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쓰고 애쓴 기도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녹취자: 변상윤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드린 기도의 광경입니다. 33년 동안을 사시고 3년 동안을 공적인 생애로 보내시면서 많은 수고와 고난을 당하셨고 이제 마지막 남은 당신의 몸을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로 주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은 체포된 다음에 심문을 받으시고 처형됨으로써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셨지만 영적으로는 그 다음 날 십자가의 고통이 이미 예수님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예수님이 이때처럼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또 심지어 제자들에게까지도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하신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실제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위한 대속의 위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투쟁이 필요했던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모든 사단의 궤계를 이기고 승리해 오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되었으니 또한 사단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업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나라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를 죽이면 자기의 영원한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마는 그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단이 그처럼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 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더 영원한 구원을 이 땅에 이루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교부들은 비유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의 미끼였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물었으나 그것은 낚시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오히려 사단은 결정적으로 자기의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주목해보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떤 태도로 기도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것을 본받아서 이렇게 능력 있는 기도를 드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이미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도록 하나님의 계시가 떨어졌고 예수님은 죄는 없으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지니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죽으실 수가 없고 인간으로서는 아직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죄가 없으신 분이셨고 하나님과 누구보다도 친밀한 분이셨지만 사람의 몸으로 생명을 가지신 분이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도 죽음은 두려우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간절히 빌기를 만약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 곧 죽음의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류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당신 자신을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바치셨으나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혹시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니 죄도 아니고 비겁한 것도 아니고 또 뭘 몰라서 하는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었지만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신성을 인성 아래에 감추심으로써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셨으니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하나님 아버지는 아시고 천사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하신 것도 한 예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순종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네 그렇지만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며 당신의 뜻을 아버지께 기꺼이 굽히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밤새도록 십자가를 지지 않게 기도하고 그 기도를 위하여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기까지 기도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내용은 요한복음 17장의 내용이라고 학자들은 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제물로 드리며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것이 바로 이 땅에 남겨두고 가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죽으신 후에도 진리로 하나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 기도를 예수님이 어떤 태도로 하셨습니까? 첫째는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힘을 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통 때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때인 줄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있는 힘을 모두 다해서 쏟아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우리는 힘을 모두 쓰기로 작정하고 그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혹은 밉니다. 이런 것처럼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지만 어느 기도도 진실하지 않은 기도, 자기를 바치지 않은 기도가 없었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마지막 기도였기 때문에 당신의 있는 힘을 모두 발휘하여 하나님께 모두 쏟으며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통성으로 기도하셨는지 조용히 기도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온 힘을 모두 쏟아서 아버지 앞에 기도했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힘을 쏟는 것은 그냥 육체의 힘이 아닙니다. 