 사물을 비췄는데 구불구불한 거울을 갖다 놓고 봤더니 막 꽃이 막 춤을 추는 거를 보면서 꽃에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잖습니까? 이걸 봐야지 거울을 들여다보면 안 되잖습니까.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뭐 상처받고 힘든 건 이해를 합니다. 근데 딱 그 칼로 긋듯이 딱 끊어내십시오. 그래서 이런 관계로 인해서 내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겠다. 그러고 줄을 떡 그으십시오. 자기가 할 수 없는 거는 할 수 없다고 인정을 하기 바랍니다.
상황 6) 교회 안에서 말로 인해 생겨날 관계의 어려움을 어떻게 예방하고 이미 생겨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여 : 진짜야? 걔랑 걔랑 사귀어? 헐, 걔 얼마 전까지 현수 만나던 애 아니야?
남 : 남준이 걔. 내 친구지만 장난 아니야. 진짜 걔가 만났던 애들 이름 듣잖아? 깜짝 놀란다.
여 : 야, 누군데, 누군데,
남 : 안돼. 걔 누구 만나는지 초롱이 하고 나밖에 몰라. 소문나면 난리 난다니까.
여 : 나만 알고 있을게. 내가 누구한테 말하는 거 봤어?
남 : 그럼 너만 알고 있어. 누구냐면,
여 : 헐, 알았어. 걔도? 야, 대박 사건. 남준이가~
사회자 : 목사님 교회만큼 말 많은 곳도 없는 것 같아요. 서로의 삶을 깊이 나누다 보니 오히려 걱정을 핑계로 이런 말 저런 말 다 오고가는 거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하는데요. 교회 안에서 말로 인한 어려움들을 어떻게 예방하고 이미 문제가 생겨난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 해야 할까요?
목사님 : 내가 여러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시리즈 하나가 있습니다. 그게 한 10년 전까지는, 열린 교회 오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설교 베스트 10 시리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말과 영적 생활이라는 시리즈입니다. 제가 그 설교를 지하실 교회에서 했습니다. 왜 했겠습니까? 이게 지금은 교인들이 교회가 커지고 교인들이 많으니까, 사실은 여러분들이 익명으로 묻힐 수가 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장로님들이 여러분들 알아봅니까? 모릅니다. 또 여러분도 장로님 열 분이 누군지도 다 모르잖습니까? 근데 지하실 교회에서는 다 알고,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 것까지 다 압니다. 근데 끊임없이 말에서 말이, 말이 꼬리를 물고 또 그때는 또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뭐 목자 잃은 양 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영혼을 보내주시겠다. 그랬더니 진짜 그런 사람들만 왔습니다. 그리고 뭐 어떤 사람은 목자 잃은 양인지, 아니면 뭐, 우리에서 도망친 늑대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험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중에 한 사람도 나한테 와서 막 이런 사람은 없습니다. 또 나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또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기네끼리 막 난리를 칩니다. 그거를 하나씩 붙들고 얘기를 해 봐야 고쳐집니까? 안 고쳐집니다. 그리고 뭐 해결의 길은 뭐냐? 그러고 기도하다가 말과 영적 생활이라는 시리즈(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10여 년 전에 수련회 GBS 교제로도 두 번이나 채택이 됐었습니다. 꼭 들어보십시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되게 재밌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지금처럼 이렇게 철학적인 설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주 때로는 뱃살을 잡으면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런데 핵심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뭐냐 하면은 성경에도 나오듯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그래서 사람이 내가 거기서 비유를 들은 게 뭐냐면, 사람이 말입니다. 물을 거룩한 은혜라고 보고, 온 지체가 그 거룩함의 물에 잠깁니다. 근데 마지막까지 물속으로 안 들어가려고 하는 우리 몸의 지체 하나가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수면 위로 미친 듯이 삐져나오는 게 있는데 이게 혓바닥입니다. 혀까지 거룩해지면 다 거룩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면서 자기 인생의 어떤 의미와 재미를 찾아가는 주체적인 생활을 못 하는 사람이 남의 이야기를 달고 삽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별로 필요한 일도 아닌데, 끊임없이 남의 이야기를 화젯거리로 삼고 뒷담화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말을 만들고 말이 (말을) 만들면서 그러면서 소문이 막 퍼져나가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돌면서, 결국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냐 하면은 안 좋은 이야기가 들렸을 때 그것을 자기 속에서 소화해서 마치 자갈밭 위에 물이 뿌려지듯이 소화를 해서 쫙 정리하면 더 이상 말이 안 나갑니다. 여기서 딱 끊어집니다. 근데 이거를 옮기고 옮기면 그 말이 돌면서 많은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동역자들이나 형제들에 대한 비리나 이런 것들이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원칙은 너무나 긴박한 하나님의 요청이 있는 한 내가 아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문은 내가 종착역이다. 하고 딱 묻고 사는 것입니다. 근데 그게 사실은 좀 힘들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말을 막 하고 싶으니까. 근데 그거를 참고 소화해내는 것이 형제의 허무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 시리즈를 꼭 읽어보십시오. 그러면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길지도 않습니다. 뭐 한 다섯 개 정도 돼 있으려나 여섯 개 정도 되려나? 그래요. 한번 꼭 읽어보십시오. 거기까지 하겠습니다.
