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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죽음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 26:38)
녹취자: 양현정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이 가르쳐 준 것인데 기도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기도를 하지 못하고 기도하기 위한 준비 운동을 하다가 기도가 끝납니다. 모든 기도가 다 기도가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을 섬긴다고 살아가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아니듯이 기도도 기도하는 시늉을 한다고 해서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을 자기 자신이 너무 잘 압니다. 어느 날은 기도를 하고 나면 자신의 영혼이 천국의 이슬에 흠뻑 젖어 행복감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충분히 쏟아 놓았고 그분과 교제했다는 영혼의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기도가 끝납니다. 비유를 하자면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맞추는데 미사일을 쐈지만 비행기까지 맞추지 못하고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거리가 미치지 못해 떨어집니다. 만약에 우리가 곡괭이질 하는 것에 대해 비유를 든다면 열심히 곡괭이질을 했는데 바닥에 보니 전혀 굴이 더 뚫린 진척한 흔적은 없고 곡괭이로 치다가 흙만 부숴진 정도로 끝납니다. 쾅 하고 내려쳐서 곡괭이가 깊이 들어가서 안 빠져야 합니다. 그리고 잡아당겨 흙과 돌멩이가 부서지면서 공사가 진척이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기도하기 때문에 기도의 진정한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고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런 기도의 큰 기쁨과 천국으로부터 오는 빛을 기도 속에서 소유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기도의 찬란한 교제의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또 하나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성경에 보면 '페리류포스 에스틴 헤프시케무 호스다나투'라고 나옵니다. 직역하면 '나의 영혼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괴로움이 넘쳤으니'라는 뜻입니다. '페리'는 가장자리를 말하고 '류포스'는 고통입니다. 우물 같은 데 물이 넘치면 가장자리를 흘러넘치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은 광경을 보여줍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같은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똑같이 겪으셨습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근심하고 염려해서 믿음이 없어서 겪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 아니라 영혼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모든 산란한 마음과 예수님에게는 없었지만 우리에게 있는 죄와 영혼의 걸리적거리는 것을 뚫고 나가며 마지막에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주님과 기도하기에 이르기까지 겪는 고뇌를 말합니다. 고통이 동반되지 않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진정한 기도의 세계까지 들어가지 않았든지 아니면 너무나 순결한 삶을 살아서 어떤 하나님과의 막힘이 없는 완벽한 하나님과의 충만한 교제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충만한 교제 속에 사는 사람도 끊임없는 고통의 과정을 통과합니다. 결론적으로 기도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는 깊이만큼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낯설게 들릴 것입니다.
성경 구절을 두 군데 보겠습니다. 시편 77편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환란을 만나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다고 하는데 무슨 말일까요? 이 사람이 기도하며 고통을 겪었다는데 그것은 환란때문에 겪는 고통이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느끼는 고통은 환란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 다음 절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은 환란을 당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을 ‘영혼의 밤’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들이 기독교의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 보면 모두 영혼의 밤들을 기도 속에서 경험합니다. 그것은 환란을 당했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향하여 응답하시지 않는 데서 오는 깊은 고통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고 기도 속에서 자기 얼굴을 안 비춰주셔도 고통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진실하지 않아서입니다. 여러분들이 뭔가 잃어버렸을 때 찾을 때 마음 자체가 잃어버렸으면 다시 사면 된다든지 없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찾는다면 성심성의껏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일 출국해야 하는데 여권을 잃어버렸다면 꼭 찾아야 합니다. 그 때 찾는 마음과 같냐는 말입니다. 기도는 중얼중얼 하는데, 새벽기도 나오라는데, 하나님 앞에 내가 약속을 했으니까 혹은 나의 의무가 있으니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서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뚜렷한 마음의 확신과 만족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슬프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꼭 찾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말고 자신의 경험을 돌아봅시다.
언젠가는 중요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혹은 무슨 작용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혼신을 다해 기도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죽을 것같이 괴롭게 만들던 것은 내 삶의 상황이 안 바뀌는 게 괴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기도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그 때처럼 간절한 기도가 안 나옵니다. 그것을 몇 번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면 거기서 곡괭이를 두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 그런 기도는 계속 할 수가 없습니다. 내용이 채워지지 않으면 형식은 지탱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기도가 은혜가 충만할 때는 쌀이 가득 들어있은 쌀가마니 같습니다. 툭 하고 찌르면 쌀이 확 쏟아집니다. 쏟아지듯이 기도가 나옵니다. 쌀이 반 밖에 안 들어 있다면 찔러도 쌀이 나오지 않습니다. 허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기도의 영이 식어버리면 그 다음에 기도를 하나님 앞에 필요한 때 열렬하게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계속되고 나면 마음은 죄의 지배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기도를 잃어버린 게 됩니다.