육체의 힘도 들어가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의 힘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비록 묵상으로 기도를 해도 자기의 흩어진 마음을 모두 모아서 배 아래 하나로 모으고 그것을 힘껏 위로 위로 들어올려 하나님 앞에 쏟아 놓을 때 그것은 마치 여인이 아이를 해산할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모든 힘을 모아 아이를 몸 밖으로 밀어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으며 하신 것입니다. 한 번이 아니라 밤새도록 그렇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힘을 쓰는 기도입니까? 정말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져 그것이 우리의 심장 속에서 피의 펌프질이 되고 어느 한순간에 마치 우리의 심장을 토해 놓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쏟아붓는 힘쓰는 기도인가 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매우 큰 소리로 올려도 허공에 흩어지는 기도가 있고 어떤 기도는 간절한 기도 속에서 이 기도가 하늘로 오르는 기도가 있습니다. 후자의 기도가 바로 힘을 쓰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기도를 하늘을 향해 화를 쏘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쏘자 쏘자 오늘도 우리의 기도의 화살을 새들이 날아다니는 첫 번째 하늘을 지나고 악령이 다스리는 두 번째 하늘을 뚫고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세 번째 하늘에 이르기까지 쏘자 쏘자 우리의 기도를 쏘자" 라고 격려하며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 기도는 힘을 모두 쏟은 기도였습니다. 저는 지체들과 함께 젊었을 때 기도하다가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힘을 쓰는 기도입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그런 의미에서 육체의 힘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로 뭉쳐진 것입니다. 모두 뭉쳐져서 단단해져서 이제 내 안에 있는 어떤 것들도 흩어진 생각이 없이 하나로 모아져서 그것을 보좌 위로 쏘아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힘쓰는 기도입니다. 여러분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정신의 힘을 모아 하나님 앞에 힘을 쓰는 기도를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두 번째는 애쓴 기도였습니다. 애썼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방해와 싸우며 몸부림치는 장면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늘 따라다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단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유대 광야로 가서 40 주야를 금식하며 지내셨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허랑방탕하게 사셨으면 사단이 틈 탈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예수님이 가장 정신을 집중하며 40 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동안 나타나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시험하였습니다. 사단도 상대할 만한 사람을 상대해주지 이미 허랑방탕하게 사는 사람들은 사단이 굳이 힘쓸 필요가 없습니다. 놔둬도 자기의 밥이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는 그곳에 마귀의 역사도 있고 성령 충만을 받으려고 할 때 항상 시험이 있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려고 하는 그곳에서 시험거리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 간절한 기도를 사단이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었습니다. 많은 궤계로 예수님의 이 기도를 방해하였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팔 원수가 당신이 사랑하는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될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의 동산에 올라갔던,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던 세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는 대신 잠들 것이라고 하는 것도 아셨으니 이 모든 것들은 다 예수님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더욱 애써서 기도하셨습니다. 모든 시험들을 이기며 어려움이 올수록 하나님께 더욱 영원의 시선을 모으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애써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선한 결심을 하면 즉시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결심하기 전까지 그냥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흔들거리며 살려고 뜻을 세우면 아무것도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여섯 장씩 읽어야되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고 얼마나 많은 방해에 부딪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온유한 사람이 되어 누구에게도 성내지 말자고 결심하고 나면 어쩌면 그렇게 열받는 일들이 줄지어 생기는지 놀랍습니다. 마치 누구를 놀리거나 시험하듯이 열 받을 일이 줄지어 생깁니다. 선한 뜻을 세우고 나면 즉시 자기가 그 일을 이루기에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기도하고자 하면 분명히 기도에 방해 거리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그것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심해야 합니다. 나는 거기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어떠한 방해가 와도 나는 반드시 그것과 더불어 싸울 것이고 그 일을 위해 애쓸 것이며 반드시 나는 기도하고야 말리라는 각오를 모든 방면에서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목양을 합니까? 그러면 목양을 하려고 결심을 해보십시오. 그 일을 그만두고 싶게 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려고 결단해 보십시오. 못하게 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 중 일부를 나누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자 결심해 보십시오. 돈 쓸 일들이 어쩌면 그렇게 줄지어서 생기는지 모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여기에서 합리화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애쓰는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떠한 난관이 와도 내가 반드시 기도하리라, 반드시 간구하여 주님을 만나리라, 이런 결심을 하며 마지막까지 애써서 이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에 세 번째 요소는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었습니다. 부사가 하나 붙었습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기도는 그저 간절한 기도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방해가 많을수록 그리고 마음의 소원이 더욱더 뜨거워질수록 예수님은 육체의 힘을 쏟았고 정신의 힘을 쏟았으며 마음을 다하여 방해하는 것 더불어 애쓰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간절히"라고 하는 말이 그리스어로는 "쭉 뻗는"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에 의해 꺾이지 않고 쭉 뻗어가는 것입니다.