상황 7)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을까요?
남 : 현수한테 전화 왔네. 아, 이거 받으면 한 시간 후딱 가는데, 받아야 돼, 말아야 돼? 바쁘다하고
빨리 끊어야지. 어, 현수야.
여 : 아, 찬이야, 나 너무 힘들다 잠깐 만날래?
남 : 아, 진짜? 근데 내가 지금 좀 바쁜데 무슨 일이야?
여 : 아니. 그게 순모임에서도 아무도 진지하게 안 들어주고 나눌 때가 너밖에 없다. 너무 힘든데
잠깐 만날 수 있어? 사실, 너희 동네인데.
남 : 우리 동네라고? 아, 나 진짜 못 나가는데. 아, 혹시 나중에. 진짜 나중에 말해주면 안 될까?
여 : 실망이다. 결국, 교회 친구도 다 똑같애.
사회자 : 저거는 좀 극단적인 거 같고요. 대부분은 그래도 잘 받아주는데 어떤 때에는 나도 좀 너무 힘들고 지쳐서 받아주기가 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사랑 없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죄책감이 들기도 해요.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 어떻게 맺어야 할까요?
목사님 : 참 어렵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약간 소화 불량기가 약간 있는데,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으면 그 체한 게 다 내려가면서, 언제 소화됐나 하고, 소화가 잘 됩니다. 보기 싫은 사람하고 만나서 밥을 먹으면 반드시 체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주 심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을 살다가 보면, 사실 자기가 꼭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살 수는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면은 결국은 이제 소인이 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만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근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지금 같은 전화가 오면 상대방이 무슨 얘기 할까 하는 게 너무 뻔한 거잖습니까? 그렇죠? 현수야, 너 왜 그러냐? 그러니까 나 너무 힘들어. 그러고 만났는데 나에게 어떤 굉장히 기쁘고 좋은 소식을 안겨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뭐 자꾸 뭐 힘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근데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뭐냐면 냉정하게 판단을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두 개의 사이에서 그러니까 저런 형제들이 나보다 훨씬 더 힘들구나. 그러면 들어라도 줘야 하겠다. 그러면은 쟤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사랑의 마음과 그다음에 내게 없는 것은 내가 줄 수 없다라고 하는 이 이성적인 판단 사이에서 어디에선가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근데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여러분들이 사람들이 저런 사람들을 만날 때 기가 빨려 나가는 것 같은 거를 느끼지 않습니까? 근데 내가 도저히 그럴 수 있는 기력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아주 솔직하게 돌려서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십시오. 내가 지금 나도 너무 힘든 일이 많아서 너의 그 힘든 사연을 내가 다 들어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만나서 네가 오늘은 위로를 못 받을 것 같다.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고백을 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조금 뭐 절대적인 에너지는 아니더라도 좀 미안한 마음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다음에 며칠 후에 다시 연락해서 내가 좀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아직도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냐? 그러면 한번 같이 만나서 밥이라도 먹을래? 라고 문자를 보내주는 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었던 그 교회의 가르침하고는, 내 가르침이 좀 빗나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마는 나는 먼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컴퍼스를 놓고 본다면 여기에 이렇게 할 때, 이거는 작은 원 큰 원 그리고 싶으면 벌리기만 하면 됩니다. 근데 이 지점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원이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도저히 안 되겠는 거는 솔직히 그거를 친구에게 정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그것을 들으면 그 사람도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수가 저렇게 지금 얘기 안 하면 못할 것처럼 막 그러는데, 그냥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얘기 안 해도 살아갈 수 있을 그런 상황이 될 적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거를 내게 있는 어려움이나 이런 것들을 이타적인 도움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는, 사람 의존적인 것이 습관이 되어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데는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고민이 있으면은 자기가 현수가 신앙이 깊으면은 언니나 동생 만나서 막 쏟아놓고 막 수다를 떨기 전에, 그걸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내가 지금 이렇게 괴로운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내 마음을 좀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런 대부분의 문제가 우리 안에서 스스로 소화가 됩니다. 나는 그렇게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솔직해지십시오. 못하겠는 거는 못하겠다고 얘기를 하십시오. 힘이 생길 때까지 좀 의외 아닙니까? 청교도스럽지 않지 않습니까?
