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1._교직원예배
항상 충성스럽게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민 12:7-8)
녹취자: 양현정
몇 번 설교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상세한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바와 같이 구스 여자를 모세가 취했고 그 사람은 흑인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미리암과 아론을 비롯해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건드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로서는 모세가 여자를 취하는 것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난을 받게 되었고 그때 하나님이 판결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여호와가 모세와만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도 말하셨다면서 동급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선지자가 있으면 미리암과 아론 모두 선지자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꿈으로 말하기도 했고 말씀을 주기도 했다. 모세와는 그렇지 않다. 모세는 나를 대면하여 본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맨눈으로 작렬하는 태양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친밀하게 대해 주셨는가를 보여줍니다.
모세는 원래 성격이 독선적이고 직선적이고 누구한테 순순히 굽히지 않는 혈기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말도 되지 않은 이유로 비난을 받았고 모욕을 받을 때 그의 온유함이 지면에 충만했더라고 했습니다. 지면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게 온유함을 보였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비밀은 하나님과의 교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랑하셔서 당신을 아주 충만한 방식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깊이는 도덕적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신자의 영적인 깊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도 아닙니다. 그 깊이는 교제의 깊이입니다. 남이 하나님을 느낄 수 없을 때 얼마나 하나님을 충만히 느끼는가, 남이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어떻게 또렷이 그의 영광과 거룩함을 뵈옵는가에 의해서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지식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하면 되고 사역을 잘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면 되는데 영적으로 깊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것으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신비로워져야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많이 기도해야 할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핵심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적으로 더 깊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이 결국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충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의해 주시기를 ‘내 종 모세와는 그와 같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나의 온 집에 충성하였음이니’라고 정리하셨습니다. 충성은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은 외적으로 업적을 이루는 그것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이유로 삼아서 하나님을 목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삶의 질서들이 정돈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돈된 질서 안에서 자신의 모든 삶을 걸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든지 간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충성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자기가 신나고 좋아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신나는 것이 나도 좋고 기쁘기 때문에 헌신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일을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일을 시키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 없는 사람들에게 충성스러운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충성은 크고 작은 일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이 누구에게 바쳐졌는가 하는 그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폼페이에 갔을 때 충격을 받은 광경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베스뷰 소화산이 폭발하고 거기서 8km되는 거리인데 화산재가 날아와서 도시 자체를 덮어 버렸습니다. 폼페이의 유적이 얼마나 많은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귀퉁이 조금씩 발굴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마어마합니다. 당시에 5만 명이 살던 도시였으니 거의 에베소 크기였고 그게 완전히 재 속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잊혔다 발견된 것입니다. 재들을 긁어내며 옛 집터를 발굴했는데 굉장합니다. 거기에서 감명받았던 것이 두 가지인데 뜨거운 화산재 불덩이들이 떨어지면서 화산재가 용암같은 것들이 폭발하며 불비가 쏟아져 사람을 덮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속에서 다 타 버렸습니다. 그만큼의 공간이 생겨서 그 공간 속에 석고를 집어넣어 보니 무슨 모양이었는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헛간같이 생긴 곳인데 엄마가 아기를 끌어 앉고 죽은 모습입니다. 거기서 모성애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군인의 모습인데 그렇게 불비가 쏟아지는데 꼿꼿하게 선 채 창을 잡고 죽었습니다. 거기서 또 한 번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그 시대 사회가 어땠는지 그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불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는 도망가지 않고 자기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신이 나서 혹은 누가 인정해 주어서 자기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은 그 이전에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시련이 오고 나를 흔들어 여기 있지 못하게 하는 많은 사연들이 생겨납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하나님 앞에 씨름하면서 항상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 주신 자리에서 잊지 못하도록 사탄과 마음,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를 흔듭니다. 어떤 기도가 힘이 있냐 하면 하나님이 있기를 원하는 자리에서 하는 한 마디의 기도는 원하시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천 마디의 기도보다 더 힘이 있습니다. 순종하고 있고 충성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날 때 어느 목사의 간증입니다. 군인들이 부상을 입어 쓰러져 갑니다. 위생병이 가서 병사들을 보러 가는데 목사님도 가셨습니다. 군인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아프지 않냐, 괜찮냐 하셨습니다. 한 군인은 피가 옆구리에서 떨어지는데 말은 못하고 그 피를 찍어 군복에 글자를 쓰더랍니다. 라틴어로 ‘쎈 베르 피델리스' ‘항상 충성스러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다 아십니다. 그리고 사람은 몰라도 얼마나 내적인 고통을 받고 다 토로할 수 없는 아픈 사연을 앉고 그 자리에서 섬기시는 지를 하나님이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을 위한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때문에 위로를 받으면서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자리가 가장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서 쉬운 길을 걸어가는 자리가 됩니다. 거기는 하나님과의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신 뜻이 있고 여기에 세우신 목적이 있다라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적어도 나를 불러주신 이는 여기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내가 사는 것도 숨쉬는 것도 섬기는 것도 죽는 것도 나의 삶에 인생의 이유이신 하나님께 달렸다. 그 마음을 가지고 매일 살아가는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큰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 앞에 이처럼 모세처럼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