야구를 생각해 봅시다. 투수가 공을 던졌는데 배트가 부러질 정도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지만 내야 땅볼로 유격수에게 아주 가볍게 잡힙니다. 그런데 홈런까지 갈 공은 맞는 소리가 다릅니다.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경쾌한 소리가 납니다. 잘못 맞을 때는 배트를 흔드는 타자의 손이 무지하게 아프지만 홈런을 때릴 때의 소리는 경쾌하면서 타자의 손에 진동이 별로 없습니다. 진짜 정확한 타점을 때린 것입니다. 그 공은 다릅니다. 잘못 맞은 공은 높이 솟는 것 같다가도 뚝 떨어지는데 홈런이 될 공은 쭉 뻗습니다. 뻗어서 담장을 넘깁니다. 소리도 아주 경쾌합니다. 그렇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기도를 안 해서도 문제지만 기도를 하는데 대부분 내야 땅볼입니다. 그냥 1루수 유격수 2루수 3루수에게 가볍게 잡힙니다. 땅볼도 워낙 강하고 스핀을 먹으면 불규칙한 바운드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힘없는 땅볼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창하게 하늘 높이만 올라가서 외야수가 제자리에 서서 잡습니다. 마치 갖다 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잡힙니다. 그런 기도는 왜 그렇습니까? 쭉 뻗어나가는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이기는 기도의 두 요소가 있는데 열렬함과 지속성입니다. 아무리 열렬해도 지속적이지 않으면 죄를 죽일 수 없고 아무리 오래 계속해도 열렬하지 않으면 (죄를) 죽일 수 없습니다. 죄를 사나운 짐승이라고 한다면 한 방을 아주 세게 때렸어도 급소를 때리기 전에는, 멧돼지 같은 것들은 여러분들에게 야구 배트를 들려줘도 등이나 옆구리에 한 방 맞았다고 멧돼지가 쓰러지지 않습니다. 쓰러진다면 그건 멧돼지도 아닙니다. 집돼지도 지방의 두께 때문에 그렇게는 안 쓰러집니다. 정확하게 맞을 뿐만 아니라 연거푸 맞아야 됩니다. 지속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잠깐 냄비처럼 팍 끓는 기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 기도가 오래 계속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죄 죽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응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중전화 거는 것 같이 짧은 기도는 힘이 없는 기도입니다. 성경에는 짧은 기도로 역사를 바꿔 놓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하늘의 태양을 멈추게 했던 여호수아의 기도 같은 것, 신약에 넘어오면 사도들이 명령하듯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을 자기도 따라 해 보겠다고 흉내를 내는데 그 사람들은 됐는데 본인은 안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짧은 기도가 하늘의 큰 능력을 불러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쳤던 사람들이기 떄문입니다. 평소에는 놀다가 어느 한 순간에 폼을 잡고 기도를 해보니 귀신 들린 사람도 조롱을 합니다. 그것이 영력입니다. 그 영력은 한순간에 파르르 떠는 기도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기도 속에서 연륜이 묻어나며 영적인 뿌리들이 마음 깊이 내릴 때에 마귀도 깔볼 수 없는 권세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무엇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이 쭉 뻗어나가는 기도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워질수록 더욱더 뻗어나가는 기도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간절했는지 아십니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땀이 떨어지는 모양이 마치 피가 떨어지는 모양 같았다고 해석을 하는데 저는 그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땀이 쏟아졌는데 그 속에 피가 섞여서 쏟아진 것입니다. "아니 땀을 흘리는데 피가 왜 쏟아져 나오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금식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금식을 한 일주일, 열흘 해보면 몸의 기운이 모두 소진되면서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옵니다. 그것을 제가 몇 번을 경험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온몸에 힘을 쏟으면 이렇게 피가 함께 섞여 나오는구나 (했습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건장하신 분이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운명하셨으니까, 그 힘이 아직 십자가 지시기 전이니까 남아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예수님이 처음엔 땀을 흘렸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모든 진액을 짜서 하나님 앞에 쏟아부으며 그 땀 속에 피가 섞여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쏟아진 것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의 기도가 절체절명의 기도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말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고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마지막에 자신이 흠 없는 제물로 바쳐져 주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을 이루시기를 바라며 당신 자신을 모두 쏟아부어주신 기도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예수님의 이 기도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무엇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영원히 우리는 예수님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줌에 있어서도 예수님처럼은 못합니다. 