상황 8) 열심히 사느라 이미 지쳐있는 우리, 어떻게 일과 신앙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여 : 아, 드디어 금요일이다. 저 퇴근 하겠습니다.
남 : 어, 임 대리 프로젝트 기한 얼마 안 남았는데, 퇴근들 하는 거지?
여 : (저 꼰대 왜 저래 진짜) 근데 차장님, 저 오늘은 진짜 중요한 약속이 있어 가지고.
남 : 어유, 중요한 약속 있으면 얼른 가야지. 그런데 나 때문에 말이야 일이 있으면 주말이고 뭐고 없었어. 우리 큰애는 내가 세 살 때 보고 그다음에 한 그 열 살 때 봤나 잘 컸더라고. 근데 애가 나를 못 알아봐. 요즘 사원들은 딱 자기 일 끝나면 가버리던데. 나 때는 부장님 퇴근 전에는 퇴근에 그 티읏 자도 못 꺼냈는데. 아 그 중요한 약속이라 그랬지? 얼른 가봐.
여 : 진짜 지친다. 때려치고 싶고, 너무 쉬고 싶다.
남 : 현수 자매, 청년부 이찬희 목사입니다. 토요일 꽃길을 걸어 다니는 거 아시죠? 내일 봬요.
여 : 네 목사님. 토요일만 기다렸는데 진짜 쉬고 싶다. 일, 교회 도대체 난 언제 쉬지?
사회자 : 요즘 청년들, 정말 열심히 살거든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오는 거 같아요. 일도 섬김도 모두 다 잘 해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될 때가 많거든요. 사실 쉼도 정말 필요하잖아요. 우리~ 그죠? 이미 많이 지친 우리 청년들. 어떻게 해야 활력을 회복하고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목사님!
목사님 : 번아웃이라고 하는 것은 다 타버렸다. 그런 뜻이잖습니까? 근데 그 번아웃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내가 어떤 목표를 찾아서 의미를 찾아서 재미를 만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상태, 근데 심리적으로 그런 상태가 되면은 육체로 그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몸과 영혼은 아주 굉장히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생리학적인 지식을 좀 가지고 있는 거, 그리고 어떤 의학적인 생리학 지식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떠한 조건에서 내 몸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더라고 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될 수 있으면 적게 노출하면서 사는 것이 자기 에너지를 보존하는 비결입니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번아웃은 현대인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어떤 식으로 나타나냐면, 지금 사회는 뭐냐 하면,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자체가 하나의 기계와 톱니바퀴처럼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일단 한 번 그 구조에 올라타고 나면, 자기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자기도 그 톱니바퀴처럼 같이 물리면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회사 다녀보면은 자기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투자하고, 혼자서 해결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다 거래처와 물려 있고 옆에 부서와 물려 있고 그다음에 생산자는 부품 공급업자와 물려 있고, 또 생산자는 그 납품을 받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이쪽 한 회사가 부도가 나면 그것은 2차 3차 4차 부도로 이어지면서 경제적으로 모든 것들이 다 묶여 있는 것입니다. 이게 현대 사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뭐냐 하면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내는 구조가 되니까 효율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실은 회사 생활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끈끈하게 이어지면서 우리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같은 직장에서 살아간다고 할 때, 그럴 때 한솥밥을 먹는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다음에 회사 자체도 자기의 어떤 그 이익과 관련지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런 속에서 번아웃 되는 것이 굉장히 쉬워지는 것입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에 대해서 이제 잘못 접근하는 게 뭐냐 하면, 육체적으로만 번아웃을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쉬면은 모든 것이 나아질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은 이 번아웃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 모두와 관련된 소진과 탈진 현상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육체를 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제가 게으름이란 책에서 얘기한 게 뭐냐면은 피로가 두 가지가 있는데 잠을 자고 나면 풀리는 피로가 있고, 잠을 자면 더 깊이 가라앉는 피로가 있습니다. 근데 그런 피로는 몸의 피로와 정서적인 피로와 그다음에 영적인 피곤함이 함께 겹친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는 아무리 육체적으로 쉬어도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러면 그런 번아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일 좋은 거는 자기 삶의 페이스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면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근데 그게 그러려면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왜냐면 경제적인 불이익을 감소하거나 희소성이 아주 높은 전문직으로 진출을 하거나, 근데 예를 들면 지금은 이제 옛날이니까 모르지만, 저쪽에 약국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제 의약분업이 안 됐을 때 모든 약국이 대개 밤 11시까지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되게 약을 살 때가 언제냐 하면 아침에부터는 견뎠는데, 저녁때 되면 몸에 증상이 나타나서 쑤시고 아프고 해서 퇴근하면서 약을 사 가지고 약을 먹는 것입니다. 근데 유독 그 한 약국만 5시에 문을 닫고 이 여약사는 테니스를 치러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몸이 안 좋으면 집에다 전화해서 자기 증세를 이야기하고 문 닫기 전에 가서 약을 지어놓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는 약사하고 통화하고 그건 무슨 얘기냐 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여러분들을 향한 수요가 넘치고 공급은 여러분들이 거의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에 공급하는 서비스를 공급하는, 재능을 공급하는 여러분들이 갑이 되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삶의 페이스를 자기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난 그렇게까지 돈 벌 필요 없어. 그리고 스스로 정리하고 스스로 휴가도 가고 쉬고 이러는 것입니다. 근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한 위치에 올라가야 합니다.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다른 탁월한 어떤 재능이나 그다음에 어떤 희소성이나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게 아니면, 그다음에는 뭐냐 하면, 내가 삶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욜로 시대라고 말을 하면서 예전에는 승진의 목을 맸습니다.