존 오웬 목사님의 자신의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몇 가지 뒤로 물러가는 영혼 부패의 단계가 있는데 언제든지 즉시 마음을 쏟아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염려나 근심,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영혼이 하나님과 소통을 잘 못합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힘을 잃어버리고 마음은 굳어지고 기도의 두 가지 열렬하게 기도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면서 기도의 형식까지 버리게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민입니다. 그것은 누가 감시할 수 없습니다. 물건을 훔치거나 부부가 이혼하려 하면 감시의 대상이 되나 기도를 하는 생활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새벽에 누가 기도를 하면서 포기했는지 통과했는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여러분 자신만이 압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삶에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떻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내 안에서 부활하는가 하는 그러한 비밀들을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그것은 형식이 그리스도일 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것은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차이 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을 용서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시는 비밀들이 마지막에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가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은 결국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진대사가 쳐집니다. 밥을 많이 먹지 않아도 몸이 태우지 못하고 살로 갑니다. 건강에 대한 힌트를 주자면 많은 영양제를 먹어도 코큐텐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코큐텐이 비유를 하자면 영양제는 자동차의 휘발유와 같습니다. 우리 몸은 자동차인데 그것을 실린더에 넣어 폭발시켜 에너지로 바뀌어 주는 것은 코큐텐이라고 합니다. 코큐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나이든 사람은 영양제를 먹고 코큐텐을 먹지 않으면 일부분은 몸에 축적이 되더라도 일부분은 배설이 됩니다. 코큐텐을 먹어 에너지 변환을 시켜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도 마지막에 폭발적인 힘이 우리 안에 터지더라도 거기에 대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기도로 나타납니다. 주신 감동에 대해 내가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기도라고 합니다. 그 기도를 간절히 함으로 폭발 작용이 일어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내 영혼에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는 모든 기도 제목이 다 간절합니다. 간절하지 않은 것은 마음을 싣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간절함을 배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간에 기도 제목이 자기에게 기도될 때는 그 소원이 간절한 소원이 되어 누구를 위해서든지 빌어야 합니다. 간절한 것만을 가지고 되지 않고 마지막 목표가 간절히 기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인데 주님과의 만남이 기도 속에 없다면 마음속에서 죽음을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없습니다. 어떤 마음에서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혹은 우크라이나 전쟁 후 군인들이 귀환하며 가족들을 만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만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못 만나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지 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도도 하지 못한 채 기도가 끝나도 마음의 괴로움이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통과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움을 통과해야지 빛을 보고 겨울에 고통을 겪을 때 그 때 새싹이 피어나고 아이도 태어날 때 어머니가 온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며 아이가 탄생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그런 간절함이 없을 때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무관심해집니다. 무슨 목숨을 건다든지 주님을 깊이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는 반성이라든지 고통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모두 이번 부흥회에서 주님을 만나야겠다는 혹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죽음이라는 마음으로 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마음을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것이 다 관심이 없고 하나로 가서 관심이 꽂힙니다. 모든 것이 다 허무해 보입니다. 인간에게 의미있는 것이라고는 정욕과 하나님과 의미가 없습니다. 정욕은 사람들이 쫓는 동안에는 정신이 굉장히 집중합니다. 도둑이 물건을 훔칠 때, 아이들이 오락을 즐길 때 집중하는 정신은 강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를 향한 놀라운 집중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강원 랜드에가서 도박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도박장에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울면서 딸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는데도 도박에만 집중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너무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 이외 어떤 것들은 뭐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캄캄한 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죽음에 이르도록 깊이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고백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통과하고 나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소낙비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다 하늘 한쪽이 찢어지며 햇빛이 촤악 들어오는 광경처럼 하나님의 빛이 그렇게 계속 자신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것은 위대한 교회역사 속 위대한 인물 한두 명이 경험하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기도의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현실을 삽니다. 하다 보면 목회가 헛바퀴가 도는 것 같을 때가 있으나 그때 바로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이러면 개인의 삶도 그냥 된 것이 아니라 뭘 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을 때 타이어에 고무 타는 냄새가 나도록 바퀴를 돌려도 삶에 변화가 없는 것 같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받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쇳덩어리라면 하나님이 연단으로 그 마음을 불 속에 집어넣고 달궈서 환란이라는 쇳덩어리 위에 놓고 말씀이라는 망치로 두드려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뚫고 나가면 나의 기도가 모든 내 인생의 만사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 기도를 느끼시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모든 질서가 조종된다는 확신이 들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그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죽음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어느 상태가 되면 자신의 인생에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그리고 유명하게 되고 잊혀지는 것, 살고 죽는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자유가 오는 것입니다. 열렬히 기도하고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이 바꾸시고 내가 무릎을 꿇으면 모든 질서를 하나님이 바꾸신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것이 기도하는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