정결함에 있어서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나 아버지께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나 모두 예수님처럼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표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놓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 없이 한 손으로 직선을 그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할 떄 그의 마음속에는 어차피 직선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는 완벽한 선을 생각하며 그 생각을 따라서 줄을 긋는 것입니다. 그런데 줄을 긋고 나면 비슷할 뿐이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렇게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서 표준으로 놓고 그를 닮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을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기시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힘쓸 수는 없으나 그를 닮아서 힘써보리라, 예수님처럼 모든 방해와 싸워 애쓸 수는 없으나 힘들 때마다 예수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것을 기억하며 애써 보리라, 예수님만큼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기까지 간절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나도 간절히 애쓰므로 내 정신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찾고 피까지는 못 흘려도 땀 흘리는 기도 생활은 하리라 하고 각오하는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이 귀를 기울일 만한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불태워 하나님 앞에 바쳐진 기도의 사람,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 기도 시간에만 주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속에서 주님을 간절히 찾으며 주께 매 순간 매 순간 전심으로 매달리는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이런 기도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오늘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때 소위 욜로라고 하는 붐이 우리나라 사회를 휩쓸었습니다. 욜로가 뭔지 아십니까? 당신은 오직 한 번만 살 뿐이라는 뜻입니다. 태어나기 전도 없고 태어난 후에도 아무것도 없으니 이 세상이 전부이니 마음껏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라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 시대가 끝나고 있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더 이상 욜로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확행의 시대도 이제는 뜸해서 소확행이라는 말도 빈도가 훨씬 줄어들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은 무었일까요? 그 다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욜로의 시대도 지나가고 소확행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 들면 모두 "네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면 잘 될 거다." "너는 너무 소중해" "꽃길만 걸을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마. 너는 앞으로 잘 될 거야."(등 인데) 그것이 정말입니까? 대문 밖만 나가보면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 너무 분명합니다.
"죽은 자의 집청소"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가 마음으로 한참 울었습니다. 그 사람의 직업은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자마자 하지만 어떤 사람은 고립사를 해가지고 죽은 지 한 달 두 달이 됐는데도 동네에서 아무도 모르다가 냄새가 아주 심해서 경찰에 신고해 보니까 언제 죽었는지 이미 구더기가 방 안에 가득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집)을 치우는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얘기가 뭔지 아십니까? 그렇게 고립사한 사람들의 집을 치우다 보면 항상 책꽂이에서 발견되는 책이 있는데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그리고 "걱정하지 마 너는 소중해" 이런 책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위로입니다. 근거가 없는 자기 위로는 미신에 가까운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해야지 불행은 엄연히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행한 시간들이 행복한 시간보다 훨씬 많습니다.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불행을 과장하지도 말고 행복을 과장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그것을 보면서 걸어가는 데서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우리가 놓여있는 이 삶의 현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헛된 희망도 버리고 헛된 낙심도 버리십시요.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고 시름에 깊이 잠기지만 아무도 관심 두지 않습니다. 혼자 바보짓 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고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이려니 마음을 강하게 먹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이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을 공정하게 인정하며 정신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슬픔도 이기고 고난도 이기고 좀 잘 돼서 돈 벌었다고 자기의 영혼까지 팔아먹고 타락하는 그런 미친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쉼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가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세 가지를 우리에게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세 가지 태도를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힘쓰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만 하는 기도는 바리새인들이 하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애쓰는 기도여야 합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그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을 결단으로 자신의 모든 정성을 모두어서 분투하며 애쓰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일직선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에도 꺾일 수 없는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때 여러분들이 어떤 현실에 놓여 있던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