남자들은 특히. 근데 요즘 시대가 승진을 왜 하냐고 묻는 것입니다. 왜냐면 봉급은 이만큼 올려주고 책임은 이만큼 지는데, 나는 그런 거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진도 안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 가치관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나는 그런 인생관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뭐 탑으로 계속 올라가서 뭐 어느 그 대그룹의 그 부사장까지 말단 상원에서 올라갔는데 과로사로 죽었습니다. 지금도 과로사 많이 합니다. 허무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그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거는 뭐냐 하면은, 결국 인간의 몸과 정신 모두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많이 쓰면 젊었을 때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괜찮은데 이게 누적이 되면서 결국은 노년을 가불 하면서 젊음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나중에 망가집니다. 제가 장본인이잖습니까? 제가 20대 30대 40대까지 잘 안 먹고 안 자고 안 쉬고 살았습니다. 나는 월요일 휴무라는 거 없었습니다. 교역자들은 다 쉬어도 나는 나와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일합니다. 근데 그게 결국은 노년을 가불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거를 다 노년에 갚아야 하는데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게 마지막으로. 그래서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냐? 실질적으로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 직장을 다니는데 마음먹으면 내가 두 달쯤 쉴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들 가운데 손에 꼽을 정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언제든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임시직에 있거나 아니면은 아르바이트에 종사하거나 그럴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네이밍을 가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어디 장기가 망가지든지 부러지든지 하기 전에는 그렇게 두 달을 쉬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보면은 말은 쉬면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쉴 수 있는 구조가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한 가지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뭐냐면 번아웃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렇게 안 되려면 어떻게 되냐면은 그 일로부터 자기를 떼어놓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운동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는 시간, 재미를 찾는 시간, 그것이 일로 모두 지배당하지 않게끔 그 시간을 떼어 놔야 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운동, 그다음에 재미, 의미, 그 모든 걸 포괄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이 영역에 있어서 일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이것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와 육체적인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산책할 시간도 없다. 운동할 시간도 없다. 책 한 권 읽을 시간도 없다. 교회에 와서 기도할 시간도 없다라고 하는 건 인생 자체를 잘못 설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그 상태로 살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올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이 빨리 오냐 늦게 오냐지, 번아웃 돼버리는 것입니다. 번아웃 돼서 그냥 이러고 집에 누워 있으면 아주 좋은 케이스입니다. 번아웃을 대개 그렇게 견디는 사람은 없습니다. 번아웃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오락에 빠집니다. 도박에 빠지고, 성에 빠지고, 이렇게 하면서 일탈을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 아무리 훌륭한 직장을 얻었든 항상 생각하십시오.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이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을 항상 우선에다가 놔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한 사람으로서 든든하게 서서 살아가는 그 기초 위에서 나머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또렷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내가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도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다음에 육체적인 요소, 운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젊었을 때 운동 안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제가 유전자 검사를 했습니다. 무료로 누가 어느 병원에서 해줘서 내가 했는데, 같은 사람에 비해서 운동하면 근육이 28% 정도 빨리 발달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백 할 때 나는 72만 하면 똑같은 근육이 생기는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운동을 안 했습니다. 젊었을 때 운동 안 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시간이 아까워서였습니다. 뛰어다녔습니다. 근데 지금은 굉장히 후회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재미있는 운동을 꼭 하나씩 가지십시오. 그래서 그거를 굉장히 재밌어하면서 계속 운동을 하십시오. 그리고 특히 이렇게 그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그다음에 성적인 그런 것들에 대해서 괴롭힘을 많이 당하는 사람들일수록, 에너지를 많이 쏟아내는 과격한 운동을 하십시오. 그래서 내 형제들에게는 얘기하는 건 뭐냐 하면, 그런 격투기 같은 것들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꼭 격투기라는 한정된 게 아니라 자기 몸을 호신할 수 있는 그런 말하자면 강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그런 스포츠, 그래서 결코 사용하면 안 되지만 부득불 사용해야 할 때는 한 특수부대 출신이 아닌 한 1:3 정도로 붙어도 한 방에 딱 때려눕힐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실력을 배양(할수 있도록 운동하십시오)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유튜브 들어가 보면 수직으로 발차기를 하는 자매들 뭐 공중에서 세 번을 돌면서 송판을 격파하는 그런 자매들, 한번 꿈꿔보시면 어떠십니까?
