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새벽예배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12:4)
녹취자: 전인현
믿음의 주요 또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렇게 해야 될 텐데 그렇게 하자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뭘 어떻게 하셨는가 해서 예수님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참으시더니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그렇게 참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두고 견디면서 이 안으로는 영혼의 싫증과 싸우고 또 밖으로는 육신의 게으름과 투쟁하면서 그렇게 하나님만을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위해서 그 죄인들이 당신을 거슬러서 말하는 것들 그 부당한 모든 것들을 참고 마지막까지 이기신 그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 이야기가 어제까지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럼 도대체 그 예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삶 그것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바라보고 또 믿음이 온전해 가져서 11장의 믿음의 증인들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인데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렇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가 그 구체적인 삶이 어떠해야 하겠는가 그것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면 죄와 더불어서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승리한 삶이다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정말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나아갈 때 그러한 온전한 삶을 가로 막는 가장 커다란 대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밖에서 오는 환란이나 핍박 고난 시련 경제적인 어려움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지 못하도록 우리를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11장에 보면 그 믿음의 허다한 증인들이 살았던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환란과 핍박 세상에서의 미움 고통 가난과 형벌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 오히려 믿음은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이 사람들이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었고 그리고 어떻게 해야지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고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직 한 사람의 신자로 하여금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그 대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죄에 대한 사랑이 영혼의 싫증을 유발하고 육체는 게으름에 빠지게 해서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보면서 분투하면서 사는 대신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적당하게 살아가는 그런 부패하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도가 여기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그 치열한 삶이 결국은 죄와의 싸움을 통해서 인내하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려고 할 때에 끊임없이 분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할 때에 실제로 우리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방해물은 사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으로부터 멀어졌다 은혜로부터 멀어졌다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런 많은 이야기들이 결국 나중에 알고 보면 영혼 속에 일어난 우리의 싫증과 죄 이런 것들을 사용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결코 그 환경자체가 우리를 좌절시키고 낙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때문에 신앙에서 물러갔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고통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빛났습니다. 환란과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서 은혜에서 멀어졌다 오히려 이 사람들이 환란과 핍박이 있을 때 그들의 믿음이 치열하게 타올랐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오히려 그 신앙이 가장 아름답게 하늘을 산화시켰어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야기하되 너희가 죄와 싸우되 명색이 믿음으로 산다고 하고 명색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사람들이 그 죄에 달려가서 그 죄와 물고 빨고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벌써 배교적인 삶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항상 죄에 대한 승복 그 죄에 대한 항복 죄에 지고 이런 것들은 항상 은밀히 그 죄의 낙을 즐기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그 죄를 사랑하고 공개적인 방법으로가 아니라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피하는 방법으로 그렇게 은밀하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이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기옹호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는 믿음이 이렇게 치열하게 타올라서 오직 신앙으로 하는 이 삶이 불가능합니다. 한손에 칼을 들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서 그것을 잘라버리는 그런 강력한 결단 없이는 이 자신 속에 하나님께서 당겨놓으신 이 믿음의 불을 계속 치열하게 유지하면서 그렇게 살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렬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기도를 해도 열렬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겨도 불꽃처럼 섬기며 살고 싶어 하고 전도를 하더라도 치열하게 전도를 하고 싶어 하고 고난과 싸울 때도 정말 불붙는 마음으로 그 고난을 이기면서 신앙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환란이 너무나 크고 고난이 너무 강하고 절대 그래서이지 않습니다.
(예화) 여러분들이 화재가 납니다. 화재가 나면 물을 끼얹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불이 어느 정도 났을 때 이야기지 불이 막 기름과 어우러져 치열하게 타오르는데 물을 끼얹으면서 불길이 더 맹렬하게 처음에는 타오릅니다. 그러니까 소방서에서도 나오면 화재의 현장에 가서 무조건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이 화재가 종류가 무엇인지 먼저 감식을 합니다. 그래서 물을 끼얹는지 약품을 끼얹는지 합니다.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열렬하고 치열하게 타오르면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의 물을 끼얹으면 더 믿음으로 살아나야겠다는 강력한 불꽃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 받았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막 잡아 팼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믿음이 식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렇게 능욕을 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그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렇게 전하지 말라 거꾸로 네가 잘 생각해봐라 우리가 사람의 말에 듣는 것이 옳겠나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옳겠나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입니다.
은밀한 죄가 있어서는 이런 열렬한 삶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라고 하는 그 자체가 이미 벌써 하나님에 대한 싫증이고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싫어하면서 한편으로는 타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는 거짓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죄가 그렇게 열렬하게 타오를 수 있는 믿음의 작용들을 방해하기 때문에 오늘 이 사도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물론 죄와 싸웁니다. 싸우는데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싸우니까 그 싸움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힘겹게 싸우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져서 그 죄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명목상의 싸움입니다.
우리 여기에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아니하였으니 여기 싸운다고 하는 말이 ‘안타고네조마이’라고 하는 단어인데 ‘안티’는 거스르는 것이고 ‘아고니조’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고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씨름하다라고도 나오는데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씨름을 하는데 어떻게 씨름 하냐면 반감을 가지고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격투기 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격투기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때려죽이고 하는 격투기 말입니다. 강력한 반감을 가지고 그리고 격투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화) 옛날에도 가끔 보면 권투나 이런 것을 하면서 돈을 미리 받고 승부를 조작해서 싸워서 문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을 마음대로 때려눕힐 수 있습니까? 눕힐 수 없습니다. 자기가 지기로 하고 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대항하여 싸우는 그 싸움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는 오직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그 싸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다 던져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씨름 그런 싸움 그런 처절한 투쟁 전투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는데 싸움자체가 무엇이냐면 피 흘리기까지 하는 싸움입니다. 이것은 아주 필연적으로 로마 시대의 격투기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예화) ‘팔레’라고 하는 에베소서 6장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는 그 ‘팔레’라고 하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이 격투사들 둘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항복 그런 것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피가 터져 흘러서 죽을 때까지 계속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거기에선 어떤 양보 휴전 그리고 적당한 승리나 합의된 패배 승부 이런 것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상대를 죽이기 전에 내가 죽는다고 하는 절대절명의 마음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우고 완전히 상대방이 죽기까지는 양보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싸움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래서 피 흘리기까지 이것은 싸우다 피 흘리는 것이 아니라 그 피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사를 걸고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이 죄와 더불어 생명을 걸고 싸우는 분투가 필요하다 이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렇게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도우시고 그리고 그런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