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0일 교직원예배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죠. 그런 점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당신을 따라오는 것이죠.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수도사처럼 속세를 떠나서 당신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을 따라오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성경에서 보면 은 존재와 그 작용은 나눠지지 않아요.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예수를 닮아 가는가 하는 문제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닮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로서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에게 합당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할 삶이요 인생인 것이죠.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시기 전까지는 이 두 가지 모두 모호 했어요. 그래서 놀랍게도 그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까지는 아무리 경건한 다윗 같은 사람이라도 감히 하나님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개념이 명백하게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죠. 신학적으로, 또 신앙적으로……. 그랬던 것이죠. 그러나 인제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면서부터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기를 원했죠.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죠? 일생의 소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고상한 지식을 발견하고 예수의 형상을 닮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어서 거기에 합당한 작용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데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몰랐던 것이죠. 근데 도성 인신하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 이것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으로 요약을 해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서 나타고 있는 것이에요. 음……. 그러면서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그러니까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조차도 모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었죠. 주님께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이 주님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또 주님을 만난 모든 사람이 주님을 따를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라 오려면……. 라고 말씀하시죠. 우리의 신앙생활의 가장 커다란 관건은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에요. 결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문제는 과정이에요. 윌리엄 포싸이스 라고 하는 설교학자가 자기의 글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설교자는 설교의 결과로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설교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습니다. 아주 어눌하고 하찮은 설교로도 큰 역사가 나타날 수 있고, 아주 훌륭하게 준비된 설교로도 초라할 정도의 결과 가 나타날 수 있죠. 그런데 만약에 그 결과 가 아주 뛰어났다면 그것은 설교자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칭찬을 받으셔야 할 몫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어……. 우리가 살면서 얼마만한 성과를 이룰 것이냐!! 그거보다도 더 중요한 거는 우리의 먹고 마시고 숨 쉬고 그리고 우리가 사역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예수를 따르는 연장선상에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 사역도 지나가는 거고, 교회와의 인연도 지나가는 거고 다 지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하시죠. 우리가 열렬하게 사역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나, 사역이 모두 끝나고 물러가 앉아 홀로 있을 때나, 혹은 질병에 까지 걸려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고 홀로 죽음을 기다려도 주님은 늘 곁에 계시죠. 그러니 일생을 살면서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그 마지막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왜? 일생동안 그렇게 따랐던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니까!! 그 소원이 아주 절실해서 내가 예수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지 당신을 잘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바는 당신을 온전히 따르는 것입니다 라고 할때 그때 그 다음 주님이 나를 따르려거든 하고 제시하신 조건이 우리의 마음에 다가올 수 있는 것이죠. 그 주님을 따르는 행복!! 주님을 따르는 삶의 가치가 만약에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이후의 따르기 위해서 행하여야 할 이 모든 조건들은 우리의 시선을 끌 수가 없죠.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거예요. 엄밀하게 말 하면은 희생하고 있다고 하는 자기 자신조차도 인정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그런 조건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깊이 침잠하여 내 인생이 정말 예수를 따르는 인생인가! 삶인가! 그렇지 않으면 음.....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고 수시로 길을 떠나는 나를 예수님이 추격해 오시는 삶인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밖에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에게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되고, 언젠가는 나를 신뢰하였던 사람들이 배신하고, 어떤 때는 나에게 아주 유익하던 것들이 내 신앙의 발목을 붙들고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것이 되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주님 이외의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의 한계에요. 그러나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어찌 사라질 것을 염려해서 있는 것과 관계를 안 맺겠으며, 배신을 두려워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 일에서 물러날 때에 고독함을 염려한 나머지 주님을 위해 열심을 품고 섬기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렇죠? 그럼 해결의 길은 무엇이냐 하면은 그 모든 것들을 주님 안에서 사랑하고 내게 무슨 기회가 주어지든지 그것이 주님이 그것을 위한 도구가 되게 하지 말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내게 주어진다면, 그것이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단이 되도록 그렇게 사용하면서 살아간다면 잃어버리는 것도 없고, 배신하는 것도 없고, 우리를 떠나는 것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관건이 되는 거죠. 일생을 버르적거리고 정말 코피 나게 살았는데 니가 살아온 삶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주님이 물으신다면 그 삶이 얼마나 피곤한 삶이 되겠어요. 그렇죠? 그러나 만약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결국 그 삶이 주님을 따른 삶이라면 어....... 환경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결국은 우리에게 주님을 충분히 누리도록 만들어 줄 거예요.