그렇게 번아웃 된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적인 관계가 다 깨지는 것입니다. 근데 그거는 자기 인생을 갉아 먹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건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못 찾으면 자기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집에 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가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거를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번아웃 된 사람들은 필요하면 목회자의 도움, 개인적인 도움도 받으시고, 그다음에 정신과 도움도 받으시고, 그다음에 자기 몸의 영양 상태도 잘 헤아리십시오. 특히 연로하신 청년들이 있잖습니까? 그 청년들은 이미 육체적으로 탈진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는 보충이 안 됩니다. 그런 건강보조식품이나 이런 것들을 다 하면서 그러면서 종합적으로 자기 회복을 꿈꿔야 합니다. 그래서 옹달샘이 있는데 거기서 바가지가 긁는 소리가 날 정도로 물을 퍼먹어선 안 됩니다. 옹달샘에 물이 항상 고여 있어서 찰랑찰랑할 때 한 바가지를 떠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안에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힘이 항상 남아 있을 만큼 관리를 하면서 탈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상황 9) 개인주의 사회에서 기독 청년들은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남녀 대화]
남 :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순모임 가야지! 순장님. 오늘은 뭐 배워요?
여 : 오늘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요.
남 : 아! 그거! 제가 딱 저번 주에 했던 공과인데. 다음 주에 뵐께요.
사회자 : 네! 이게 순모임 참여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구요. 개인의 가치가 워낙 절대시되는 시대에 저희가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주의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공동체를 기본적으로 강조하고 있구요.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우리 기독청년들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목사님 : 그리스 시대로 돌아가 보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는데도 그리스 사람들이 자기의 인생에 생각할 때 문제는 딱 두 가지라고 봤습니다. 신 앞에서 좀 더 온전한 사람이 되고(그 신이 굳이 어떤 신인지는 우리가 밝힐 필요도 없습니다)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 거기서 나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 정신들이 로마에도 이어지게 됩니다.
현대에 기독교적인 가치가 발달된 곳에서 민주주의도 함께 발전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가 꽃을 피웠던 곳에서만 법치주의가 가능했습니다. 똑같은 혁명이 일어나는데 영국은 프랑스 같은 혁명이 안 일어납니다. 프랑스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맞아 죽는 끔찍한 혁명이 일어나는데 영국에서는 안 일어납니다. 그 이유가 기독교 정신인 것입니다. 기독교 정신이 있는 곳에서는 법에 의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 정신이 없는 곳에서는 개인과 공동체 그 자체가 서로 갈등과 모순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역사를 설명하면 되게 긴데 68년을 기점으로 폭발하듯이 세계 정신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문제는 개인이라고 하는 곳과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면 믿음생활을 잘 하고 내 마음에 삶의 기쁨이 있을 때에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특히 교회에서 지체들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교회가 자기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삶의 희망을 주고 자기를 격려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떨어지고 내적인 은혜가 사라지고 나면 나 자신도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없으니까 타인의 인생의 무게를 공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되는 사람은 특정한 신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타주의가 되는 것 자체가 자기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느끼는 주관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결국은 사람들이 개인주의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철학적으로도 어느 철학자도 자아라는 말을 설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도 자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을 안 합니다. 나는 아직도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해 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 대신에 성경은 그 자아가 무엇인지 본질을 규명하는 데에 시간을 쏟지 않고 자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건강하고 좋은 자아일 경우에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보여주고 병든 자아일 경우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어떻게 파괴되어가는 지를 보여주는데 그 파괴가 관계의 파괴입니다.
