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6일 교직원예배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여러분들은 기억을 못하시겠지만 지금으로부터 한 25년 전에 강남에서 희대의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룸살롱에서 폭력배들이 회칼을 휘둘러서 여러 사람, 두 명인가가 죽고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직 폭력배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사람들의 뒤를 어느 유력한 정치인이 봐주고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정말 엄청났습니다. 수사 받을 때도 그렇게 뻣뻣하고 그랬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우리의 뒤를 봐줄거다, 너희 같은 조무래기 경찰이나 검사들 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권력자가 우리를 비호하고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에서 도대체 이 놈들 뒤 봐주는 정치인이 누구냐 그러고 발칵 뒤집혔습니다. 결국 그 정치인이 그들을 끝까지 봐줄 수가 없는 상황이 됐죠. 그래서 재판까지 갔습니다. 재판정에서 판사가 선고를 하는데 개전의 정이 전혀 보이지 않고 흉악하기 때문에 사형이라도 언도를 내렸습니다. 그때, 폭력배들...이런 깍두기 머리 한 사람들 있잖아요. 현장에서 봤던 사람이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그 덩치들이 벌벌벌벌 떨더랍니다. ‘사형’ 하는 그 순간에....그때는....지금은 사형언도 받아도 집행을 잘 안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뭐 심하면 사형 언도 나고 일주일 안에 형 집행했거든요. 막 쓸어버릴 때였거든요. 벌벌벌......
오늘 사도가 그런 사형 선고를 마음에 받았다는 거거든요. 우리는 경험이 없으니까 사실 가슴에 다가오지 않지만, ‘사형’ 하고 언도가 내렸을 때 그 마음은, 덜덜덜덜 떠는 그 마음은....그게 하나님 섬기면서 살아온 사도 바울의 경험이었습니다.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경험. 그거였습니다.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경험, 바로 그거였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보면 ‘이제는 정말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구나. 나도 나를 도울 수 없구나’ 하는 절대적인 절망....거기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렇게 철저한 절망과 좌절 속에서 빠질 때에, 그때 거기서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런 세계가 없다면 그는 목표가 없는겁니다. 목표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삶 자체가 치열한 전투예요. 그런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삶이 그런 전투일 수가 없죠. 목표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 하고... 사도 바울, 그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말이죠, 사도가 뭐라고 덧붙였냐면.... 우리를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는 것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이렇게 바꾸시 얼마나 좋아요? ‘죽을 자도 못 죽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잖아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을 못 죽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은 죽음에서 나타나는 거예요. 역설적으로....자기 죽음이 있는 그곳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못 죽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죽으면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길은 우리가 잘 죽은거예요.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한 4년 전에 ‘시련과 연단’이란 시리즌가...그런게 있었어요.. ‘연단하시는 하나님’... 그때도 제게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시리즈를 설교하면서 연단에 대해서 새롭게 눈 뜨게 하셨어요. 비밀은 뭐냐하면, 하나님은 못 죽게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예요. 그게 바로 생명의 비밀이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예수님을 못 죽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죽으시려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시몬 베드로는 사단이라고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죠. 그게 하나님의 구원 방법 자체가 못 죽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큰 능력으로 죽지 못하도록 막아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죽고 그 죽었을 때에 그 죽은 자를 다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예요. 그래서 짓밟히고 죽고 소멸하고 꺾이고 깨뜨려지고 부서지는 그 속에서 다시 세움을 받은, 그게 바로 하나님의 원리예요. 하나님의 원리예요.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바위를 깎아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흙을 빚어서 창조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마모의 창조가 아니라, 형성의 창조예요. 영원에 대한 생각들도 두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굉장히 그런 한(恨) 같은 것을 품고 있다고 보는데... 우리는 마모의 영혼이예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일본 국가는 ‘모래알이 모여 바위를 이룰 때까지’. 형성의 영혼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이미 만들어진 바위를 깎아내서 우리를 만들지 아니하시고, 흙 -히브리 말로는 아파르예요. 아파르는 흙도 아니야. 이렇게 후~하고 불면 진흙 가루가 확 날리는 것, 그걸 아파르 라고 그래요. 티끌이라고 그러죠. 그걸 가지고 더 이상 나누어 질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잘잘한 그런 가루를 가지고 사람을 만드신 거죠.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만드신 거죠. 결국 뭘 보여주냐 하면,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가 형성될 때, 그 형성의 창조는 자신의 형체를 주장하지 않는 티끌로부터 만들어진 형성의 창조예요. 그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들을 만드시는 방법이란 말이죠. 저항하지 않는 진료... 창조의 손길에 저항하지 않는 아파르의 상태에서 인간이 빚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깨뜨려지고 다시 하나님의 손에 의해 빚어지는 것은 그런 창조의 모델을 계속 따라가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죽고 다시 사는 것도 그런 모델을 따라가는 거예요. 그런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거예요. 이게 우리의 신앙 생활이예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주님을 많이 닮았을까, 많이 죽은 사람이예요. 어떤 사람이 주님을 위해 꿋꿋할까, 많이 깨뜨려져 본 사람. 어떤 사람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됐을까, 많이 꺾어진 사람. 그런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세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주 설교한 것처럼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사역을 놓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우리들이 사역을 할 때 그때 큰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도 다시 살리시는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죠.
사순절 기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이 그런 절기를 앞두고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우리가 죽는 것의 비밀, 그렇게 죽어야지만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 가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많이 죽은 사람은 온전히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고, 반쯤 죽은 사람은 반쯤은 죽은 육체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예요.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간 육체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예요. 그런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죽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많이 꺾여진 사람들이 많이 세움을 얻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어렵다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자기의 영혼의 살이 썩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생명 대신 죽음이 스며들어 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살려고 하니까...살려고 하니까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 오는 거예요. 난관을 만날 때 자기가 꺾이고 주님앞에 깊이 깨뜨려지면 그러면 다음에 생명의 기운이 스며들어 옵니다. 왜냐하면 죽으려고 하니까....그래서 그 고난을 인해서, 그 풍랑을 인해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죠.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도록 우리는 죽고 주님은 우리 안에 살도록 이 한마음으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함께 해 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시 읍소서 하나님 아버지 크신 사랑과 은혜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역사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은혜 내려 주옵소서. 그래서 늘 섬기며 이길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주께서 역사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 오늘이 시간에도 도와주시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런 모습으로 주 앞에 설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해 주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주님 오늘 이시간도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잡아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새롭게 해 주시고 주님도와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주님 오늘 이시간도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잡아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새롭게 해주시고 주님이 도와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 며 나라에 임하 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