오늘 새벽에 3시19분에 깼어요. 너무 고단해서 좀 더 자야지.... 그러고 드러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안 오고 여러 생각이 오고가요. 그래서 4시30분 좀 안되어 일어나서 깨끗이 씻고 마당에 5시 좀 안돼서 내려왔는데... 아주 너무 기분이 좋더라구요. 차끈차끈한 습기가 느껴지는 봄의 새벽 같았어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무를 보면서 고생들 많이 했다. 눈이 오고 이 골목 마당에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지독하게 추운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결국은 봄이 겨울을 이기는 구나. 우리에게 있어서 시련도 마찬가지에요. 주님을 따를 때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요. 그때 만약에 우리가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따르면 그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그 고통 때문에 이 세상이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이 현실이 사실은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눈물이 확 쏟아져요. 근데 결국은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노아홍수 이후에 약속하신 그 신실하심 때문이에요. 변하지 않잖아요. 더위와 추위와 뿌림과 거둠과, 일정하게 일어나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되면 어려움을 당할 때는 그 어려움 때문에 주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아무리 이 세상에서 행복한 일이 많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 창조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도 그것이 하나님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끔은 우리를 이렇게 우리의 영원한 집이 여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도록 우리의 마음을 분리시켜주고 찢어놓아 주셔야지 만 우리는 비로소 이 찰진 세상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죠. 또 만약에 주님을 따르는데 우리에게 형통하고 좋은 일이 일어난다. 라고 할 거 같으면, 우리가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형통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때 교만해지고 그리고 그 형통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고해 지겠지만 마음으로 주님을 따른다면 그 형통한 일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자기를 찾는 자들을 향한 긍휼을 거두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그 자비로운 사랑 같은 것들을 경험하게 되지 않겠어요? 그거죠!! 그러면서 하나님 많이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지만 우리의 마음으로 변함없이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겠죠!! 그것은 결국은 끊임없이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우리마음에 부음바 되어야 해요. 이것은 어.....빌립보서에서 사도바울이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 안에 주님의 마음을 품는 비결이에요. 그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가 부어질 때 그것은 꽃잎처럼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 안에 예수의 마음을 갖게 만들어주는 거죠. 그래서 주님을 잘 따르는 길은 주님의 마음을 나누어 갖는 길이에요. 그러면 주님을 따르는 길이 내가 나 아닌 주님을 따라간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는 길 그 자체가 나를 발견하는 길이고, 주님을 따라가는 그 길 자체가 내가 완성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러면 마지막으로 그 주님의 마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품어지겠으며 그 사랑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에 부음바 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살면서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구나하는 것을 아주 깊이 경험하던 때가 있을거에요. 어떤 때 여러분들이 아!! 이게 주님의 마음이구나!! 이런 거를 경험합니까? 누가 대답해 볼까 양목사가 대답해 볼까!! 어떻게 생각해요! 언제 그런 거를 경험해요! 아!! 이게 주님의 마음이구나!!! 이런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던 주님의 마음이, 혹은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교회와 세상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게 언제에요! 언제 그렇게 내 마음에 확 부음바 돼요!! 언제인거 같애요!! 음? 괜히 나한테 물어바가지고... 하하하 안목사가 한번 대답을 할 거 같애요! (안 목사님의 답변....) 그것도 한 대답이 될 수 있죠! 옆에 있는 이목사가 난 안시키나그러는데... 언제 그렇게 주님의 마음이 부어지는 거 같애요!(이 목사님의 답변.....) 전부다 얘기해 버렸네!! 주기도문으로 마쳐야 되겠네!! 다 같은 얘기죠? 안 목사는 순종할 때, 그렇죠?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는 사실을 어디서 발견했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그렇게 다가오니까 그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나는 원하지 않는데 주님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은... 목회를 하면서, 신앙생활을ㅇ 하면서 이 한 가지만 꽉붙들고 살면 쓰러지지 않을 수 있어요. 또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주님의 마음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영향을 받는 마음!! 이게 결국은 주님의 마음이 부어지는 신자의 내면의 세계에요. 다른 건 아니에요. 그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 속에서 살지 않으면 우리가 굳이 그런 삶을 살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아주 자연스럽게 위선적인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러면서 성육신하신 주님의 생애와 부활하시고 보좌우편에 앉아서 우리를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그 탄생과 비화와 고난과 승귀... 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그 탁월한 인격이 우리의 마음에 조명되어 그것이 우리에게 계속 영향 미치게 해야 해요! 그래서 수시로 주님을 불러요!! 수시로 주님을 불러요!!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따를 때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분을 향하여 가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 다음 주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