가족들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 간에 갈등의 요소가 항상 있어서 부딪치는데 모든 사람이 가슴에 칼을 품고 원망을 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혼하고 애들은 부모와 절연하고 절연까지 안하더라도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고 죽었다고 그래도 별로 눈물도 안 나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렇게 하면서 자신은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놀라운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자기의 인생을 구축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행복이라고 착각하면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고독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게 허락한 이 지체들이 나의 개인의 삶을 방해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무언가를 기여하며 살 수 있다는 것. 나도 오늘 보람을 느끼는 게 뽑기 한 번 했는데 여러분 그렇게 즐거워했다면서요. 나는 나의 존재 가치를 느낍니다. 나의 아이디어로 이렇게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기분이 좋고 삶을 살아가는 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삶에서 보람을 느낄 때가 사람이 내가 한 무엇 때문에 감동을 받을 때가 살아있는 보람을 아주 많이 느낍니다. 더욱 더 보람된 것은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그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했는가! 라고 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힘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보면 우리가 항상 주는 사람일 수는 없고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 한 번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결정적으로 힘들고 어려워진 것도 사람 때문이었고 힘들고 어려운 데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인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소리를 지르면 이 개xx 라고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되어서 두 번 세 번 울리면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롱펠로우의 시도 있습니다.
‘내가 멀리 향해서 하늘로 화살 하나를 쐈네. 그것은 나무에 박혔다네(내 친구의 가슴 속에 박혔다는 뜻일 것입니다). 노래 한 곡 불렀네. 친구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울려 퍼지는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었네.’
삶을 살면서 교회만이 아니라 직장에서건 어디에서건 간에 사람들에게 옆에 있어서 행복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진가를 높이는 길입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이 너무 좋을 때 자신의 인생은 빛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공동체를 양보하고 내가 이익을 취할 것인가? 혹은 내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공동체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공동체가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찾아가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재미있지 않습니까? 특히 교회에는 진리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은혜를 받고 나도 은혜를 받으면 둘이 이야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하나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런 교제는 끝나고 나면 허무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내 마음 속에 밀려옵니다. 그것으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만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청년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돈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간수해야 할 것이 친구입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잘못하면 고독사합니다. 너무 좋은 친구들을 몇 사람은 반드시 두고 살아야 됩니다. 수 십 명이면 좋겠지만 몇 사람 정도는 두고 사는 여러분들이 돼야 합니다.
상황 10) 소명을 쫓아 살자니 현실의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현실을 쫓아 살자니 의미가 발목을 잡습니다. 현실과 소명 둘 사이에 혼란한 우리들은 어떻게 할까요?
사회자 :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 10번째 모두가 궁금해 할 직업과 소명에 대한 고민입니다.
[남녀 대화]
여 : 전공 선택부터 지금까지 이게 내 소명이라 생각하며 달려왔는데.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 분야에 최고가 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나이는 들어가고 이제 와서 다른 길을 찾는 건 자신이 없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나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남 : 하나님. 저는 현실에 메여서 삽니다. 돈 걱정에 내일의 두려움에 묶여 살고 잘 나가는 친구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살아요. 일 걱정에 사로잡혀 살고 결혼도 해야 하는 데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진리의 말씀들은 제 삶에 적용되지 않아요. 사는 게 불행해요. 지금 제가 있는 곳이 지옥 아닐까요?
사회자 : 소명을 쫓아 살자니 현실의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현실을 쫓아 살자니 의미가 발목을 잡습니다. 현실과 소명 둘 사이에 혼란한 우리들은 어떻게 할까요? 목사님.
목사님 : 소명은 두 가지에 의해서 그게 그 사람의 소명이라는 것이 입증이 됩니다. 첫째는 재능입니다. 두 번째는 보람입니다. 재능을 느낄 수 있고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게 소명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내가 뭘 할까?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장사를 하라 그러더라. 그게 소명일 가능성도 있지만 실제로 소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살면서 사회활동을 하면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면 거기에서 재능도 발견되고 보람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능에 관해서 먼저 말하자면 재능을 절대적인 수치로 보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 라고 해서 조수미 처럼 되거나 조셉 디 스테파노나 아니면 파바로티 같은 사람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꿈꾸지 말고 자기가 재능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압니다. 남이 인정해주기 전에 내가 이 일에 재능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소명이 입증됩니다.
