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몬 1:25)
녹취자: 원수연
사도의 마지막 축복 기도 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명령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탄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이런 뜻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마지막 인사, 축복의 간구는 앞 절에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은혜와 평강의 탄원과 짝을 이루면서 이러한 축도로, 축복에 대한 간구로 시작을 해서 마지막에 편지를 축복에 대한 간구로 마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내용을 살펴보기 전 이와 같은 형식을 통해서도 이미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하는 삶입니다. 맨 처음 편지를 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구한 사도가 마지막에 편지를 닫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또한 간구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사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전적인 의존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간절한 간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사연들을 많이 써내려갔지만 옥 속에 갇혀서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사도와 이 편지를 받고 있는 빌레몬, 사도 바울의 곁에 있던 동역자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람은 달라도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우리 각자 맡은 사명이 다르고 또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각각 달라도 그것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섬기며 영광을 돌리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이 내용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도 바울도 한 때에는 핍박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옥 속에 갇힐 정도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고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적잖은 손해를 끼쳤던 이 오네시모, 정말 노예로서도 쓸모없는 이 쓰레기 같은 사람을 오늘 사도 바울이 ‘그는 나의 심복이라’ 이렇게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소중한 동역자가 되게끔 그를 변화시켜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돈 많고 유력한 사람으로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권력이나 휘두르고 악이나 행했을 이 빌레몬에게 오늘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편지를 쓰게 한 것도 빌레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사도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고, 마가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와 같은 사람이 고난을 받는 사도 옆에서 동역자로 머물 수 있게 만들어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일체의 평안함으로 이 편지를 쓰며 그리스도의 교회에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 속에 채우고자 했던 사도 바울의 이 모습도 역시 하나님이 주신 은혜, 그것이 그 마음속에 주는 평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은혜는 이렇게 우리를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도에게 무엇인가 빌레몬에게 주고 싶은 한 가지를 구하라고 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의 위대한 힘은 희망 없는 인간의 무능력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는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의 위대한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그리고 그 능력을 붙들며 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회에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은혜만이 사람들을 바꾸어 놓을 수 있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부어줄 수 있고 그 마음을 가지고 그 모든 시련과 환란을 헤치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그 은혜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되어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왜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성부, 성자, 성령은 각기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데 구분이 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성부 하나님을 통해서, 통해서라기보다는 사랑은 성부 하나님께,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교통 혹은 위로는 성령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모두 사랑의 교통을 이루고 계시지만 그 사랑은 성부 하나님 아버지께 원천이 되고, 위로와 교통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 귀속됩니다. 이 은혜는 만약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은혜가 얼마나 고귀한 사랑의 또 한 국면인지 우리 인류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고 죄가 들어오자 그 죄를 용서하고 그 죄인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 주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통해 나타났고 그것은 우리에게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은혜라고 하는 말은 성경에서 세 가지로 사용이 되는데 첫째는 구원의 길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전에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한 새로운 한 의가 되시자 이제 구원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길 자체가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값없는 호의,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말하자면 좋은 것, 이걸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는 우리 마음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할 때에 그 은혜는 세 번째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큰 감화의 힘이 너희 심령과 함께할 지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바로 그 은혜가 우리의 심령과 함께 있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심령은 우리의 삶과 생활을 움직이는 우리의 영혼의 깊은 좌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 정신과 영혼의 깊은 곳을 지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꼭 같은 사람을 대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때에 그를 대하는 태도와 하나님의 사랑이 없을 때 그를 대하는 태도를 한번 대조해보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놀라운 차이가 나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은혜는 곧 사랑의 힘이요, 그 힘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데려가시지 않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도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 넘칠 때 그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차갑게 들리던 하나님의 말씀이 뜨거운 감화로 다가와 하나님 앞에 인생을 결단하게 하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이 여기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