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2._교직원예배
영혼의 침체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30:6-7)
녹취자: 양현정
언제 지어진 지는 알 수 없고 다윗이 아마 노년의 인생을 회고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니까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30장에서는 자기를 아주 지독한 영혼의 침체와 어두움 속에서 건져내 주신 것 때문에 자기가 깨닫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시 30:6) 이것은 육신적으로 평안하고 번영한 것을 의미하기도 했겠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해석을 합니다. 모든 것이 평안하고 자기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낼 때에는 그것이 늘 계속될 것이라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놓였고 어떤 면에서는 좀 교만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깨뜨려진 경험을 그 앞에서 이야기합니다. 그 유명한 구절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下) 그 고백을 하면서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일종의 반성입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가 성령충만하고 은혜 가운데 있고 할 때는 자신에 대해서 자신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죄와는 상관없어 보이고 자기의 이런 상태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영적인 침체를 통해서 겸손하게 하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좋은 관계를 가지고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이런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는데 그만 영혼의 깊은 침체를 겪게 됩니다. 그런 경험이 앞에 5절까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스올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 30:7) 자신이 굳세고 강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신앙이 어리고 교만했을 때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서있다'라고 생각을 했고 ‘하나님과의 평안은 내 손에 달려있고 나는 능히 그 평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산같이 곧게 세우셨습니다.'입니다. ‘산’은 구약성경에서 요동치 않고 변하지 않는 한 대명사처럼 여겨집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움은 산 같은 어려움이고 산이 움직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산 그 자체는 어떤 숙명을 의미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 변화될 가능성이 없는 미래 등을 상징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산같이 서 있었는데 그것이 알고보니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할 때는 자신이 산같이 강건하게 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얼굴을 가리시매’ 이것은 주께서 얼굴을 감추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얼굴을 직접 비추시는 것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말할 수 없이 악한 죄인에게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 얼굴빛을 비추십니다. 시인은 자기가 어느 한순간에 영혼의 깊은 침체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거듭되는 환란 때문인지 죄 때문인지 무지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시편에서 영혼의 깊은 침체의 원인을 세 가지를 말합니다. 거듭되는 고난, 죄, 무지, 이 세가지가 영혼의 깊은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시편 30편 같은 경우 해당이 됩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삶을 고쳐나가는 중이었고 엄청난 고난이 계속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는 순간 깊이 마음이 상심하면서 영혼의 침체로 들어갑니다. 우리 인생 보이는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에 눈을 뜨면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근본적인 것은 두 번째 죄가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영혼의 깊은 침체에 빠지게 되었고 그때 이 시인은 하나님의 얼굴, 임재를 거두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호와의 등잔불 빛이 떡 위에 환하게 비추는 것 자체가 일주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임재, 얼굴 속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회의 가장 높은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추는 것 같은 임재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깊은 영혼의 침체 고통을 받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첫번째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얼굴빛 앞에 살고 있는가? 그의 임재 앞에 살고 있는가? 주일날 예배는 바로 그렇게 일주일을 살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자기를 세울 수 없는 사람은 예배가 끝난 후에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가득 비춰서 자신의 영혼이 고양된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두 번째, 가르쳐 주는 것은 영적인 은혜 안에 살아갈 때 우리의 겸손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음식물이 냉장고 있는 동안에 상하지 않지만 꺼내놓으면 상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을 때에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지 그의 임재에서 떠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 아래 있는 자나 은혜 바깥에서 죄를 지은 자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이 아주 잠깐동안 있는 것 같고 그리고 하나님이 한순간도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내가 은혜 아래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면 항상 심령이 가난해집니다. 성령 충만해졌을 때는 마음이 모두 가난한 때입니다. 그 마음의 가난을 잃어버리고 부유해질 때 우리는 은혜에서 미끄러집니다.
세 번째, 그런 모든 고민이 마지막에 나타나는 것은 기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라는 방편을 주신 것은 놀라운 섭리입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기도할 때 우리 마음이 그 때 비로소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면 기도는 깨달은 말씀을 자신 개인의 삶과 영혼에 붙들어 매고 그것을 치열하게 매달리는 작용이 기도입니다. 그 기도 속에서 우리 죄를 죽이게 되고 성령께서 우리 죄와 더불어 치열하게 죄를 죽이시면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찬란한 빛과 그리고 열렬한 기도,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산같이 굳게 서 있는 은혜의 상태들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매순간 너무나 쉽게 은혜는 같이 그 손에 퍼 올린 물처럼 은혜는 빠져나갑니다. 우리들이 옹달샘이나 개울에 가서 세수하기 위해 물을 손으로 움켜쥐면 들어 올리기도 전에 물이 빠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매 순간 가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은혜가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하십니다. 그것이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산같이 여러분들을 세우고 있다면 더 가난한 마음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손끝에 달린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으면서 주님을 의지할 것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점점 더 미끄러져 스올에까지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두렵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끝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그 자체가 없는 것이고 허무한 것이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약에 우리가 다시금 열렬하게 하나님 앞에 은혜를 회복하고 산 같은 은혜에 붙들려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은혜 있는 사람은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 소외된 사람은 그 은혜를 찾기 위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