두 번째는 기쁨과 보람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할 때 내가 최적화된 사람이구나.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내가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일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려움을 안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 어려움을 그 일을 그만 둘 정도로 고통으로 안 다가옵니다.
저는 발이 되게 작습니다. 255mm입니다. 구두를 신으면 참 예쁩니다. 불편한 것은 예전에 체중이 많이 나갈 때는 발판이 너무 작은 것입니다. 발목을 잘 삐고 산을 올라가는데 너무 불편한 것입니다. 발이 좁아서 발이 잘 뒤집히는 것입니다. 데크가 깔린 길이나 아스파트 길은 참 잘 걷는데 돌멩이가 있는 릿지 등반 같은 게 요새 유행인데 특수화 신고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발목이 아파서 못 하겠습니다. 릿지 등반은 길로 안 가고 물이 흐르지 않고 돌멩이가 많이 깔린 계곡 같은 데를 돌멩이를 밟으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맞는 특수화가 있습니다. 저한테는 하여튼 안 맞습니다. 소명을 이루어갈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게 기분 나쁜 어려움은 아닙니다. 삶을 포기하게 하고 번아웃 시키는 어려움은 아니고 이런 것입니다. 나는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등산을 하는데 어떤 때는 11킬로를 걷습니다. 그렇게 파워워킹을 하면 다리가 뻐근합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누우면 그 피로감이 기분 나쁜 피로감이 아니라 달콤함이 동반된 피로감입니다. 일을 하면서 어려움을 느낄 때 소명이 있는 사람은 비유를 하자면 그런 식으로 어려움을 느낍니다. 확실하게 소명인 것입니다.
이것은 주관적인 기준이고 객관적으로 성경에서 금하는 것을 소명으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 음란물 제작을 한다든지 주식 사기 치는 법을 가르쳐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들은 소명이 될 수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성경에 합당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일류에 보편적인 유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어떤 것 이여야 됩니다. 직업 선택에 대해 생각할 때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이고 최소한 적은 시간으로 많은 돈을 벌고 그것과 함께 줄을 긋고 그 번 돈으로 내 인생을 산다. 이런 식의 이중 구조로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하는 일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느끼고 보람을 느끼지 못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돈하고 바꾼 인생인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시은 것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십시오. 거기에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아도 내가 하기 싫거나 흥미가 없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 보다는 경제적으로 약간 덜 벌고 때로는 불안해 보이고 현실성이 없어보여도 내가 한 번 태어났는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거기에서 놀라운 그 무엇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있던 자매인데 지금도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진짜 마음에 갈등도 많은 자매였는데 한참 은혜를 정말 많이 받을 때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습니다. 내가 얘야. 너는 뭘 하니? 그랬더니 제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그랬습니다. 내가 먼 경기도에 있는 대학원까지 밤에 심방을 교역자들하고 갔습니다. 너는 앞으로 뭘 할래? 그랬더니 주섬주섬해서 너 혹시 열린교회 출판실에 올 마음이 없냐? 그랬더니 고민을 많이 하더니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열린교회 출판실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 때 대우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대우를 받았습니다. 결국 그렇게 하면서 그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나중에 김영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잘 나갑니다. 그렇게 편집하고 글을 번역하면서 집도 사고 아직 비혼이긴 하지만 잘 사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거기에 기회에 생깁니다. 확실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그 일에 배신을 당했다. 그런 게 없을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면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우리 아들도 맨날 7살 때부터 목사 된다고 해서 너 하고 싶은 것 하라고 그랬습니다. 7살 때부터 초지일관 목사 된다고 해서 나는 네가 목사 되는 것 기뻐하지 않으니까 아빠 생각하면서 그러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라. 뭐든지 너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의 행복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게 뭔가 내가 갖고 있는 직업이나 모든 것들이 발에 맞지 않은 신을 신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기도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한 다음에 확신이 생기면 모험을 하십시오. 남은 인생이라도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십시오. 거기에 진정한 인생의 보람이 있고 거기에 기회도 생겨나게 됩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지금 어떻게 하냐? 아닙니다. 얼마든지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신신당부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너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라.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죄가 아니라면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가능하면 그것을 직업으로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 일을 하면서 의미도 찾을 수 있고 재미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이 나에게 재능을 주셨다는 확신도 가질 수 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 때 여러분들이 자기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깊게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는 열등감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열등감 덩어리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내가 왜 이렇게 키가 클까? 하고 열등감을 느낀 전이 있습니다. 키 순서로는 100명 중에 80번 정도가 됐습니다. 70명 중에서 63번 정도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10cm만 더 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창 꽂혔을 때는 8cm 키높이 운동화를 신고 다녔는데 8cm 커지고 나면 코끝에 공기가 다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왜 이런 것 때문에 열등감을 느꼈을까 생각했습니다. 공부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너무 많은 것을 느꼈는데 나중에는 다 쓸 데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나는 내가 없는 것 보다 내가 있는 것이 좋으셔서 나를 만드셨고 나는 인류 역사에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카피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이다. 내가 없는 세상은 사뭇 다르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니까 너무 좋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하는 게 있어도 열등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저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빛나는구나. 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내 주위에 보면 나를 보면서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그것이 느껴집니다. 마치 나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우리가 사는 것은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야 되는데! 내가 나인 것을 피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 친구가 잘 나갈 때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 해 보십시오. so what? 나는 요번에 뭐도 사고 뭐도 사고 BMW520도 사고... 520이 그렇게 좋은 차라고. 어디서 깡통 같은 것 사서 BMW만 달고 다니는데. So what? 그래서 그게 뭐 어떻게 됐는데?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 있는데? 그러면서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긍지를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얘기하는 게 어깨를 탁 펴고 당당하게 걸으면서 나 때문에 이 세상은 나 없는 세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의미 있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가치는 물질의 유무나 사회적인 지위의 고하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돼야합니다.
어제 대공원을 산책하다가 15만원을 주웠습니다. 5만원 세 장이 딱 떨어져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갈까? 그냥 두고 갈까? 순간 두 가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가지고 가면 이것을 가지고 경찰서까지 가야 됩니다. 두고 가야지! 생각을 했는데 지금 눈에 안 보이지만 뒤에 오는 누군가가 가져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형법상의 점유이탈물 횡령죄입니다. 내가 주우면 죄가 안 되는데 뒤에 오는 사람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많아서 영혼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돈을 주웠습니다. 과천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니까 증서를 쓰라는 것입니다. ‘이 유실물을 맡기면서 권리를 포기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권리를 유지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했더니 6개월 후까지 사람이 안 찾아가면 나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권리를 포기를 하냐 그래서 ‘못 포기합니다’ 에 동그라미를 치고 왔습니다. 그러면 세금을 30프로 띠고 나에게 수표가 날라 옵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은 내가 내 소신껏 사는 것입니다. 15만원 집어서 내 주머니에 넣어서 15만원 있으면 여러분하고 밥도 먹을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양심을 팔 순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귀한 확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까짓 15만원이 아니라 150억 원이 떨어져 있어도 나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6개월 동안 안 찾아가면 내게 돌아올 것 아닙니까? 그러면 여러분 모두에게 저녁을 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자기의 신념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친구가 뭘 되어 있다는데 여러분이 그 친구 위치에 올라가도 열등감을 느낄 사람은 또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건희의 아들이 되어서 모든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또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돈에 대해서는 열등감은 안 느끼겠지만 인간성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낀다던지 무언엔가 느낄 것 아니겠습니까? 끝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하고 비교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쿨하게 담대하게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으면서 사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인데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기에는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호텔에 갔다. 뭘 먹었다. 어딜 다녀왔다. 그러는데 so what?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너는 네 인생을 사는 거고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가슴에 가득한 기쁨을 가지면서 자존감 있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사는 게 보람 있는 것이지 왜 열등감을 느낍니까? 신체 건강하고 열린교회 교인이고 열심히 살고 있고 희망이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소망을 가지고 자존감을 갖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 오늘 성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직업과 소명까지 총 8가지 주제에 걸쳐서 청년들의 인생 전 영역에 걸친 고민들을 함께 공감해 주시고 찐 조언으로 함께해 주신 김남준 목사님께 감사의 박수 한 번 드리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저희 청년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한마디 있을까요?
목사님 : 여러분들이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은 부모가 있다면 부모가 여러분들의 소중함을 못 알아본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손에 붙잡혀있는 사람은 결코 실패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한 순간에 정욕에 자신을 맡겨버리거나 스마트폰 같은 오락에 빠져서 살아버리거나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인생을 살거나 의미도 없이 매일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하며 사는 것은 결코 행복한 삶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품격이 있는 삶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소중한 사람임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사회자 :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청년부 신효린이었구요. 정말 마지막으로 청년들의 봄을 여는 기도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목사님 : 같이 기도하고 제가 간단하게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이 시간에 기도할 때 마음만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우리의 생각을 정돈해봅시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할지 우리의 인생은 이대로 계속되어도 좋은지 한 번 생각하면서 오늘 깨달은 말씀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